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국민일보 겨자씨에 실린 예화들

하마사 2009. 6. 19. 22:29

[겨자씨] 복음없는 교회

어떤 유명한 목사님의 장례식장에서 겪은 일이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추모사에도 설교 내용에도 '주님'이 없었다. 고인의 생전 업적만 줄줄이 나열될 뿐이었다. 주님이 그를 선택해 믿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했다는 얘기는 들을 수 없었다.

'고인이 질그릇이라면 그 안에 주님의 보화가 담겨진 덕분에 그의 삶이 그렇게 빛난 것이었을텐데….' 씁쓸한 마음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목회자들의 설교 가운데서도 종종 예수의 십자가를 비켜갈 때가 적지 않다. 구약의 율법이나 신약 서신의 교훈을 인용해 윤리나 도덕을 강조할 뿐 정작 우리의 영혼을 적시고 살리는 예수의 복음은 없는 것이다. 이것이 곧 타락이며 영적 재앙이다. 또한 마귀가 들어올 틈을 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늘날 기독교 침체의 원인은 외부에 있지 않다. 바로 본질에 충실하지 못한 교회 안에 있다.

서재일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겨자씨] 기도

아마도 한국교회사에서 정암 박윤선 박사만큼 경건하고 기도에 열정적이었던 분도 드물 것이다. 교수 시절 산에 올라가 기도하다가 수업 시간이 임박해 기도 방석을 끼고 달려오기 일쑤였으며, 때로는 기도하며 걷다가 전봇대에 부딪히기도 했고, 버스에서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리지 못하고 종점까지 갔던 일화들이 많다. 임종에 이르러서도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고, 병원에 찾아온 내방객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곤 했다.

한번은 필자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볼티모어까지 그분을 모시고 간 적이 있었다. 차로 2시간30분을 달리는 동안 그는 사적인 말씀 없이 오직 기도하는 데만 집중했다. 가끔 중얼거리고, 또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차에서 내린 후 박 목사님은 놀라워하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오 목사! 늙어서 육신이 쇠하면 기도하는 것도 힘들어. 젊었을 때 많이 기도해야 해." 경건은 기도에서 나오며, 기도의 능력은 젊을 때부터 실천함으로써 얻게 된다.

오덕교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겨자씨] 늙지 않는 신앙

우리 교회 정 장로님은 90세 할머니다. 5남1녀를 잘 기르셔서 아들 넷은 장로, 딸은 사모가 되었다. 내가 예배 인도를 마치고 내려올 때면 꼭 신발을 바로 놓아주신다. 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1년에 몇 차례씩 자식들로부터 받은 용돈을 모아 꼬깃꼬깃한 봉투에 넣어 내 주머니에 찔러주신다. 작년부터는 약간의 치매 기를 보이더니 1000원을 1만원으로 혼동하시는 것 같다. 웃는 모습이 천생 소녀다. 조금만 포옹을 하고 손을 잡아드려도 수줍어 어쩔 줄을 모른다. 신앙인은 늙어도 아름답다.

짐승과 달리 인간은 늙어가도 영적 성숙을 계속한다. 85세의 갈렙이 가장 험준한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했다. 120세의 모세는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 몸은 늙어도 신앙은 늙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 16).

김흥규 목사(내리교회)

 

 

 

 

[겨자씨] 삶은 계란

유대인은 음식 규례가 까다롭다. 성경에 나오는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의 구별이 있고, 절기마다 먹는 음식의 의미가 있다. 무교절 같은 경우 이스라엘을 여행하면 일주일 내내 누룩 없는 떡을 먹어야 한다. 아무 맛도 없다. 관광객에게는 고역이다.

그래도 먹을 만한 것은 삶은 계란이다. 무교절기 중에는 꼭 삶은 계란을 먹는데 그 이유가 있다. 생계란 속은 흐물흐물하나 열을 가해 삶으면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이 삶은 계란의 교훈은 고난(열을 가함)을 받으면 더 단단해(강해짐)진다는 데 있다. 요즘 우리는 여러 가지로 힘들다. 그러나 이런 시련과 고난을 통해 좌절할 것이 아니라 더 의지가 굳어지고, 연단을 통해 더 믿음이 강해지는 삶이 되어야겠다.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겨자씨] 가장 무서운 죄

성령의 강한 역사로 공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숨기고 살았던 거짓말과 도둑질, 음란과 간음의 죄를 고백하였다. 모두들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배신감을 느낀다"는 비난도 적지 않았다.

기독교에서는 전통적으로 7가지 죄를 꼽는데, 첫째가 교만이고 둘째가 질투다. 그리고 분노, 탐심, 탐식, 게으름, 정욕이 이에 포함된다. 이 리스트를 보면 정욕은 맨 마지막이고 가장 먼저 나오는 죄가 교만이다. 교만이 더 무서운 죄라는 것이다.

