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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신 명예교수, 초월성을 상실한 한국 기독교에게

하마사 2010. 10. 30. 21:06


“한국 기독교가 초월성을 상실한 채 지나치게 체제 순응적인 종교가 되었다.”

박영신 연세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25일 오후 숭실대 한경직기념관 소예배실에서 열린 12회 베어드 강좌 ‘누구의 교회이며, 어떤 기독교인가’(부제 ‘우리의 신앙 상황’) 제목의 발제에서다.

박 교수는 19세기 말 당시 기독교의 전파로 남녀 평등, 신분 타파, 한글 사용 등의 변화가 일어난 국내 상황을 언급하며 “당시 기독교는 하나님이라는 존재의 초월 속성을 통하여 모든 현존 제도를 절대화하지 않고 상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불어넣어주었다”며 “하지만 오늘의 한국 기독교는 삶의 가치 지향성에서 다른 사람들과 근본의 차이점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당시 기독교는 사회 변동의 동력이었다. 기독교는 현존하는 사회의 됨됨이를 있는 그대로 두둔하고 떠받드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것을 질문하고 나아가 변혁코자 한 의미 체계였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조선의 기독교인들은 인간이 만든 풍습과 제도와는 떨어져 존재하는 하나님을 헌신의 대상으로 삼아 현존하는 것을 뛰어넘고자 한 결단의 사람들이었다”며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별남 때문에 온갖 안팎의 핍박을 당해야 했지만 별난 그 길을 꿋꿋하게 걸은 변혁의 일꾼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지금의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별난 사람이 아니라 ‘평균치의 인간’ 곧, 보통 사람이 되어버렸다”며 “교회에 다니든 안 다니든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것을 선호하고 같은 상승의 사닥다리를 올라가고 같은 잣대로 삶을 잰다”고 꼬집었다.

기독교의 초월성 상실이 이같은 체제 순응의 기독교인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초월의 권위에 의존하는 그리스도인은 현존 체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질문의 실천 행위를 아예 포기하고 현존하는 것에 맞장구만 치고자 한다. 그들은 그 맞장구의 대가로 체제 안에서의 ‘편안함’을 선물로 받고 평탄한 삶을 살아간다. 질문해야 할 때 질문하지 않는 것은 비굴할 뿐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받은 질문의 능력을 저버리는 죄이다.”

그러면서 목회자들을 향해 “마치 재벌들처럼 목회의 성공도 규모에 맞춰져 있다”며 “거대주의가 부흥의 유일한 길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이러한 거대 교회의 반열에 들어서지 못하는 교회의 목회자들은 섭섭한 마음을 그들끼리의 모임에서 풀어놓고자 하지만 그것 역시 규모의 크기를 성공의 척도로 삼는 체제의 속성과 뒤범벅이 되어 있다”며 “한 마디로 모든 교회가 규모 중심의 거대주의에 동조하여 앞 다투어 그 ‘넓은 길’에 들어서고자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초월성 상실은 목회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박 교수는 “교인들은 자기가 다니는 교회가 ‘자기에게 맞는 교회’라고 말한다. 그렇게 교회와 교인이 짝패가 된다”며 “체제의 가치에 흠뻑 빠져 그 체제의 근본 문제를 깊이 헤아리고자 하지 않는 이들이 가장 많이 그리고 빈번하게 모여드는 종교 집단의 정례 모임이 오늘의 기독교회”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들의 관심은 이 체제 안에서 무난하게 성취와 성공의 목표를 달성하여 편안하게 사는 데 있을 뿐 이 체제의 문제를 드러내어 그것을 바로잡는 데 겨냥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회 강단을 향해 “복잡하고 치열한 오늘의 경쟁 체제 밑에서 살아가는 고단한 삶의 아픔을 교회가 치유해 준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회의 근본 문제를 혁파하는 데서 해결책을 찾지 않는다”며 “현존하는 체제를 그대로 둔 채 그것과 충돌하지 않고 거기에 순응하도록 길들이는 데 교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근본적인 문제의식 없이 행하는 교회의 구제와 봉사는 결국 체제 유지에만 기여할 뿐이라는 게 그의 인식이다. 하지만 “구제나 봉사를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며 “봉사와 구제만으로 소임을 다한다고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박 교수는 “이제 교회와 기독교는 말씀의 거울에 새삼 비춰볼 때를 맞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의 삶을 마구 휘어잡아 몰아붙이고 있는 경제 위주의 체제 가치에 파묻혀 이지러진 현실 교회의 모습을 추슬러 그 참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그 체제의 가치를 마치도 하늘의 뜻인 듯이 그것과 동일시하여 자기 축소와 왜곡을 자초하게 된 현실 기독교의 모습을 꿰뚫어 그 참다운 실체를 다시 바로잡아야 한다. 결국 그것은 궁극의 실재에 대한 감수성을 지니고 초월의 가치와 이상에 대한 믿음을 되찾는 일에서 해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그는 주변부의 저항신학을 제안했다. 참 그리스도인은 체제 중심부 언저리의 보잘 것 없는 작은 자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체제 유지 논리와 체제 순응 세력에 맞서 물음을 던질 수 있는 비판 능력이 사라지게 되면 주변부 그 어디서부터 아우성치는 질문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케 될 수밖에 없다”며 “뜻있는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주변부의 저항 신학을 기다리며 그러한 신학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는 체제 순응에 빠져있을 만큼 그렇게 천박하지 않으며 기독교 또한 체제와의 동일시를 능사로 삼아야 할 만큼 그렇게 편벽되지 않기에, 교회는 오늘의 교회를 돌파하고 기독교는 오늘의 기독교를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이날 숭실대 기독교대학원(원장 박정신 교수) 주최로 열린 베어드 강좌에선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의 '한국 기독교의 민족운동' 발제도 있었다. 이 교수는 "그동안 한국 교회를 향해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며 비판을 많이 해왔는데 이제는 격려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외에도 두 명예교수는 200여명의 참석자들과 함께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특혜 문제 등에 대해 질의 응답 시간을 통해 기독교적 해법을 모색하기도 했다. 올해로 12회째를 맞은 베어드 강좌는 조선 말 숭실대를 설립해 기독교 지도자 양성에 기여한 윌리엄 베어드 박사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열리고 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

 

-국민일보, 2010/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