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바울의 축복기도

하마사 2009. 12. 7. 21:12

본문: 엡 6:23-24

찬송: 489장

제목: 바울의 축복기도

목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타인을 위해 축복기도하며 살게한다.

 

 

본문은 바울이 에베소서를 마무리하면서 에베소교인들에게 축복기도를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축도할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라는 문구가 들어가는 오늘날 축도의 근거는 고후 13:13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구약성경의 축도는 민 6:24-26절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이처럼 축복기도에 들어가는 단어는 은혜, 사랑, 평강, 교통, 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중복되어 등장하는 단어는 은혜, 사랑, 평강(평안)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축복하면서 이 세 가지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1. 평안의 축복(23 상)

23절,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평안’이라는 단어는 에베소서에서 8번 쓰이고 있는데, 먼저 서두에서 축복을 비는 표현으로 2절에 나오고 마지막 축복하는 장면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평안은 본래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서 죄인이었던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영적 축복입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물질이든지, 권력이든지, 건강이든지 항상 눈에 보이는 것과 관련이 있고 내 행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실수하고 잘못하면 불안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의 어떤 조건과는 무관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풍랑 속에 있는 제자들, 처형을 하루 앞두고도 깊은 잠을 자게 하신 베드로, 실컷 매를 맞고도 찬송케 하신 바울과 실라, 유라굴라 광풍속의 바울에게 주신 평안입니다.

다윗이 누렸던 평안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었습니다. (시 27:1-3)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 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원수가 사나운 맹수처럼 달려들어 살을 먹으려하고 군대가 진을 쳐서 대적하고 전쟁이 일어나 자기를 치려할지라도 오히려 두렵지 않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주시는 이 평안을 누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사랑의 축복(23 하)

23절,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사랑을 말하면서 ‘믿음을 겸한 사랑’이란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것은 믿음을 수반하는 사랑이란 의미입니다. 여기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키는 ‘아가페’로서 원수까지 사랑하는 무조건적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반드시 믿음을 수반할 때 가능합니다.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남을 미워해보십시오. 미움을 당하는 사람도 불행하지만 미워하는 사람도 불행합니다.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미움은 마귀가 주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합니다. 아무리 상대방이 잘못해도 미워하면 불편하고 괴롭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마귀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유혹하기 위해 거짓으로 사랑하는 척은 할 수 있어도 진정한 사랑은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일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오늘 윤미자 권사님을 천안공원묘지에 장례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들이 한명인데 미국에 살다가 아내와 딸과 함께 와서 장례를 치르는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윤권사님이 살아계실 때 아들을 그토록 보고 싶어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토록 보고 싶고 함께 있고 싶습니다. 그러나 미운 사람은 함께 있으면 불편합니다. 빨리 헤어지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즐겁고 기쁩니다. 반대로 마귀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두렵고 불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가족을, 이웃을,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없으면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사도가 믿음을 겸한 사랑이 에베소교인들에게 있기를 축복했듯이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은혜의 축복(24)

2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으로 은혜가 있기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은혜란 ‘전혀 그것을 받을 가치가 없는 자에게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호의’를 뜻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이 은혜로 말미암았습니다. 구원의 은혜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건강, 자녀, 물질, 가정, 일터 등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입니다. 이 표현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임하도록 축복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제 2009년도가 저물어갑니다. 한해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봅시다. 어려움과 아쉬움도 많겠지만 여기까지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남은 시간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보면서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함으로 그 은혜를 지속적으로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베소교인들을 향한 바울사도의 축복기도는 평안의 축복, 사랑의 축복, 은혜의 축복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이런 축복을 함께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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