우리는 도둑질, 간음죄는 큰 죄라고 여기지만 교만, 곧 자기 의는 죄로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의가 무서운 것이다. 가정이 무너지고 교회가 분열되는 이유가 남을 판단하는 자기 의 때문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셨던 바리새인의 죄였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우리 모두 성령께서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겨자씨] 신은 없을 것이다

옥스퍼드대학교의 대표적 진화생물학자이며 베스트셀러 '만들어진 신'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 교수가 거액을 기부하여 영국 전역을 운행하는 버스 800대에 광고를 부착하였다. '아마도 신은 없을 것이다. 걱정 말고 인생을 즐겨라'(Th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 '아마도'라는 말은 무신론에 대한 불확실성의 증거이다.

인본주의자들에게 신이 없다는 사실은 인생을 즐기는 조건이다. 신이 없기 때문에 인생을 즐긴다는 것은 자신들의 죄와 그 죄의 결과가 벌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는 증거다. 단지 신이 없으므로 죄에 대한 인간의 본능을 억지로 감추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지식의 발달과 계몽주의는 인간사에 큰 공헌을 했지만 인본주의와 무신론이라는 서자를 낳았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겨자씨] 대를 잇는 복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 1:1)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족보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요즘은 믿음의 가정에서 자식을 낳아 그 영적 세대를 2대, 3대로 이어가는 것도 무척 힘든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려 4000년에 걸쳐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정말 기적처럼 여겨진다.

따라서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 28:19)는 주님의 말씀 가운데 나타나는 '족속' 중에는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식도 포함돼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의 믿음에도 정성을 들여야 함은 마땅한 일이다. 설 명절에 먹는 떡국이나 가족과 친지간에 오가는 세뱃돈보다 더욱 신경써야 할 일은 자식에게 영생의 떡을 선물하는 일일 것이다. 선교 강대국이었던 미국과 유럽의 교회가 텅텅 비어가는 현실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서재일 목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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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위기극복 리더십

리더십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1913년 빌흐잘무르 스테팬슨이 이끄는 캐나다 탐험대가 북극지역 탐험을 떠났고, 1년 뒤 어니스트 섀클턴경이 이끄는 영국의 남극대륙횡단 탐험대가 떠났다. 두 탐험대가 모두 빙벽에 둘러싸여 위기를 만났다. 불행하게도 북극 탐험대는 갈팡질팡하다 결국 많은 승무원들이 죽음을 맞게 되어 실패했다. 그러나 섀클턴이 이끄는 남극 탐험대 인듀어런스호는 동일한 절망적 상황을 만났지만 리더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인해 그 위기를 극복했다.

요즘 이 섀클턴의 리더십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교회의 위기나 국가적 위기 극복에 가장 필요한 것은 리더십이다. 지도자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을 구할 수도 있고,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 탁월한 지도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다. 지도자의 리더십 중 이런 원리가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항상 또 한번의 기회가 있다".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겨자씨] 앙망하는 기도

교회 청년들이 무전여행인 '거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얼굴과 행색은 정말 반거지였다. 그런데 눈빛이 달랐다. 말이 달랐다. 힘이 있었다. 자신들은 몰랐을 것이다.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 같았다. 거지순례 중 겪은 일을 나누는데 이구동성으로 돈 떨어지는 순간부터 기도가 절로 나오더라는 것이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비로소 깨달았다고 했다.

청년예배 때 그들은 간증하면서 울었고 찬양하면서 울었다. 그동안 예배드리면서 늘 그렇게 능력 있고 충만하지 않았다. 거지순례를 갔다 오더니 이렇게 되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은 정말 새 힘을 얻는 것을 보았다. 거지순례를 다녀온 청년들을 통해 철저히 무소유, 무능력의 정신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진정 능력의 길임을 깨달았다.

많이 가진 것이 잘못일 리는 없다.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의지하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는 기도가 안 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겨자씨] 곳간을 열어라

우리의 소유는 섬김의 도구일 수도 있고, 욕심의 도구일 수도 있다. 아브라함과 롯의 종들은 소유가 많으므로 함께 할 수 없었고 삼촌과 조카가 헤어졌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젊은 관원은 소유가 많으므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떠났다. 소유가 많다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는 있는 것으로 베푼다.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 애굽에 7년 동안 풍년이 들었다. 요셉은 7년 동안 곡식을 잘 비축하였고 흉년이 든 7년 동안 그 곳간을 열었다. 그리고 기근에 빠진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눠주었다. 애굽 사람이 아닌 야곱의 가족에게도 곳간을 열었다. 곳간을 여는 지혜와 용기가 모든 사람을 살렸다. 지금은 우리의 곳간을 열 때다. 경제가 어렵고 금융이 위기에 빠져 있을 때 우리의 지갑을 열고 곳간을 열어야 한다. 있는 것으로 베풀면 모든 사람이 함께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겨자씨] 눈물의 기적

