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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윤리와 일반윤리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 아니다 먼저 일반 윤리학을 살펴본다
제1편 일반 윤리학 倫理學 ethics
윤리학은 도덕철학(moral philosophy)라고도 함. (ethics는 '습속', '성격'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thos에서 유래함) 개인적으로는 좋은 에토스의 실현을, 사회적으로는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규범과 원리의 확립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다.
I. 어원과 의미
윤리라는 말은 일찍이 〈예기 禮記〉 악기편(樂記篇)에서 사용한 말로여기서는 인간이 한 동아리로 서로 의존해 지켜야 할 질서를 뜻했다.
서양에서 ethics의 어원인 라틴어 여성명사 ethica는 락탄티우스 피르미아누스(250경~330경)가 썼다.
-어원; Ethika= 습관적인 것 (아리스토텔레스의 디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최초 사용하다)
처음에는 습속=습관 +풍속 의 의미이었으나 나중에는 지성과 구별된 품성을 의미하였다
< 예기 > 에는 事理 人情의 뜻으로 사용되다
- 윤리학이란 인간이 사회적관계에서 마땅히지켜야할 도리.즉 인간사회의 도덕 또는 그이론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윤” 이란 사람의 집단,동료,벗 사람사이란 뜻이다
윤리학은 도덕철학, 실천철학, 의무의 학문 도덕행위의 과학, 자율적이며 반성적 학문이다
윤리학은 도덕의 기원, 발달, 보존 규범에 관한 학문이며 옛날부터 논리학(인식론),미학과 더불어 철학의 3대부분으로 간주되었다
II. 윤리학의 정의들;
1. 여러 정의들
(1) 스펜서;윤리학은 행위 과학이요 행위란 생물의 목적에 적합한 동작일반이다
(2) 듀이;윤리학은 행위에대한 우리판단의 체계적설명을주려고하되이판단은정사선악의 견지에서 행위를 평가하는것이다
(3) 밀;윤리학의소임은 의무가무엇인가?어떤시금석에의해우리가의무를알게되는가?하는것을 지시해준다
(4) Lipps; 윤리학은 한편에 의해서는 사람에게 만족을 주는 대상,즉 가치를 가르쳐주는 학문이고 다른 한편에서 있어서 는 도한 인격적 가치에 대한 학문이다
윤리학은 어떤 사실의 기술이 아닌 당위의 문제를 다루는 규범과학이다 다라서 마땅히 해야할것과 해서는 않될것을 구분하는 학문이라 할수있다 윤리학은 당위의 규범체제이다 당위와 가치의; 학문이다 윤리는 여러규범중 가장 근본적인 규범이다 -관습에 대해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비판을 가 한다 윤리의 기능은 갈등 대립의 해결기준을 제시해주고 삶의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준다
2. 윤리발전 단계및 형태
-윤리의 기원은 ?; 신이다? 인간 이성이다?
-윤리는 발전한다;인습적이고 타율적인 과정과 비판적이고 자율적인 반성적인 과정의 단계와 형태로 발전한다
3. 윤리학에 관한 정의들( 도덕적으로 바른행위란 무엇인가? )
(1) 힘이 정의이다 정의는 강한자의 편이다 (반론; 모세. 권력 없이도 선행가능하다, 선하지 않고도 권력 가질수있다 권력과 선의 차이를 간과하고있다)
(2) 도덕은 관습에 불과하다 (반론; 다양한 관습들은 절대 규준을 세우기가 불가능하다)
(3) 인간이 척도이다 (개인주의) 각자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상대론에 빠진다 절대기준불가 사회 혼란 초래 위험)
(4) 인류가 도덕의 토대이다(인류전체=선);반론=인류자체도 잘못을 범한다.인류변하면 윤리도 변한다
(5) 중용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반론= 무엇이 중요인가 결정하기 어렵다. 극단적인 행동이 선한 행위가 될 때도있다 .보편적 법칙이 아니다.
(6) 쾌락을 가져오는것이 옳은 것이다(에피큐러스); 반론=쾌락은 반드시 선이 아니다 고통이 반드시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다
(7)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선한것이다(공리주의자, 벤담=양적쾌락주의자, 밀=질적쾌락주의);반론=무엇이 행복인가에 대해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 최대행복을 가져올 미래 예측불가능하다
(8) 그자체로 바람직한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다=도덕적가치는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반론;옳바른행동의 내용을 바르게 규정하지않은 채 그행동이 취하는방향(목적)만을 보여줄 뿐이다 바람직한것과 원하는것을 혼동할수도 있다
(9) 도덕적으로 옳바른것을 정의할수 없다 (무어) ; 반론=옳고 그름을 보여주는 내용이 없을 때는 구분할수있는 방법도 없게된다
(10) 옳바른 행위는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기독교윤리);반론=자의적이다.권위주의적이다.합리적설명이 약하다
III. 윤 리 설. 윤리의 본질 ; 선한 행동의 기준
*인간의 윤리학적근거를 목적론과 법칙론으로 구분한다 우리가 행동할 때 법과 규범을따라 해야하나? 좋은 결과를 위해 해야하나? 행위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1. 절대론적 윤리설
*절대론적윤리의 근거:
-우주의 질서.인간은 소우주이다. 자연은 우주이성에 의해 조종되고있다.
-종교적 신앙.신은 우주를 창조함. 신의 계명과 섭리가 절대주의윤리의 근거가 된다
*윤리의인간학적 근거 (윤리행위와 근거를 신에게서 찾지않고 인간자신에게서 찾으려는 노력)-인간은 스스로 어떤 선을 추구하고 있으며 인간자신에게 주어진 윤리법칙에 추종하도록되어있다고 믿는다
*절대적 윤리설의 단점들
-선천적으로 주어졌다는 목적과 법칙이 구체적으러 무엇인지 만인이 납득할수있는 대답을 줄수없다
-국가정치,사회현실과 무관하게 개인의 양심등 내면문제에 국한된 것으로 보기에 사회개혁이요구되는 상황에서는 심각한 폐단을 초래할수 있다
-시대상황변화에 대해 탄력적 적용이 곤란하다.
(1) 목적론적 윤리설;(결과론자, 공리주의,실용주의자 들)
-인생에게는 삶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할 객관적 목적이 주어져있다ㅡ인간스스로 정한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어떤 행위가 목적에 적합하면 선한 행위이고 목적에 부적합하면 악한행위이다
인생의 궁극목적을 달성하는것=선, 의. 이바지 못하면 악이다
-아리스토텔레스;모든 기능,모든 탐구,모든의도적인 활동은 어떤 선을 달성할 목적을 갖고 있다 고 말한다ㅡ이 목적을 달성할 때 인간은 행복한 상태로 된다.
-공리주의자들은 이런 목적론적 윤리설을 주장한다 추구하는 목적은 잘사는 것이다
-가치판단을 하는데 있어서 행위의결과가 목적에 적합한가 아닌가를 미리 생각하는 조건적 성격을 띠는 조건적이며 결과주의의 성격을 갖는다
*우리의 행위의 정당성은 그결과가 말해준다 행위는 결과에 의해 정당화 된다 선한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라야 선한 행위이다 옳은 행위란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행위의 가치유무는 결과에 적용시켜 판단한다
* 도덕적 규칙에는 상황에 따른 예외가 있을 수 있다 *미래 지향적이다
-문제점;@인생의 목적이란 과연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라고 함) 증명하기 어렵다 @목적 달성에서 어떤 수단이 옳은가? 를 규정하기가 어렵다 @결과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명분아래 나쁜수단을 동원할수 있으며 그수단들이 정당화 된다 좋은 결과,선한 결과를 판단하는 것도 사람에 따라 다른 견해를 가질 수가 있다
(2) 의무론적 윤리설(법칙론자,의무론자,비결과론자)=법칙론적 윤리설 칸트, 기독교),
-도달할 목표가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는 거부할수 없는 불변의 보편타당한 행위의 법칙이 주어져있다. 그법칙은 인간의 편의를 따라 정해진 것이 아니다 미리 주어진 절대불변의 것이다
-행위의 선악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도덕법칙에 비추어 보아야한다
-잘사는것 보다는 바르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칸트; 행위자의 상황이나 조건에 관계없이 도덕은 지켜야한다 “네가 해야만 하기에 너는 할수있다” 칸트 - ‘선한 것은 선한 의지뿐이다’ 선한의지는 그자체로 언제나 선하다
- “실천이성의 명령은 조건적 명령이 아닌 양심에 내리는 무조건명령이다 이를 정언명령,지상명령이다 도덕적 행위란 실천이성의 명령을 의무로 삼는 의무의식이 동기가 된 행위이다
- 실천이성의 명령은 다음과 같은 도덕법칙의 형식을 취한다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보편적인입법과 원리(보편주의,모든이의행동원리)로서 타당하도록하라
@너와 나의 인격은 수단으로 취급하지말고 목적으로 취급하고 행동하라 (인간존중,목적주의,인격주의 ) -인간의 자율성을 강조한다;자기가 명령하고 자기가 복종하는 자율도덕의 세계를강조한다 -아무리 좋은 즐거운 결과가 주어져도 동기가 나쁘면 ,즉 법칙에 어긋나면 그것은 나쁜 것이다. 가치판단에서도 동기가 중요하다. 법칙에 맞는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우리가 행위를 선택할 때는 그 행위의 결과가 어덯든 그시대의 법과 규칙을 따라 행동을 해야한다
-행위의 옳고 그름은 행위결과의 좋고 나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요 행동 그자체의 성질이나 종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행동 그자체가 본질적인 선과 연결이 되어있다
-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란 법과 규칙에 일치하는 것이요 그른 것은 그것에 거스리는 것이다
-도덕 규칙은 가장 옳바른 규범이므로 끝까지 상황에 구애받지 말고 수행되어야한다 규칙에 예외를 두어서는 않된다 -현실 지향적이다
* 문제점 : 이론적 난점들
-목적, 법칙 모두 이론적으로 빈틈없이 논증할수가 없다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들은 논증이 불가능하다.또한 자명한 원리가 너무 추상적이어서 자명한 원리들이 충돌할 때 조절할 수있는 제3원리를 찾아보기 어렵다.(칸트의 완전개념도 추상적.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 절대적 보편타당한 법칙이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가?
@인간은 왜 그것을 꼭 준수해야할 이유가 있단 말인가? (신앙할수있으나 지식을 갖기는 어렵다)
@동기주의에 빠지기 쉽다
- 도덕법과 규칙 자체가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다르므로 그 규범이 절대적이 아니다
(3). 제 3의 견해 (책임론적 윤리설)
* 위의 (1) 및 (2)의 이론은 모두 한계점을 갖는다 상황에 따라서 규범을 따라 행동해야할 사안이 있고 어떤 경우는 좋은 결과를 위해 목적론적 윤리설을 따라야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한가지 주장을 모든 경우에 적용시키는 것은 온전한 윤리기준이 될수 없다
* 어떤 사건을 대할때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최선의 길을 찾는것이 옳은은것이다 이때 행위자들은 각자 책임적인 행동을 해야한다
* 행위자체의 선악과 결과를 구분하여 대립시키지 않고 최선의 해결을 모색하되 각자는 책임을 지는 행위자가 된다
* 상황에 따라 (1) 또는 (2)를 선택해야할 경우의 예
1).남의 권총을 맡은 사람이 그 총 주인이 살인할 의지가 있을때는 약속을 어기고 거짓말을 해서 총을 주지 않는 것이 옳은일이다 여러사람의 안전을 위해서 총을 돌려준다는약속을 지키지 않아도옳다
2). 한도시에 불량배가 날뛰어서 일벌배계의 시범을 보이기위해 불량한 한사람에게 누명을 씌워서 사형시킴으로 시민전체의 안전을 도모하려하는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한생명이 무고히 희생되는 일이 절대적으로 나쁜 일일뿐 아니라 다른 최선의 방법을 강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구명선에 한사람이 초과 되어서 구명선이 전보됨으로 전체사람의 목슴을 잃을 위험이 있을때 제비 뽑아서 한사람을 바다 가운데 던져버려 죽게하려는 곳은 옳은 일인가?... 제3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2.상대적 윤리설
*17세기이 절대주의에 반대하여 발생함. 공트의 실증주의,다윈의 진화론,흄의 시인설 등이 이론적근거가 되다
*윤리기준은 선천저으로 주어진것이 아니라 관습을 통해서 경험적으로 이룩된 상대적인것이라고 주장한다.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도 일종의 사회현상에 불과하다. 윤리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각자에 적용되는 상이한 윤리가 존재한다 인간 상호간에 개별성을 강조한다.공통성을 부인한다
*장점;윤리의 현실성에 주위를 환기시키고 인간의 사회성과 개별성을 유용성을 강조한점.
*단점;인간의 보편성과 공통성을 부인하므로 윤리의 본질인 규범성이 상실된다.
*대표자들; 소피스트, 경험론자들, 스펜서,실용주의자들.
3.인생의 목적,절대행위의 법칙을 발견하는 방법론에 의한 분류(고전 윤리학의 세유형).
(1) 형이상학적 윤리설;
초자연경험,실재에의한 근거를 삼아 윤리학설이 탐구하는 인생의목적 또는 행위의 법칙을 추론할수있다는 이론(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적 진리로부터 윤리적진리가 논리적으로 추론된다고 본다 -합리론적 세계관의 전통을 이어받다 플라톤 아리스토틀, 스피노자
문제점;과학적 증명불가,인생관이지 사실증명 곤란. 지상만물이 인간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다.
인간중심주의. 주관주의. 고의적인 행위만 책임을 묻는다 ;추상적이다
(2)*자연주의적 윤리설;경험학수있는 자연적사실을 윤리이 가치의근거로 삼는다(에피큐러스,홉스,벤담, 밀) -자연적 사실 즉 경험하루 있는 사실을 근거로 삼고 보편적인생목적, 절대적행위법칙을 추출해낼수 있다고 본다 -경험론적세계관의 전통을 이어받다
문제점;상대론적 주관주의 입장이다. 동정심의 교정에 대한 논의가 모호하다 의무문제도 모호하다 이타가 이자가 되는가? 경험론적 윤리관은 자기부정의 위험이 있다 도덕판단의 기준을 제시어렵다
(3)*직관주의적 윤리설;도덕의원리는 우리의 선천적 능력을 동원하여 직접적으로 파악을 할 수가 있다는 이론.(칸트. 리차드 프라이스)
-도덕적 원리는 직관적으로 파악이 되어야하고 그렇게 파악할수가 있다
-시비, 선악등 가치는 객관적으로 실재한다 즉 대상자체가 본유하는 특성으로 어떤 주관에 의해 생성소멸될수 없다 - 임마뉴엘 칸트; (1724--1804) ;선한 의지만이 옳은것이다 선하다 비판;규범윤리설이다. 인간의 존엄성 자율성 강조=장점
문제점;-선의지만이 과연선한가? 명백한진리인가?(도덕가치만이 본래적인 선의 전부가 아니다;예술의 미도 선하 다) - 도덕률이 주어져있다는 근거를 밝히지못함.도덕률 선천성을 밝히지 못함. - 만인이 신봉하는 도덕률이 반드시 일치하는것이 아니다 - 칸트는 인간의 경험을 무시하다 인격은 유전요소, 환경등의 영향을 받는다.
4.윤리적 회의주의 ; 당위를 묻는 규범의학으로서 윤리학으로서(메타윤리학)가능성을 부인한다 - 메타 윤리학;
-과거의 윤리학의 주제;무엇을 해야하느냐, 즉 당위의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윤리학은 당위의 학이다.규범윤리학이 주제이었다 이를 다루는 이들을 모럴리스트라고 했다
-오늘의 문제;“당위의 문제”가 과연 학적으로 해답할 수 있는 것인가? 윤리학의 학으로서의 가능성을 묻는다 이를 메타 윤리학이라고 한다 이를 다루는 학자들은 분석학자들이다
-윤리인식긍정론; 도덕적 언명의 진위를 밝힐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 자연주의설, 현대직관설, 현대 형이상학적 윤리설 부정론;도덕적 언명의 진위를 밝힐수 없다고 주장한다
-일상적 언어학파의 윤리설, 이모티비즘
5.인격주의 윤리설; 무어,칸트, 셀러, 보헨스키등. 가치는 명증적이다.(셀러)
-논리적실증주의가 다 좋은 것이 아니다.상대주의는 궤변론자가 될 수있다.
6. 개인윤리와 사회윤리
(1) 개인윤리:
윤리문제는 타인과의 관계속에서만 형성되는것이 아니다 개인의 삶속에서도 윤리문제는 강조된다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욕구들이나 가치갈등을 다스리며 절제하여 스스로 인격을 갖추는 행위가 필요하다 이런문제를 고려하여 개인윤리문제를 취급한다 인간은 사회적존재이기에 모든 개인의 행위는 사회에 영향을 끼치나 모든 윤리가 사회윤리는 아니다 개인이 사회에 영향을 끼칠수있는 독창성이 있고 개인은 수평적관계 뿐아니라 자기자신과의 관계,또는 하나님과의 관계들 수직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개인의 특징적인 습관,태도 ,마음가짐 등의 그 개인내부에서 발달하고 변화되는 것을 관찰하고 평가한다 개인윤리는 주로 자기수양 ,인격형성,그리고 종교적,사회적책임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발달과 계발을 주목한다 개인윤리는 개인의 양심과 상식에 따른행위를 중시한다 사회적결과를 먼저생각하지 않는다 거지를 보면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돈을 준것은 개인윤리의 문제이고 돈을 줌으로 말미암아 거지조직을 더 키우는결과를 가져오는문제를 따지는것이 사회윤리의 영역이다 그러나 개인윤리는 궁극적으로 사회 윤리와는 분리될수없다
(2) 사회윤리:
개인과 개인의 관계,집단과 집단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려는 규범이다 사회의 나쁜구조체제를 생각하고 구조집단의 도덕적향상을 도모하고저한다 나쁜 조직 속에 있는 거지에게 돈을 준다면 그 나쁜조직을 키우는 꼴이 되므로 돈을 주지 말아야한다 사회적으로 미치는 결과를 생각하고 구조를 개선해 나아가야하기 때문이다
(3) 현대에서 사회윤리가 중요시 되어야할 이유:
1).개인윤리도 사회적성격을 배제할수가 없고 사회윤리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또한 현대는 사회구조가 개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고있다 개인이 도덕적으로 선하게 행동하려해도 사회구조가 이를 용납할수 없는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개인의 윤리의발달은 물론 사회전체가 윤리적으로 바로 서기위해서는 사회윤리에 깊은 관심을 기울어야한다
2).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개인의 동기가 순수해도 의외로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다
3).대통령등 한 중요위치의 개인이 잘못했을 때 국가전체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7. 상황주의 윤리설;
-새로운 윤리의 정립을 위해서는 사회적 상황을 심각하게 고려해야한다 상황,맥락을 중요시한다
-상황에 따라 타당성을 결여하기 쉬운 규범윤리의 단점을 극복하고자한다
플레쳐의 상황윤리의 내용
1.도덕적판단 근저에 있는 세가지 윤리형식
(1) 율법주의;불변의 법칙과 제도로 인간의 행위규범을 삼는다. 구약시대,율법주의자,로마 천주교. 율법제도가 무거운 멍에가된다
(2) 신앙지상주의;무율법주의로서, 인간지식을 바탕으로하는 영지주의, 희랍유대교열광주으자들이다 자유주의자. 은혜믿음만 강조하고 율법은 필요없다고 주장한다 때로 음란을 자유화하며 범법을 아무렇게도 생각하지 않는다
(3) 상황주의(Situationism); 중간입장이다 지역의 사회상황,전통, 이성의 판단을 활용하여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
2.상황윤리의 전제들
-실용주의 사랑의 실천,그결과를 중요시한다 -상대론;절대개념을 피한다
-실증주의;관념보다는 실천,사랑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중시함
-인격주의;사물보다는 인격관계를 중요시한다 인격은 사랑의 대상이다.
3. 사랑의 규범;
-사랑은 항상 선하고 사랑만이 유일한 규범이 된다 사랑과 의는 동일한것이다 사랑하는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사람만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시킨다 사랑은 구체적인 수단을 정당화한다
4. 상황윤리로서 해결해야 할 예제들;
-국가를 위해 미모의 여성스파이가 순결을 바치라는 국가의 명령을 받았을때 간음죄를 적용할수 없다
-포로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는은 부인이 출감되지 않으면 자녀들이 굶어 죽는다 임심하면 석방된다 간수와 간음, 임신했을 때 이부인은 처벌 받을 수 없다
-도저히 소생 가망성이 없는 불치병환자가 가족을 위해 스스로 안락사를 택할 경우에 살인죄로 처벌할수 없다
다양한 윤리관; 윤리체계
* 윤리체계; (1) 비절대주의=@도덕 폐기론
@일반주의;공리주의=벤담, 밀. 무어
@상황주의=조셉 플레쳐.
(2) 절대주의=@무조건조적 절대주의; 칸트. 존 머레이.
@갈등적 절대주의(상충적 절대주의);틸리케
@차등적 절대주의;어거스틴 찰스 핫지
IV. 윤리 체계들 (규범 윤리학)
(1) 도덕 폐기론;
-“거짓말하는 것은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세상에는 어던 규범도 없다. 옳고 그름을 선언할수는 있으나 도덕규범은 없다. 개인의 책임이 있을 뿐이다.
- 도덕폐기론의 배경이되는 사상들; 쾌락주의 과정주의, 회의주의,중세의 의도주의, 주의주의, 묭목주의, 근세의 공리주의, 정서주의, 허무주의, 싱황주의, 실존주의등.
-긍정적 기여; @개인의 가치를 인정하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점.
@인격관계를 강조했다(실존주의자들) @여러윤리원리의 유한한 차원을강조했다.(절대자들의 절대이해를 거부하가 고전 13;12 부분적으로 안다)
@정서적 차원을 바로 지적했다. 모든 규정이 규범적인것만은 아니다 정서적인 것도 있다
-문제점;@자기기만적이다=절대적인 것을 부인하면서 자기의 주장은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한다 @사랑, 정의 등 너무 주관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지나친 개인주의로 흐르고 있다 누가 자기자신의 재판관이되겠는가?
@비효과적이다=2인 이상이 모이는곳에는 갈등이 있게 마련인데 도덕법칙이 없을 경우에는 조절 방법이 없다 @비합리적이다=서로대립하는 도덕의무가 다 동일한 구속력을 갖고있다고 주장하는바 이는 비합리적인 생각이다 모순된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니다
(2) 일반주의; 공리주의 : 벤담과 밀. 오스틴. 무어.
-“거짓말하는것은 대체로 나쁘다 그러나 항상 나쁜것은 아니다 더 큰 선이 예비되어있을때는 거짓말도 나쁘지않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합리주의 입장이다. 도덕법칙에는 예외가 있다
-장점;
@규범들이 상치되는 문제를 해결해준다 예외 없는 보편규칙은 없다. 한개의 궁극적규범은 하나=최 대선이다 @규범들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반영한다 (무어)
@일부 일반론자들은 위반할수 없는 규범들을 제시했다 ( 생명구원, 약속이행등.)이는 실제로 우용성 으로서 절대규범을 인정한 것이다
-문제점(결점);@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지않는다(히틀러의경우) 잠14:12 파멸로 이끄는 길은 선한 의도로 포장되어있다@보편적 규범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공리적인 행위들은 전혀 본래적인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
@절대규범이 필요하다 @“목적”이란 말이 애매하다
(3) 상황주의; 죠셉 플레처. 실용주의, 실증주의, 인격주의가 그 바탕이되고 있다
-사랑만이 유일한 절대법칙이다 사랑외에 모든것은 상대적이다 어떤 상황아래서 사랑의 목적으로 거짓말하는 것은 옳다.본래적으로 선한것은 사랑뿐이다 기독교의 지배규범은 사랑이다. 정의는 분배된 사랑이다 정의=사랑.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이다 사랑은 우리가 하든 하지않든 그의 이익을 꾀한다
목적=사랑만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사랑의 결정은 규정되 는것이 아니라 상황적으로 정해진다--상화주의자들은 목적과 이유는 절대적이나 수단은 상대적이다
-장점;@규범적 입장을 견지하고 접근을 시도한다
@절대적 입장읊 취한다 사랑만이 행동을 정당화한다
@규범의 충돌문제를 해결한다 사랑의 규범과 모든 종류의 규범들.
