설교/예화

7평 호프집 딸 '수능 드라마' 만들다

하마사 2010. 12. 9. 18:47

언·수·외 만점받은 통영 충렬여고 임수현양
형편 어려워 학원 못가고 학교수업만으로 수능 대박
"옆에 계셔 준 것만으로도 부모님께 너무 감사해요"^ 서울대 사회과학계열 지원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과 친절하게 지도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8일 개별통지된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전국 최고 수준의 점수를 받은 임수현(17·통영 충렬여고 3년)양은 "기분 나쁘지 않은데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임양 아버지(48)는 "옆에 있었을 뿐 부모로서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는데 수현이가 너무 고맙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전국 최고 수준의 성적을 받은 경남 통영 충렬여고 임수현양이 부모가 운영하는 호프집에서 부모와 친구에게 축하받고 있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수현양은 이번 수능 언어·수리·외국어 영역에서 표준점수 최고점(원점수 만점·100점)을 받았다. 사회탐구 윤리와 한국근현대사에서도 만점(50점)을 받았고, 국사와 사회문화에서 한 문제씩 틀려 47점을 받았다. 원점수 기준 500점 만점에 494점을 받은 것이다.

담임 최종렬(40) 교사는 "언어·수리·외국어 영역에서 모두 만점을 받은 학생은 전국 11명뿐"이라며 "문과와 이과를 나누고, 사회탐구영역 점수를 포함하면 인문계열 수석 아니면 그 근처로 판단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수현양은 "학교에서 3년 동안 기숙사에 머물게 하며 자정까지 공부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덕"이라며 "학교수업 열심히 듣고 예·복습을 충실히 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수현양 등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 2회 오후 7~9시 심화반 과정을 운영하며 영어·수학 특별수업을 했다. 여기에 더해 수현양은 통영시가 매주 토요일 2시간씩 운영하는 영재학습반에서 영어·수학 강의를 들었다.

"학교 수업 열심히 듣고…"라는 수현양 얘기는 상투적일 수 있으나, 사실이었다. 수현양은 초등학생 때 피아노·미술 학원에 다녔지만, 중학생 이후엔 학원에 다닌 적이 없다. "학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부담될까봐 한 번도 '학원 보내달라'는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는 속깊은 학생이다.

아버지는 한 운수업체가 운영하는 통영시외버스터미널에서 주유소 소장으로 일했다. 탱크로리가 유류를 싣고 오면 기름양을 확인하는 것도 그의 업무였다. 1999년 1월 비 오던 날 탱크로리에 올라가 기름양을 확인하고 내려오다 미끄러져 허리를 크게 다쳤다. 이후 입원과 통원 치료로 5년을 보냈다. 월 100만원의 산재보험료가 나오긴 했지만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수현양의 어머니(43)는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통영과 고성 일대를 돌며 난전에서 아동복을 팔았다. 벌이가 시원찮자 식당에도 나갔다.

이들은 5년 전 통영시 미수동에 7평짜리 가게를 얻어 생맥주와 치킨을 파는 호프집을 열었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0만원이었다.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길 건너 하나씩 있는 상황이라 장사가 잘될 리 없었다고 했다. 하루 5만원 벌이도 쉽지 않았다. 허리가 성치 않은 임양 아버지는 항남동 찜질방에서 매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청소일 등을 하며 생활비를 보탰다. 수현양을 학원 보낼 여유가 없었다.

수학담당이기도 한 담임 최종렬 교사는 수현양의 장점으로 자기주도적 학습과 성실함을 꼽았다. 기숙사생을 대상으로 한 심화반 수업에서 최 교사는 특별한 교재 없이 여기저기서 발췌한 10~12문항의 문제지를 나눠주고 그 가운데 중요한 2~3문제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나머지는 시간 날 때 각자 알아서 풀어보라고 했다.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나눠준 문제지를 갖고 있는 학생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수현양은 최 교사가 지도한 2년간의 문제지 200여장 전부를 보관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한 문제도 풀지 않은 게 없어 최 교사가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런 수현양이었기에 2등급을 받은 1학년 2학기 기술·가정 한 과목만 제외하고는 3년간 전 과목에서 내신 1등급(4% 이내)을 받았다.

수현양은 서울대 사회과학계열 수시모집에 지원, 합격자 발표(오는 11일)를 기다리고 있다. 합격하면 영어·수학 공부에 매달릴 생각이다. 경제학을 전공, 경제 관료나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어 영어·수학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부모님이 옆에 계셔 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수현양은 "열심히 공부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조선일보, 201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