도저히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우리 교회가 기적적으로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눈물의 기도 덕분이었다. 기도는 기적을 만든다. 20년 동안 침체돼 있던 교회에 부임하던 날부터 1주일 동안 금식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주룩주룩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주님도 함께 울고 계셨다.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신'(히 5:7) 주님은 그때 "네 제단에 눈물이 배일 때 일어나리라"고 응답해 주셨다. 주님은 눈물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그 후 계속해서 회개와 강청기도의 눈물로 제단을 적시던 중 성령께서는 교회를 일으켜 세우셨다. 330㎡ 되는 곳에 세워졌던 낡은 흙벽돌 교회당을 9917㎡나 되는 큰 성전과 함께 넓은 주차장으로 바꿔주셨다. 주님은 '눈물의 병'(시 56:8)에 눈물이 가득 차기를 원하시며 그 눈물을 보고 일하신다(사38:5).

서재일 목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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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경건의 실천

한국 교회는 온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선교 100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갖게 됐고,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가 됐다. 도처에서 한국의 도움을 기다리며, 한국 교회를 배우려고 세계 각지의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있다.

한국 교회의 성장 동력은 경건의 실천에 있었다. 새벽기도와 가정예배, 말씀 중심의 사경회, 그리고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던 순교적 신앙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경건의 모습들은 안타깝게도 변질되고 있다. 기복적 신앙을 추구하고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세속적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세속화되면 맛을 잃게 된다. 맛을 잃은 소금은 버림을 받고 짓밟히기 마련이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 교회가 경건의 능력을 회복할 때, 우리는 맛을 찾고 온 세상을 비추는 거룩한 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덕교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겨자씨] 꿀맛

아내가 친정에 간 날 점심을 건너뛴 후 저녁을 먹었는데 꿀맛이었다. 식은 밥에 김치 한 조각이 전부였지만 맛났다. 무슨 까닭일까? 첫째, 허기 때문이다. 끼니를 걸렀으므로 배가 고팠다. 배가 부르면 그 어떤 진수성찬도 꿀맛이 나지 않는다. 둘째, 건강 때문이다. 몸이 아프면 입맛부터 떨어진다. 아무리 맛난 음식도 소태같이 쓰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꿀맛인가? 최고의 뷔페 음식 같은 명설교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홍수 속에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뚫고 들어오는 말씀은 몇 안 된다. 왜일까? 말씀에 갈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 재미에 배부르니 생명과 진리의 말씀에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또한 영혼이 건강치 못해 말씀의 맛이 쓰다.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기 원하는가? 허기져라. 건강하라.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잠 27:7)

김흥규 목사(내리교회)

 

 

 

 

[겨자씨] 무지개

우리는 보통 무지개의 색깔을 일곱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영어권에서는 여섯으로, 마야족의 경우는 다섯 가지로 인식한다. 사실 무지개의 색깔은 무수히 많다고 한다. 무지개는 비가 그친 뒤 물방울이 많은 대기에 햇빛이 비칠 때 나타나는 반원 모양의 호이다. 그것은 빛의 굴절에 따라 다양한 색깔로 나타난다. 성경에 나오는 무지개는 노아 홍수 후 더 이상 물의 심판이 없다는 언약의 증표다.

흔히 우리에게 무지개는 아름다운 것으로, 더 나아가 희망의 한 상징처럼 인식되어 왔다. 영화 '오스트레일리아'에 나오는 음악에서도 "무지개 너머 어딘가엔… 그곳은 당신이 꾸는 꿈들이 실현되는 곳이에요"라고 했고, 우리 동요에도 무지개는 희망을 뜻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무지개, 곧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우리의 삶에 무지개가 뜨면 좋겠다. 밖에 있는 무지개를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 마음속에 스스로 무지개를 띄워 작은 희망을 만들어 가야겠다.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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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예수를 바라보자