@다른 환경에 대해 적절한 가치를 부여한다
@사랑과 인격을 강조한다
-문제점;@단일규범 사랑은 너무 추상적이고 일반적이다 사랑의 내용이 없다. 내용이 없는 것은 공허해지기쉽다
@상황은 사랑의 의미를 결정하지못한다
@다른 보편적인 규범도 가능하다 다른 규범도 많이 있을수 있다
@다른 윤리규범이 변호될수 있다
@플레처는 사실상 공리주의자이다 도덕폐기론으로 환원될수도 있다
(4) 무조건적 절대주의; 칸트 존머레이 어거스틴=거짓말문제에서만. 재세례파와 관련됨
-모든이들은 거짓말해서는 않된다 죽더라도 결과가 각 규범을 파기하려는 명분을 따라서 는 않된다
-서로 모순이 되지않는 법칙들이 존재한다 그 어느 하나도 폐기할 수 없다
-절대적 도덕법칙이 서로 모순되는 상황에서도 항상 도피구가 있다.
-장점;@하나님의 불변성에 근거한다 @ 결과보다는 규범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믿는다
-단점(문제점);@잘못된 전제가 있을수 있고 이에 대한 반론이 있을수 있다(영혼의죄가 육의 죄보다 무겁다,이원론에 입각하여 사회구원을 무시하는 등)
@본유적으로 선한 것이 과연 있는가?
@거짓은 과연 모든 확실성을 파괘하는가? (비의도적 거짓말은 그렇지 않다)
@무고한 생명을 구하기위한 자비의 의무는 과연 내게 없단 말인가?
@하나님은 모든 경우에 항상 도덕적 딜레마에서 우리를 구출해주시는가?
@율법주의 성격을 지닌다. 무자비하다. 비현실성이 있다 주장자들 사이에도 이론이 많다 일관성이 없다
(5) 갈등적 절대주의(상충적절대주의); 틸리케 루터파와 관련된다
-거짓말하는 것은 용서 받을수 있다
-서로 모순되는 법칙들이 존재한다 불가피한 갈등이 타락한 이세상에는 있다 도덕법칙이 서로 모순이 될때에는 덜 쁜 행동을하는 것은 용납이 된다 이세상에서 우리의 도덕적의무는 덜 나쁜 것을행하는것이다 우리는 덜 중요한 법칙을 어기고 하나님께 자비를 빌어야한다 덜 나쁜 행동도 면책대상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덕적 딜렘마에 처해 있다고 해서 자신의 절대적인 명령을 ? 조건을 바꾸시지않는다 우리가 잘못에 대해 죄를 자백하면 용서 받을 수 있다
-긍정적인면;@도덕적 절대들을 보유한다 하나님의 율법=하나님의 본성에서 나온 것이다.
@상충을 인정하고 있다 도덕적 현실성을 보유하고 있다
@도덕적 갈등의 뿌리가 하나님의 의도에 있지않고 인간으 타락에 있다고본다
@단순성 순수성이있다 궤변이 아니다. 예외없는 해결방안이다
-부정적인면;
@덜 나쁜것을 해야할 의무가 있는가? 기독교규범은 불완전한것인가?
@ 죄는 모두 실제적인 도덕적갈등 가운데 불가피한것인가? (그렇다면 예수님도 죄지었 음에 분명하다) 히4;15, 고후11:1 예수는 도덕적 딜렘마에 직면해서 죄는 없으시다
@불가피한것은 도덕적으로 죄가 되지않는다? 하나님은 절대로 악을 선택하라고 하시지 않는다
(6) 차등적 절대주의; 어거스틴, 찰스 핫지. 칼빈파와 관련
-거짓말하는것은 때에 따라서는 옳다
-모든 도덕의 법칙들이 동일한 비중을 갖는 것이 아니다 (마23:23,23:36 고전13:13 요15:13) 도덕적갈등은 불가피하게 존재한다
-도덕법칙이 서로 모순이 될 때에는 하나님은 높은 차원의 법칙을 준수하기위해서 낮은 법칙을 어긴 우리의 행위를 용서해주신다
-서로 모순되는 절대적 법칙들이 존재하고 있다 갈등이 생길때 더높은 차원의 법칙을 따라야한다 거짓말하는것은 때에 따라서는 옳을수 있다. 자비를 베푸는것이 진실을 말하는것보다 더 중요한 도덕적 의무가 된다
- 보다 높은 차원의 도덕법칙을 준수하기위해 낮은차원의 법칙을 준수하지 않는 것을 비난할수 없다.하나님은 그것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아니하신다 ( 마22:3-38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함. 롬13:1-2 딛3;1 정부권력에 복종 하나님명령에 복종)
-장점;-상대주의 함정에 빠지지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다 - 도덕적 갈등을 성공적으로 해결한다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할 수있다 사랑이 공의보다 앞선다
V. 인간의 행위와 관련된 규범들(갈등해소하는 기준들)
1. 사회규범들
(1) 관습;(민습); 사회적 시인과 사회적비난의 반응이 어떤 고정관념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러 탄생함. 윤리와 법의 시발점. 외재성. 비전형성. 고정성. 맹목성. 형식성. 전윤리성.
“결혼식후에 신혼여행을 가는것” 오랜세월 반복되어 고정관념으로 정착된것. 어겨도 법적불이익이나 윤리적비난이 없다 관습은 시대에 흐름에 따라 변화된다
(2) 도덕;(원규);습관이 오랜 자기수정의 과정을 거쳐 합리적이며 세련된 모습으로 발전된 것이다 비맹목성. 합리성, 권위를 가짐. 목적은 선이다 오랜시간에 걸쳐서 관습이 옳은 방향으로 수정되고 세련된 것이 윤리도덕이다
(3) 법(법규);강제규범, 정의규범, 조직규범,재판규범;제도화된 규범. 사회국가의 도덕이 금지하는 가운데 특별히 사회적 악영향이 큰것에 대해 국가가 간섭을 심하게 하게되어 그간섭이 강제적제재를 동반하는 단게로 제도화될 때 법이 형성된다 목적은 정의구현이다 법이란
어떤행위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에 그행위에대해서는 사회적 강제성을 부여한것이다 법을 어기면 법적제재를 받고 불이익을 받는다
2. 규범을 준수해야할 이유는?
사회화, 사회적보상, 사회적 제재가 있기 때문이다 무지한 자는 자유를 기대할수 없다
3.리규범이 법, 관습규범보다 근본인 까닭은 ?
*사회관습에는 비합리적인것도 있다 그러나 도덕은 여러관습가운데 오랜세월동안 합리적이라고 인정받은 것이다
*법에도 부당한것이 있을 수 있다 ( 세금징수등) 부당한법도 윤리규범에 비추어서 그부당성을 고칠수가 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윤리는 관습과 법을 평가하는 의미에서 그것들보다 도 근본적이라고 할수 있다
VI. 동양윤리사상의 특징(현대관점에서)
1.동양윤리는 개인의윤리적각성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개인보다 사회에 비중을 더두고있다
2.동양윤리는 내면의 윤리적 품성과 덕성을 중요시한다 현대인들은 겉으로 나타나는 예절과 체면만을 중시한다 ;뺑소니
3.생명존중과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한다 그러나ㅡ현대인들은 자연을 지배하여 쾌락을 추구한다-예 대책없는 개발, 골프장 증가.
4.인간본성을 신뢰한다;현대사회에서는 이웃과의인정이 사라지고 신뢰감이 상실되어가고 있다 -말만 앞세우는 정치인들
5.이론탐구보다는 실천을 중요시하였다 현대인들은 이론적으로 많은 것을 알지만 실천하지는 못함는 무기력한 인간이 되고 있다.
VII. 윤리와 가치
1. 가치의 개념;
가치란 주관 또는 자기 욕구,특히 감정이나 의지의 욕구를 만족시킬수있는 성질이다.
가치는 주관적 성격도 객관적 성격도 배제하지 않는다 어느 하나만 갖는 것이 아니다
(1).가치관은 옳은것, 바람직한것,해야할것, 하지말아야할것등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즉 가치판단의 기준을 말하며 가치관은 인간의 행동과 생활을 포괄적으로 지배하는 원리이다 가치관은 선택과 결정과정에서 일정한 기준이 되는 신념이요 삶의 방향이다 세계의 본질, 세계관,인식론은 인간의 삶과 행동의 원리로 볼수 없음으로 가치관이 아니다 그러나 세계관은 가치관에 영향을 준다
(2).가치관은 의. 주의. 지향(과거지향), 론(운명론 개척론) 관(세계관 인생관)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3). 가치관의 역활(기능);
-삶의 목적을 설정하고 삶의 의의를 찾고 삶을 해석하고 평가함 우리가치관은 우리 운명을 결정한다
(4).가치관의 형성;
올바른 가치관의 형성을 위해 청소년기에 중요한 가치관이 형성된다 올바른 가치관의 형성을 위해 넓게 읽고 사상적 편견이 없게해야 한다 차문이 관찰하며 허위나 환상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한다 -깊이 생각하며 속단이나 모순에 빠지지 않도록 자주 대화한다
(5). 가치관의 구분;
-보편적 가치관; 중행적 조정적 가치관. 종합적 지배적가치관. 한사회의 구성원의공약수로서의 가치관
-특수 가치관; @주변적가치관;소수의 사람에게만 지지 수용되는 잡다한 가치관
@이단적가치관;그 사회의 지배적 가치와 상반되는 가치관으로 배척의 대상이 된다
2. 가치의 주창자들;
(1) 객관적 가치 주창자 ; 막스 쉘러
-가치는 사물의 상태와 관계없이 존재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있다
(2) 주관적가치 주창자; 스피노자 -가치는 주관적 태도의 투사에 불과하다 자연과 우주에는 목적이 없다. 가치는 주체의 마음가짐에서 떠나 있지 않다
(3) 관계적 가치이론주창자; 라인홀드 니버 -가치는 관계속에서 발생한다
3 가치의 종류
(1).기초적가치:돈, 권력, 명예.. 소유하는것(have).나혼자 가지면 남이 못갖는다 행동촉발동기가 크다,경쟁,투쟁이 큼,희소성이 있다
(2).중도적(근사적)가치:정의 ,건강..되어지는것(become).중도적가치가 있음. 기초가치를규범하고(대립,투쟁을 양보와 타협으로 규범하고 이끈다). 적정 기준에의해 나누어가진다 (분배적정의) 기초가치도 중도적가치 없으면 갈등해소 불가능함.
(3).최종(궁극적)가치: 사랑,평화,자유...나누어 가진다(share) 나누어줄수록 커진다 궁극가치가 있다 윤리적인 의미와 보람을 갖는다
** 기본적가치도 최종가치로 변환되고 상승될수 있다; 돈을 가난한자를 위해 쓰면 사랑이되고 권력도 해방을 위해 쓰면 평화가 되고 명예도 남의 인격이나 명예를 먼저 생각하면 자유가 된다
4. 새가치관의 정립
현대는 가치혼란의 시대이다. 우리나라는 산업화과정이 짧기에 전통가치와 새로 유입된 서구가치관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1.수단적가치보다는 목적적 가치를 추구해야한다
2.우물안의 개구리가 되지 말고 가치관판단기준을 세계로 돌려야한다 지구촌,세계화시대에 알맞는 가치관이필요하다
3.물질위주의 가치관에서 정신위주의 가치관을 수립해야한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4. 좋은 전통적가치관을 계승하고 현대의 가치관과 조화를 잘 이루어야한다 (효도사상)
VIII. 정 의 : 정의란 무엇인가?
1. 정의관의 역사적 고찰
(1).고대사회
-고대희랍인의 정의관;정의란 각자에게 자기의 몫을 돌려주어야하는 것이다. 로마법학자들도 대체로이의견에 동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치에 따라 분배가 이루어져야한다고 역설함.기하학적 비례평등주장.(문제;무엇이 가치이고 각자가 받을 몫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결정곤란함 형식이론에 그친 점)
(2).K. Kaufmann의 정의관
-카프만은 고대희랍의 형식적이론이 실천 가능한 이론이 되려면 각자의 몫을 결정하는 기준과 분배해야할 대상을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한다고 주장하여 8개 기본범주와 22개의 하위범주를 정하였다
-그는 주장하기를 각자에게 그의 응분의 몫을 준다는것은 너무일반적인 이론이어서 유용성을 찾기어렵다는 것이며, 개별적인 상황에서 수많은 요인들을 고려하여 일관성이 있고 실효성있는 정의의원칙을 정립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3).롤스의 정의관
-정의의 문제는 합의와 선택의 문제이다 핵심적인 요인은 정의원칙에 이르는 과정과 절차이다. 합의와 선택과정에서 공정성을 보장하는 일이 중요하다 (로크,룻소의 사회계약론에 근거를 두다) 최초상황에서 공정합의는 정의로울 수있다
*롤스의 정의론; 정의의 두 원칙 (자유와 복지)
-제1원칙; 자유= 모든 사람이 자유를 완벽하게 누리게 한다 기회균등을 의미한다 정치적 입장에서 자유를 주로의미한다
-제2원칙; 평등=빈곤한사람의 복지를 우성 고려하여 배려한다 배분적 평등과상응하는 의미
-정의의 내용은 개인의 자유와 모든 이의(특히 빈자) 복지구현이다
(4). R. Nozick 의 정의관
-소유물의 취듣과정이 공정해야한다
2. 정의의 개념
* 정의의 여신상=한손에는 칼, 한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공정한 판단, 처벌, 무서은것)
*“정의”;= “몫”= 자기일에 사명을 다하고 거기서돌아오는 제몫을 정당하게 차지해야 하는것
*플라톤의 4대 덕 ; 지혜, 용기, 절제=개인적인 덕 정의=사회,이상국가의 덕
정의란 개인의 덕들이 사회 속에서 실현될때 비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정의는 질서,조화,균형의원리이다
*정의는 강자의 것인가?=정의의 정당한 실현이 어렵다는 말이다 정의는 힘으로 이룩될 수 없으나 힘없는 정의는 강자의 개인적 정의로 전락되어버릴 수 있다. 정의는 무작정 바라거나 기다린다고 찾아오는 것도 아니며 정의를 수호하려면 수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비로소 정의라는 꽃을 피워나갈수 있는 것이다 힘없는 저의는 무용지물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군이 된다
3 일반적인 정의 원칙;
(1)교환정의;산술적평등과 균형을 추구함 (정치,경제및 법적질서에서 중요의의를 지;님)
가격정의;물품에대해 정당한 가격을 주고받아야하는 구매자 판매자와의 관계.
거래정의;적절한 임금과 이에 다른 의무 수행을 정하는 노동조건에서의 정의.
기타 ;타인에게 피해를 입혔을 경우에 배상할 의무가 있는 정의
(2)분배정의;사회공동체의 구성원에 대한 관계를 바로잡는다. 기하학적인 균형추구--누진률을 적용한 세법.
사회구성원에게 정당한 분배를 시행하고 사회전체공동선에 참여케 하며 사회구성원의 정신적 도덕적 계발을 도모하는데 그목적이 있다
(3) 법적정의;국가와 관계되는 법률적정의,목적은 공동선을 위한 질서 확립을 도모하는데 있다 공동선을 위해 개인의 의무,희생을 강요한다 (군복무등)
제 2편 기 독 교 윤 리 학 (christian ethics) Moral theologmy 윤리신학
서 론
최근 기독교 안에서 '교회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고 하는 염려가 높아지고 있으며 실제로 공식적 통계를 살펴 보아도 성장이 둔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기독교교문사가 발행한 1993년 기독교 연감에 따르면 1990년에는 연평균 10.8%의 성장을 보였으나 1991년에는 5.8%, 1992년에는 4.0%로 둔화 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신앙세계」10월호 (신앙세계사,서울 ,1993.), p60.
이렇게 교회 성장이 둔화되는 원인에 대한 시각은 대체적으로 탈 도덕적인 세계 역사의 흐름의 영향도 있지만 한국교회 내적 문제로 교회 윤리와 사회윤리가 분리되는 이중적 윤리구조에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예를 들어 최근 문민 정부의 사정 대상 공직자 중 70%가 기독교인이라는 비공식 통계에서 드러 나듯이 기독교인의 윤리적 책임이 부족하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은준관, "변화된 상황에서 교회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기독교사상」11 월호 (대한기독교서회,서울,1993), pp10-14. 숭실대학교 김영한 교수는 한국교회 성장 둔화의 요인으로 교회의 윤리문제를 꼽고 있다. 목회자의 개인윤리 뿐만아니라 교단 의 핵분열, 군소 신학교 난립, 시한부 종말론 사건 등으로 사회 인식이 안 좋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예언자적 윤리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대중의 신뢰를 잃고 있으며 어느 중앙 일간지가 조사한 직업신뢰도에서 목사가 다른 종교지도자는 물론이고 T.V기 자 보다도 못하다는 통계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김영한,"한국교회성장이 둔화되고 있 다"「신앙세계」 1993년 10월호, p.61-62. 우리 기독교가 상황에 따라서 모든 것을 이해하면 모든것이 다 정당화 되고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알것은 기독교의 계율주의를 무시할 때 과연 그 기독교가 생명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진정한 윤리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인간의 삶의 기준을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는 것이며 그 하나님의 뜻을 이땅위에 펼치면서 하나님의 통치가 나의 삶에 전적으로 임하게 하는 것이다.
기독교윤리학은 기독교 신학의 한 분야이다
그리스도교 계시에 비추어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원칙들을 파악하고 설명한다. 윤리신학은 윤리철학과 구분된다. 윤리학의 철학적 규율은 이성의 권위에 의존하며, 도덕적 결함에 대해서 이성의 처벌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윤리신학은 계시의 권위,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동에 근거한 계시의 권위에 호소한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사용되었던 구체적인 도덕 규율은 시대, 지역, 그리스도교가 고백해왔던 여러 가지 신앙고백 전승에 따라 다르다. 로마 가톨릭 전승은 계시의 윤리적 권위를 다룰 때 교회제도의 중재역할을 강조하는 쪽으로 기운다. 개신교 교회들은 종종 개인이 하느님 앞에서 지고 있는 직접적 혹은 즉각적인 윤리적 책임을 크게 강조해왔다. 동방 그리스도교에서는 그리스도교도 각 개인의 도덕적 안정을 위한 영적인 지도자의 영향력이 중요한 면을 이루어왔다.
윤리신학은 때로 어떤 생각․일․행위가 하느님에게 대항하는 것이 되고 인간들에게 영적인 해를 끼치는 것이 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즉 죄들을 열거하는 것으로 그 영역을 제한했다. 그러므로 윤리신학은 개인이 좀더 적극적으로 하느님을 지향하는 것을 전제로 삼는 금욕주의와 신비주의 신학의 소극적인 부속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윤리신학자들은 윤리적 가르침을 복음서의 메시지에 나타나는 종교 인간학과 구분하지 않는 것이 〈신약성서〉의 정신과 초기 신학의 정신에 더욱 충실한 것이라고 믿어왔다. 이러한 접근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한 사람의 신격화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동방 그리스도교와 의인(義認)이 갖는 윤리적 능력에 관심을 갖고 있던 개신교에 반영되어 왔다. 중세와 종교개혁 이후의 로마 가톨릭 윤리신학은 윤리적 가르침을 교의 신학과 분리하는 경향이 있었다.
1. 기독교 윤리의 정의와 기초
(1) 기독교 윤리학이란?
“성경과 이성과 자연의 조명 속에서 옳고 그름에 관한 근원과 원칙, 그리고 실천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미국 루터교 학자인 카이저(L. S. Keyser)는 말했으며 기독교윤리란 기독교 윤리의 방향을 사회 안에서의 개인의 전반적인 삶에 적용되고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실제화된 예수의 도덕적 모범과 가르침에 관한 조직적인 해설이라고 정의하며 제시하고 있다.
기독교 윤리학=기독교+윤리학(ethics)<-ethics<-ethos습관
윤리학은 도덕에 관한 학문이다 기독교윤리학은 , 기독교관점에서 본 윤리학으로,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하여 인간의 도덕적 삶을 체계화 시키는 학문이다
- 인간관계:이웃과 관계, 자연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여기서 출발, 기독교 윤리학의 특징이 있다 M. buber. I and Thou-의 관계가 I and It관계로 변해가고 있다.(인간이 물질의 위치로, 물질은 인간의 위치로)
-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 뜻 실천하신 분이시다, 성령은 윤리판단 제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2. 기독교 윤리의 신학적 연관성
칼바르트는 기독교 윤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바로 듣고 그 명령에 복종하느냐 그 과제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본회퍼는 기독교 윤리는 인간 자체의 문제가 똑같이 중요하고 어떻게 죄인으로서의 인간이 새로운 인간이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는 기독론과 관련성을 갖게 된다. 틸리케는 그의 책 신학적 윤리에서 성령론적 윤리를 대두시키고 있다.
요한 웨슬레는 그의 성결의 개념이나 그리스도인의 완전 같은 이론은 성령론적 윤리에 가깝다고 하겠다.
3. 다른 학문과의 관계
기독교 윤리는 다양한 사회 과학, 특별한 사회학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윤리학은 사회 현상에 관한 자료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 조건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위하여 이와 같은 학문을 주시한다. 또한 철학과 관련을 갖는데 철학적 통찰력을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사도바울 역시도 헬라의 도덕, 특별히 스토익의 영향력을 반영하며 온유와 절제를 실천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모두 헬라적 개념인 것이다.
철학적 윤리는 이성과 더불어 출발하는 반면 기독교 윤리는 계시로부터 시작한다. 이성으로 출발되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게시로 출발되는 것은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윤리학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은 상담을 위함이요 도덕적 성장을 자극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이 신학적인 것만큼 또한 윤리적이었기 때문에 복음의 윤리적인 내용을 이해함과 강조함이 없이 기독교를 바로 해석할 수 없다
3. 기독교 윤리학의 기초
우리는 가정을 가지고 출발한다. 그러기에 과학자들은 자연의 가해성(可解性)과 일률성(一律性)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시작하며 철학자들은 이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시작하며 인문주의자들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출발하는 전제 조건을 신앙이며 마찬가지로 기독교 윤리학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으로 시작한다.
비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나름대로의 신을 숭배하는 범신론을 갖고 있지만 기독교의 견해는 하나님은 인격적이고, 주권자이며, 거룩하고 영적인 분인 유일신으로 의의 완전한 표준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의 윤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기초하고 있는 신 중심적이며 의의 완전한 표준이신 하나님께로부터 기초가 된 신학 윤리이다.
양심은 도덕 생활의 기본적 요소인데 토마스 아퀴나스는 양심을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인간의 마음”이라 정의했다. 양심은 인류의 보편적 소유물이며 양심에 대한 기독교의 명확한 개념은 ‘선한 양심’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양심’으로부터 깨끗함을 받았다. 기독교 윤리는 속죄의 윤리이다. 십자가는 도덕적인 논제가 사회적 맥락에 대한 개인의 적응 문제가 이상적인 것으로 충족된다 할지라도 도덕의 문제는 그보다 더 심오한 것임을 나타낸다.
4. 구약 성경 윤리
히브리 윤리는 하나님 자신의 본성에 관한 히브리 개념에 기초하고 있는 철저하게 신 중심적인 것이다. 하나님 뜻에의 복종은 구약 성경 윤리의 기본적인 원칙이며 하나님 뜻에 대한 ‘무조건적인 의무’를 말하는데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은 최고선이며 불순종은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의 내용은 사랑이며 구약 성경 속에서 선택과 언약은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 자신과 히브리인들 사이에 있는 계약적 관계의 기초이기도 하다. 계약과 선택적인 사랑은 도덕적 책임과 봉사를 포함하며 하나님의 선택적인 사랑은 또한 도덕적인 책임을 포함한다. 아울러 거룩한 선택은 또한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뜻의 대행자는 인간이며 인간의 존엄성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았다는 것이며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지음 받았다는 사실에 있고 인간에게 하나님의 통치권의 일부를 대리케 하신 것이다. 결국 구약 성경 윤리는 그 사회적 목적으로 우주적인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추구하는데 있다.
이스라엘의 도덕 생활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은 십계명이다. 십계명의 도덕적 명령은 하나님의 명령들이지 사람들의 습속이나 관습이 아니다. 1계명부터 4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의무를 다루며 5계명부터 10계명의 여섯 계명들은 다른 사람과 자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를 적합하게 요약하고 있다. 또한 히브리 도덕의 최고 수위(首位)는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들 수 있는데 이사야, 아모스, 호세아, 미가 그리고 예언자들의 윤리는 학문적이거나 사색적인 도덕이 아니라 의롭고 살아 계신 하나님 안에 기초한 도덕이었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거룩한 도시를 재건하기 시작했는데 소수의 통치자 및 탐욕스러운 토지 소유자들에 의해 억압하고 가난하게 되었으며 법정은 부패하고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는 등 망국적 현상인 술, 통치자의 사치스러움을 달렸을 때 예언자들은 심판과 희망을 선포했다. 윤리적으로는 정의와 의, 자비 그리고 사랑의 원칙들을 강조했다. 참으로 에언자들이 우리들의 세대에 미치는 영향력은 오늘도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지혜자들(욥,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을 통해 시도된 도덕적 진리에 관한 요약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행위의 핵심적인 규범들을 우리들이 간직하는데 도움을 주며 구약 성경의 종합적 윤리 개념은 인간의 이성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뜻의 내용은 율법과 예언자들 그리고 지혜서에서 나타내 보여진 것처럼 사랑과 충성과 의와 정의이다.
