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사람

여성 산악인 오은선

하마사 2010. 4. 30. 09:52

베이스 캠프로 무사히 돌아온 '산악 여왕' 오은선
"그냥 따뜻한 데 누워 엄마가 해주는밥 먹고파 1년에 2번 하는 파마가 산 오르기보다 힘들어"
"파사반 칸첸중가 갈 때 우리가 깐 줄 써놓곤… 고미영 사진 묻으려다 눈 팔 수 없어 그냥 와"

"솔직히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등 따뜻한 데 누워서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철의 여인'의 바람은 소박했다. 27일 안나푸르나(해발 8091m)에 올라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한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 29일 오후 12시 50분(이하 한국시각) 캠프 1(해발 5100m)을 출발해 오후 3시 45분쯤 베이스캠프(해발 4200m)로 복귀한 등반 영웅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오 대장은 차갑고 건조한 히말라야의 공기에 기관지가 예민해져 간간이 기침을 했다. 한국에서 가져간 생강차를 마시면서 기침을 달래고, "힘들다"라는 말을 되풀이했지만 14좌 완등을 이뤘다는 성취감이 전해졌다. 그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한국에서 가져간 냉면과 게장, 사과를 먹었다고 했다.

―20시간 넘게 거의 먹지 못했다고 들었다.

"사실 (해발) 7000m가 넘어가면 물밖에 안 들어간다. 식량가방 하나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없어서 설탕물이나 차 정도를 마셨다. 아, 컵라면 하나를 세명이 나눠 먹었다. 그런데도 남을 정도로 입맛이 없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반에 성공하고 29일 오후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오은선(왼쪽) 대장 일행이 환하게 웃으며 마중 나온 원정대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내려와서 찜질방에서 시원한 식혜를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는데.

"그 얘기가 벌써 알려졌나. 농담도 못하겠다. 정말 따뜻한 곳이 그립긴 하다."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랐을 때 메고 있던 배낭엔 뭐가 들어 있었나.

"여분의 양말, 물통, 깃발과 고미영(2009년 낭가파르바트 등반 때 사고사)의 사진이 있었다. 사진을 카바(히말라야에서 행운과 무사기원을 의미하는 일종의 보자기)에 싸서 보온주머니에 넣고 배낭 안쪽 포켓에 담았다."

―정상에 고 고미영 대장의 사진을 묻었다고 들었다.

"묻으려고 했는데…. 캠프 4에서 사진을 준비해서 함께 올라가긴 했지만, 눈을 파고 묻을 상황이 아니었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고, 날씨가 좋지 않았다. 눈을 팔 수가 없어서 다시 가지고 내려왔다."

―얼굴이 별로 안 탔다.

"정말 안타깝고 유감스럽게도 선크림(자외선차단)을 바르면 타지 않는다. 코나 볼 이런 데가 좀 시커멓게 타야 고생 되게 한 것 같지 않나. 다른 사람들은 캠프에 한 번 갔다 와도 그렇게 되던데. 난 고생한 티가 나지 않아 속상하다. 선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화상을 입는다. 너무 쓰리고 아프다."

―평소에 화장도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화장 못한다. 어떻게 하는지 잊어버렸다. 미장원은 간다. (머리카락이) 심한 곱슬이라 머리를 펴는 스트레이트 파마를 일 년에 두 번 한다. 아주 죽을 맛이다. 기본 4~5시간이 걸린다. 하루가 다 가는 거다. 등산보다 더 힘들다."

―14좌 완등 중 가장 고생한 산을 꼽는다면.

"마음고생한 거는 말로 다 못한다. 몸이 힘들었던 데는 에베레스트(세계 최고봉·해발 8848m)였다. 2004년 산소를 쓰면서 올라갔는데, 내려오면서는 산소를 쓰지 못해 거의 죽을 뻔했다. 작년 봄(5월 6일)에 칸첸중가(해발 8586m) 올라갔다가 보름 만에(5월 21일) 다울라기리(해발 8167m)에 올랐는데 몸이 축나서 너무 힘들었다. 노란 위액이 다 넘어왔다. 그리고 이번 안나푸르나가 힘들었다. 생각보다 정상까지 길었다."

―14좌 중에서 다시 오르고 싶은 산이 있다면.