몇년 전 교회를 섬기던 목회자들과 함께 수련회를 갔을 때의 일이다. 저녁 기도회 시간에 부목사 한 사람이 "우리 목회자들이 먼저 거룩하기를 위하여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는 게 더 거룩해지는 것일까?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하나? 성경을 더 읽어야 하나? 담임목사인 나는 어떻게 하는 게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일까?" 그때 주님께서 마음에 말씀을 주셨다. "혼자 있을 때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 순간 애통한 마음이 들어 울며 기도했다. 나는 그날 비로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목회자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 혼자 있을 때다. 사람들 앞에서는 거룩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쉽게 타락한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 더욱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은밀한 시간은 죄짓는 시간이 아니라 가장 은혜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겨자씨] 발을 품는 사랑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은 세 번 놀라다는 뜻의 '삼경'(三驚)이란 별명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 보는 사람은 목사님의 키가 너무 작아 놀라고, 목소리가 너무 커서 놀라고, 설교를 들으면 너무 힘이 있고 감동이 있어 놀랐다고 한다. 한센병 환자들의 공동체인 애양원을 섬기면서 환자의 고름 나는 발을 빨아줄 만큼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극진했다.

손 목사님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식사 때가 되면 항상 밥을 다른 죄수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나는 몸이 작아 하나님이 적게 먹도록 만들었으니 드세요"라고 하며 밥을 주었던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추운 겨울밤 죄수들은 모포 하나에 의지해서 잠을 청해야 했다. 목사님은 키가 큰 죄수가 모포가 작아서 추워할 때 그 죄수의 발을 자신의 가슴에 품고 잤다고 한다. 추운 겨울, 우리의 마음을 낮출 때 우리가 섬길 일들은 얼마든지 널려 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겨자씨] 불의 공동체

엄동설한이 되면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이는 자리가 있다. 따뜻한 온돌방이다. 냉랭한 인간관계 속에서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 주변에는 늘 사람이 모인다. 교회도 뜨거워야 성도가 모인다. 기도가 뜨겁고, 말씀이 뜨겁고, 찬송이 뜨겁고, 성도 간의 사랑이 뜨거운 불의 공동체가 될 때 사람이 모인다.

우리 하나님은 불의 하나님이시며(히 12:2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불을 붙이러 오셨으며(눅 12:49), 성령님은 불길 같은 모습으로(행 2:3) 임하셨다. 삼위일체 불의 하나님을 믿는 자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만난 엠마오 길의 제자들처럼 그 가슴이 뜨거워야 한다(눅 24:32). 절대로 성령의 불을 끄지 말아야 하며(살전 5:19), 기도로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왕상 18:24)을 만나야 한다. 불세례(마 3:11) 없이 교회성장은 없다.

서재일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겨자씨] 가정예배

1743년 12월31일, 위대한 부흥사 조지 휫필드가 영국의 소도시 키더민스터를 방문했다. 이 도시는 청교도였던 리처드 백스터가 목회했던 곳으로, 부임 당시 신자가 한 동네에 한 가정 있을까 말까했지만 떠날 땐 믿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로 크게 부흥됐다. 백스터의 부흥운동 비결은 가정예배 활성화에 있었다. 그는 심방을 통해 가장들에게 가정예배를 권함으로써 가정의 경건을 회복하고자 했다. 그 결과 아침 저녁으로 가가호호에서 찬송과 기도, 그리고 성경 읽는 소리가 온 마을에 메아리쳤다.

백스터가 떠나고 80년이 지난 뒤 휫필드가 키더민스터를 방문했을 때 여전히 가정예배가 힘 있게 드려지고 있었다. 이에 큰 은혜를 받은 휫필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백스터의 가르침과 사역, 권징의 달콤한 향기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크게 원기를 회복하게 됐다." 진정한 교회 부흥이 가정예배를 통한 경건 회복에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오덕교 목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겨자씨] 부자유친

박기영은 나의 군목 동기. 임관하자마자 우리는 강원도 양구 백두산 부대에 배속됐었다. 헤어진 지 20년도 더 지난 뒤 그와 재회했다. 그의 간증에 눈시울을 적셨다. 누구보다 선하고 성실했기에 중령까지 진급했으나 몇 해 전 간경변증 말기 판정을 받았다. 큰아들 제민이가 자신의 간 3분의 2를 제공해서 간이식을 받았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제민이는 돌이 갓 지난 아기였는데 그토록 대견하게 자랐다니…. 어떤 아들은 아버지에게 간을 주겠다고 약속했다가 수술 당일 겁이 나 내빼기도 했다는데, 자랑스러운 제민이.