5 .히브리 윤리의 특색
(1)하나님중심(God-centered)-종교 윤리 구별않될 정도로-(10계명 전반, 후반)
이방종교-성행위-생명력 상징 종교의식-유대종교거부, 순결윤리 존중케 됨
(2)명령적인 성격
선의내용(What is good)보다 이행해야 할 의무(What is right)에 중점
하나님과의 언약-하나님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만큼 의무가 더 강하게 부과된다.
언약관계-하나님의 신부(=이스라엘)(사54:5 호2:19)로 표현, 의무중요시 구별된 백성이기에 다른 민족과 달라야 한다.(레20:26) 이방인과 결혼금지(출34:16), 적군멸절(신13:12-18 17:2-7)->종교행위 ->큰 증오때문이라기보다 순전히 거룩하려는 순결성 때문에 자행
(3)사람이나 사람의 공동체에 큰 관심 갖다. 구체적 사랑, 정의강조(Not추상적)
(4)인간을 평등하게 대하려는 흐름(희년제도 등)
(5)선의추구보다는 악으로부터 구원강조(사38:17) 마1:21, 요1:29 출애굽:하나님이 먼저 해방-인간의무강조
(6)응보의 사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께 복종 국가번영 불복종->파멸 (신명기28:)
6. 신약성경의 윤리
성경의 저자 중 사도 바울은 초대 기독교의 윤리적인 문제들과 관계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심정’을 해석한 최초의 위대한 해석자였다. 특별히 고린도 교회 안에서의 특별한 도덕적 문제들의 출현은 그에게 예수님의 윤리적인 이상들을 구체적인 문제에 적용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그의 윤리적 교훈은 신학적 교리 위에 기초하고 있다. 우선 바울의 윤리는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성령의 윤리이며, 회개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교회의 윤리이다.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있는 윤리적 강조점은 바울의 저작 속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신약 성경의 다른 저작자들의 저작 속에서도 나타나 있다. 요한의 저작들은 복음서와 바울 속에 있는 사랑의 우월성을 해석해 주고 있고, 야고보서의 서신은 산상수훈의 반복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히브리서, 베드로 전후서, 그리고 유다서도 윤리적 도덕적 원칙을 포함하고 있으며 사도행전은 도덕적 행위와 관련된 성령을 우리들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게 기여해 주고 있다. 원칙적인 면은 대부분의 윤리적 자료는 예수님과 바울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신약성서윤리는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보면 곧 성서윤리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 성경이 20세기의 세계를 여전히 지배해야 한다는 면에서 신약성서윤리는 곧 기독교윤리가 되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교훈은 그 원리는 지금도 변함없이 적용가능하다
양식, 양태는 시대에 따라 변천 그러나 그 근본원리는 불변(결혼-결혼식)
7. 그리스도의 윤리
예수의 규범은 하나님의 의와 일치하며 공동의 관습에 대한 일치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분이 거룩한 것처럼 거룩해야 하며 그분이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해야 하고 그분이 자비로운 것처럼 자비로워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의의 규범은 단지 사회의 관례나 관습이 아니고 영원한 하나님의 의 인 것이다. 이것은 산상수훈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의의 윤리는 산상수훈에 나타난 주제 또는 맥락이다. 산상수훈에는 예수의 성품, 영향력, 동기, 행위 등 이 독특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 설교야 말로 도덕적 교훈의 핵심을 포함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으며 기독교인의 태도와 행위 속에서 근본적인 모범을 제시해 주셨다. 그것은 예수님의 윤리의 핵심이라고 할수 있겠다.
예수의 윤리는 예언적 종교의 완전한 결실이다. 이 예수의 윤리는 세상을 부인하는 종교의 금욕주의적 윤리나 선한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행복과 성공으로 인도하도록 고안된 자연 주의의 조심스러운 도덕성과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예수의 가르침에 있어 사랑의 이상의 초월적 특성이 외적이라기보다는 내적이기 때문에 자연주의와 혼동이 되기 쉽다.
하나님의 성품과 가장 순수한 형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논리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예언적 종교의 신앙의 가장 중추적인 것으로 간주해도 좋다.
예수께서는 자기주장의 형태로서의 재물에 대한 사랑을 신랄하게 책망하신다. 종교적 윤리관의 입장은 분명하다. 재물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순종을 불가능하게하는 방해물이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신다. 이것이 금욕주의적 윤리의 근거를 구촉하는데 많이 사용되어 왔다. 예수의 자아 사랑의 특성에 대한 가장 예리한 분석은 교만, 특히 선한 사람들의 교만에 대한 예수의 통렬한 비판 가운데 잘 나타나 있다. 교만은 자아 사랑의 교묘한 형태이다. 자아 중심적 교만의 억제는 단지 종교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타산적 도덕의 차원에서도 정당화되고 있다. 겸손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게하는 반면, 상석에 앉으려는 교만의 노력은 존경받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어쩔수 없는 상황이나 당면한 상황에서의 도덕적, 사회적 정당성도 예수의 엄격한 입장 앞에서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투쟁이냐 분쟁이나 분개를 금하고 있다. 자아는 자신을 빼앗아 가는 자들에게 자신의 관심을 내세워서도 안되고, 자신에게 행해진 불의를 인해서 분노해서도 안된다.
예수 윤리의 사랑절대주의는 인간적 호의와 애착의 모든 소극적 형태를 지향하는 보편주의적인 차원과 자기주장의 불가피하고 미묘한 형태에 대한 비판력을 유지하는 완전주의 적인 차원에서 표현되어 있다. 예수 윤리의 보편주의는 스토익(Stoic)학파의 보편주의나 매우 흡사하나, 또한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다. 스토익파의 논리는 지성인들만을 취급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귀족적인 태도가 스토익파의 보편주의를 타락시킨다. 예수의 사상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모두 신성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시고, 모두가 똑같이 용서 받았기때문이며,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떨어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윤리는 타산적인 윤리가 추구하는 도덕적 행위에 따르는 결과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것을 요구한다. 예수의 윤리에는 종말론적인 요소가 있다. 예수에 의해 요구된 윤리적 명령은 인간의 현실존 가운데서는 성취가 불가능하다. 이 명령들은 본질적 실존의 초월적, 선적(divine)통일에서 비롯된 것으로 궁극적인 성취는 하나님께서 현 세상의 혼동을 완전한 통일과 조화로 바꾸어 놓으실 때에만 가능하다.
8. 성령의 윤리
기독교 윤리 중 주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소홀히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성령에 관한 것이다. 만약 성령의 도덕성에 대한 관계를 무시한다면 기독교 윤리의 독특성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는 삼위일체 교리를 포함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성경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흐려진 유리창을 통해’ 이교훈들을 보게 되는데 초기 구약 성경 문헌에서 성령은 인격적으로가 아니라 힘으로 묘사되었으며 윤리적 개념으로서는 거의 묘사되지 않았다. 또한 예언자의 카리스마적 은사와 관련을 갖고 있었으며 포로 시대에 이르기까지 성령에 대한 지배적인 개념은 무도덕적인 것이었다.
신약 성경 속에서 성령의 개념은 인격적이고 윤리적으로 되었다. 사도행전의 주인공은 성령이며 종종 성령행전 이라고도 불리어진다. 성령은 활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의 도덕은 다양하기에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삶은 성령에 의해서 인도되고 유지된다. 성령은 세상의 죄와 의와 심판을 깨닫게 하고 확증케 한다. 그는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고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들과 더불어 교제를 나누며 살도록 하신다. 또한 우리에게 힘을 주어 활동하게 하시고 모든 은사의 출처가 되시어서 공동체의 일반적 선을 위해 공헌하신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도덕적 성품을 발전시키게 해주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하시는 신비적인 것이 아닌 도덕적이며 감상적이 아닌 윤리적인 것이며 인격적인 것이다.
* 성령론과 윤리
성령론적 윤리란 우리 안에서 육이 우리를 좌우하지 않고 성령이 우리를 다스리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성령론적 윤리의 특징은, 인간에 대한 주님의 구원의 능력에 대한 새로운 각성, 영적인 갱신, 깊은 사랑의 교제에서 결과하는 공동체 개념과 자연성, 자유성, 성실성이며, 거룩과 경건을 목표로 삼고 전진하는 것이며 최종적 목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같이 완전해지는” 데 있다. 즉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일치성으로 성령의 확증을 말한다.
9 일반윤리와 기독교윤리 관계
(1)일반윤리완전 배척론자들 견해 <극단보수주의자>
일반 윤리는 죄인들의 윤리다. 왜냐하면 이성과 계시는 완전 모순된다고 보기때문이다
(2)일반윤리와 기독교윤리차이 불인정하는 견해 <자유주의 신학자>
기독교윤리를 일반윤리에 적응 또는 타협시키는 자 <->*엄연한 차이가 있다.
(3)일반윤리 기독교 윤리가 서로 공유됨을 시인하는 견해, <카톨릭 교회>
-두 윤리의 차이인정, 그러나 절충적 방법시도 그러나 이런 견해는 인간의 죄악성 심각 하게 파악 못하는 위험
(4)어거스틴의 견해
-배척, 타협않고, 대치않고 하나님 중심에서 이탈된 일반윤리를 기독교의 윤리로 변혁 (transform)시켜 참다운 윤리가 되게 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good!
윤리란 인간 행위의 도덕적 체계를 다루는 것으로서 주체적 삶의 현장에서 우리 행위의 의미를 물으며 그것이 의미되게 하는 규범으로서의 선을 문제 삼는다. 기독교 윤리 역시 인간 행위에 대한 도덕적 체계를 문제 삼지만 일반 윤리와는 차이가 있는데 기독교 윤리는 기독교라고 하는 종교를 삶의 중심에 두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윤리이기 때문이다.
Gustafson의 기독교 윤리와 일반 윤리의 연속성과 차이점을 살펴보면,
첫째, 모든 사물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었고 또 그 분은 모든 만물의 주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미에서 윤리는 기독교적이어야 하며 기독교적인 것이다.
둘째, 기독교인의 윤리는 그 공동체가 주님이신 예수에 절대적으로 순종키 위해서 불려졌기 때문에 배타적으로 기독교적이며 기독교적이어야 한다.
연속성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란 관점에서 일반 윤리와 기독교 윤리가 연속성이 있다. 이 관점에서는 특정한 기독교적 윤리라는 것은 없다. 그러나 기독교적 윤리의 전 내용이 다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예수에게서 계시된 자기희생적인 봉사로서의 의무는 특정한 종교적인 의무로 누구에게나 합리적으로 보편타당하게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특정한 의무를 윤리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종교적인 것으로 볼 때 기독교 윤리와 일반 윤리는 상호 교환적인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차이점은 기독교인은 예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는 서로 차이 가 있다. 이 말은 윤리가 기독교적일 수 있으며, 기독교적이 어냐 한다는 것이다. 곧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기독교적인 삶의 일부로서의 일반적인 도덕적 의무뿐 아니라 특정한 것을 따라야 하는 의무가 지워져 있음을 의미한다. 기독교인에게는 특정한 윤리가 부과되어 있다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며 그것은 전혀 윤리가 아니며, 일종의 종교적인 의무를 가지는 종교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윤리라는 말은 “기독교”와 “윤리”의 합성어로서 서로 대치되는 부분이 있다. 즉 윤리란 합리성에 의해 지배를 받지만, 기독교는 합리성에 지배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윤리는 합리적인 보편성과 기독교라는 특수성을 종합하는 말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 윤리와 일반 윤리의 차이점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가능케 하며 요구하는 것의 있음과 없음에서 구별된다. 즉 기독교 윤리는 하나님의 존재 앞과 기독교 공동체 속에서 인간의 도덕적인 삶을 규정하는 것을 말하며, 일반 윤리는 이론적인 추론에만 의지하고 있다.
10. 기독교 윤리관의 특징;
- “하나님의 의지에 토대를 이루고 있다 - 절대적 윤리이다
- 하나님의 계시에 토대를 이루고 있다- 기독교 윤리는 규정적이다 - 기독교 윤리는 의무론적이다
-.기독교윤리는 적극적 윤리이다.
“-하라”가 강조 (마7:12)황금률, USA국민들 “No” 보다는 I am sorry
-.기독교윤리는 현세를 넘어서는 내세와의 관련을 주장한다. 종말론적, 천국과 관련
*천국에 대한 기쁜 소식 세례요한:하나님의 통치의 절정은 인간죄의 심판
천국의 완전성취는 말세에 이루어진다(마10:29-30) JX:하나님의 통치의 절정은 기쁜 소식(눅12:32) 천국 아주 귀하기에 모든 것 팔고 살 가치有(마13:44-45)
11. 윤리판단에서 어떻게 성경을 이용하나
기독교 윤리를 위한 성서의 역할은, 명제적 명령을 주며(십계명, 산상수훈등...), 성서가 제시하는 도덕적 이상을 따라 윤리적 판단의 지혜를 얻을 수 있고, 유비들을 통해 윤리 판단의 근거와 안내를 제시 받을 수 있으며 윤리적 모델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도덕적 법칙으로 성경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성경을 항상 이렇게만 이용하면 율법주의에 빠지기 쉽다. 또한 성경을 도덕적인 이상의 표준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상이 현실에 적용되지 못하면 유토피아에 그치고 만다. 성경과 오늘의 유사성에 준하여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옛날과는 다른 상황이 얼마든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따라서 보다 융통성 있게 성경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나학진 씨는 이것을 “방향 제시로서의 성경”이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모든 문제 해결이 성경에 표현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옛날과는 다른 오늘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더구나 오늘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인지하면서 윤리적인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12.규범, 콘텍스트, 결단
(1)규범:사유, 의지, 감정등이 일정한 이상이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마땅히 따라야 할 법칙과 원리(윤리학) 어떤 콘텍스트 (맥락)안에서 결단하게 하는 법칙과 윤리
(2)context(맥락):어떤 사건이나 인격에 적합한 총체적인 상황이나 배경이나, 환경(과거, 미래도 포함)
(3)결단한다(decision-making):어떤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것(무엇을 해야하나->) 결단은, 목적론적 주지(이상, 목표에 따 라), 의무론적 주지(시민으로 상황에 따라 규칙에 따라), 책임적 주지(대답하는 자로 우리가 책임적 응답 결단의 과정이 요구된다)
규범과 context상관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IX. 규범을 결단하는 기준들 -
>1)하나님의 명령 2)아가페 모형 3)신국모형 4)코이노니아 모형 5)소망의 모형
(1)하나님명령의 모형
*하나님의 명령을 규범으로 결단! 상황의 요청에 의하여 되는 것이 아니다.
*K.Barth(1886-1968):하나님은 명령은 “명령법적 양태에서 창조자와 주에의한 인간의 존재와 본성의 해석이다”
(2)아가페 모형-아가페를 사랑 규범으로 하는 결단 *Context안에 매몰되거나, 흡수되어 상실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위에 있으면서 context안에서 접근치(approximation)를 성취하도록 하는 것
A.Reinhold Niebuhr
*국법은 아가페사랑=JX의 십자가에서 나타난 완전한 사랑, 희생의 순수사랑 impossible possibility*인간의 모든 도덕행위는 Agape의해 보충된다. Agape없으면 퇴화 변질된다.
B.Joseph Fletcher:상황윤리, 사랑만을 규범으로 한다.
비판:*사랑의 공리주의, 사랑일변도의 reduction(감축주의)에 빠진다.
*결단이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도덕적으로 볼 때 결국 의 것이 되고 공적으로 검토되고 평가될 수 있는 어떤 객관적인 요구가 상황으로부터 일어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상황을 해석하는 개인의 주관에 의해 결단이 일어나게 된다. 상황을 협소하게 결단수행의 순간으로 보고, 보다 큰 사회상황의 윤리적 의미를 무시하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즉 윤리적 결단을 수행함에 있어 보다 넓고 복합적인 인간 상호작용의 사회적 인과관계를 쉽게 간과하고 있다. 순수한 love-monism사랑 단일론에 빠지고 만다.
3)신국모형-사회의 신국화, 사회질서의 기독교화 모든 제도안에서! 신국이라는 목적을 설정하고 인간은 신국을 실천해가 규범-신국 는 자로서 그 방안을 모색하고 실행하려고 한다. 의무론적 주지나 책임론적 주지아닌 목적론적 주지에서 되어진다.
Walter Rauschenbusch 1861-1918
비판:낙관적 사상-라우센부쉬 죄(감각적인 것 이기심 불경건한)가 신적 전설을 방해한다 죄는 더 큰 자아와 우주적 선 (공익)을 방해한다-교육과 도덕적설득을통해 죄없앨수 있다. 그러나 “죄” 현실적으로 없애는 것 불가능(어느정도 도움되다)하다
4)코이노니아 모형
Paul Lehmann(USA) 기독교윤리학1963
윤리규범=코이노니아, 기독교윤리는 코이노니아 윤리이다. “나는 JX를 믿는 자로서, 교회일원으로서”-무엇을 할 수 있는가?->코이노니아가 대답안내 개념-고전1:9 빌1:3-5, 엡3:1-12,14 16-19, 4:1-7 11-16 5:15-17, 20
특성:(1)koinovia는 세상에서 X의 현존의 친교를 야기시키는 현상이다(이방인도) 친교의 모임으로서의 교회는 실제로 하나님의 목적으로 가득차 있다.
비판:(1)신학적인 논의에 머물고 있어 실제로 살고 있는 사회에서 효과를 거둘 구체성이 없다. (2)계시, 윤리, 신학모두가 koinonia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레만은 법이나 모든 원칙을 koinonia속에 파묻음으로써 사실상 그것들을 피하거나 부정하는 수준으로 떨어지고 만다.
(3)자발적인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에 도덕적 의무관 크게 기대할 수 없다고 보겠다.
5)소망의 모형-소망을 규범으로!
A.몰트만(Jurgen Moltmann)*모든 기독교 신앙의 결정적인 차원은 미래에 있다. 역사는 X의 부활->재림까지 연장된다. JX부활안에 포함된 미래 *소망은 새로운 세계를 위한 소망이다. 따라서 그것은 신적 변형을 기대하는 가운데 세계를 변형시켜야 한다.
비판:수직적인 면을 수평적인 것으로 옮겨 놓으려 한다(화평의 세계로 변형시도)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는 진리는 공간적이든 시간적이든 비결정적 거리로 퇴각하는 결과를 내었다.
X. 목회자의 윤리
목회자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 말씀
대로 살도록 지도하는 사명을 받았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올
바로 알아야 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데 있어서 모든 성도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 스스
로 지키지 않는 가르침은 위선이요, 성도들의 성화와 복음전파에 큰 방해가 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다음과 같은 윤리강령에 따라 그 삶을 정결하게 함으로 주님으로부터 받은 신성한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1. 목회자는 말씀 연구, 설교준비, 그리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도록 자신의 신앙인격 형성
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 목회자는 말과 행동에 있어 조금의 거짓도 있어서는 안되고 약속을 철저히 지켜 가르치
는 말씀의 권위에 어떤 손상도 입히지 말아야 한다.
3. 목회자는 항상 고상한 언어를 사용하고 욕설을 삼가며,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야비하고
저속한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4. 목회자는 모든 판단과 치리에 있어 철저히 공명정대하고 합리적이며 편견, 편애, 과장, 왜
곡을 피하여야 한다.
5. 목회자는 모든 소득과 소비에 있어 절제하고 검소하여 교인의 평균수준을 넘지 않도록
하며, 정한 사례와 생활비 외의 모든 수입, 지출은 정당화될 수 있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
고는 공개하고, 상당한 지출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하고 집행해야 한다.
6. 목회자는 과도한 사유재산을 소유하지 아니하며 기본적인 생활과 자녀교육을 위하여 불
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득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
7. 목회자는 충분한 자격이 수반되지 않는 명예, 지위, 권리의 획득을 시도하지 않아야 하며
교권을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8. 목회자는 가정에 충실하고 가족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부부관
계를 조화롭게 하고, 어떤 경우에도 이혼하지 않으며, 성적으로 순결하여야 할 뿐 아니라 이
성문제에 있어서 어떤 오해도 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9. 목회자는 기호와 취미활동에 지나치게 탐닉하지 않아야 하며, 휴식에 있어서도 목회자의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
10. 목회자는 다른 고등종교와 그 종교인에 대해서 공정하고 예의를 지켜야 한다. 야비한 언
어로 다른 고등종교를 비방하지 않아야 하고, 그 종교가 신성하게 취급하는 상징물을 훼손
하지 않아야 한다.
11. 목회자는 공익과 윤리적 질서를 위한 사회활동이 아닌 파당적인 정치활동에는 어떤 형
태로든지 관계하지 않아야 한다.
12. 목회자는 성경말씀과 교리에 어긋나지 않은 한 우리 사회의 어떤 미풍양속, 예의, 교양,
윤리 및 법률에도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여 성도들에게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신사
도의 귀감이 되어야 한다.
제 3편 기 독 교 윤 리 각 론
I. 노동과 직업윤리
1. 서 론
명나라의 유명한 유학자중 왕양명이란 분은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인생에 견디기 어려운 네가지가 있다 첫째는 배고프고 추운것 둘째는 인정 못받고 냉대를 받는 정신적 고통이다 셋째는 정서적으로 불안하여 두려움을 느끼고 고민에 빠지는것, 네째는 하는일이 없어 너무 한가로운 것이다 일이 없고 매일 빈둥대는것은 매우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인간을 처음 만드실때도 사람으로 하여금 놀고먹지 않게 만드셨다. 창1:26 에는 뭇생물을 다스리게하셨고 창2:15 에덴동산에 아담을 이끌어두시고 그동산을 다스리고 지키게하셨다.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요5:17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인간이 범죄한후에도 인간의 삶은 일해야 살게 되어있다 창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그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모세가 받은 하나님의 10계명에도 제 4계명에서 너희는 엿새동안에 힘써 네모든것을 행할것이나.. 1주일 7일중 하루는 하나님께 경배드리며 쉬어야하고 6일은 힘써서 일하라고 하셨다. 주 5일 근무는 잘못된 것이다 더구나 아직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한 우리의 실정으로서는 합당한 조치가 아닌줄 안다
사도바울은 말씀하기를 살후3:10 누구든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게하라고 하셨읍니다 살전4:11 종용하여 자기일을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하셨다.
노동은 신성한것이다 노동하는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이다 노동을 천시하는 나라는 가난하게 살았다. 믿는자중에도 하나님의 축복을 빙자하여 놀고먹는자는 불행한 사람이요
비성서적인 사람이다.시128:2 복있는 사람은 놀고먹는자가아니라 그손이수고한대로 먹는사람이다 수고해도 먹지를 못하는이도 불행한사람이지만 수고하지 않고 먹고사는이도 불행한자이다 노동은 우리를 행복하게한다
(1) 부지런하게 일하면 부요해진다 게으르면 가난하게 된다(잠24:33-34)
(2)부지런하면 사람을 다스리게 되고(잠12:24) 자기사업에 근실한 사람은 왕앞에서서 인정을 받게된다 부지런히 일하는이가 윗사람에게 인정받는다
(3) 일하는사람이 진정한 안식과 건강을 유지한다 전5:12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 노동을 모르는 이는 안식도 모른다 일을해야 건강해진다 잠많이 잔다고 건강한것이 아니다 국제보건기구WHO에서 최근 발표한것을 보면 사람은 놀고있을때 체력이 더소모되어 더 빨리 늙고 더 빨리죽는다고 합니다 죽을 먹고 잠만자도 콜리에스텔이 증가한다고 한다 쉬는것은 좋으나 노상 쉬려고만하면 하나님이 아주 쉬게 만드신다 많이 먹고 많이 움직일때 건강한것이다, 화장만하는 사람은 병원 출입이 잦다 슈바이처는 말하기를 모든병에 가장 좋은 약은 내가 할일을 가졌다고 인식하는것, 그리고 즐겁게 일하는 것이다.“ 라고 했읍니다 일해야 행복한것이다.로마격언에 보면 “아무것도 아니하면 악을 배우게 된다”란 말이 있다.
아무일도 안하는것은 악이다. 해야할 일이 누구에게나 있다 해야할일을 아니할 때 해서는 않일을 하게되는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다. 해야할 일과 하고싶은일이 일치되야 행복하다. 마지막 할일을 잘하는 것이 행복하다. 지금하는 일이 마지막일이다. 노동은 신성한것이다. 노동을 가르치지 않는것은 도둑질을 가르치는것과 같다고 했다.내가 놀고 먹으면 누군가가 힘서 일해 놓은 양식을 먹게 되는 것이다. 일자체가 의의가 있다. 돈 벌려고만 일하는 것이 아니다. 일자체가 의미와 가치가 있는것이다. 일자체가 축복이다.
