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가는 곳마다 '밝은 세상'이 열려요
8년째 버스로 전국 돌며 무료로 안경 맞춰주는 박종월 장로·안효숙 권사
새로 샀던 버스는 주행거리 10만km를 넘겼고, 무료로 어르신들께 맞춰 드린 안경은 1만4000개를 웃돈다. '큰 빛,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글귀를 새긴 안경 케이스도 그만큼 전국에 퍼졌다. 박종월(59) 장로·안효숙(57) 권사 부부가 지난 7년간 펼쳐온 '안경 선교 봉사'의 중간결산이다.
박씨 부부는 지난 2002년 25인승 미니버스를 구입해 이동식 안경점을 만들었다. 좌석을 뜯어내고 시력검사기와 안경제작 기기를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박씨는 최근 그동안의 이야기를 엮은 책 《1004번 안경버스》(코리아닷컴)를 펴냈다.
박씨 부부의 안경선교에는 너무나 어려웠던 '초년고생'이 바탕에 깔려 있다. 별명이 '묵보(먹보)'일 정도로 굶주렸던 박씨는 고향(전북 순창)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무작정 상경해 서울역에서 왈패 생활을 하면서 경찰서를 제 집처럼 드나드는 거친 청년시절을 보냈다.
그의 삶이 바뀐 것은 부인 안효숙씨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역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수선집에서 일하던 부인은 박씨를 개신교 신앙으로 이끌었다. 1년에 10번도 넘게 이사를 다녀야 할 정도의 가난이 이들을 괴롭혔고, 부인은 어두운 조명 아래 재봉일을 하면서 시력이 나빠져 오른쪽 눈은 거의 시력이 측정되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생활이었지만 이를 극복하게 만든 힘도 신앙이었다.
- ▲ 박종월·안효숙씨 부부가 이동식 안경점으로 개조한 버스 안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들 부부는 버스를 직접 운전해 제주도까지 전국을 누 비며 7년간 1만4000명에게 안경을 무료로 제공했다./김한수 기자
중동 파견 근로자와 택시 기사, 부동산중개사 등을 거치면서 겨우 자수성가한 부부는 고난이 닥칠 때마다 기도로 극복했다. 안경 선교에 나서게 된 것도 기도의 결과이다. 처남에게 안경점을 차려줬던 부부는 나이 쉰 살에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에 나란히 합격하고 대입 수능을 거쳐 김천대 안경광학과에 입학했다. 두 사람은 입학 당시부터 안경 선교를 다짐했다. 부인 안씨처럼 여러 사정으로 안경을 제때 못쓰는 사람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박씨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라고 하지만 전국을 다녀보면 아직도 안경 맞추기 어려운 분들이 많다"고 했다.
박씨 부부는 어려움도 많지만 보람이 훨씬 크다고 말한다. 이들 부부는 안경만 맞춰 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고민을 들어 드리는 상담사 역할도 한다. 부인 안씨는 "저희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분들의 마음을 잘 안다"고 말했다. 박씨는 "경남 함양의 한 정신지체 시설에서 안경을 맞춰 드린 적이 있는데 요즘도 '고맙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온다"며 "봉사 다녀온 후에 그 지역 교회에 신자수가 늘었다는 편지를 받으면 가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지난 2006년 아예 서울 집을 정리하고 전국 각지로 봉사활동을 떠나기에 편한 경기도 이천으로 이사를 했다. 매일 아침 가족 예배를 드리고 부부가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아들은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고, 딸과 사위도 선교사로 활동할 예정인 등 온 가족이 신앙으로 뭉쳤다.
그동안 봉사활동으로 코오롱 우정선행상과 MBC사회봉사대상을 받은 박씨 부부는 앞으로 북한과 어려운 나라로 안경 선교를 확대할 꿈을 가지고 있다. 박씨 부부는 "안경이 선교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며 "누구나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활용해 봉사를 하면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린다"고 말했다.
2009/6/26,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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