박 목사가 아들 이야기를 할 때 불현듯 예수님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뜻을 위해 십자가 위에 한 목숨을 내놓으신 효자. 박 목사가 제 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미안하며 사랑스러울까. 박 목사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과 내 아들을 생각하며 그날 밤 나는 많이 울었다. 몇 번이고 부자유친을 되뇌며. "아빠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



김흥규 목사(내리교회)

 

 

 

 

[겨자씨] 양보와 타협

요즘 세태를 보면서 이솝 우화 중 외나무다리 위의 두 염소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리가 잘 아는 이 우화는 두 마리의 염소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두 염소는 서로 한 발의 양보도 없이 자기가 먼저 다리를 건너겠다고 고집부리며 상대방의 양보를 요구하다가 뿔을 서로 치받으며 싸운다. 결국 두 마리 모두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다리 아래로 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정치권을 보면서 한 치 양보도 없이 그냥 파국을 향해 돌진하는 여야의 모습을 비롯하여 사회 전반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게 된다. 문제는 부끄럽게도 교계 안에도 같은 현상이 있음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좁게는 개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나 한 교단 안에서 교권 쟁탈을 위한 양보와 타협이 없는 투쟁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죄송한 마음이 든다. 성경의 교훈이 생각난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겨자씨] 스스로 속이지 말라

내가 어렸을 때, 교회 어른들을 보고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주일 예배 때마다 "말할 수 없는 이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은혜 감사합니다"라고 하시던 장로님이 너무 자주 화를 내는 모습이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자기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믿는다면서 자기 주위에 나쁜 사람들이 참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 자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임을 아는 사람은 결코 남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없다. 세상에 자신보다 더 악질인 죄인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가장 큰 죄는 자기 의(義)다. 도둑질이나 간음 같은 죄는 너무 부끄러운 죄지만 적어도 양심의 가책은 느낀다. 그러나 자기 의에 사로잡힌 사람은 양심의 가책도 없다. 십자가의 도는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새해는 십자가로 더 가까이 나아가 스스로 속이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겨자씨] 부메랑 효과

'부메랑 효과(boomerang effect)'라는 말이 있다. 부메랑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수렵기구로서 던지면 다시 던진 자에게 돌아온다. 부메랑 효과란 바로 자신이 한 어떤 행위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경우를 일컫는다. 이솝이야기에 늙은 사자와 생쥐의 이야기가 있다. 생쥐가 사자에게 잡혀 죽게 되었을 때 생쥐는 살려주면 은혜를 갚겠다고 하여 사자는 생쥐를 살려준다. 어느날 사자가 덫에 걸렸을 때 생쥐가 그물을 갉아서 풀어줬다.

성경은 온통 부메랑 이야기로 가득하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리라"고도 했다. 빈 평안이 그 사람에게 합당하지 않으면 나에게로 되돌아올 것이라고도 했다. 섬김과 베풂은 절대 공짜가 없다. 하나님은 베푸는 자에게 베푸신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겨자씨] 덮는 사랑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통이 넓은 치마가 떠오른다. 어머니는 이 넓은 치마로 12남매의 코를 다 닦아주셨고 숨바꼭질을 하다가도 숨을 곳이 없으면 치마 속에 숨겨주시곤 했다. 어머니는 치마만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 게 아니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의 죄와 허물도, 아버지의 술주정까지도 통이 넓은 치마처럼 넓은 마음으로 덮어주셨다. 바람 잘 날 없는 가정은 어머니의 통이 넓은 치마와 한없이 덮어주는 사랑 덕분에 유지될 수 있었다. 험악한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속죄'라는 말이 '죄를 덮어주시는 주님의 피 사랑'임을 깨달았다. 그 사랑이 영원한 어머니인 하나님 품인 것을 알고 너무나 고마워서 울고 또 울었던 적이 있다.

나의 허물에 대해 덮음을 받았으니(시 32:1)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를 남은 생애에 보답하고(시 116:12), 이제 남을 덮어줄 일(잠17:9)만 남았다.

서재일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겨자씨] 교회의 힘

세상에서의 힘은 가짐에서 온다. 지식을 가짐으로 학력을 과시할 수 있고, 물질을 가짐으로 재력을 누리고, 권세를 가짐으로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더 많은 힘을 얻기 위해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많은 물질을 모으고, 높은 권세를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교회의 힘은 세상과는 다르다. 교회의 힘은 신자의 수에 비례하거나 화려한 예배당을 가지고 있다거나 세속적·정치적 영향력을 가짐에서 오지 않는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의 능력으로부터 나온다.

경건의 능력은 약할 때 나타난다. 형통할 때보다는 고난당할 때, 높아질 때보다는 낮아질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고 하였다. 2009년에는 교회가 새롭게 부흥하길 기도한다. 이는 교회가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고, 비우고 낮아짐으로 스스로의 연약함을 자랑할 때 가능할 것이다.