2. 노동의 가치
(1) 노동은 인간의 본질이다
*노동은 인간에게만 있다 노동이란= 그대로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없는 자연을 인간의 욕망에 맞도록 변형시키는 행위이다 동물들은 자연에 순응해서 살뿐이다
*인간은 자연에 대해 이중적이다 자연을 떠나서는 살수 자연적 존재이면서 한편으로서는 자기욕구충족을 위해 자연을 변형시키는 ,자연을 넘어서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가치를 추구하고 형성해가는 존재이다 그러나 노동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가치도 현실화될수 없다.이런점에서 노동은 인간의 본질이다 노동은 사회의모든재화를 만들어내는원천이다 인간의 정신적인것은 물질적을 통해 실현할수있다. 신체적인 일가운데 인간의 삶의 근본이 되는 것은 노동이다
*노동이 인간의 본질인까닭은 인간은 자연을 변형하는 노동을 통하지 않고서는 삶을 유지할수 없기 때문이다.노동은 인간을 인간되게하는 본질이다 인간의정신적인것도 신체적인노동을 통해서 실현된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자기의 삶을 확인한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사람은 노동을 통해서 삶에 필요한 재화와 가치를 생산할뿐만 아니라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생존을 영위한다 *노동과 직업은 자아실현의 계기가 되고 행복의 조건이 된다 자기완성, 자아실현을 위해서 그리고 개성을 발휘할수 있고 삶의 보람을 느끼기 위해 노동은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은 인간본연의 문화를 만들어가며 자기실현을 한다 노동은 이런 문화의 창출과 자기실현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노동을 통해 사회발전에 기여한다
3. 직업이란 무엇인가 직업 선택의 기준은 ?
(1)직업이란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소모하여 그 보수로서 경제급부를 받아 그것에 의해 생활을 유지하는 지속적 사회활동을 의미한다
(2). 직업(선택)의 의미;자기계발의 수단,. 경제생활의 기반이 된다 사회발전의 수단이 된다
(3). 선택의 기준; 자기발전의 가능성(능력,적성에 합당한가)사회발전에 기여 전망
( 합법적인 직업인가, 사회에 유익을 주는가)
* “천한 직업은 없다 다만 천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 ..아브라함 링컨
4. 직 업 윤 리
-공공성과 합리적 정신을 가져야한다 -강한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가져야한다
-직장을 사랑하며 협동정신을 가질것 -국가와 민족,인류를 사랑하는마음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직업을 소명으로 알라 -근면,검소,신중을 핵심으로하는 금욕적 직업윤리가 필요하다
5. 결 론
노동에 대해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결론을 내리면서 창조 질서로서의 노동을 살펴보건대 노동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분의 명령에 의해서 생겨난 창조 질서인 것이다. 그래서 노동의 존엄성은 창조 신앙에 의해서만 규명되어질 수 있고 뒤에 언급할 안식은 구속 신앙에 의해서 그 본질이 밝혀진다. 즉 노동은 창조 질서로서 하나님의 뜻인 인간 봉사와 하나님 섬김을 위해서, 노동 상황에 관계하지 않고 세상 끝까지 보존되어야할 그런 것이다. 노동의 의미는 나와 이웃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삼중 관계 속에서만 그 의미 파악이 가능하다. 즉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이웃을 봉사하고 이웃을 섬기는 중에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노동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의 노동은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 동기와 의미가 보장되는 것이다. 이것이 노동의 신적인 소명성이며 이는 이 땅에서의 노동을 통한 봉사와 그리고 천국 사업에 동참하는 자로서의 사랑의 봉사와 현실 개혁의 동기를 부여받는 것이다. 결국 노동은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은혜이며 창조 질서로서의 노동은 창조적 노동과 땅의 재물을 하나님 뜻대로 선용하는데 그 신학적 의미가 있다. 그 근원은 사랑이며 사랑은 태만을 제거하고 고난당하는 이웃을 돕는데 필요한 원동력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는 자신의 신비체 안에 인간을 사랑하시며 노동하시는 하나님의 실재를 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노동이 인간 존재의 근원됨을 선포해야하며, 끝임 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하며, 땀을 흘러 일하는 것을 가르쳐, 노동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한다.
II. 전 쟁
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기독교인으로서 특히 기독교적 평화를 추구하는 신앙인이라면 한 번은 반드시 던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그만큼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만큼 태고적부터 전쟁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깝게는 우리 만족도 엄청난 전쟁을 치르며 지금까지 역사를 발전시켜 오고 있다. 그만큼 전쟁은 반드시 있어서는 않되는 악의 산물이지만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는 것은 역사가 증거해 주고 있다.그러나 막상 전쟁에 대한 이론적 사상적 정립은 되어 있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일반인이 보는 전쟁에 대한 개념과 우리 기독교인들이 특히 지도자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전쟁을 보는 눈은 무언가 확실히 다른 점이 있어야 하겠다
1. 그리스도인의 전쟁에 대한 세가지 입장
(1), 행동주의(Activism) : 정부는 하나님이 세우셨다 그리스도인은 정부에 복종하여 전쟁 에 참여하여야한다 행동주의: 정부 명령에 복종하여 전쟁에 나가는 것이 항상 옳다
정부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이다=옳다 그러나 정부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명령을 내릴 때는 불복종해야 한다 다니엘, 히브리산파.
(2). 평화주의(Pacifism) : 하나님은 다른이 의 생명을 절대 빼앗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전쟁에 참여해서는 않된다
평화추구 옹호 =옳다 그러나 정당방위 살인 (출22:) 사형(창9:6) 무죄한 사람의 보호(창14:)는 성경이 지지한다
(3). 선별주의:(Selectivism) : 그리스도인은 오직 올바른 전쟁에만 참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명하신 더 큰 선을 행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옳다 정부에 복종하면서도 양심의 자유 유지하라는 주장 옳다
2. 선별주의 (정당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옳다) 그리스도인 들 대다수 찬성
평화주의자인 본 훼퍼도 히틀러는 암살되어야한다고 주장하다
선별주의 근거
(1) 성서적 근거
창14: 아브라함의 전쟁
(출22:2) "도적이 뚫고 들어옴을 보고 그를 쳐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으나" 정당 방위
여호수아 전쟁 (롬13: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 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 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2) 도덕적 근거
-악한 세상에서 악한 자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무력이 필요하다
-악에 저항하지 않는 것 자체가 악이다
(약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때론 군사행동이 선량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히틀러 같은 독재자를 전쟁에서 죽이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게 평가된다
3. 정당 전쟁의 근거들 : 비이기적 욕심, 타인을 돕기위한 의무
정당 전쟁 언제 옳다는 말인가 판단 기준은 무엇? 누가 그것을 결정하는가?
(1) 선량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전쟁은 정당하다 창14:
(2)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전쟁은 정당한 전쟁이다
(3) 정부가 수행하는 전쟁만이 정당하다
롬13:4 정부에게 칼을 주셨지 개인에게 주신 것 아니다 권력이 주어지지지 않은 개인이 다른 나라와 전쟁을 선포할 권리가 없다
(4) 정당한 방법으로 수행되는 전쟁만이 정당 전쟁이다
화학전은 비인간적이다 포로 고문 굶겨 죽이는 일. 어린이 징집도 비인간적이다
(신20:19) "너희가 어느 성읍을 오래 동안 에워싸고 쳐서 취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곳의 나무를 작벌(斫伐)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밭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토지 자원도 파괘하지 말라
4. 선별 주의의 몇가지 문제점
(1) 핵전쟁의 문제:대량 학살 무기. 전면적인 핵 사용 전쟁은 세계 회복 불가능하게 만드는가? 핵무기는 부분적으로 군사목표에만 사용되어져야 한다 핵보유가 핵 사용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불안하다.
(2) 누가 정당한 전쟁임을 판단하나? :주관적 개인적 판단은 위험하다 하나님의 계시가 주요 근거가 되어야한다 옳은 것 판단하는 책임이 주어져있다
III. 폭력과 비폭력
인간사회에서 폭력문제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인간 내부에 파괘적인 본성을 갖고 있는 탓인가 ? 아니면 환경탓인가?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고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상이나 기회는 한정 되어있기에 갈등이 있고 이갈등과 다툼이 생기고 힘의 차이에 따라 타인의 욕구나 의사를 강제로 억압하고 유린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충돌없는 환경을 만들어서 폭력을 사회에서 완전 추방하는 것이 가능한가? 폭력을 예방하고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1. 폭력의 개념규정
Newton Garver 폭력은 무력보다는 침해에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1) 개인에 드러난 폭력..강간 살인등 개인의 물리 적공격
(2) 개인의 숨겨진 폭력; 타인에게 강제로 자기원하는 것을 하도록 위협하는등 심리적공격
(3) 제도면에서 드러난 폭력; 전쟁등 제도의 물리적 공격
(4) 제도이면서 숨겨진 폭력; 노예제도등, 인간으로부터 자율성을 보이지않게 부정하는 것.
Robert 아우디. “폭력의 의미와 정당화에 대하여” 논문
“폭력은 사람이나 동물에게 하는 물리적 공격이나 심한 물리적악용이나 심함 물리적 투쟁이다 또는 사람이나 동물에게 하는 심리적악용이나 날카롭고 신란한 심리적공격이다 또는 재산이나 잠정적인 재산을 혹심하게 선동적이고 악의있게 그리고 가혹하게 파괘하거나 손해를 입히는 것이다 (고난과 상처까지도)
Sidney H00k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
“ 폭력이란 사회적 콘텍스트안에서 대강 개인이나 단체의 목적을 위한 물리적강제의 방법들을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형법적 세금징수는 폭력이 아니다)
* 폭력의 개념; (종합)
공격. 상처.
폭력이란 사람이나 소유물에 대하여하는 물리적 또는 심리적공격으로서의 상처와 직결된다
상처;- 눈에 보이는 물리적 상처; 재산등
- 심리적 상처;좌절, 슬픔을 주게하는 것.
2. 폭력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
(1) 폭력을 지지하는 입장;
George Sorel.
A.사회생활-(1)퇴폐풍의 생활:정치인, 재산소유자들 지도계급-자기평가 無, 직책이행 과정에서 타락. 개인주의적 자기만족위해 대중속이고 통제
(2)재생풍의 생활양태-위대한 목표설정, 자기를 통제, 도덕적 명령이기에 행동하는 생활양태(어떤 결과 예측보다도)
“폭력은 아픈 곳을 치료해 주는 것이다”
*정치적 스트라이크-더 가난한 계급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지도자들 손에 그들의 힘을 두어야 한다(계급투쟁이 아니다)
*프로레타리아 혁명:인권박탈과는 증오심이나 복수심없이 나타내는 단순한 전쟁의 행위와 같은 것.
명이란 모든 정치적 후견으로부터 생산자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파농(France인):폭력은 하나의 정당화시키는 힘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열등의식으로부터, 그리고 절망과 무 위상태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으로(부터)하여금 두려움이 없게 하며 자기존경을 회복케 한다. 이렇게하여 폭력 사고)은 해방과 긴밀한 관계 갖는다.
(원주민 폭력 정당화 마니교적 사고)
the settler(이주민)&the native(원주민)착취부분 돌려주어야 한다. 원료가져간 그값도 값아야 한다. 부의 재분배는 필연적인 것이다. 원만히 해결되지 아니할 때 이것을 회복하는 수단으로 폭력을 인정한다(그러나 굶주림의 십자군 조직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류를 회복시키며 어디서나 승리를 거둔다는 의미)
(2)폭력을 반대하는 입장 (비폭력)Ahimsa( 비폭력주의자, 간디, 엘룰, 귀네스 )
* 폭력은 계속 폭력을 부를 뿐이다 비폭력만이 폭력을 극복할수 있는 수단이다 아무리 좋은 목적과 동기를 가진행위라도 폭력이 수반된다면 목표자체가 훼손되고 나쁜결과를 가져온다.좋은 목적을 가진 사회운동단체가 게릴라화 되기도 한다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도한다
*모든 폭력은 정당한 가치를 갖지 못한다 그것은 비이성적인 동물적인것이고 비폭력은 이성을가진 인간이 도리이다.
폭력은 누구에게나 상처를 남길뿐이다 폭력을 진압하려면 사람의 마음속에 참된 비폭력이 있어야한다 마치 예수그리스트와 같이.
(3)폭력을 최후수단으로 인정하는 입장
Karl Bath:폭력은 한계상황(Grenzfall)에서만 적용된다(하나님은 예외를 만드시지 않는다는 것 의미) 한계상황하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자유를 거절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한계상황하에서 폭력사용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한다는 성실성의 형태이다(예-히틀러의 ‘독일의 새질서->유대인 살해’->“독일은 나님의 자리를 차지했다” 인간성 빼앗아 가는 것, 자유제한 멸절시키는 것이->독재정치의 원리자체이다. 그것은 反교회 反X인, 인간신, 거짖메시야 아래 있는 악마적 이었다. 국가사회주의는 폭군에 의해 조절되는 무정부 또는 무정부에 의해 조절되는 폭군이었다. 히틀러->불장난, 악령이 하는 악한 일-X인 신앙시험 하나님 복종의 기회였다. 히틀러와 평화나 휴전은 있을 수 없다(하나님명령) yes? or No!하나만 요구될 때 어떤 희생 무릅쓰고도 결단하도록 부름받고 있다. “사자같이 두루 다니는 악마에게 저항하라”-소명이다 악을 저항하는 수단으로서 폭력은 비록 최후적이기는 하나 정당 한 것(사용전 모든 수단을 타진해 보아야 한다) 먼저 평화, 의미있는 삶의 질서의 회복(=참위기)에 모든 시간, 힘이 쓰여져야 한다. 평화위협하는 선의적 소요자들은 단호히 저항되어야 한다(->폭력을 추상적으로 반대하는 절대평화론을 피하고 있다) 폭력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길이 막 혔을 때 최후 수단으로 사용되어져야 한다.
(4)폭력의 기독교 윤리적 이해
(1)폭력은 지지될 수 없다.
(2)폭력은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은 재고되어야 한다.
*최선을 다해 폭력예방은 필요하나 현실적으로 모든 수단이 막힐 때가 있다(막 11:15-17) JX->성전 환전상 床뒤엎으심
*방어적 폭력은 법률적으로 제거할 수가 없는 것이다.
*폭력은 본질상 수단적인 것이다(Theodore Weber), 변화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3)최후수단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유의사항) (a)폭력의 범법행위(=주어진 한계를 넘는 것)조심
(b)당장의 문제와 궁극적 문제(폭력문제->상처주는 것) 상처 덜 주도록 고려!
(c)폭력의 경향성(felocity잔인, vehemenence격력 excessiveness무절제 경향->폭력이 일단 인정 되면 이런 경향으로 흐른다 :통제할 합리성이 요구된다.
(d)이성의 필요성-폭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폐단조심“정당한 의도”고려(최후수단으로서도)
IV. 사 형 제 도
타인의 생명을 해한 범죄자는 반드시 죽어야하나 범죄자의 생명도 소중한 것이므로 보호받아야하나? 사형제도 폐지가 세계적인 추세인 가운데 우리 사회에선 아직 그 존속 여부에 대한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 등의 사형제도 찬성론자들은 최근 증가하고 있는 흉악범,가정파괴범 등 강력범죄의 예방 및 억제에 사형제도가 크게 기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생명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형은 흉악범을 비롯한 모든 범죄인에 대해 범행 억지력을 갖는다는 것이다.이들은 또 생명권이라고 해서 무한정 보호될 수는 없으며 다른 사람의 생명 등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는 생명을 빼앗는 형벌도 필요악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절대적 존엄은 인정하지만 우리 국민의 법감정과 국가의 형사정책상 질서유지,공공복리 등을 고려해 볼 때 사형제도의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입장도 많다. 특히 가정파괴사범 등 흉악범죄자에 대해서는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게 일반 국민들의 법감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형제도를 사형시켜라”는 반대입장의 경우,사형제도의 범죄예방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국제사면위원회는 작년 4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범죄예방과 응보라는 이유로 세계 80여개국에서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형제도를 폐지한 뒤 범죄율이 낮아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캐나다는 사형제도 폐지 이후 살인사건 발생률이 떨어졌지만 미국의 경우 사형집행건수가 늘어나는데도 살인사건 발생률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사면위는 사형제도 대신 범죄자들이 잘못을 고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교육시키는 “개선과 교정”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며 이를 권고하고 있다. 사형폐지론자들은 또 사형은 법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제도적․사법적 살인이며 생명권에 대한 본질적인 침해에 해당돼 “법률로서도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한 헌법규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양심에 반하지만 법규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사형을 선고해야 하거나 집행해야 하는 사람들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과 오판에 의해 사형이 집행된 경우 되돌릴 수 없다는 점도 사형폐지론의 중요한 근거다.
이들은 흉악범죄의 경우 사형제도 대신 종신형을 새로 도입하거나 현재 15년(가중처벌시 25년)인 유기징역형의 상한선을 올리는 등의 방법으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1,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견해
*사회정의를 구현하기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생명을 해한자는 그생명이 죽음을 당함으로 응당한 댓가를 받아야한다 이런조치가 없다면 사회정의는 실현될수 없다 정의를 만족시키는 다른 대용물이 없다(칸트)
* 사형제도는 흉악한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사형제도가 있음으로 흉악한 범죄의 확산을 예방 할수 있는 것이다(미국에서 1970년대 사형폐지로 살인증가 실예가 있다)
*소수의 살인범죄자를 처벌함으로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게된다 개선의 여지가 없는 흉악범을 사회에 다시 내보낼때 재범할 가능성은 항상 있게된다 사회의 안전과 질서유지를 위해서 테러범같은 흉악범을 사형에 처하는것은 마땅한 일이다 (한국에서도 1960년이래 사형이 헌법정신에 합당하다는것이 대법원에서 판결되었다,1984. 1월에 갤럽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77%가 사형제도를 찬성하였다)
2.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견해
* 생명은 소중하고 신성한 것이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의 생명도 소중하다. 그러므로 보호받아야한다 사형제도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감소시킨다
*흉악범죄자의 범죄는 대개 정신이상이나 사회의 구조적부패와 범죄자의 가정의 문제에서 연유된것이 대부분이다 사형제도가 있다고해서 이런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사형당한자의 가족,친지들에게는 슬픔과 고통, 복수심등이 남게 되어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사형제도가 흉악범죄를 예방하는데 결정적인효과가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엠네스티)
* 테러리스트나 폭력집단의 맹목적 충성자는 사형당하는 것을 하나의 순교로 생각하여 영웅심을 조장할 뿐이다
*사형을 언도하는 재판에 오류가 있을수 있다 재판은 인간이 하는것인데 인가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오류가 있을수 있다 잘못된 사형집행은 정의의 구현이아니라 무고한 사람의 인권과 생명을 앗아가는 인권유린이다 사형이 집행되면 누명을 벗을 기회도 상실된다
*재판의 궁극목적은 범죄자를 처벌하는것이 아니라 그 범죄자를 개조시키고 바른 인간이 되게하는데 있다 사형당해 죽으면 개선될 기회도 상실된다
** 범죄자를 죽임으로 사회범죄를 예방하는것이 옳으냐, 범죄자를 교화시키고 개선시키는것이 옳으냐하는 논쟁은 수천년 법조계에서 논의되어온 것이다
결론 : “1” “2” 모두 이론상 장단점이 있다 쉽게무엇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수 없다. 사회나 그시대 국민의 법감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역사적으로 알수 있다 기독교 성경에는 고의적살인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한다고 교훈한다 (두 사람이상의 증인과 정당한 재판과정을 거쳐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고귀한 존재로 귀한 생명을 살해한자는 생명으로만 속죄할수 있기때문이다 이 사형제도는 사회윤리에 관한 것이며 개인의 용서,사활의 행위와는 별개의 문제이다-원수를 사랑하는 것 등.)
4. 사형에 대한 성경적 고찰
(1) 사형에 대한 세가지 견해.
1). 사형 부활론:(reconstructionism); 모든 무거운 죄에 대해 사형을 집행해야한다(구약)
2). 사형금지론 (rehabilitaionism); 어떤 범죄라도 사형을 집행해서는 않된다
3). 응징론(retributionism);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만 사형을 집행한다
5. 응 징 론 : 일부 무거운 죄에 대해서만 응징한다
(1). 사형의 목적이 우선 처벌에 목적이 있고 교정에 있지 않다
범죄자는 병자가 아니라 죄인일 뿐이다 합리적인 존재임으로 처벌을 받아야한다
(창9:5-6)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 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롬13:4 요19:11 눅23:2 군거
(1). 사형의 성서적 근거
1) 사형의 필요성은 인간 본서에 내재되어 있다
인간은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됨. 창1:27 지상에서 하나님을 대표한다 인간살해=하나님 주권을 부정하는 것. 하나님이 사형 요구 =창9:6 가인
2) 가인은 살인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고 사형을 예상했다
(창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3) 하나님은 인간 정부에 사형시킬수 있는 권력을 부여하였다
창4:14 친척들만 살인자에게 복수가능함. 하나님은 인간 정부를 마들도록하여 사형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시다
4) 사형은 모세 율법 속에 통합되었다
모세 율법은 다른 민족에는 해당않되는 것 많다
과거 사형 법 모세 율법에서 통합시켰다 제도화하지는 않았다
5) 사형은 신약에서 재인정 받았다 롬13L4 요19:11 행25:11
(2). 응징론에 대한 평가(부정적인 비판)
1) 살인은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처벌이다 <--> 무죄한 자가 살이된 것은 더 잔인함
2) 사형이 불공정하게 적용된다 <--> 구렇다고 모든 중죄자 불처벌은 곤란하다 한사람 의학적 치료 정당하게 못받았다고 해서 모든 의학치료 중단 폐기는 잘못된 것이다
3) 사형은 범죄를 억제하지 못한다 <--> (신17:13) "그리하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천자(擅恣)히 행치 아니하리라"
사형이 신속하게 집행되지 않기에 그 두려움 감소되는 수도 있다 사형은 무서운 죄를 반복적으로 범죄를 지연시키거나 방지하는데 어느정도 효과가 있음은 분명하다
4) 사형은 최소한 현재에 있어서만큼은 성서적이지 않다 <-->가벼운 죄 에는 사형 불가 분명. 그러나 무거운 사형에 해당하는 죄는 울법 이전에도 이후에도 집행되고 있다
5) 범죄자는 교정되어야하지 처벌되어서는 아니된다 <--> 범죄자는 병자가 아니다. 이 주장은 반 인간적 환상주의적 인도주의이다
6) 어떤 살인자는 이성적으로 책임질 수 없다 백치 어린이등 해당
7) 사형은 용서의 개념과 배치된다 죄인이 용서를 받는 것이지 아픈 사람이 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다 진정 회개한 자는 보상이 이루어진자는 특별 경우에 용서를 받는다 그러나 그 용서는 무거운 죄에 대한 무거운 형벌이라는 구조를 전제로 한다
8) 사형은 정신 이상자를 무시한다.,<-->물론 도덕적으로 책임질수 없는자에 대해서는 예외이다 그러나 정신 이상은 종종 격렬한 분노의 표현애 불과한 경우가 많다
(3). 응징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1) 사형은 인간을 존중하는 견해에 기초하고 있다 살인자는 당연히 처벌받아도 당연하다는 이성적 , 도덕적 존재임을 증거한다
2) 사형은 범죄자를 존중해준다 강제 교정은 범죄자를 애완동물 백치로 취급하는 거이다
3) 사형은 형벌에 대한 정확한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성서의 견해는 처벌 우선적이지 교정 우선적이지 않다.
4) 사형은 범죄를 억제시킨다 신17:13 죽은 범죄자는 범죄를 반복하지 못한다
사형 처별 중죄에 대해 처벌이 시행되면 사람들은 다시 한번 죄를 생각케 된다
() 사형은 무죄한 생명을 보호한다
생명 존중 사상을 고취한다 잠재적 살인자에대해 하나님에 대한 공포심을 준다 다른 범죄가 반복되더라도 사형 받을 만한 무거운 죄가 되지 않게 한다
6. 요약 결론:
기독교인들은 사형에 대햐 세가지 견해를 갖고 있다 즉 사형 금지론 , 사형부활론, 응징론이다 사형 금지론=어떤 범죄에도 사형에 처하는 것을 반대함 사형부할론은=모든 중죄에 대해 사형을 내려야한다고 주장함. 응징론은 사형은 몇가지 죄 즉 사형에 해당하는 죄에 대해서는 적저란 조치라는 것이다 사형 금지론은 재판이 교정 치료하는 행위라는 견해에 토대를 두고 있다 여기서 죄인은 아픈 환자로 간주된다 다른 두 견해는 재판은 응징에 목적이 있다고 여기고 있다
즉 죄인은 처벌받아 마땅한 도덕적으로 책임질 수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형 부활론은 모세 율법에 따르면 사형에 처해 마땅한 죄는 현재에도 그러하다고 주장한다 응징론은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수 있는 “생명은 생명으로 ”라는 성서적 원리에 토대를 두고 있다
V. 결 혼 과 이 혼
많은 여성해방론자들은 오늘날과 같은 현실에서는 결혼이 필요없다고 서슴없이 말한다.하지만 결혼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하나 시원하게 답하는 이가 없다.왜냐하면 인류역사를 통해 볼때에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에게 참다운 결혼관과 가정에 대한 모범을 보여준 예가 없었기 때문이다.