"지금은 산 쳐다보기도 싫다. 징그럽다. 힘들고. 징그럽게 등반 많이 했잖나. 혼란스럽기도 하다. 내가 누군지, 뭘 하고 있는 건지, 한국에선 (14좌 등정성공 때문에) 난리가 났다는데 잘 모르겠고."

―등반가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나.

"2007년에 K2(해발 8611m·한국여성 최초등정)에 올랐을 때 '내가 왜 이런 짓하고 있나' 의문이 문득문득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산이 그리워지더라. 이유는 잘 모르겠다. 산에 안 다녔으면 운동선수가 됐을 것 같다. 스포츠를 워낙 좋아해서."

―'15번째 봉우리'가 결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혹시 이상형 남성상이 있나.

"그런 거 있었으면 내가 지금까지 이러고 있겠나."

―14좌 완등 경쟁을 벌였던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37)이 오 대장의 작년 칸첸중가 등정에 의혹을 제기했다.

"파사반이 뭐라고 그랬다는 얘기를 내려와서야 들었다. 어이가 없다. 파사반은 칸첸중가 정상에 오를 때 내가, 아니 우리 팀 셰르파들이 깔아놓은 줄을 잡고 올라갔으면서…. 이 시점에서 파사반이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다음 달에 히말라야 고산 등정 인증 전문가인 홀리 여사를 만나면 칸첸중가 의혹에 대해 뭐라고 말할 예정인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얘기할 뿐이다."

 

-조선일보, 2010/4/30

 

 

 

[여성최초 14좌 완등] 세상 꼭대기에 올라… 고미영, 너를 보낸다
"미영아, 너의 무덤 앞에서 내가 약속했잖아 꼭 너와 함께 오른다고…
보고 있니? 난 가슴에 네 사진을 품고 왔어
이 산, 이 하얀 눈 속에 너의 사진, 묻어두고 간다"

27일 해발 8091m의 안나푸르나 봉(峯)을 오르는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기온은 영하 30도에 초속 12m의 강풍까지 몰아쳤다. 해발 8000m부터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이번에도 무산소 등정을 고집한 오 대장은 "이대로 포기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힘겨워 보였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꿈을 이룬 오은선 대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지난해 숨진 후배 산악인 고미영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27일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른 오대장은 태극기를 흔들며 감격에 겨운 듯 눈물을 쏟았다. 오 대장은“기쁨을 대한민국 국민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고미영의 사진을 정상에 묻고 내려왔다. /KBS 제공

그러나 오은선 대장은 멈출 수 없었다. 그의 품 속에는 한 살 적은 후배 산악인 고미영씨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둘은 히말라야 8000m 이상의 고봉 14좌(座) 완등을 놓고 경쟁하던 라이벌이었고, 든든한 동반자였다. 그랬던 고씨가 지난해 7월 낭가파르바트 하산 도중 발을 헛디뎌 추락사했다. "경쟁에만 파묻히지 말고 손잡고 안나푸르나에 오르자"던 그들이었다. 오 대장은 안나푸르나 등정에 나서기 전 전북 부안의 고미영씨 묘소를 찾아, "여성 최초의 14좌 완등 꿈을 꼭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이미 13좌에 오른 경쟁자 에드루네 파사반(스페인)이 내달 초 시샤팡마(8027m) 도전을 예고한 상태였다.

함께 껴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2008년의 오은선(왼쪽)과 고미영. /정정현 기자

전날 캠프2에서 캠프3으로 오르던 중 발생한 눈사태로 아찔한 위기를 넘긴 오 대장은 이날도 한계 상황을 딛고 13시간 15분간 악전고투한 끝에 등정에 성공했다. 불교신자인 오 대장은 정상에 태극기를 꽂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등정을 허락해 준 안나푸르나 여신(女神)에게 감사하는 눈물이었을까.

지난 1997년 7월 가셔브롬II (8035m)에 오른 이후 12년 9개월 만의 히말라야 14좌 완등이었다. 오 대장은 14좌를 완등한 20번째 인물이자, 세계 최초의 여성이 됐다. 오 대장은 안나푸르나 정상의 만년설 속에 고미영의 사진을 묻고 내려왔다.

 

-조선일보, 201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