오덕교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겨자씨] 호시우행

새해를 어떻게 살까? 호시우행(虎視牛行), 범처럼 예리한 눈으로 현실을 뚫어보고 소처럼 끈질기고 여유 있게 걷자. 현실 판단은 매섭게 하자. 행동은 서두르지 말고 꾸준히 하자. 사냥감을 포착한 호랑이의 시선은 빈틈이 없다. 들판에서 일하는 소는 돌밭이든 진창이든 포기하는 법이 없다. 때로 정면 돌파가 어려우면 에둘러 돌아간다. 조금 더뎌 보이지만 반드시 목표물에 이르고야 만다. 올해도 경제 불황으로 살림살이는 더욱 힘들 전망이다. 이럴 때에 조급하지 말고 호랑이의 큰 눈으로 정면을 직시해야 한다. 때로 큰 사냥을 위해 발자국 소리를 죽여야 할 때도 있지만 결코 멈추지는 말자. 소걸음으로 뚜벅뚜벅 나아가자.

"눈으로는 앞만 똑바로 보고, 시선은 앞으로만 곧게 두어라. 발로 디딜 곳을 잘 살펴라. 네 모든 길이 안전할 것이다."(잠 4:25∼26).

김흥규 목사(내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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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과욕

얼마 전, 어떤 식사 자리에서 교계 원로 목사님 한 분이 식사 도중 수저를 놓으시더니 그 이후 제공되는 음식을 일절 안 드셨다. 함께 식사하던 분들이 '왜 그만 드십니까?'하고 물으니 "더 이상 먹는 것은 백해무익한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그분의 지론인 즉 몸에 아주 해로운 것이 과식이라는 것이다. 조금 모자란 듯 먹어야지, 배부르게 잘 먹으면 필요 이상의 것이 체내에 들어가 모두 뱃살, 즉 배에 기름만 끼게 된다는 지론이었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 원로의 단호한 결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분은 팔순을 바라보는데 매우 건강하시다. 식욕을 비롯해서 모든 생활에 절제하고 욕심을 버려야 건강해지고 영적으로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말씀이셨다. 사람은 필요한 음식의 120%를 섭취하고 우리가 욕하는 돼지는 80%만 섭취한다고 한다. 올해는 어떤 욕심이든지 좀 절제하며 살면 좋겠다. 그것이 식욕이든, 물질욕이든, 명예욕이든…. 성경이 이 원리를 말하고 있고 옛글에도 과유불급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겨자씨] 바로 걷는 인생

오래 전 알프스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13일간 방황하다가 구출된 일이 있었는데, 그는 매일 12시간씩 열심히 걸었으나 같은 장소를 6㎞ 반경에서 계속 돌았을 뿐이었다.

사람은 눈을 가리면 똑바로 걷지 못한다. 100m쯤 가면 결국 원을 그리면서 돌게 된다. 이 현상을 윤형방황(輸形彷徨)이라고 한다. 눈을 가리고 가급적 똑바로 걸으려면 약 30보 걸어간 후 멈추었다가 가야 할 방향을 다시 마음에 그려보고 다시 30보를 걷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낮과 밤, 춘하추동을 반복하여 주시는 이유는 인생도 낮이 지나면 반드시 밤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반드시 겨울이 온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교훈하기 위함이다. 새해를 맞으면서 다시 한번 인생 방향을 새롭게 점검해야 할 것이다.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겨자씨] 행복 바이러스

'행복 바이러스'가 있어서 이웃이나 친구가 행복하면 나 자신도 행복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행복은 일반적인 통념보다 훨씬 전염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근거가 없는 병적인 행복감을 의미하는 '다행증'(euphoria)이란 말이 있다. 행복 바이러스는 다행증을 일으킨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행복의 조건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하지만 행복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으로도 얻을 수 있는 전염성이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세계 각국은 '행복전쟁'이 한참이고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행복 바이러스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축복의 바이러스다.

올 한 해는 우리 모두가 행복 바이러스를 더 진하고 더 넓게 전염시키는 행복 대장장이가 되자. 행복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국민총행복지수'를 높이는 해가 되게 하자.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겨자씨] 새로운 출발선

새해가 되풀이되는 까닭은 새로워지라는 것이요, 생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잊고 산 은혜를 생각하라는 의미로 해석해 본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찾아오는 것은 잃었던 기쁨을 회복하라는 뜻일 듯하다.

시간의 신비는 나 자신을 새롭게 하는 데 있다. 돌아보면 새로움은 우리가 늘 모색해온 것이기에 낯설지 않다. 미래의 도화지에 꿈과 소망을 그려온 사람은 새로움이 오히려 친밀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무엇을 기념할 때마다 꿈을 꾸고 결심을 한다. 시간의 마디와 매듭에서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것은 다시 출발선을 그리는 일이다. 이제 내일이면 2009년이 시작된다. 새해에는 새로운 각오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길 기원한다. "인생은 '생일부터 오늘까지'다. 내가 부르심을 받는 그날. 그날 역시 '오늘'일 것이다."