참다운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 결혼이라는 제도와 이의 올바른 방향,즉 가정이상을 완성함으로써 우리는 완전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결혼이 지금까지 하나의 수단이 되어 버렸고,많은 경우 비극적 결론을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마음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것같이 우리 인간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나이가 차면,상대를 그리워하면서 이를 찾게 되어 있으며 또한 상대를 만나 온전히 마음과 몸을 주고 받으면서 사랑을 이루도록 되어 있다.다른 복잡한 내용은 다 차치하고라도 이러한 우리의 마음이 결혼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기에 결혼 그 자체는 반드시 필요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이 땅에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시고 바랬던 소원 즉,사랑을 완성하여 행복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도 남녀간의 결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가정은 자녀들의 생리적인 욕구를 원만하게 충족시켜 건강을 지켜주고 성장을 도와주는 것 외에 애정이 깃든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어 청소년의 정서 안정과 발달 및 성숙한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어 건설적으로 공동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가치와 규범의 내재화를 촉진시키는 기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가정은 그러지 못하다.점점 기본적 내용을 상실해 가면서 오히려 가정 자체를 부정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
이 땅에는 무수한 철학과 종교가 있지만 이러한 가정 붕괴 현상에 대해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행복을 찾아가는 우리들 인생길에 있어 이보다도 더한 절망은 없다.
A. 성서의 결혼관
(1). 결혼의 본질
1) 결혼은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로 성적인 상호권리를 가진 남성과여성 사이의 일생에걸친 약속이다
(창2:22-24)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 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 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1:27-28) "" -남성 여성--생물학적 의미.
(마19: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 드시고" (마19:5)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결혼의 일차적 특징=한 남성 한 여성의 결합이다
2) 결혼은 성적인 결합과 연관이 있다
(고전6:16)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 가 된다 하셨나니" (고전7:2-4)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3)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4)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 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혼전성교는 간음으로 취급된다 출20:14 마19:9
결혼 통한 성관계난 하나님은 인정한다 고전7:2
결혼은 성적 관계만 구한되지 않고 하나의 맹약이다 성적외 사회적 정신적 결합이다 (말2:14)
결혼의 성관계의 삼중적 의미: 임신(창1:28) 하나됨(창2:24) 즐거움(잠5:18-19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19)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 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戀慕)하라"
3) 결혼은 하나님 앞에서 언약이다
(말2: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찌기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 (잠2:17) "그는 소시(少時)의 짝을 버리며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결혼은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이다 귀히 여겨야한다 (히13:4)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2). 결혼의 존속기간
영원히 지속되지는 아니하나 일생동안 지속되어야한다 (<--> 몰몬경은 천국에서도 지속된다고함)
어느 한 쪽이 죽을 때가지만 지속된다 (롬7: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마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고전7:8-9)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 으니라"
(3), 결혼에서의 배우자 숫자
일부일처제 (고전7:2)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딤전3:2) "그러므로 감독(監督)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신17:17)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왕상11:4)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
아담에게 이브 한 여인만 허락하시다 구약에는 여러 아내 거느리다. 그러나 하나님이 용인하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구약 모두 일부다체를 반대한다 (마19:8)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頑惡)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B. 기독교의 몇가지 이혼관
1. 이혼에 대한 기독교의 합의
(1) 이혼은 하나님이 정하신 이상형이 아니다
(말2: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離婚)하는 것과 학대(虐待)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마19: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 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이혼은 하나님이 정하신 규범이나 이상이 아니다
(2) 이혼은 어떤 이유에서도 허용될 수 없다
(마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3) 이혼은 여러 문제를 야기시킨다 배우자나 자녀에게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이혼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2. 이혼에 대한 기독교인의 이견
기독교인의 세가지 견해:
(1) 이혼을 정당화하는 근거는 어디도 없다
가. 이혼은 하나님이 설정한 이상작인 결혼에 어긋난다 (마19:6, 롬9:2)
나. 이혼은 하나님 앞에서 한 맹세의 전면적인 위반이다 잠2:17 말2:14 전5:5
다 예수는 모든 이혼을 비난했다 마19:9 예외 규정 음행은=결혼 전, 혼전 성교를뜻한다 것이다 (눅16:18) 신22:13-19 마1:18-25
라. 사도 바울은 이혼을 비난했다 고전7:10-13
마. 이혼하면 장로 자격을 박탈당한다 딤전 3:2
바. 첫 번 배우자가 진정 배우자이다 요4:17-18 사마리아 여인 지금남편도 내 남편아니다
사. 이혼은 신성한 예표를 모독하는 행위이다 남편 아내는 그리스도와 교회 관계이다
(엡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민20:9-12
_ 이혼은 어느 경우도 죄악이다
평가: -결혼을 취소해서는 않된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이것은 재혼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혼은 죄이지만 반드시 재혼을 허락해서는 않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혼은 영속성을 갖는다는 것을 강조한 것은 옳다 하나님은 이혼을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이혼을 허락했지 명령한 것이 아니다 간음은 이혼을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이는 이혼을 위해서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이것은 재혼을 허락해야 하는가하는 문제와 논리적으로 구분할필요가 있다
-재혼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혼이 항상 잘못된 것이므로 재혼도 잘못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일생에 걸친 결혼은 하나님의 이상이다 그러나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이 이상이 실현되지 않는 수가 많다 그럴 경우에는 차선책을 찾아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재혼은 하나님이 정하신 이상에 맞지않으나 필요하다면 재혼 할수도 있다 마19:8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의 처지를 변화시킬수가 있다 이혼이 용서 받지 못할 죄는 아니다 (마5:32 마12:32 요일1:9) 이혼에 관한 율법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그 반대는 아니다 이혼에 관한 율법보다 더 높은 차원의 율법은 사랑의 법이다 더 높은 차원의 도덕 법칙이다 (요15:13 고전13:13) 여러 도덕법칙이 상충될 때는 더 낮은 차원의 율법 준숩다 더 높은 차원의 법을 따라야한다 생명 보호 위해 거짓말을 할 수가 있다 완고한 율법주의는 인간 생활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수 있다
(2) 이혼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는 오직 하나뿐이다
(가). 예수는 간통을 분명 이혼의 정당한 근거라고 말씀하시다
(마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음행‘ 미혼자 기혼자 모두 해당 사용 단어
(나). 예수는 다른 구절에서도 이런 예외를 거듭 인정하시다 (마5: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다),바울은 예수의 이혼관계에 동의했다 (고전7: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평가: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마5:32) "(마19:8)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頑惡)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음행은 마태는 혼전 성교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신22:13-21 의 유대인 관습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간음이란 신약의 말은 “모이케이아‘란 말을 사용한다
이혼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나 r나음으로 인한 이혼만 허용을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 이혼한 사람들과 간음으로 이혼 당한 사람들 모두가 재혼할수 없다( 막10:11 눅16:18 마19:8) 이것은 하나님의 이상적 명령이다 그리고 이것이 재혼의 가능성까지 없애버린다고 생각할수 없다 배우자의 사망은 이혼을 정당화한다 배우자의 도주는 사실상 사망과 동일하다 회개하고 죄 용서받은 이혼자는 죄인으로서 이혼자의 위치를 철회한다 (렘3:1, 14)
(3) 이혼을 정당화 시키는 근거는 많다 둘이상이다
간음, 비신자, 학대 전염병, 무지등
(가).바울은 비신자의 도주로인한 이혼을 인정한다 고전7:15 웨스트 민스트 신앙고백 제24장.
(나). 성서는 인간의 허약성을 인정한다
(신24:1)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羞恥)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 이요" (신24:2-4) "-하나님은 죄 많은 타락한 이 세상에서 이상이 실현될 수 없음을 아시고 (예측하시고) 차선책을 마련하셨다 유월절 준수가 불가능하면 두 번째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시다 (민9:10-11)다 하나님조차도 신앙심이 돈독하지 못한 자기 백성과 이혼했다 (렘3: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 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사50:1) 고전7:15
(다). 결혼은 상호간의 서약이다
조건부이다 한쪽이 위반하면 지키기가 어렵다 고전7:15
마. 이혼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더 율법적이다
(막2: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 이 아니니" 인간이 결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라). 회개는 상항을 변화시킨다
이스라엘은 이혼 선고를 받았으나 (렘3:1) 돌아올는 말을 들었다(렘3;11, 14. 22)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신다 이혼도 용서 받을수 있다
(마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 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평가;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새로운 결혼을 실현시키는데 근거가 된다
-결혼은 부부 상호간의 서약인데 한 쪽이 서약을 돌이킬수 없을 정도로 파괘하면 다른 한쪽이 계속 서약을 지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부한조이 재혼 했다면 계속 화해를 도모할 수가 없다 결혼 서약을 지킬수가 없다
-인간의 약점을 인정하고 용서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준으로 계율을 낮추시지는 아니하나 우리를 용서하신다 계율로 인해 우리 죄를 깨닫게하신다
이혼을 정당화하는 사례들은 영원한 결혼이라는 하나님 이상을 확산시키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다 . 이혼을 지지하는 이유들이 많으나 그중 올바른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요약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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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결혼이 한 남성과 한 여성사이의 일생에 걸친 약속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결혼을 통해 이루어진 관계는 영원토록 지속될수 없지만 우리가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지속되어야한다 이혼은 설령 간음으로 인한 이혼이라 하더라도 결코 정당화 될수 없다 간통은 죄악임으로 하나님은 죄악을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결혼의 해체도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기가 직접 결합시킨 부부관계를 인간이 멋대로 파고시키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마19: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그런데 이혼은 결코 정당화 될수 없지만 때에 따라서는 용인될수 있고 용서 받을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혼이 죄악임을 인정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사람들은 재혼을 허락 받아야한다 하지만 그들의 재혼은 남은 일생동안 지속되어야한다 재혼해서 실패해서 다시 이혼하는 것을 내바려둔다면 큰 잘못이다 일생에 걸쳐 약속을 지킬수 있는 사람들만이 결혼을 해야한다 재혼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결혼은 신성한 제도임으로 이혼 . 특히 거듭되는 이혼에 의해 상처를 입어서는 않된다
우리 사회에서 전염병같이 번지는 이혼 풍조는 결혼의 신성함이 얼마나 훼손되고 있나를 보여주는 준엄한 경고이다 기독교인은 일생에 걸친 일부일처제에 입각한 결혼이라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기준이 널리 인정 받을수 있도록 힘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VI. 성, 성 문란
1. 기독교윤리에 있어서 성의 문제
인간 사회의 생성이래 숱한 성 관계들이 존재하여 왔지만 성이 하나의 문제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또 그에 걸맞은 하나의 사고의 대상으로 일반화되며 나아가 그것에 적합한 인식방법들이 고안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자본주의부터이다. 이러한 성은 여러 가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성에 대한 자리 매김을 위한 여러 노력들은 성의 해방에서부터 이성애뿐만이 아니라 동성애의 정당함을 주장하고 이러한 관심에 편승한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소비자의 욕구를 부추기고 있다.서울대생의 성 의식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혼전 성 관계의 무방함을 주장하는 것은 79.7%나 되었다. 또한 대학생 4명중 1명은 성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설문조사의 결과도 있다. 또한 혼외 성관계도 63.6%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러한 성 관계에 대한 의식의 변화는 우리가 접하는 문화와 무관하다 할 수 없다. 음란 비디오, 포르노그래피는 적나라한 불륜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여기에 사랑과 낭만적인 것으로 덧칠하여 왜곡된 성 관계의 아름다움을 조장하고 있다. 또한 대중음악, 문학과 같은 예술의 분야에서도 성해방을 외치며 부부관계의 불화를 가정의 성 관계의 갈등을 사회적으로 승화한 것이 외도라는 식의 면죄부를 남발하고 있다. 컴퓨터 통신의 발전은 익명성의 보장으로 인하여 서스름없는 음란과 퇴폐를 조장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이성애적인 성관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동성애자들도 자기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성애가 단순한 생리적 결합이상으로 그 안에 사랑과 나이와 문화적 경제적 제도를 포함하고 있듯이 동성애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기독교는 어떠한 대답을 주어야 하는가를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 성정체성 위기에 대한 성경적 대안
우리 사회는 90년대 이후 성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경제성장과 함께 향락산업이 독버섯처럼 성장하였으며, 러브호텔과 원조교제가 유행하고 혼전성관계나 혼외정사가 확산되고 있다. 이혼율이 70년의 4퍼센트에서 30퍼센트로 증가하면서 가정은 파괴되고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있다. 더욱이, 동성애가 대학을 중심으로 갑자기 확산되면서 이미 70만명에 달하고, 그중 40만명이 커밍아웃한 상태라고 한다. 또한, 최근에는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수술을 받은 사람이 화장품광고와 영화에 출현하여 성정체성의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이미 국내에 성전환수술을 받은 사람이 3백명에 이르고 있으며, 의학의 발달과 함께 증가할 전망이다. 이러한 성정체성의 위기는 동성애자나 성전환자에 대한 사회적 동정론이 확산되면서 심각한 현실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사이버스페이스에서도 상당한 성정체성의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본인은 이런 위기상황을 중시하고, 먼저 그 원인인 성혁명과 성정치학을 중심으로 그 실체를 규명하고, 신학적인 성과 성정체성 이해를 제시한 후, 동성애와 성전환에 대한 분석과 성경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3. 성전환의 문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 중에는 남자같은 여자, 여자같은 남자가 있어 왔으나, 타고난 성대로 살면서 결혼생활을 하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20세기의 성형의학 발전이 성전환수술을 통하여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바꾸는 육체적 성전환의 가능성을 열어줌으로서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전체의 0.01퍼센트 이하의 극소수만이 성전환수술을 받았으나 사회적인 관용과 성형외과의 적극적인 광고가 있을 경우 확산될 수도 있다. 생득적인 성을 바꿀 수 있다는 성전환론(transsexualism)은 정신적 성과 육체적 성의 불일치를 의학적 방법으로 일치시킴으로서 통일된 성정체성을 실현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정당화는 실제와 너무 다르다. 사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기 성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타성과 유사한 모습이나 기호를 가지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며, 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면서까지 자기 성보다 타성의 의상을 입고 행동하는 것이 더 편하다면 얼마나 마음의 갈등이 심하겠는가. 이러한 성정체성 장애는 치료를 필요로 하며, 의학적인 도움으로 해결된다면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성전환수술은 그것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본인과 주위에 더 큰 고통과 갈등을 야기한다. 성전환수술의 과정을 보면 그러한 문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남성성을 지워내는 항남성호르몬과 함께 여성화를 추진하기 위하여 대량의 여성호르몬을 1-2년동안 계속 투입하는 준비과정을 거치게 된다. 즉, 강제로 남성성을 여성성으로 바꾸는 작업은 정신과 육체에 상당한 여성화를 촉진하는데, 그후에 물리적인 대형수술을 하게 된다. 남성의 성기를 제거하고 여성의 성기를 만드는 작업, 남성의 근육을 제거하고 유방이나 둔부를 만드는 작업, 그리고 특히 얼굴을 여자와 같이 보이기 위해 광대뼈나 턱뼈를 깍아내고 눈과 코와 입을 비롯하여 안면을 바꾸는 작업 등, 그야말로 모든 것을 바꾸게 된다. 성형의학이 발달하여 시술되는 것이지만, 할 것과 안할 것을 구별하는 의료윤리가 절실히 요청된다. 사실상, 성전환수술이란 본질적 성을 전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의 성형수술일 뿐이다. 새로운 성의 생식기능을 갖는 것도 아니며 염색체상으로도 본래의 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성이란 단지 물리적인 수술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모든 성적 부위들을 상실한다 할지라도 성은 유지되는 것이다. 따라서, 법적으로도 성전환수술에 의해 성을 바꿀 수 없다. 법원은 수술을 받은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신청을 기각하면서, '사람의 성별이 수정시 염색체에 의해 결정되면 그후 변경될 수 없다는 사실이 생물학적으로 명백하다'고 판시하였다. 하나님이 출생할 때 부여하는 성은 본질적인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며 일부 혼돈이 있다 할지라도 자아는 그 성적 정체성을 죽을 때까지 유지한다. 성전환수술을 통해 신체를 고친다 할지라도 그의 자아는 본래적 성을 벗어버릴 수 없다. 비록 쉽지 않다 할지라도 정신적 치유나 행동양식의 변화를 통해 교정하면 정상적이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데,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행동양식이나 심리구조를 고치기보다 신체의 모양을 고침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오히려 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며, 정신적으로 심각한 자기분열과 성적 갈등을 겪고 사회적으로도 불신과 소외를 당하게 된다. 물론 신체의 질병이나 장애 혹은 기형은 의학 혹은 기타 치료를 통하여 회복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만, 성이란 본질로서 전인적이어서 물리적 변형으로 변화될 수 없는 것이다.
4. 성 정체성 위기에서 교회의 역할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모든 절대적 규범이 무너져 내리는 포스트모던 시대에도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절대적 윤리를 외쳐야 할 선지자적 사명이 있다. 페미니즘과 동성애운동으로 대표되는 성혁명과 성정치학은 하나님이 창조한 성의 존재를 부정하며 정치적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교회는 본성에 근거한 절대적 성윤리를 지키는 보루가 되어야 하며, 정치적 이득을 위해 하나 하나 양보해 나가는 정부나 시청률이나 구독률의 종이 되어 불륜과 부도덕도 아랑곳하지 않는 매스컴의 상업주의적 대중문화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성윤리의 몰락과 성정체성의 혼란은 가정을 파괴하며 나아가 사회와 국가의 불안과 몰락을 가져오기 때문에, 교회가 연합하고 건전한 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남성과 여성의 절대성을 지켜야한다. 일부 교회는 동성애나 성전환을 인정하고 더 이상 죄로 보지 않으며, 심지어 동성애자를 목사 안수하기도 하지만, 교회가 성경의 윤리적 기준을 상실해서는 안된다.
한편, 교회는 세상을 사랑으로 치유하며 구원하는 공동체이다. 성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가정에 있음을 인식하고 어느 시대보다 가정사역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모든 죄인과 병자를 사랑한 예수님을 본받아 동성애자나 성전환자도 사랑해야 한다. 그들을 정죄만 하면서 기피하고 소외시키기 보다 그들이 성성의 형성과정에서 발생한 성정체성의 혼란을 동정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물론 성적 지향성과 성적 범죄행위는 구별되어야 한다. 잘못된 끌림 자체는 동정하지만, 그것을 절제하지 못하고 범죄한 것은 책망되어야 한다. 인간의 타락은 질병과 죄성을 결과하였다. 기형아와 같이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을 교회는 돌보고 사랑해야 한다. 비록 성적인 장애가 성적인 죄악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성적인 장애자는 선천적이든지 후천적이든지 교회가 그 실체를 인정하고 그들에 대한 사역을 개발해야 한다. 이미 서구에는 동성애자나 성전환자에 대한 사역을 개설한 교회들이 있으며, 탈동성애운동(ex-gay movement)도 전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남성과 여성의 공동체이다. 비록 교회가 영적 교제를 나누지만, 남성과 여성이 조화를 이루며 가정과 같이 풍요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모델공동체에서 교회교육을 통하여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성정체성을 확립해 주는 일이 중요하다.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이란 이상적인 남성 혹은 이상적인 여성을 의미한다. 교회는 남녀차별을 철폐하는 종말론적 공동체를 실현하면서도 남성과 여성의 성정체성을 확고히 구별하고 풍요하게 개발하며, 무엇보다도 성정체성 확립이 조기교육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서, 성윤리와 성정체성의 위기를 맞은 이 시대에 교회가 이 세계를 죄악에서 구원하는 구속사적 사명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VII. 동 성 애
1970년대를 전후하여 서구 교회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목회적 관심이 하나의 커다란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전통적인 성윤리와는 매우 다른 새로운 형태의 삶의 방식으로서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인 평가는 여러가지 복잡하고 구체적인 정황들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배타적이며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고 동성애를 죄악이라고 규정하였던 전통적인 견해만을 가지고서는 교회안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적절한 답변을 할 수 없다는 점이 하나의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동성애주의자들이 교회밖에 있었을 때에는 그들을 향하여 정죄하고 회개를 요청하는 것으로 기독교적 태도를 매듭지을 수 있었지만, 교회 안에 동성애주의자들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또한 그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기를 원하였을 때, 교회는 이들을 저주하거나 내어쫓는 일로 그 역할을 다 한다고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황이 벌어지자 동성애에 관한 다각적인 연구들이 진착되었고, 그러한 연구들은 결과적으로 심리분석적인, 생물학적인, 나아가 신학적인 논의를 불러왔다.
1. 정의(定義) : 동성애(Homosexuality)란 동성간의 성적 행위(sexual behavior)를 말한다.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의 무죄성을 주장하며 이성애의 편견이라고 비판하지만, 이성애라고 모두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진정한 사랑을 증거하는 절대적 헌신과 정절이 있는 부부간의 이성애만이 정당화된다. 그러나 동성애는 끝없이 성적 상대를 바꾸면서 음란한 성행위를 일삼는 난잡한 성생활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그 죄악성을 드러낸다. 킨제이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동성애자들이 일생동안 바꾸는 상대자가 평균 550명이며, 에이즈환자의 경우는 1100명이라고 한다. 그 열매로 나무를 알 수 있다는 말씀은 동성애에 적용시킬 수 있다. 인간이 본성과 계명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범하지 않을 때 성의 행복과 자유가 보장된다. 신의 성적 창조질서는 순결과 정조를 지키는 부부관계에서만 행복한 성이 보장되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이 파트너를 끝없이 바꾸는 이유는 거기에 만족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역사상 최악의 성범죄로 출현한 현대의 동성애운동이 에이즈(AIDS)의 발생과 비참한 종말로 인해 한동안 억제되는 듯 하였으나, 그 세력은 약화되지 않고 계속 확산되고 있다. 물론 동성애자의 피를 수혈받은 사람이나 그의 아내 혹은 자녀와 같이 무죄한 사람들도 에이즈에 감염되어 죽어가고 있으나, 에이즈는 주로 동성애자에게 전염되며 동성애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미 에이즈로 2180만명이 죽었으며 지금 감염된 자가 3610만명이고 올해만 300만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은 책임을 회피하면서 죄악과 사망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동성애는 1960년대의 반사회적인 성혁명 이후 갑자기 발생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에서 동성애를 배운 한국인들이 90년대에 귀국하면서 발생하였다. 물론 고대에도 간혹 존재하였다고 하지만 모두 이성결혼을 하며 살아왔으나, 갑자기 많은 수가 나타나고 급격히 확산된 것은 시대풍조와 무관하지 않다. 이성애를 할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운동에 휩쓸려 이를 배우게 된 것이다. 따라서, 언젠가 이러한 풍조가 급격히 사라질 수도 있다. 교회와 국가는 이와 같은 반륜적 운동에 동정하거나 동조할 것이 아니라 하루 속히 이런 풍조가 약화되고 사라질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2. 동성애에 대한 개념적 이해
동성애란 일반적으로 同性에 대하여 지배적이며 항구적으로 심리-성적인 매력을 가지는 것을 뜻한다. 동성애라는 의미를 지닌 영어단어 즉, Homose-xuality는 희랍어에서 “같다”는 의미를 지닌 ho-mos에 어원을 가진다. 따라서 라틴어에서 인간을 뜻하는 homo는 동성애와 어원적으로 사실상 관련이 없다. 넓은 의미에서 동성애가 뜻하는 바는 異性간의 성적인 관계를 뜻하는 heterosexuality의 反意語를 뜻한다. 동성애를 논의할 때에 사람들은 흔히 동성애적 성향(homosexual orientation)과 동성간의 성적행위(same-gender sexual acts)는 구별되어 논의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관점을 사용하는 이들은 동성애적 성향이란 ‘자연적 성향’이라고 간주함으로써 행위자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적 성향에 따른 경향이기 때문에 행위자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동성간의 성적 행위는 동성애적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동성간에 적극적인 성적행위를 가지는 경우를 뜻하는 것으로서 동성애적 행위에 대한 윤리적 비판과 평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흔히 동성애라는 개념이 행위자의 性的 관계만을 의미하는 뉘앙스가 강하기 때문에 동성애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로서 이성간의 사랑에 대한 반대개념인 ‘동성애’ 라는 말보다 남성간의 동성애주의자를 지칭하는 ‘게이’(Gay)와 여성간의 동성애주의자를 뜻하는 ‘레스비언’(Lesbian)을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3. 동성애에 대한 분석적 이해
오랫동안 교회는 동성애에 대하여 적극적인 이해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기독교 세계에서 동성애자들은 차별을 받아왔으며, 교회에 의하여 잘못된 인간, 혹은 부끄러운 죄인으로 간주되어 왔다.
