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정희 시인
서해바다에 누운 한 준위여 당신의 마지막 잠수를 생각합니다
몸 던져 웅변한 생애의 숭엄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생각합니다
당신이 영웅입니다…
후배들을 구하기 위해 검게 출렁이는 바다,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춥고 빠른 물살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가 순직한 노병(老兵)의 죽음이 하루 종일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어쩜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아들에게 말했고, 이제 입수(入水)를 중단하라는 아들의 걱정을 들었다. 그는 왜 무엇 때문에 그 차갑고 거친 바다에 운명을 걸었을까. 그의 최후가 천안함의 비극과 겹쳐진 것을 단순히 '추가 희생'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가 바다에 몸을 던져 웅변한 생애의 숭엄하고 아름다운 가치가 하루 종일 내 귀를 때리는 듯했다.
"정신이 용감한 사람은 홀로 싸우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한 이는 마하트마 간디였던가. 한주호 준위. 그는 진정 용기있고 당당한 열정의 소유자만이 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마지막 잠수를 하였다. 그에게 그 잠수는 무엇이었고, 군인이란 신분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그 다이빙의 순간, 그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신념을 사는 참사람의 모습 그 자체였다. 천안함의 침몰 원인은 아직 미궁투성이여서 답답하고 숨이 막히지만, 그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피어난 한 눈부신 영혼이 지르는 함성만은 똑똑히 들었다.
공무도하(公無渡河)! 만류하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강으로 뛰어든 저 고조선 시대 열정의 백수광부(白首狂夫)였을까. 흰 머리칼 강바람에 휘날리며 물속으로 뛰어든 신화 속의 아름다운 사나이를 자꾸 그와 겹치어 떠올려 보게도 된다. 그가 바다로 뛰어들어 간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아까운 생명들이 구조를 기다리는 저 거친 바다는 군인인 그에게 자신의 안위를 거침없이 내던져 버려도 좋을 사명이요, 용기요, 꿈이 아니었을까.
한 준위는 18세에 입대하여 35년간 군복을 입은 뼛속까지 군인이었다고 한다. 수중폭파대(UDT)로 평생을 살아왔으니 위험이 있는 바다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던 셈이다. 그는 누구보다 목숨의 소중함과 두려움과 위험함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가족들의 기도와 눈물을 가슴 깊이 간직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그의 마지막 다이빙은 이름없는 영웅의 비상(飛翔)이었다. 아까운 생명들을 살리기 위해서 주저없이 위험 속으로 자신의 전부를 던져버린 그의 선택은 명리(名利)와 계산과 이기주의로 가득한 세상을 빤한 잇속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반성이요 질책이요 감동이었다.
그는 천안함 사고 소식을 듣고는 자원하여 현장으로 갔다. "내가 베테랑이니 내가 직접 들어가겠다"며 젊은 후배들 앞에서 단련된 정신으로 몸을 사리지 않고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위기상황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군함을 집어삼킨 그 바다에 그렇게 허술한 장비와 힘든 조건을 견디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전문가였다. 그래서 그의 희생이 더 값진 것이다.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몸으로 보여준 사랑과 희생, 입으로 부르짖는 애국이 아니라 겸손과 실천으로 보여준 눈부신 영혼의 던짐이 애국이라는 말에 거룩한 무게를 더한다.
한 준위의 죽음은 깊은 바다 속 수압이 높아 호흡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간 질소기체가 체외(體外)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혈액 속에 녹게 된 것이 직접 원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허술한 주위 상황과 낡은 장비를 탓해보기도 하고, 해군의 열악한 현실을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어떤 말로도 아까운 한 목숨을 다시 살려 놓지는 못할 것이다. 같은 희생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고인을 가장 크게 사랑하고 위로하는 길은 무엇인가. 훈장이나 성대한 장례보다도 그가 그토록 간절히 살리려고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뛰어들었던 46명 실종자에 대한 소식일 것이다. 차가운 바다 밑에 있는 장병들을 하루빨리 다시 뭍으로 데려오는 것이리라. 그리고 천안함의 침몰부터 구조까지 전 과정을 하루 빨리 명백히 밝히는 것이리라. 실종자 가족에 대한 진심 어린 위로를 대한민국과 국민의 이름으로 보내는 것이리라. 모처럼 '참사람'을 보여주고 떠난 고인의 영면(永眠)을 기원하며 남은 가족에게 진심으로 따스한 위로를 드린다.