신경하 전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겨자씨] ‘사이’와 ‘넘어’

서로 오순도순 더불어 살아가는 일은 축복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또 민족의 일원으로 당연히 지녀야 할 애국이요 애족의 길이다. 이것을 '사이(between)'의 삶이라고 하자. 사이의 간격이 멀어지고 사이 사이에 골이 파이면 갈등이 생긴다. 갈등은 상생의 원리와 화해의 정신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한국인의 삶의 터전은 더이상 한국 땅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경을 넘어 세계로 향한다. 뉴욕발 금융위기는 미국을 넘어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을 뒤흔들고 있다. 그런가 하면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인권 보호는 세계화 물결을 타고 북한의 심장부를 두드리고 있다.

한국인은 이제 한국을 '넘어(beyond)' 세계인으로 살고 있다. '사이'와 '넘어'의 합창을 아름답게 노래할 때다. 세상에 몸담고 있으나 동시에 세상을 넘어 사는 것이 복음의 진수다. 땅에 살면서 하늘을 품고 살아야 하는 삶이 신앙인의 삶이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겨자씨]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옛날에는 밤길에 맹인이 손에 등불을 들고 다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밤과 낮이 따로 없는 맹인들이 등불을 들고 다니는 이유는 바로 눈 뜬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맹인이 들고 다니던 등불이 꺼지고, 이를 보지 못한 눈 뜬 사람이 맹인과 충돌해 맹인으로부터 꾸중을 듣게 된다. "당신은 등불도 못 보는 맹인인가? 눈도 없느냐?" 맹인의 등불이 꺼졌음을 눈 뜬 사람들이 알려주지 못할 때 꾸중을 듣는 것은 눈 뜬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눈 뜬 사람은 누구인가? 각계각층의 지도자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제 역할을 감당하여 사회를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하면 맹인이 맹인을 인도한다는 엄중한 문책을 듣게 될 것이다.

2008년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여 세계를 구덩이에 빠뜨렸다. 새해에는 눈 뜬 사람이 길을 인도하는 복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겨자씨] 하나님의 나라

제자들의 관심은 세상 나라였다. 그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예수님께 물었다. 하지만 주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통치가 구현되는 '하나님의 나라'였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선포하신 첫 말씀이 하나님 나라였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막 1:15). 위대한 결단으로 예수를 따랐지만 여전히 마음의 근심과 걱정을 떨치지 못한 제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라고 가르치셨다(마 6:33).

누가는 부활 후의 예수님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 제자들을 떠나시며 당부하신 마지막 말씀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었다(막 16:15). 고난의 시대, 불확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구할 것인가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지혜를 오늘도 간구해야 할 것이다.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겨자씨] 흑자인생

기업에서는 연말을 기점으로 그 해 사업이 흑자인지 적자인지 결산을 한다. 올해는 경제 위기로 많은 기업들이 큰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가계 경제도 어려움이 많지만 쪼들리지 않고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데 구원받은 백성들의 1년 대차대조표는 재정 결산으로 끝나선 안 된다. 하나님께서 손익을 따지는 장부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이 땅의 은행통장이 아니다. 하늘나라의 통장 잔고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신다(마 6:19∼20).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은사를 하나님 역사에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하나님께 이득을 남겨 드렸는가(마 25:20). 올해를 마무리하며 하나님께 보고 드릴 올해의 손익 계산서를 만들어보자.

또 2009년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선물들을 이웃과 더 풍성하게 나누면서 내년 이맘때에는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이 터져나오는 흑자 인생을 만들어보자.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회협의회 총무)

 

 

 

 

[겨자씨] 끊기 위해 오신 주님

아기 예수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그러나 그 평화는 단순히 조용하고 잠잠하기만 한 그런 평화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화평 대신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셨다(마 10:34). 검의 용도는 끊고 자르는 데 있다. 역사의 연속선을 검으로 끊으셨다. 그로 인해 역사는 BC와 AD로 나뉘었다. 그는 또 막힌 담을 허물어뜨리셨고, 가려진 휘장을 찢으셨다. 아담 이후 흐르는 죄의 연속선을 검으로 완전히 끊으셨다. 저주도 완전히 끊으셨다. 마치 구약의 여호수아가 흐르는 요단강을 반으로 가르고 약속의 땅에 들어갔듯이, 신약의 여호수아인 예수(여호수아의 희랍어 표기)는 죄의 흐름을 끊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셨다.

예수가 오신 곳에는 마땅히 충격이 있다(마 2:3). 뒤집힘이 있다. 끊김이 있다. 기존 질서의 수동적 유지가 그가 원하던 평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익숙했던 구습의 단절이 마땅히 따라와야 할 것이다. 이번 성탄에는 진정한 심령의 뒤집힘이 있어야 하리라.