아직까지 동성간의 혹은 이성간의 사랑에 대한 명확한 과학적 해명은 없다. 동성애는 전통적으로 정상적인 性적인 발달이나 지향성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주조를 이루어왔으며,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주로 생물학적, 심리분석적, 그리고 사회학습론적인 분석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동성애 성향에 대한 윤리적 분석 및 이해에 있어서 두드러지는 견해들은 대략 세 가지 이론으로 축약된다. 환경이론, 유전이론, 그리고 학습이론이 바로 그것들이다. 환경이론이 후천적인 성향고착을 뒷받침하는 이론이라면, 유전적 요인은 동성애적 성향은 유전적으로 타고 난다는 견해를 지시하고, 학습이론은 유전이론을 반박하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동성애에 대한 이해는 주로 환경이론적인 관점이 주조를 이루어 오고 있었으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동성애적 성향을 재조정할 수 있는 가능성에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으로 성적 성향이 고착된다고 믿는 일련의 사회심리학적 및 의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동성애적 성향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형성되는 것이므로, 성향자체를 죄악시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도덕적 책임이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에 한하여 지워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향자체는 ‘자연적 성향’(oriented naturally)으로서 죄로 규정할 수 있는 판단 밖에 있는 문제라고 보여진다. 뿐만 아니라 동성애의 성향이 있는 사람이 동성과의 성적 관계를 가지는 것은 마치 이성연애의 성향이 있는 사람이 이성을 만나 성적 관계를 갖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급진적 견해도 나오고 있다. 이런 까닭에 동성애를 정신적 질환으로 간주하고 치료의 대상으로 여겨오던 미국 정신과 의사 협회(American Psychaistric Association)는 1973년 동성애를 정신질병의 범주에서 제외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왜냐하면 동성애주의자들간에는 정신질환의 대표적인 요소로서 정서적 긴장, 사회적 기능 손상이 없다고 결론을 지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미국 심리학 협회도 1975년 동성애주의자들을 심리학적으로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여기던 견해를 수정하여 심리치료의 대상 목록에서 동성애를 제외시켰다.
4. 동성애에 대한 교회들의 입장
교회사적으로 볼 때에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태도는 성서적 근거를 둔 부정적 이해가 주조를 이루어 왔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동성애적 성향과 행위에 대한 개신교회의 입장은 대략 네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우선 가장 두드러진 입장으로 징벌적 거절(rejecting-punitive position)의 태도가 있는 데, 이러한 태도는 대체로 성서의 구절들을 사회문화적 맥락을 따라 읽지 않고 문자적으로만 읽는 신학적 입장에 근거한 것이다. 개신교내 동성애에 대한 두번째 입장으로 우리는 비징벌적 거절의 태도를 들 수 있다. 이 입장에서는 동성애가 비자연적이며, 우상숭배적이고, 또한 하나님의 창조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평가되지만 동성애적 성향과 행위를 구별하고, 또한 동성애적 행위와 인격을 구별함으로 동성애주의자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확보하는 입장이다. 즉 행위에 대하여서는 죄로 규정하지만 인격으로서의 동성애주의자들은 목회적 관점에서 영적인 배려와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개신교내 세번째 입장은 적절한 수용(qualified acceptance)의 태도로서 동성애의 성향에 대한 문화비판적 수용 가능성을 전제한 입장이다. 즉 어린 유년기에 자리잡은 동성애적 성향을 교정하기 어렵다는 사회과학적 연구결과를 받아들이므로, 동성애적 성향과 행위를 이성연애적 문화적 가치에 의해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마지막 입장은 이성연애적 성향과 행위가 합법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인식과 동일하게 동성애적 성향과 행위를 합법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이성연애적 성향과 행위가 인간의 성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문화비판적 전제가 내재되어 있다.
비록 性에 대한 신학적 견해가 다르다 할지라도 기독교적 입장들은 동성애주의자들에 대해 하나님이 부여해 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까지 부인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고 있다. 카톨릭 교회는 1976년 발행한 바티칸의 性윤리에 대한 문서에서 지금까지 반대해오던 입장을 재확인 하면서, 다시한번 명확히 ‘동성애적 행위’만을 정죄하였다. 1974년 미 연합감리교회의 청소년 목회위원회는 결의안을 통해 ‘동성애라는 이유로 목회적 배려에서 제외되어서는 안된다’라고 선언하였고, 1976년판 교리장정에서 ‘동성애주의자들을 포함한 모든 인간들의 신성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 이에 부언하여 “우리는 모든 인간이 그들의 인권과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주어졌으며, 또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비록 우리는 동성애를 저주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행위들은 기독교의 가르침에 합당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태도를 표명하였다. 미국 장로교의 경우 1977년 총회선언문에서 “우리는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도덕적 기준을 증언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관련된 동성애주의자들을 향한 목회를 위하여 가장 바람직한 길들을 찾아 나서기를 촉구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독일 교회의 경우 1971년에 낸 백서에서 “독일기독교회는 동성애를 性의 잘못된 형태로 이해하는 동시에 동성애를 이상화하는 일을 거절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종전에 동성애에 대하여 유일한 반응으로 여기던 징벌적 판단과는 다른 판단이다. 性의 인격화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 새로운 가능성들을 - 즉 동성애주의자들에 대한 목회적 배려와 정신치료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들이 열렸다. 우리의 자녀들, 청소년들은 동성애를 위한 미혹, 선전, 그리고 주장으로부터 보호 받아야 할 것이다.”라고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러한 서구 교회들의 입장들은 중요한 신학적 인식을 담고 있다고 보여진다. 즉 동성애주의자들을 향한 교회의 목회적 배려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견해는 동성애주의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의 접근성(accessability of the Grace of God to homosexuals)을 부인할 만한 신학적이며 인간학적 정당성은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만일 신학적인 입장을 내세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의 접근성을 파기하거나 부인한다면, 그것은 복음에서 먼 신학적 오류요, 그릇된 주장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서구교회에서 동성애주의자들의 문제가 신앙적-사회적 문제로 인식될 만큼 커다란 문제가 되어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실례라 할 것이다.
5. 사회적 문제로서의 동성애
동성애가 보편적인 삶의 원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들은 일반적으로 동서의 성윤리의 주조가 이성애적 문화와 가치에 기반해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경향은 가장 자연스러운 것으로 사회의 규범으로 받아들여졌던 까닭이기도 하다. 그 결과 동성애적 성향과 행위에 대하여 강한 징계적 거절의 입장을 뒷받침해 왔던 것도 사실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와는 다른 각도에서 동성애가 지니는 사회적 문제점들 중에서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는 우선 사랑과 가족에 대한 연관적 관점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생각할 수 있다. 동성애의 경우 당사자간의 사랑의 관계는 있을 수 있다하여도 자녀의 출산과 부모로서의 양육을 통한 가족관계는 생기기 어려우므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가족관계에 위기가 온다는 점이다. 특히 리챠드 우즈 (Richard Woods)는 동성애주의자들의 노년의 정신적 상황에 대하여 가족관계의 단절, 가정의 상실, 그리고 후세와의 관계단절이 결과되는 점을 지적하면서 노년의 동성애주의자들이 세계로부터 소외되는 현실을 분석하였다. 둘째 문제는 결과적으로 이성애주의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동성애주의자들의 비책임적 성관계는 신앙과 도덕적 삶이라는 차원에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동성애가 인간의 기초적인 삶의 제도로서 책임과 유대에 근거한 가정보다는 당사자간의 관계에만 주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무책임한 성의 사용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셋째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결혼이나 가정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는 삶의 제도를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겠는가의 문제는 교회와 사회생활에 심각한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들이다. 넷째, 결혼 외 성적 관계의 유형으로서의 동성애는 다양한 문제들을 불러오고 있다. 왜냐하면 동성애 문제가 성향에 관계된 것이라면 이러한 성향을 극복하면서 신앙과 믿음으로 살기 위하여 독신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경우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성적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 반드시 신앙적인 행위라고 볼 수는 없지만, 성향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행위를 유발해도 좋다는 것은 윤리적 판단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맺는말
목회적 차원에서 동성애의 문제에 직면할 경우, 일방적 편견을 가지고 대해서는 안될 것이라 숙고된다. 동성애적 성향과 행위를 구별하고, 나아가 행위와 인격을 구별할 수 있을 때 보다 깊은 목회적 차원에서의 치유가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 매듭지어 말한다면, 기독교 윤리학적 입장에서는 결코 어떠한 인간이라도 목회적 배려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동성애주의자들도 목회의 대상으로 여겨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동성애 기독교적 가정관, 사회관, 성도덕의 관점에서는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는 점도 아울러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6. 동성애 반대하는 성서적 근거들
(1) 하나님은 동성간의 사랑이 아닌 이성간의 사랑을 명하셨다
(창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 를 창조하시고(창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고전6:15-17)(히13:4)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출20:14) "간음하지 말지니라" (출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탐내지말라"
(2) 가난안은 동성애를 했다는 이유로 저주받았다
(창9: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벌거벗은 몸을 보았다는 말은 벼태적인 성행위를 묘사하는데 사용된다 (창9: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함과 노아 추악한 성행위에 가나안도 뛰어 들다 저주받다 함이 아비 벌거벗은 몸을 힐긋 본게 아니다 가난안 인들 지저분한 동성애 수간등 만연 (레18:22-29 참조)
(3) 소돔 고모라는 저주 받았다 :소돔 고모라 동성애 범죄는 전설적이다. “남색” 소도미.
(창19:5) (유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 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4) 모세 율법은 동성애를 비난하다
(레18:22-23)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레18:24-25) (25)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을 인하여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 을 토하여 내느니라" 하나님은 동성애를 무거운 죄로 여기시다
(5) 성전에서의 동성애도 비난 받았다
(신23:17-18)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미동이 있지 못할찌니(18) 창기의 번돈과 개 같은자의 소득은 아무서원하는 일로든지 .. 가증한 것
-동성애는 우상 숭베와 연관이 있기에 죄악으로 여겨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동성애가 결혼을 통한 신성한 성생활을 타락시키기에 동성애를 증요하는 것이다
(6)사사기에서도 동성애는 비난받다 (삿19:22) "" (삿19:24).
(7) 예언자들은 남색을 비난했다
(왕상14:24)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 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왕상22:46)
(왕하23:7) "또 여호와의 전 가운데 미동(美童)의 집을 헐었으니
(8) 롬1: 이교도들 사이의 동성애를 비난하고 있다
(롬1:24-2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 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 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27)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 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버리고” “바꾸고” 동성애는 타고날 때부ㅡ터 유전이 아니다 “역리”=자연법에 어긋난다
(9) 동성애자들은 하늘나라 갈수 없다
(고전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끊임없이 동성애를 즐기는 자는 결코 신자가 될수 없다 (요일3:9) "
(10) 딤전에서도 동성애를 비난하고 있다
(딤전1:9-10) "(10)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 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11) 유다는 동성애를 남색으로 인식하고 있다
(유1:7-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 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2.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타 논증들
(1) 동성애는 비정상적 성행위이다 이유:
가. 날 때부터 동성연애자도 없고 동성애로 자식을 낳은 일도 없다
나. 어떤 동성애자도 살아가다가 동성연애자가 된다
다. 극소수만 이런 비정상적인 행동을 한다(약2-4%) 동성애는 비정상 행위이다
라. 동성연애자들을 격리시키면 정상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2) 어떤 사회도 동성애를 이성간의 사랑과 같이 동등한 지위와 가치를 부여한 적이 없다
(3)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동성애자들의 심리적 특성: 자기중심적 자기도취성과 학대성음란증, 적개심과 연관되고 있다
(히틀러 돌격대에는 동성연애자들 많다)
(4) 어떤 사회도 동성애를 통해서는 유지되지 못한다 (인류 존속 불가능함)
(5) 동성애는 생명에 대한 위협이다
동성애를 통해서 후천성 면역 결핍증 (AIDS)이 만연하다
3, 몇가지 반대 의견들
(1) 이러한 주장들은 동성애 혐오증을 낳는다 아무대책 없는 공포 발생시키고 동서연애자들에 대한 히스테리를 낳는다? 감정에 기초한 과잉반응이다
<--> 감정 아닌 도덕적 문제.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도둑질에 대한 반대가 도둑질 공포증을 야기시키지 않는다
(2) 동성애 반대 주장은 동성애자들을 차별한다 <--> 동성애와 동성애자를 구분하지 못한 탓이다 혐오해야할 것은 동성애 행위이지 동성애자가 아니다 잘못된 것을 경고하고 구분하는 경고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다 범죄자를 감옥에 가두는 것은 치별이 아니다
(3) 동성애 반대는 사랑하라는 기독교 정신을 결여하고 있다
<-->죄인은 살아하고 죄는 미워하라는 교훈을 혼동하고 있다 다만 회개를 거부하고 동성애를 일삼는 자는 교회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요약 결론
하나님은 성은 일부일체에 바탕을 둔 이성간이 관계 속에서 사용하여야한다고 명령하셨다
동성애는 하나님이 정하신 결혼과 성의 규율에 위반한다
구약은 동성연애를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로 취급하였고 바울은 동성애자는 하늘나라의 기업을 받을수 없다고 단언하다 동성애는 비정상적이고 추잡하다 변태적이고 혐오스럽다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어떤 사회도 동성 연애자를 정상인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한일이 없다 에이즈를 전염시키고 생명을 파괘시키고 있다 합리적인 사회라면 반드시 비정상적인 동성애를 규제하여 그 악영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해야한다
그러나 이미 동성연애자가 된 자를 미워하거나 학대해서는 않 된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해야한다 그를 시키고 돌이켜서 건전한 시민이 되도록 도와 두어야한다
7. 외설문제,성문란문제
1.강간이 많은 나라들 1위 :미국, 2위 스웨덴, 3위 한국 (1992년 250건, 1994년도 560건 드러나지않은것 포함하면 세계 1위 수준이다)
2. 이들 나라들의 특성은 성문란에 대해 ,음란 매체에 대해 거의 통제하지 않는나라들이다 한국은 음란 윤리위원회있으나 법적권한이 없다.유명무실하다 싱가폴이라든지,중국등 성을 단속하는 나라는 강간이 거의 없다. 외설물이 많은 나라일수록 강간사건이,성문란이 많다
3. 우리나라는 5공화국시절 섹스, 스포츠, 스크린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4. 미국 FBI에서 36명 살인범중 29명이 포르노에 탐익한 사실이 밝혀졌다.
5. 한국에서 외국에서 음란물은 반드시 돈과 관련이 되어있다. 상업성이 있다.돈을 벌기 위해서 예술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6.서은 원래 침실에서만 허용되고 즐기게 되어있다 그래야 신비감도 유지된다. 성이 길거리로 나오면 신비도 사라지고 성범죄가 만연하게 되어 사회는 병들어가고 부패한다
7.청소년들이 음란 비디오를 보면 정신이 혼란해지고 오래동안 공부가 됮않아 심한 정신적 고통을 느끼고 피해를 본다
8. 미국 제2의 킨제이 보고서라하는 조사보고서에 다르면 1994년도? 복음주의자 금욕을 찬성하는 신앙인들이 의외로 부부생활에 가장 만족과 행복감을 느낀것으로 조사되었다.
9.성을 상품화하는 예술은 진정한 예술이 아니다 예술에는 실험이 있을 수 있는지 모르나 사회에는 실험이 있을수 없다
10. 음란물을 막기 위해서는 적절한 규제장치등급제실시 와 성인전용극장시등으로 청고년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사회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VIII. 생 명 윤 리 와 현 대 의 료 윤리,
A.. 생명 윤리란 무엇인가
1. 생명 윤리란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료 행위에서 생긴 문제이다 - 여기서 ‘사람의 목숨을 다룬다’는 것은 기존의 목숨을 처분하거나 연장하는 행위(낙태, 안락사, 뇌사, 장기이식), 새로운 생명 탄생을 돕는 행위(인공수정), 한 생명의 모습을 사람이 결정하는 행위(유전자 공학)를 가리킨다. 서양 학계에서는 이 ‘다룬다’는 뜻으로 manipulation이라는 낱말을 많이 쓴다. .생명 윤리는 기술 발전이 빚어낸 문제로 기술 윤리의 한 분야이다. 현대 기술로 말미암아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능력을 손 안에 쥐게 되었다. 능력과 함께 사람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고 역사의 창조자가 되었다. 모든 지식은 기술적 관심에서 형성되었다.
위의 정의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생명의료 행위는 곧 생명의 문제를 일으킨다. 이것은 생명의 기원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를 야기시키며, 이에 따라 의료 행위를 결단하고 그 결단에 따라 행위를 이행하는 도덕적 행위자의 윤리 문제가 발생된다. 이렇게 볼때 “생명·의료행위·행위자”는 생명의료행위문제를 다루는 구조(틀거리)가 된다고 말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생명의료윤리 문제는 다양하게 있다. 인공유산, 안락사, 인체실험, 유전공학을 이용한 인공수정, 시험관 아기, 인간복제,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한 인간의 생명 보전, 장기이식 등 이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있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오늘날 첨예하게 대두되는 문제들로서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상황윤리적인 판단과 결단을 내리기 쉬운 주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인간 생명의 존중을 근거로 하여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다시한번 점검함으로써 우리들의 올바른 윤리적인 판단을 내려 보고자 한다.
B. 세속적 인분주의와 기독교 세계관
인공수정, 장기의식, 대리모, 배낭, 유전자접합, 복제 등 현대기술은 새로운 윤리문제 제기하게 만들다. 세속적 인본주의vs기독교 세계관 대립하고 있다.
1.세속적 인도주의의 관점
1933,1973, Humanist Manifestos? 인도주의자 선언 안락사, 자살, 낙태지지.
그어떤 신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우리 스스로 우리를 구원해야 한다(도덕적 가치의 근원은 인간경험이다)윤리는자율적이고 상황적이기에 그어떤 신학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 인정을 필요로하지 않는다.
(1)인간은 생명의 질에 책임을져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 운명에 대해 책임을져야한다. 생명의 질이 중요하다->낙태, 안락사 가능, 자살권리도 인정 유전적 개선 ->생명의 질향상 반론:이는 은폐된 공리주의의 한 형태이다.
-‘생명의 질’-물질적인가? 사회적인가? 정신적인가? 모호한 개념이다.
-누가 질을 결정하나?-의사인가? 사회단체인가? 환자인가?
-질적인 치료에서 무엇을 얻는가?-어떤 토대위에서 차별, 선택을 할 수 있나?
연령? 인종? 계급?
-생명의 질의 순서를 어떻게 알 수 있나? 유전자 통제->더큰 문제야기가능성 有
(2)각 개인은 자신의 생명에 대한 주격을 갖고 있다.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각 개인은 살권리가 있고 죽을 권리가 있다(안락사, 자살 지지)
반론:우리가 자기생명의 주인이 아니라 욥1:21 하나님이 주셨다, 신32:39 창1:21,27 하나 님만이 생명을 유지킨다(행17:28) 죄없는 생명 뺏을 권리가 無(창9:6, 20:13)
-우리가 생명을 창조하지 않았다. -의학발전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어떤 생명도 창조해낸 일이 없다. 단순한 형태생물창조 가능해도 고등인간 창조불가능. 그러므로 생명에 대한 주격 주장할 수 없다.
(3)우수한 인류를 창조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유전공학->더 우수한 인간제도 가능하다 고 Pletch가 주장하고 있다 (유전자 통제, 조작으로)
반론:히틀러와 다윈의 자연선택사상과 흡사, 헉슬리=人은 우주의 진화과정을 위한 경영 자이라고 생각했다
-현대인간이 자연진화의 결과라는 증거가 없다. 하나님이 인간창조
-개량에는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단 시간내 불가능
-인종을 우수하게 만들어(영속시킬) 이유가 없다.
-인종이 더 낳아졌다는 객관적 판단근거를 찾기 어렵다.
(4)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Pletcher의 ‘상황윤리’에서 주장
장기이식위한 낙태합법 정당화길 열어놓는다. 생체실험도 가능
반론:-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수단자체가 정당해야 한다.
-목적자체가 정당해야 한다.
-목적이 좋다고 악한 수단 허용시-비참하게 된다.
2.기독교적 관점
과학기술은생명을 지배하기 위해서아니라,그것을돌보기 위해 이용해야 한다. 하나님이 생명의 주권자이지, 인간이 주권자가 아니다.하나님을 섬겨야지 하나님을 희롱하지 말아야 한다. 의학의 임무는 생명을 개선 하는데 있지 생명을 창조하는데 있지 않다. 우리는 생명의 감독자가 아니라, 유지 관리자이다. 자발적 치료가 목적이지, 우생학발전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연을 지배, 통제하기보다는 자연에 순응하고 협력해야 한다. 유전학을 적응해야지 조작은 곤란하다.
3. 몇가지 기본 원리들
(1)하나님이 생명의 주권자이시다(창1:21,27 욥1:21 창3:19, 신32:39)
(2)인간은 존엄성이 있다(창1:27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됨) 창9:6-생명존엄성!
(3)생명은 신성하다(시8:5, 창1:27)
(4)생명은 유한하다 죽는다(창2:17) 히9:27 시90:10
(5)생명에 대한 사랑이 강조되어야 한다 마22:37-39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해야 한다.
4. 생명윤리의 원칙; 주로 로마카돌릭교회에서 주장.
(1)전체성의 원리=전체몸을 위해 병든 장기 부분을 절제한다
(2)이중효과의 원리=한개인이행동할때 두가지 효과 즉 하나는 선하고 하나는 악하다면 다음조건에서만 행할수 있다
-행동자체가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
-선한행도을 해서 악한 효과가 났을대;그것이 의욕하는것이 아니고 다만 허용되고 수용되는 경우
-선한 행위의결과로 일어나는 의도하지않은 악과 행위로 성취되는 선 사이에 비율이 적정선을 유지하는 경우
(예; 자궁외 임신 은 부차적으로 태아 살인 가능하다)
(3) 두개의 악가운데 더 작은것을 택하는 원리=도덕적악은 행할수가 없고 다만 물리적악을 행해야하는 경우에는 그가운데 더작은 악을 선택할수 있다는 원리이다 (단 이유가 분명해야한다) (생명 살리기위해 고가의 기계파괘 시킨다)
5.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생명윤리는 크게 달라진다 기술은 도움이 되기도 하고 위협이 되기도한다 테크놀로지는 통제되어야만 인간생명을 보호할 수가 있다 생명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다 기술을 이용하여 고귀한 생명이 보호되도록 해야한다
IX. 낙태의 문제점
1989년에 나온 정부 조사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1년간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60만명이며,인공유산된 태아는 이의 2배가 넘는 1백 2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 기혼 여성의 과반수가 넘는 53%가 인공 유산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이것을 연령별로 보면 40 - 44세가 65%이상이며,특히 서울 지역에서는 71%나 된다고 한다. 또한 의학계가 조사한 다른 의학 보고서에 의하면,현재 서울 지역의 1년 낙태는 약 60만 건이며,전국적으로는 1백 50만건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 낙태의 문제는 어느정도 세계 공통의 문제이다.그러나 낙태에 있어서 우리나라에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들이 있다.
첫째,낙태에 의하여 죽어가는 대부분의 태아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둘째,우리나라 피임의 절대 다수는 일회용 불임 수술이다.즉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잡한 방법보다는 단칼에 잘라버리는 불임 수술을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세째,낙태가 이렇게 성행할 때까지 그것이 한번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지 않았다.
선진 외국에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낙태는 살인이다”라는 주장과 “낙태는 이혼과 마찬가지로 선택적인 행위일 뿐이다”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서 각층의 사람들이 심각하게 토론했으며,이런 토론은 지금도 강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낙태에 대해서 분명히 찬반 양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찬반 양론이 완전히 생략된 상태 이것이 우리나라의 희한한 현실이다
본 연구에서는 낙태에 대해 지금까지 주로 서구에서 논의되어온 찬반 양론을 서술하고 각 주장의 문제점을 제시한후 낙태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판단을 시도하였다.
1. 낙태의 실제와 영향
(1). 낙태의 실제
낙태란 발육하는 아기가 생존하기 위해 생성된 초기에 일어나는,일종의 임신 중절로 규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이 자발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지만 (이러할 경우에 ‘유산’이라고 칭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 이 사건은 인위적으로 유발될 수 있다.