-조선일보, 20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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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한주호 준위 추모 물결] "UDT의 代父 편히 쉬십시오"
"그는 진정한 군인… 우리들의 영웅이었다"
일반 시민 등 2200여명 밤늦게까지 조문 행렬
동료들 "믿을 수 없어"… 네티즌도 '사이버 추모'
"실종된 동료들을 가족 품에 안겨주려는 일념으로 모든 악조건과 위험을 무릅쓴 고귀한 희생정신…. 못다 이룬 일 모두 잊으시고 이제 천상(天上)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고(故) 한주호 준위의 빈소가 차려진 31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달려온 고인의 동료와 선·후배, 그의 진정한 군인정신을 추모하려는 일반 시민 등 2200여명의 조문객이 밤늦게까지 찾아와 헌화와 분향 행렬을 이어갔다.
한 준위와 함께 수색작업을 벌였던 해군 특수전여단(UDT) 전우회 20여명은 수백명의 특수전 요원을 양성해 낸 '호랑이' 선배이자, 늘 따뜻한 격려를 잊지 않았던 든든한 맏형의 영정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평생 솔선수범을 실천한 분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가시다니" "무리하지 말라고 만류했다는데, 왜…." 검정색 잠수복 차림으로 서해 바다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한 준위의 영정을 바라보던 후배들은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권태중(30)씨는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던 선배였는데, 이렇게 돌아가시다니…"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 ▲ 천안호 침몰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 중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의 분향소가 마련된 경남 진해시 해군기지사령부에서 31일 오후 동료 특수전여단 대원들이 명복을 빌며 경례를 하고 있다. /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선배 조광현(71·예비역 대령)씨는 "주호는 강인한 체력과 불굴의 정신, 훌륭한 인간성을 갖춘 참 군인이었다. 사선(死線)을 넘는 걸 알면서도 바다 속으로 다시 들어간 그는 살신성인(殺身成仁)한 것"이라며 "작년 청해부대 1진 활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소주 한잔하며 격려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고인의 UDT 22기 동기인 김정근(53)씨는 "주호는 후배들에게 뒤지지 않는 체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운동을 한 몸짱이었는데…" 하며 울먹였다.
제2연평해전(2002년 6월)에서 남편 한상국 중사를 잃은 부인 김종선(36)씨도 이날 빈소를 찾았다. 8년 전 바로 이곳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남편의 영결식을 치른 김씨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한 준위의 부인 김말순씨는 김종선씨가 자신을 소개하자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통곡했다.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김씨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김종선씨가 나직이 말했다. "오기 싫었습니다. 그때 제 모습이 생각나서. (아들과 딸에게) 어머니를 잘 돌봐드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견디셔야 합니다."
추모 물결은 사이버 공간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11시30분 현재 인터넷 포털 '다음'의 추모서명란 '천안함 구조대원의 순직을 추모합니다'에는 4130명의 네티즌이 참여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가을강'이라는 ID의 네티즌은 "아들 같은 전우들 생각에 얼마나 애가 타셨겠느냐"며 "이 땅에 이렇게 애통하고 안타까운 죽음이 없길 바란다"고 썼다. ID가 '로그인'인 또 다른 네티즌은 "하늘에 가서도 당신이 사랑한 조국을 보살펴 달라"고 했다. '미송3015'라는 ID의 네티즌은 "고인은 별을 따는 해바라기가 아닌 대한민국의 국민을 위한 진정한 군인이요, 영웅이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글을 남겼다.
해군 특수전여단 카페에 올라온 추모 글에도 선배를 잃은 슬픔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당신은 우리 UDT의 전설로 가슴 속에 남을 겁니다"(33기 정태영),"최악의 상황에서도 최강의 자부심과 희생정신으로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셨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김기태)….
부산의 한 현직 소방관은 한 준위의 순직을 애도하는 추모시를 올렸다. '(중략) 산자는 그대의 고귀한 뜻을 새길 지어다/ 그대의 넋은/ 붉게 타오르는 태양처럼 영원하리니!'
이날 빈소에는 김형오 국회의장과 정운찬 국무총리, 여야 정치인 등과 김태영 국방장관, 김성찬 해군참모총장 등 군 관계자도 찾았다. 김태영 장관은 "한 준위는 영웅적인 삶을 살았다"며 "앞으로 추가 희생이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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