강대일 목사 (안양성결교회)

 

 

 

 

[겨자씨] 담대심소

담대함은 두려움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담대심소(膽大心小)'란 말도 있는데, 배짱은 크게 가지되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라는 뜻이다. 세상에 걱정과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단 건강한 두려움이냐 병적인 두려움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실패, 소외, 질병, 노쇠, 죽음 같은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통이다. 이런 고통에 어떤 태도를 갖느냐가 우리의 삶을 좌우한다. 병적인 두려움은 더 큰 두려움을 낳지만 건강한 두려움은 고통을 극복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담대하라고 하신다.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굳세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사 41:10).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끝이다. 그러나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다.' 조지 뮬러의 말이다. 조지 뮬러는 기독교 역사상 기도 응답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염려하지 않고 모든 것을 주께 맡기는 기도 그 자체가 응답이다.

신경하 전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겨자씨] 성탄의 참된 의미

'성탄'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탄의 장소는 거룩한 곳이 아니었다. 이미 도둑의 소굴로 전락하고, 장사치들의 시장으로 변해버린 예루살렘의 성전은 만원이었다. 여관방도 인파로 가득찼고, 가정집의 사랑채도 빈 곳이 없었다.

요즘 말로 하면 3D 직종에 종사하는, 들판의 양떼를 돌보고 겨우 입에 풀칠하는 목자들이 성탄을 알아보고 마음으로 맞이할 뿐이었다. 유대땅도 아닌 외지의 점성가들, 그러니까 빈곤을 이기려 모여든 외로운 외국인 노동자들이 희망을 품고 맞이했을 뿐이다.

세상의 그늘진 곳, 굶주림에 허덕이고 질병에 시달리는 곳,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심한 곳…. 그런 낮고 낮은 곳의 상징인 말구유에서 예수가 태어났다.

우리는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성탄 캐럴을 불러야 할까.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되는 가장 높으신 분의 '만민 구원'에 동참할 자를 찾는다. 메리 크리스마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겨자씨] 시계와 나침반

지금 인류는 잘못된 방향으로 질주해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형국이다. 경제적 고도성장을 추구하며 선두 주자로 달리던 미국이 궁지에 몰리면서 뒤쫓아가던 모든 나라가 함께 덫에 걸렸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돌아갈 수도 없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

각 나라가 이런저런 긴급 처방을 내놓고 있지만 암환자에게 주사 몇 대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과연 인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방향을 잃었을 때는 나침반을 찾아야 한다. 꽉 막혀 있는 앞뒤가 아니라 열려져 있는 위를 바라보며 출구를 찾아야 살길이 열린다.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도 고도성장이라는 신기루를 잡으려고 시계만 보면서 질주하다가 한계선에 봉착했다. 지금은 시계를 보면서 시간을 단축하려는 노력은 잠깐 접을 때다. 창고 어딘가에 깊숙이 넣어두었던 나침반을 다시 꺼내는 것이 해법을 찾는 지름길이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겨자씨] 위대한 용서

얼마 전 미국 샌디에이고 인근 주택가에 미 공군기가 추락했다. 평온하던 한 가정을 덮쳐 어린 두 자녀와 그 엄마 그리고 딸의 집을 방문했던 할머니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이 뉴스가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가족이 바로 한국인 가정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그 가정의 가장은 직장에 있어서 사고를 면했지만 갑자기 닥친 슬픔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사건이 미국 사회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던 것은 홀로 남겨진 가장의 '위대한 용서' 때문이다. 그는 견디기 힘든 눈물을 삼켜가며 "전투기 조종사를 원망하지 않으며 그를 용서한다" "그가 고통당하지 않도록 기도해달라"고 말했다.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 기간에 위대한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묵상케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겨자씨] 정말 부끄러운 일은…

한 목사가 미국 유학 중 현지 교회에서 영어로 설교를 했다. 설교가 끝난 뒤 한 미국 할머니 성도가 다가와 "오늘 설교에 은혜받았다"고 인사를 건넸다.

목사는 기분이 우쭐했다. 그런데 할머니의 질문이 이어졌다. "목사님이 한국말로 설교를 하셔서 내용을 잘 알아듣지는 못했는데, 한국말도 영어와 비슷합니까?"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그저 인사치레였을 뿐, 목사의 영어 발음이 형편없어 한국말 설교로 착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돈이 없고, 배운 것이 없고 영어를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가족이나 함께 사는 사람들, 또는 어려운 이웃들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살다가 죽는 게 가장 부끄러운 일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요일 4:8).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외아들까지 주시지 않았는가(요 3:16).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