초기 낙태는 ‘월경규칙’이라는 완곡어적 어법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한개의 주사기가 달린 부드러운 프라스틱 관을 자궁안으로 삽입하여 자궁안의 내용물들을 흡입하여 빨아들이는 방법이다. 전기낙태는 전체 임신기간중 1/3(12주-14주이전)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진공흡입술 방식이 가장 널리 이용된다.이 수술은 대략 5분내지 10분이 소요된다. 자궁경부는 직경에 눈금이 새겨진 자궁소식(쇠막대기)가 삽입됨으로써 확장된다. 이때 태아와 태반이 흡인력에 의해 제거된다. 자궁내로 삽입되는 흡입관은 속이 빈 금속혹은 프라스틱제 기구이다. 이것은 긴 프라스틱 관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 호스는 큰 유리병과 접속되어 있는데 다른 부착물을 통해 이 병 속에서 진공상태가 이루어진다.
여성들이 분명하게 임신초기 단계에 처해 있지 않을 경우 태반의 일부가 자궁에 남아 있기 때문에 소파술의 시행이 불가피 하다. 8주 이전의 태아는 배아라고 하는데 가령 심장 혹은 뇌같은 핵심 기관들이 이때 형성된다. 중기 낙태는 전체 임신 기간중 2/3(12주-14주이후부터)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자궁경부는 더욱 확장되어야 하고 태아는 너무 크기 때문에 산산 조각으로 분해되어야 한다: 아무래도 태아가 흡입관으로는 도저히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술자를 가장 애먹게 만드는 것은 태아의 머리이다. 이 무렵에 태아의 뼈는 상당히 굳은 상태이고 두골의 파편도 자궁벽을 쉽게 뚫는 수가 있어서 이럴 경우 심각한 결과들을 초래하게 된다. NHS 산하 병원에서 행해지는 중기 낙태 시술에는 일반적으로 프로스타글랜딘 의약품 사용을 필수적으로 포함시킨다. 프로스타글랜딘은 정맥적주법,양막내 주사,양막외 주사,질 페사리등을 이용 태아에게 약물을 주입하여 죽임으로써 유산하게 하는 방법이다. 한국의 경우 낙태 시술은 산부인과 주 수입원이 되고 있다
(2). 낙태의 영향
낙태에는 많은 과학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여러가지 합병증과 후유증이 따른다. 일시적인 합병증으로는 장기관 손상에 의한 복막염등과 자궁 감염으로 인한 생리불순,불임,주기적 통증을 불러일으키는 가벼운 종류의 골반감염등이 있다. 낙태 경험자들의 10%정도가 수술로 인한 이병율(가령 출혈,자궁경부/자궁손상,수술후 감염,색전적혈전증,심리적 문제등)을 보이고 있고,2%가 합병증 증세(혈액수주를 요하는 츨혈,복부수술,심각한 정신 분열 형태등)를 보이고 있다.
장기적인 합병증으로는 임신불능과 임신 장애를 들 수 있고 깊고 오래 지속되는 우울증과 기독교인의 경우 죄악감등이 있다.
2. 어려운 문제들
(1). 낙태라는 것이 진정으로 인간의 생명을 끊어내는 것이라면,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또는 강간에 의한 경우에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낙태라는 것이 과연 낙태 찬성론자들의 주장대로 두 사람 사이에 관계된 일이며 태아는 한 여성의 육체를 사용할 권리가 없을지도 모른다.그리고 그것이 산모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때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임신이 강간에 의하지 않은 경우 임신한 것에 대한(즉 한 생명을 잉태시킨 것에 대한)산모의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으며 산모의 생명이 위급할 경우 그것은 산모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 기독교적 사랑은 희생을 그 근본으로 하고 있으며 실제로 기독교인이 아닌 경우에도 아기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예는 많이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자신의 생명을 위해 아기를 희생하는 경우 정죄여부를 속단 할수 없다.인간의 근본적인 이기적 성품은 정당화 될 수는 없으나 용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강간에 의한 임신인 경우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을까?. 원하지 않는 불행한 사건에 더하여 원하지 않는 상대의 아기를 임신한다는 것은 피해자를 더욱 가혹한 고통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의 체내에 임신된 태아 역시 한명의 피해자이며 그에게는 죄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역시 그 선택은 임신한 여성에게 맡겨야 하는가? 교회가 윤리와선행을 ‘강요하기 어렵다 (2). 기형아의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정신 신체적 장애가 있는 태아의 생명을 제거하는 것은 동정받을 수 있는가? 인간의 가치가 그의 소유나 능력으로 판단될 수 없으며 인간 그 자체로서 고귀하고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이 기독교의 인간 이해임은 앞서도 밝혔다. 이것은 그가 장애인임에도 (태중에 있던 태밖에 있든)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의 가치를 어떤 외부적 차등이나 능력의 차이로 인해 판단하는 것은 인류역사의 여러 범죄형태로 나타났고(이를테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나 미국의 노예제도등) 지금에 와서 이를 정당하게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3. 낙태에 대한 세가지 기본 입장(태아의 인간적 지위에 대해 초점)
(1).태아는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언제든지 낙태시켜도 된다.
A.태아의 생명보다는 어머니의 개인적 권리가 우선되어야 한다. 여성은 자기가 원치않는 아이를 강제로 낳을 의무가 없다.
B.성경의 구절들(낙태 찬성론자들:태아가 불완전하다는 걸 주장하기 위한 것)
, -창2:7 人은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받은 후에야 ‘성령이 되었다’ 출산전:호홉하지 못하므로 인간이 아니다.
-욥34:14-15, 하나님이 신과 기운을 거두실진대--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라
생명, 호홉 연관 호홉 이전에는 생명이 아니다.
-사57:16 하나님의 지은 영과 혼을 하나님은 창조시점으로 삼고 있는 듯
-전6:3-5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햇빛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나
-마26:24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인간의 생명은 출생과 더불어 시작된다(?) 그렇지 않다면 JX는 유다에 대해 “그는 임신되지 않았어야 했다”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C.기타 근거들
1)아기가 자의식을 소유하기까지는 인간이 아니다.
반론:자의식은 인간이 되는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다. 깊은 잠을 자고 있거나, 혼수상태 에 있는 사람도 인간이 분명하다. 어린이는 1-2세까지 자의식없다(유아살해 정당 화) 무식한 이는 덜 인간이 아니다.
2)뱃 속의 아기는 어머니 육체의 일부이다-어머니가 자기육체 통제할 권리 갖고 있다.
<->태아는 어머니의 연장이 아니다. 임신순간부터 성을 갖는다. 母는 여성이나, 태아는 남성인 경우가 절반이다(백인 母에서 흑인수정란->흑인탄생) 태아는 죽을 때까지 일정한 개인적 뇌파를 갖는다. 적먹이가 母의 가슴의 일부가 아니듯, 태아는 母육체 일부아니다(자궁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해있다)
3)불법적 낙태는 위험한데, 불법낙태를 방지할 수 있다.
<->낙태합법화로 산모들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 수많은 애기들이 죽었을 뿐이다. USA(1973낙태가 합법화되) 수천명이 낙태, 그러나 낙태로 사망한 것은 극히 적다 (1/100%) 애기는 100%죽는다.
4)원치 않는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 아이들은 학대를 받는다-학대방지에 도움된다.
<->낙태의 명분으로 아동학대방지를 드는 주장은 태아가 인간인가 하는 주제와 상관 없는 주장, 낙태는 가장 아동을 학대하는 것이다. USA 매맞는 아이들 대다수는 (91%) 부모가 원해서 낳은 아이들이다.
5)불구자로 태어나는 것을 방지한다. 바람직 못한 출산을 방지한다.
<->유전적 이유로 유아살해 안락사가 정당화 될 수 없다. 불구자도 얼마든지 훌륭한 생애를 살아갈 수 있다. 불구자들은 불구자탄생을 반대하지 않는다.
6)육체에 대한 여성의 사생활의 권리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
<->태아가 인간이 아닐 경우에만 정당화 될 수 있다. 우리는 비밀리에 인간을 살해할 권리가 없다. 자기 힘으로 생존할 수 없는 생며을 내 사생활보호위해 죽일 권리가 없다. 강간외 성교는 아이를 낳을 것을 전제하고 있고 책임이 있다.
7)여성이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아이를 억지로 임신해서 출산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 (강간) 태아가 인간이라면, 태아의 아무 죄없는 생명을 뺏는 것은 살인이다. 낙태는 강간이라는 악행을 없애지 못한다. 또다른 악행을 추가할 뿐! 강간범을 처벌해야지 죄없는 태아는 죽어서는 안된다.
반론(성경적 주장에 대해):태아는 불완전인간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이다.
1)호홉은 인간생명의 시초가 아니다.
*인간은 호홉멈춘 후도 생존(빌1:23 고후5:6-8 계6:9)
*시51:5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임신순간부터 인간임을 증언.
마1:20 저에게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라.
호홉이 멈춘 후에도 다시 소생한 경우도 多 성경에서 “호홉”언급은 단지 최초의소개식 (COMING-OUT)에 대 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나, 생명을 이야기하고 있지 생명의 시작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출산은 가시적 세상으로 데뷰, 가시적 세상에서의 생명의 시작으로 간주되었다.
2)아담은 인류시초로 독특한 경우였다. 아담은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어 생령이 되었으나 아담은 임신된 다음에 출생된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창조되었다.아담은 성인으로 창조되었기에 개별인간의 생명 성인되기까지 개별생명이었다고 볼수없다 하나님이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었기에 생령이 되었던 것이다 아단이 숨을 쉬었기에 생명이된 것이 아니다 아담이후는 임신으로 출산하게된다
3) 전6:3-5 낙태된자는 알지못하다고 하였으나 이것은 낙태된자는 인간이 아니라는뜻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성인들도 죽은후에는 인간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전9:10에 음부에는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다고 했기때문이다.지식은 인간이 되는데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필수적이라면 무식한 사람은 인간이 아닐것이고 유식한자가 더 인간일 것이다.
(2). 태아는 잠재적인 인간이기에 때에 따라서는 낙태를 허용할 수 있다.
-태아는 잠재적인 인간에 지나지않는다 인간다움은 임신 출산 사이의 기간동안에 점차적으로 향상된다고 주장한다.
-강간, 근친상간으로 임신,유전적불구 임신은 낙태를 허용할수 있다
1)성서적 근거(태아=잠재적 인간)
출21:22-23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기밴 여인을 다쳐 낙태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 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좇아 낼 것이니라.
그 러나 다른 해가 없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 지니라->태아 사망시=벌금형-태아가 완전 인간으로 겨지지 아니했기에! 산모사망시=사형
시51:5 잠재적인 죄인->실제인간이 되고나서 실제죄인이 되었다.
시139:13,16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나이다->태아는 형성되어가는 정에 有, 아직 불완전 형성, 육체 불구자도 인간인 것처럼, 아직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아기도 인간이다. 렘1:5 하나님은 모태 속의 태아를 인지하고 계신다(인격적 관계를 맺고 계신다) 전6:3-5 태아는 숨쉬거나 사물인식 불가
롬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모든 인간이 실제적으로 아담안에 있지 않으나 잠재적으로 있다->태어나기 전에는 잠재적 인간이고 태어난 후에야 실제 인간이 된다. 모든 인간이 아담안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태아가 불완전 인간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아니다. 히7:10 이는 맬기세댁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의 조상의 허리에 있음이라-상징적 표현 : 그 후손이란 말이지 태아가 잠재적 인간이란 말이 아니다(정자, 난자 그 자체도 잠재적 인간이 아닌 것처럼)
2)기타 근거들
(가) 인간의 개성은 점진적인 발전과정을 겪는다. 누구든지 자신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서 인간이된다. 그때까지는 잠재적이고 현시적(emergent)으로만 인간일 뿐이다.
<->개성과 인성을 혼동하고 있다. 개성은 심리학적 개념 인성은 존재론적 범주이다. 개성은 속성이나 인성은 인간존재 본질이다. 개성은 주위환경에 의해 형성되나 인성 은 하나님이 창조! 인성은 순식간에 전달된다. 개성은 의식과 관련된다->무의식 살 인 정당화 우려 有
(나)인간의 발전은 육체발달과 상호관련되어 있다. 인간정신은 인간육체와 나란히 발전한 다. 태아육체도 임신기간동안 점진적으로 발전한다. 태아=잠재적 인간
<->육체가 발달해도 육체에 활력을 주는 영혼이 똑같이 발달하는 것은 아니다. 영혼은 육체발달이 시작되는 시점으로부터 전면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조그만 수정관이 자기보다 큰 정자나 더 큰 성인과 동일한 영혼을 가질 수 있다
(다)다른 생물과의 유추
도토리는 도토리나무가 아니며, 계란은 닭이 아니다. 태아=\완전인간 도토리는 잠재적인 도토리 나무이듯 태아는 잠재적 인간이다.
<->식물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도토리는 껍질에 둘러쌓인 작은살아있는 도토 리 나무이다. 도토리를 구성하는 모든 유전적 정보는 도토리 안에 있다. 물, 수분, 양분만 공급되면 도토리나무로 성장한다.
(라)법적 논쟁, 최고헌법 ‘태아는 잠재적 생명’이라고 말한다. 14차 수정안->태어난 사람들 게만 시민권 부여하고 있다 태어나지 않는 태아는 완전인간이 아니고 잠재적 인간으로 본다.
<->과거 법원판결 중 오류 多 과거 흑인은 시민이 아니라고 판결한 예도 有(1857) 1776, 독립선언서 “생명권은 하나님이 주신 양도불가능한 권리이다”
3.태아도 완전한 인간이기에 낙태는 금지되어야 한다.
(1)성서적 근거들(태아=완전한 인간)
-태아 유아 어린아이로 동시에 불려진다(눅1:41,44 2:12, 출21:22)
-태아도 하나님이 창조(시139:13 창1:27)
-태아죽여도 처벌받는다 상처입혀도(출21:22)
-X는 성모모태 임신순간부터 인간(God-man)이셨다(마1:20-21 눅1:26)
-하나님의 형상은 남,녀를 포함하나(창1:27) 성의구별은 임신이 이루어지는 간에 결정된다.
-태아도 죄와 같은 인간의 특성소유(시51:5)
-태아가르킬 때 인간을 가리키는 인칭대명사 사용(렘1:5, 마120-21)
-하나님은 태아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계신다(시139:15-16 렘1:5)
-태아도 태어나기 이전에 하나님의 부르심 받는다(삿13:2-7, 창25:22-23 사49:1,5 갈1:15) 태아낙태=살인행위
(2)기타 증거들
-과학적 증거들:인간의 수정란이 100%인간이라는 것은 유전학적인 사실이다. 수정이 이루 어지는 순간 모든유전적인정보가 이루어진다(1981, USA 의회청문회) 성(sex)이 결정된다.
-임신1개월(실현)-인간으로서 모든특징 존재
1주:자궁착상 3주:심장근육 움직임 팔다리 나타남
-임신2개월(발전)-뇌파가 감지된다 코눈귀 발가락 심장이 뛰고 뼈가 형성 지문
-임신3개월(운동)-삼키고 곁눈질, 주먹 쥐고 혀움직임 육체고통 느낀다
-임신4개월(성장)-몸무게 6배 증가(출산시1/2, 母의 목소리 듣는다)
-임신5개월(생존)-피부 머리털 손톱 꿈꾸고 운다. 자궁 밖에서도 생존가능하다 -사회적 증거
*태아도 인간적인 권리를 소유하고 있다.
*불구라 태아 죽일 수 있다면 불구자 성인도 죽일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BC18C), 모세율법(BC16C)등에도 어린아이 낙태 유산을 처벌했다. 낙태찬성
하는 스토아학파 세네카(2C)조차도 자기를 낙태하지 않은 母를 찬양
(3)기타 태아=완전인간이란 주장에 반대의견들
-임신부 생명이 위협받을 때 어떻게? 답:이때 예방조치는 낙태가 아니다.
태아를 죽이려는데 있지 않고 임신부의 생명을 구하려는데 있다.
-생명과 생명의 교환의 문제이지 낙태를 요청받고 실행하는 상황의 문제가 아니다.
-창22:2등 참조해보면 임산부나 누구나 자기생명 위태로운 경우 자기를 지키기 위한 살인 이 가능하다.
-수정란이 임신이라면 모든 임신의 절반은 자연낙태가 된다.
수정란 가운데 절반가량은 자궁에 착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답:이 주장은 자연발생적인 죽음과 의도적인 살해사이의 차이점을 구분못하고 있다. 자연 발생적 죽음에 도덕적 비난을 가하지 않고 의도적 살해는 엄청난 처벌을 받는다. 또 자연발생적인 낙태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해야할 도덕적 의무도 없다.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이나 자연발생적 사망까지 저지하는 것은 도덕의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생명주권을 무시하는 것이다(롬5:12, 히9:27, 욥1:21)
-태아는 인격을 가지지 않았다.
답: 인간으로 되는것과 인격으로 되는것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고 기능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저능아도 인간이다.
John Donne(영국시인)
“어떤 인간이라도 죽으면 나에게는 손실이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는가를 알려고하지말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고 있다”
1991년 형사 정책 연구소가 발표한 낙태 경험 여성의 사회인구학적 특성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655명)의 36.0%가 낙태를 경험, 그 중 불교(46.3%), 천주교(39.4%), 기독교(34.1%), 무종교(32.6%)순으로 나타나 있어, 아이러니칼하게도 종교인들보다 무종교인이 오히려 낙태율이 적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 중 1-2회 낙태한 자는 75%이고, 3회 이상은 25%였다. 3회 이상 낙태 경험한 여성의 사회 인구학적 특성에서, 불교(32.0%),기독교(30.1%),무종교(22.1%),천주교(7.7%)순이다. 우리나라 15-44세 기혼자 여성의 52%가 낙태 경험자라는 것을 감안할때 다소 그 비율이 낮게 나타나고 있으나, 이런 조사결과가 비록 단편적이라 하더라도 모든 종교인에게, 특히 종교 지도자들에게 종교의 근본 의미가 무엇이며, 사회 안에서 종교인의 역활이 무엇인지를 각성토록 촉구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결론 : 낙태는 허용되어서는 않된다 .
1). 인간의 생명파괘행위이기때문이다.(수태후 3주 지나도 의식이 있다 낙태수술시에 살기위해 피한다)
2.) 사회에서 사생아를 배출하는것은 나쁘다는 주장에 대해; 사생아도 행복하게살 권리를 가진 생명이다-도스토엡스키도 사생아였다
3.)낙태는 임신중절은 산모에게도 건강상 아주 위해하다.
4.) 불의의 사고로 생긴 태아처리도 사회복지제도를 발전시키므로 해결할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
*모자보건법; 선천적 정신 및 신체장애,전염병,강간임신.등 경우에 모태에 위험이 있을 때만 낙태를 허용한다 이외의 낙태는 형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X. 안 락 사
죽을수밨에 없는 인간을 고통을 경감시키기위해서 자비로운 살인을 시행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수 있는가? -화염에 휩싸인 비행기 속의 사람들 살아날 가망은 전혀 없는데 고토을 경감시켜주기위해 총을 소아야하는가? - 불구가 되고 소생가망성은 전혀 없는 신생아를 소생시켜야하는가?
-불치병,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있는 불치환자가 죽음을 요구할 때 산소호흡기를 제거해주어야하나?
안락사는 지극히 미묘한 문제이다. 윤리학계뿐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오래전부터 논의되고 있지만 시원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안락사 행위를 한 의사를 처벌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입법을 할 수도 없다는 게 일반적인 감정인 것 같다. 필자가 알기로 안락사를 입법화한 나라는 네덜란드 한 곳 뿐이다. 네덜란드에서는 50명 당 한 명이 안락사에 의해 사망한다고 한다. 그런데 의사가 적극적으로 죽음을 도와주는 것 말고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수동적 안락사까지 포함하면 전체 사망의 무려 38퍼센트까지 이를 것이라는 계산이 나와 있다. 그런데 어찌 이것이 네덜란드에만 해당되는 얘기이겠는가? 의료기술의 발달로 목숨만 간신히 연명하는 환자들이 상당히 많아지고 있으며 그만큼 안락사로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도 많다. 이미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는 안락사를 일정한 범위 속에서 양성화하는 것이 오히려 무분별한 행위를 방지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에서 네덜란드 정부는 환자의 병세와 고통 정도, 안락사 요청 등에 관한 28개 항목을 만족시킬 경우 의사의 형사 책임이 면제되도록 했다.
안락사란 말 그대로 편안한 죽음을 유도하는 행위이다. 대개는 다른 사람이 안락사에 관여해서 환자를 죽도록 도와줄 경우가 논의의 대상이 된다. 죽는 사람 스스로 편안히 죽는 행위를 취할 경우 그것은 자살에 대한 윤리적 논의 속에 포함될 것이다.
1. 능동적 안락사: 고통을 피하기위해 생명을 빼앗는 것이다 (수동적 안락사는 죽게 내버려두는 것)
자발적 안락사;환자가 죽음에 동의하는 것.
비자발적안락사;환자가 죽음에 동의하지않는 것.
자비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 비자연사이다.(unnatural death)
(1)죽음은 인간생명의 마지막부분이나 그 일부임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인간은 그생명을 존엄하게 살아야할 권리와 의무가 있듯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 지나친 고통과 무자비한 죽음은 비인간적이다 능동적안럭사가 없다면 우리는 재난을 통제하지못한다.
반론: 그누구도 살인을 할 수 있는 도덕적권리가 주어져있지않다, 출20:13에서는 살인하지말라하고 있다 생명은 내것만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것이요 하나님의 것이다 신32:39 하나님이 생사여탈권을 갖고 계시다 (욥1:21,창1:27) 하나님만이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있다 (히9:27) 안락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심하고 조롱하는일이다
(2) 헌번상에는 사생활권이 보장되고 있다 죽음도 이사생활권에 포함되고 있다(낙태도) 살아야할권리가 보장되면 죽을 권리도 보장되는 것이다
반론: 헌법은 살인할 권리는 부여하고있지않다. 미국독립선언서에도“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부여받은 것으로 양도가 불가능한 권리이다. 생명권은 절대적이지만 사생활권은 제한적이다
능동 안락사는 살인이다 반헌법적이요 반 기독교적이다
(3) 안락사는 고통을 격는이에게 자비를 베푸는 행동이다 죽을것이 분명한이가 계속 극심한 고통을 계속 받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비인간적이다. 그고통을 없애주는 것이 그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에게 ㅈ비를 베푸는 것이다.
반론:불구자라고해서 아이를 낙태 시킬수없듯이 고통을 겪고있다고 함부로 죽일수 없다 또한 안락사가 많은 고통을 줄인다고해도 안락사행위가 정당화될수 없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킬수 없고 시키지않는다 올바른 목적은 올바른 수단만을 정당화시킨다 죽어야할 죄가 없는 이를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출20:13) 좋은 목적이 수단(살인)을 정당화시킨다면 그수단들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될 수 있다
(4) 안락사는 고통을 겪는 가족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미국 1983 인디아나주 최고법원 Baby Doe 죽도록 허락함 부모권리인정.
반론:고통은 어떤 대가를 치루고서라도 막아야만 되는 것인가? 가장 악하고 나쁜 것으로 단정할 수 있는가? 이는 반기독교사상이다. (약1:2-4), 롬5:3-4 고통을 통해 오히려 배울 것이 多多大 (욥21:10) 고통통해 소망이 더 확실해지고, 끈기있고 인격을 형성하게 된다.
(5)안락사는 환가족에게 무거운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다. 생계파탄까지 이룬다.
반론:인간생명에 가격표를 붙일 수 없다. 생명은 경제적 여유가 없을 때라도 보호받고 지켜야 할 귀한 가치를 지닌다. 막8:36 천하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소용이 없다(마6:26) 돈을 아끼기 위해 생명을 포기한다는 주장은 물질주의적 사고이다.
(6)안락사는 사회의 무거운 부담을 덜어준다. 의료비 상승, 노년층 증가-사회적 부담이 증가한다.
반론:생명의 본질적 가치는 물질적인 견지에서만 따질 수 없다. 목적이 수단(살인)을 정 당화하지 못한다. 독재자의(히틀러) 수많은 사람들의 인격을 뺏을 때 사용되는 도구이다.
(7)안락사는 당연히 해야할 자비로운 행동이다 심한불구자에게 고통의 삶을 줄이기위해 안락사는 좋은 것이다
Peter Singer 교수. “신생아의 생명은 돼지나 개나 침팬치생명보다 귀하지않다”
반론: 인간은 동물로부터 진화된 존재가 아니다. 바람직하지못한 동물은 죽일수 있으나 인간은 동물과는 전혀 다른존재이다 그러므로 고통을 겪는다고 인간을 죽일수 없다 또 죽어야할 이유가 없다 인간을 동물로만 보면 인간은 생체실험의 대상이 될 수있다.집단학살, 에이즈환자 살해등이 일어날수있다.
2. 수동적 안락사의 다양한 유형들
수동적안락사는 생명을 유지시키는 자연수단을 유보해두는 것이다 죽기까지 내버려둔다 .
죽음을 허용하는 것은 도덕적이 될 수도 있고 비도덕적이 될 수도 있다.
(1) 부자연스러운 수동적 안락사와 자연스러운 수동적 안락사
(가) 부잔연스러운 수동적 안락사: 심사숙고 끝에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자연스러운 수단을 (음식, 공기, 물) 유보하여 죽도록 내버려두는것.=능동적 안락사와 동일하다 비도덕적이다.아기를 굶어 죽도록 내버려두었다면 과실치사가 된다.
(나) 자연스러운 안락사: 호흡기 인공장기등과 같은 부자연스러운 수단을 제거하여 간접적으로 환자를 죽게 내버려둔다. 회복이 불능한 환자에게서 부자연 수단들을 제거하면 자연스럽게 죽는다.
(2) 수동적 안락사를 둘러싼 논쟁들:
기본적으로 세계관을 야기시킨다. 세속적이고 인간주의적 세계관과 유대-기독교세계관의 충돌이다
인본주의 세계관 유대-기독교 세계관
창조자가 없다 창조자가 있다
인간은 진화된 존재이다 인간은 창조된 존재이다 피조물이다
하나님이 부여한 가치가 없다 하나님이 부여한 가치가 있다
인간이 권리를 주장한다 인간은 권리를 발견한다
3. 자연스런 수동적 안락사에 관한 논의
부자유한 수단(생명유지 수단:호홉기)을 제거->자연사하게 허용하는 것->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회복불능의 경우) 왜냐하면 부자연스러운 생명유지수단을 과감히 이용할 때 하나님이 주관하는 자연스러운 죽음의 진행에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있다(하나님께 대항하는 것) 이는 생명연장이 아니라 죽음의 연장이다 (창2:16-17 롬5:12 사람은 누구나 죽어야 한다 죽을 운명)
** 기계장치 제거하는 것인가 말것인가의 결정지침
(1)치유가 불가능한 질병, 죽음의 진행과정 돌이킬 수 없는 경우
(2)환자가 살겠다는 의지와 의식을 갖고 있을 때는 제거말라:의식 無->생명에 대해 책임을 진 이들의 내부의견 듣고!
(3)목사, 의사, 변호사 가족등 집단적 결정이 없으면 제거말라 (기도부터 하고!) 판단할 것
4 결 론
(1) 안락사는 인간생명존엄성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모순된다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다 (창1:1, 시24:1) 하나님만이 생명의 주인이시다
(2) 안락사는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반한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을 담고 있기에 신 성하다. 피흘린 자를 피가 흘려져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이다(창9:9) 사람은 하나님을 도덕적 책임이 있다. 거룩해야 한다(레11:44) 생명이 신성하기에 하나님은 살인을 금지하셨다.
(3)안락사는 자살 또는 살인의 한 형태이다. 출20:3 살인하지 말라! 생명=하나님이 주신 것. 자살 하나님 주권거부!
(4)성경은 안락사를 강력하게 비난한다. 욥3: 욘4:3->하나님께 생명취해 달라고 요청! 삼상31: 삼하2: 사울의 자살->비난의 대상 삿9:56,54 아비멜렉이 자살방조죄->하나님이 갚으셨다.
자살방지-엡5: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육체를 미워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요5:13 롬5:7 타인위해 생명희생은 권장)
(5)안락사는 인본주의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들은 도덕거치들의 근원이 인간경험이라고 말 한다. 윤리는 자율적이고 상황적이므로 신학적인 승인이 不要하다(하나님이 죽으면 모든 것의 주장이 정당할 것이나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하나님의 존재 살아계심이 생명의 신성함과 인간존엄성의 토대이다.
(6)안락사는 인간생명의 가치를 경시한다. 죄없는 생명학살->반드시 엄중한 대가 치루게 된다.
우리는 함부로 죽을 수 없다 (롬14:7)
(7)안락사는 가족과사회의 죄를 만들어 낸다.죽을 죄없는 사람의 죽음 허용->사회적 죄 유발한다
XI. 인 공 수 정
인공 수정이란 말 그대로 인공적으로 수정하는 의료 행위를 가리킨다. 수태의 과정에 사람의 손이 가는 것이다. 문제는 신비해야 할 생명의 탄생 과정에 사람이 끼어든다는 점이다.원래 인공수정은 아이를 갖지 못한 부부에게 아이를 갖게 해 주는 복음으로 시작되었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유전자 공학과는 달라 무슨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수태를 돕는 측면이 크다. 물론 이것이 불임이라고 하는 자연의 결손을 해결하여 자연을 돕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이 생명을 주도하는 것인가 하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여하튼 인공수정이라 하면 유전자 조작은 포함되지 않는다.
인공수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부부간의 인공수정이 있고, 제3자와의 인공수정이 있다. 부부간의 인공수정은 남편의 정자에 의한 인공수정이라 하여 AIH(artificial Intermination by Husband)라 하고 남편 아닌 제3자의 정자를 받아 임신하는 경우 AID(Artificial Intermination by Donners)라 부른다. 전자를 동형 인공 수정(Homologous Artificial Fertilization)이라 하고 후자를 이형 인공 수정(Heterologous Artificial Fertiliza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 시험관 아기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영국에서 최초로 성공한 시험관 아기는 동형 인공 수정의 경우였다. 부인의 난관에 문제가 있을 때, 아내의 난자와 남편의 정자를 시험관 수정이라 하여 따로 IVF(InVitro Fertilization)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편의 정액에 정자수가 모자랄 경우 정액을 모아서 아내의 자궁에 주입하는 것도 동형 인공 수정에 해당한다. 사실 이 경우는 체외 수정이 아니라 체내 수정인 셈이다. 한편 남편의 정액에 문제가 있어 임신 불능일 때, 정자 은행에서 제3자의 정액을 구해 임신하는 방법이 이형 인공 수정이다. 물론 이 방법에도 정액을 여자의 자궁에 주입하는 방식과 시험관에서 수정시켜 이식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카톨릭에서는 어떤 형태의 인공수정도 반대한다. 이형 인공수정은 물론 반대한다. 동형 인공 수정인 경우에 시험관 아기같은 체외 수정을 받아낼 뿐 아니라 남편의 정액을 모아 아내에게 주입하는 체내 수정도 반대한다. 우선, 카톨릭은 성관계를 통하지 않고 수태하는 것은 모두 도덕법에 어긋난다고 본다. 결국은 자연 수정이 아닌 인공 수정을 모두 배제하는 셈이다. 부부간의 정자와 난자의 만남에 의한 수정이라도 자연의 방법인 성관계에 의해 이루어져야지 어떤 모양으로든 사람의 손이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카톨릭이 성관계를 단순히 자연적인 것이라 하여 신봉하는 것은 아니다. 부부간의 성관계를 자신을 내어 주는 화합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자식은 그런 사랑의 열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1. 인공수정(대리모, 시험관 아기 포함)의 정의와 베경
(1) 정의 내리기
인공수정은 정상적인 부부 관계에 의해 수태를 할 수 없을 경우 “인위적으로 남자의 정액을 채취하여 이것을 여자의 자궁경 또는 질속에 기계적 방법으로 주입시켜 수태시키는 기술”을 말한다. 인공수정의 초점은 수태하지 못하는 것을 수태할 수 있게 하는 것, 즉 아기를 갖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공수정에는 두 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하나는 남편의 정액을 사용하는 배우자간 인공수정(artificial insemination by husband, AIH)이고 다른 하나는 남편 이외의 남자의 정액을 사용하는 비배우자간 인공수정(artificial insemination by donor, AID)이다
이러한 인공수정의 방법에 따라 인공수정의 여러 경우의 수를 볼 수 있다. 남편의 정자와 부인의 난자 인공수정, 정자 기증자와 부인의 난자 인공수정, 부인에게서 난자를 전이하여 남편의 정자와 수정한 후 다른 여인의 자궁에서 대신 임신하게 하는 방법(대리모), 수정 전이나 후에 정자 기증자로부터 부인에게 또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자궁에 난자를 전이하여 진행하는 방법(출생전의 양자 방법), 여성 기증자로부터 난자를 전이받아 남성 기증자가 기증한 정자와 수정후에 수령자의 자궁에 전이하는 방법, 유리자궁 또는 유사한 인공물 안에서 태아의 인공임신이나 양육하는 방법(시험관 아기 - 인공태반) 등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을 수 있다.
(2) 인공수정이 시행된 배경
문제는 배우자간의 인공수정이 아닌 비배우자간의 인공수정이라 할 수 있다. 비배우자간의 인공수정을 원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남편이 유전병을 가지고 있을 때
· 남편이 질병이나 사고로 성관계를 가질 수 없을 때
부정적인 항체반응이 일어날 경우, 예로 남편이RH+이고 아내가RH-인경우 태아를사산하게 된다.
2. 인공수정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
창조된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가정을 갖고 싶고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길 원한다. 이것은 본성적으로 내재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족을 보존 할 수 있는 여건이 않되는 경우가 있는데 여자와 남자의 경우를 들어서 생각해 보자.
·여자의 경우: 이상 성감증이나 과잉 비만증으로 남편과 성관계를 갖지 못해 자녀를 못 갖는 경우라 든지 자궁의 심한 전굴 또는 후굴에 의한 위치의 이상, 그리고 자궁경부 협착이나 자궁경부 점액부 족등을 들 수 있다.
·남자의 경우:발기불능, 요도하열,역행성 사정, 무정자증, 비만으로 인한 임신불능 등을 들수 있다.
기본적으로 창조 행위는 하나님의 특권으로서 이 행위에 도전해서는 않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 종족 번성을 주셨다. 이 종족번성과 자녀로 인한 행복을 빼앗긴다면 하나님도 이를 바라시지는 않으실 것이다. 과학기술도 또한 우리 인간을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선의의 목적을 위해서 이를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정의 행복과 가정의 본래의 기능을 회복시킨다는 의미로서는 인공수정을 허용하되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때는 제한을 가하여야 할것이다. 또한 각나라에서는 인공수정이 상당히 많이 발전하고 있으며, 인정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따라서 인공수정에 대한 열린 사고가 필요하며, 다만 이에 따른 법률적 보호장치를 마련하는데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3. 인공수정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
· 과학적으로 정자기증자의 유전자 선별이 철저하지 못함으로 (미국 수정학회회원 80%가 구두로 인 적 배경을 통고 받았음, 그중 29%만 전염병 유무 검사를 했음) 인공수정 아이의 전염병을 갖고 태어 남. · 법률적 문제로 적출자문제가 자주 거론되어지고 있다. 인공수정하여 얻은 아이가 적법한 아이이냐하는 문제이다. 미국에서는 1948년 처음 법적 문제가 되어 적출자로 인정되었으나, 시대와 주에 따라 다른 판례가 나온 적이 있다. (그러나 대체로 현재에는 적자로 인정되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1983년 7월 15일 서울가정법원에서의 첫 재판에서 친생아로 인정되었다.)
· 사회적인 문제로는 인공수정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를 앤더슨이 다음의 네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로는 독신자를 증가 시켰다. 둘째로는 결혼질서의 파괴, 남편이 더 이상 불필요함. 셋째로 대리 모 탄생으로 이는 혼외 관계문제, 인간의 생산 도구화 문제, 어머니의 개념문제 등의 사회적 법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넷째로 우생학적 프로그램의 발전 야기. 노벨상을 탄 사람의 정자은행 설립등으로 슈퍼인종의 탄생으로 인간을 지적인 기계로 만들고 인간을 평가하는 등 인간 존엄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 이 모든 것을 기독교윤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첫째로 하나님이 맺어주신 부부의 정상적인 관계 가 아닌 방법은 윤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자식은 부부의 사랑을 근거로한 일치경험의 산물이어야 한다. 둘째로 대리모의 윤리적인 문제로 인간을 상품화시켜 아들이면 비싸고, 어떤 정자이냐에 따라 값을 매길 수 있다. 셋째로 혼전 성관계 문제와 간음의 문제이다. 넷째로 근친상간의 문제이다. 상품 화된 정자의 경우 근친상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다섯째로 나은 아이가 기형이거나 불구일때 상 품에 대한 가치로 판단한다면 유기시킬 수도 있다. 부모의 사랑이 산고의 고통이 없이 얻은 자녀로 기형일 경우 사랑으로 그를 키울 수가 없을 것이다. 여섯째로 부모됨의 개념, 가치가 흔들린다. 부모 로서의 의미의 일부를 일을 수 있다. · 사적인 견해에 의한 문제점은 신학적인 것이다. 잉태의 고통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이 주신 벌이요, 의무이다. 이러한 고통 없이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 행위이다. 근친상간은 골육지친과의 통혼을 막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다.
4.인공수정의 윤리적 판단
A.남편에 의한 인공수정(AIH):ok 반대할 명분 無. 하나님“생육번성하라”
(cf.출4:11 누가 벙어리를 만들었느냐:->명령아닌 서술문이다 TX-치료하셨다)
B.제공자에 의한 인공수정(AID):adultry by proky간접간통?=NO-성행위가 無 성욕도 수반 無 반대할 뚜렷할 명분없다(양자입양도 하는데--) 독신자에게 해당되는 것 아니다.
성경:고전7:39 비신자와 결혼을 권유하고 있지 않다.
고전7:12 비신자와 결혼을 금지하지 않는다.
But 아버지 없는 가족은 장려되어야 할 모델이 아니라 가능하면 피해야 할 비극이다.
C.대리모:자궁을 고용하는 것(womb for hire) 복잡하다:생물학적 母는 모성본능이 있기에 아이를 포기하면서 심리적 고통을 느낀다. 이론적으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으나 실제로는 여러 문제 야기 감정문제 무시할 수 없다. 양자입양이 바람직하다. 편의에 른 대리모는 분명 잘못이다.
母, 아내 빌릴수 無 (매춘 때문에)
D..시험관 수정(Test tube babies) IVF
-많은 태아들이 낭비할 수밖에 없다. 많은 희생 수정관 죽이는 것. -도덕적으로 문제있다.
결 론
1.인간이 태어나기위해서는 난자, 정자, 그리고 모체자궁이 필요하다 1993. 6. 일본불임여성은 부부합의아래 타인의 난자를 받아 임신케하여 출산을 하였다 이때 이아이의 부모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2.타인의 모체를 빌려서 잉태하는 대리모산업이 미국등지에서수익성이 높은산업으로 유행하고 있다 또한 체외 수저은 유전성질환을미리조사하여 사전에 유전병아이의 출산을 방지하는 효과도 가져오고 있다 이런것이 성행하고 있다
3.문제점들;(1)대리모에서 출생한 아이가 과연 누구의아이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에서는 때로 대리모들이 아이인도를 거부하는 사태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장애인을 낳을경우에는 서로 아이의인도를 거부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2)수정란을 진단함으로 보다 완벽한 아이를 선택 출산할수 있다 그러나 과연 생명의 선택권이 인간에게 있는지 그런자격이 있는지 생각해볼일이다 미리 장애자를 제거한다면 장애자의 살권리를 미연에 말살시키는것이다 또한 남녀 자연의 성비가 파괘되어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시킨다
4. 생명은 풀기 어려운 인간의 중요한 문제이다 의료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것은 곡 필요한 상황에서만 윤리적문제를 야기시키지 않는 한도내에서 활용되어야한다 윤리적하자가 없는 특별상황에서만 사용될때 과학의료기술의 가치는 보전될것이다
XII. 뇌사 및 장기이식, 유전공학
1. 뇌사를 인정해야하나?
찬성;*환자에게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살 가망이 없는 사람을 위해 불필요한 부담을 감소시킨다.
*뇌사자의 장기이식으로 다른 생명을 구할수가 있다.
반대;*피가 흐르고 숨이 있는한 죽은자로 볼수 없다.생명은 신성한것이요,천부저인 것이다 함부로 죽일수 없다
*뇌사자의 장기이식은 또 다른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한다 죽지 아니한 뇌사자의 장기거래등으로 생명경시현상이일어난다
*현대의학으로는 완전한 뇌사판정의 결과를 신롸할수가 없다. 뇌사자로 판단된 후에도 소생한자도 있다.
2.장기이식:성경적으로 타당하다, 요15:13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사전동의가 있어야 한다 -장기제공자의 건강에 이상이 없어야 한다(뇌사자 外)
-뇌사자는 완전뇌사상태가 확인이 되어야 한다.
장기기여 좋은 일이나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어서는 안된다(고전6:19-20)
장기이식이 가능한 경우; James Nelson 의 표현
-장기이식이 최후 수단인가? 다시한번 생각하라-일차적의도가 환자의 복지에 있어야한다 -자유로운 동의가 있어야한다 -무고한이들(환자가족,장기기증자)을 보호해야한다
-비례의 원칙;환자가 치료받는비용보다는 능가하는 유익이있어야한다 -수요공급이 문제;누가 유익을 받아야하며 그대상을 어덯게 결정해야하나? 장기제공자수가 적다
*.냉동보존술:꼭 해야 하나? 생명되찾는다는 보장이 無(요5: 고전15: 계20:)->하나님만이
사람을 전제로 되돌여 보낸다. 롬5:12 히9:27 하나님은 죽음을 정함. 시90:10
명에 한계:죽음을 인정해야 한다.
*인공장기 문제. 인공심장 , 돼지심장. 유지비문제등 새로운 생명윤리 설정해야한다 성실하게접근하라 삶은 개선되고 인류의 생존을 추구하게 되리라.
3. 유전자 공학의 응용과 위험들 가와우에
(1). 응용분야;- 식물품종개량, 시기단축(품종개량으로) 신종품개발, 의약품생산. 폐유,세제를 먹는 세균개발, - 디엔에 조작으로 암의 원인 규명 치료. 유전병진단 가능함
- 유전병을 정상적인 디엥에 삽입으로 치료가능, 동물실험에는 성공함
- 의약품 원료 펩티드의 대량생산, 단백질 대량생산 가능
(2). 위험; 1975년 일본등지에는 유전자공학 안전기준을 설치
-디엔에 제조과정에서 유해한 바이러스 발생우려. 감염위험성.
-우연히 발생한 생물이 생태계에 들어가서 생태계를 파괘할 가능성도 있다
-범죄에 이용할 가능성도 있다 사회윤리문제를 야기시킨다
XIII. 복 제
1 정의
복제(cloning)라는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생식’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생식은 생물이 자신의 종을 영속시키려는 목적으로 자신을 복제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복제라고 하면 유전학적으로 동일한 개체들이 생성되는 과정에서 적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이 생식에는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이라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다음에서 우리는 두가지 방법을 살펴보자.무성생식은 단일 어버이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자손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무성생식은 주로 박테리아나와 비루스 같은 단세포 생물들이 자체의 몸을 2개의 동일한 개체로 분열하여 자손을 종속시키는 방법과 과수나 꽃식물같은 식물의 줄기를 접목시켜 또 다른 많은 개체를 만들어내는 접지(scion)의 방법이 있다.
유성생식은 주로 고등식물과 동물, 사람의 경우에 해당한다. 이러한 고등생물들은 특수한 생식세포(성세포)의 결합을 통해 배우자와는 다른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내는데, 이러한 생식방법을 유성생식이라 한다. 유성생식에 필요한 특수한 생식세포는 정자와 난자이다. 고등식물과 동물, 사람에게는 생식세포 외에 또 다른 세포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체세포라고 한다. 체세포는 생식세포 이외의 세포들로서 몸의 여러가지 조직기관을 구성하는 세포로 세분화된다.일반적으로 고등생물과 인간의 체세포는 생식과는 관련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동물이나 사람에게까지도 무성생식이 가능하다는 이론이 나타났다. 동물이나 인간에게 적용되는 무성생식이란 각각의 체세포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동물과 인간에게 적용되는 무성생식의 방법은 어떠한가? 우선 체세포의 발달 초기 단계에서 배자(embryo)로부터 핵을 취한다. 그리고 그 취한 핵을 아직 수정되지 않은 난자가 가지는 핵 대신에 이식을 시킨다. 결국 수정되지 않은 난자의 핵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체세포의 핵을 이식시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무성생식의 방법을 인간에게 적용하면, 생식세포(정자와 난자)간의 결합 없이도 체세포를 소유한 인간과 유전자적으로 동일한 인간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것을 인간복제라고 하며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인간을 복제인간이라고 한다.
2. 인간복제의 사례
무성생식을 이용한 복제 실험을 시도한 것은 영국에서 처음으로 실시했다. 1961년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고든(Gordon)은 개구리에게 복제실험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그는 개구리에게는 복제가 가능하다는 실험 결과를 얻어냈다. 그의 실험은 다음과 같다. 우선 올챙이의 내장세포로부터 DNA를 추룰하여 핵이 제거된 개구리의 미수정란에 이식하였다. 이식의 성공으로 복제개구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같은 복제의 성공은 포유동물의 복제에 관한 연구에도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로 1981년에는 최초로 포유류를 복제하는데도 성공하였다. 스위스 제네바대학의 일멘세(Karl Illmensee)와 미국 메인(Maine)주의 바 하버(Bar Harbor)에 있는 잭슨스(Jacksons) 실험연구소의 홉(Peter Hoppe)는 세마리의 쥐를 복제하는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구소련의 과학자들은 맘모스를 복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맘모스의 시체들을 녹여서 살아있는 세포를 떼내어 코끼리의 난자에 이식하여 맘모스를 복제하려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 실험이 성공되면 인간의 경우에도 적용이되어 인간의 복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인간복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이 문제는 미래에 있을 경우를 가상하는 정도이다.
3 인간복제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
이상의 몇가지 복제의 성공들은 인류에게 커다란 유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복제가 성공하면 여러가지 또다른 유익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복제에 관하여 이러한 유익론을 주장하는 사람 중에 대표적인 인물은 앤더슨(Kerby Anderson)이다. 그가 주장하는 인간복제의 유익은 다섯가지 정도가 된다. 다섯가지의 유익을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는 “생물학적인 불사불멸이다”. 이것은 한 세대 이상 동안 주어진 유전자 형을 보전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두번째로 유전병을 막아준다. 예를 든다면 결혼상대자가 유전병 열성인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런경우에 무성생식을 하게 되면 아기는 보균자만 되고 질병에는 영향받지 않는다. 세번째는 무성생식이 사회적 실험에 적용될 수 있다. 즉, 유전과 환경의 중요성에 관하여 과학자들 사이에 계속 논쟁이 되고 있는데 현재까지 유전의 절대적인 주장을 할 수 없는 것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네번째로, 복제는 쌍둥이의 경우에서처럼 유사한 다른 복제들이 서로 친밀한 의사소통을 경험할 수 있다. 다섯번째는 개선된 장기이식에 사용될 수 있다. 현재의 장기이식은 개인의 신체적 특성에 따라 까다로움이 많다. 그러나 무성생식을 이용하면 별 어려움 없이 기관을 좀더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유익 외에도 몇가지 유익이 더 있다. 인간형태의 효소를 식물에서 생성할 수 있다. 그리고 동물들이 좀더 지각이 있게 될 것이고 단조롭고 더러운 일들의 처리를 위해 투입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면역학의 연구, 암연구, 노화연구 그리고, 가축학의 영역에서 상당한 유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4. 인간복제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
앤더슨의 주장과는 다르게 부정적인 측면에서 인간복제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크게 세 분야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세 분야의 문제점들이란 과학적인 문제들, 사회적이고 법적인 문제들, 윤리적 신학적 문제들이다. 첫번째 과학적인 문제이다. 인간복제가 과학적으로 가지는 문제는 무성생식에 의한 복제가 유전자의 다양성을 지속시킬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자손을 남길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유전병 치료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유해한 유전자 수를 증가시키고 유전병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두번째는 사회적이고 법적인 문제들이다. 인간복제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생산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생산은 그들을 누가 돌볼 것인가라는 사회적인 문제도 야기시키게 될 것이며, 각자의 고유한 인격성을 어떻게 찾을것인가의 문제도 파생될 것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법적으로는 유전적 기증자의 특허권 문제와 인간성의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를 한다.
세번째는 윤리적 신학적 문제들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어지는 윤리의 문제는 인간의 출생과 관련되어 있다. 부모간의 성적인 결합에 의해 탄생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복제인간들은 부모의 가치를 위협하고, 결혼을 통한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위협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보다 더 중요하게 대두되는 신학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부여하신 질서의 파괴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창조사역에 인간의 과학기술이 개입하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위배하는 죄성을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즉 복제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극단적인 양상을 보이는 사람도 있는데, 그 중 도명술은 목회와 신학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다.
“현재의 생명과학 기술로는 복제인간을 생성할 수가 없다. 또 인류의 가치관으로 볼 때에도 해야 할 아무 이유가 없는 것이다. ····· (중략) ····· 그러면 현시점에서 복제 인간의 실현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도 아닌데 왜 사람들은 복제 인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며 기사화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복제인간도 가능하게 되었는데 불임 및 유전병을 치료하겠다는 목적으로 시행되는 윤리적 문제가 무엇이 문제인가 하고, 관심의 초점을 흐려 놓는 사탄의 계략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은 오히려 이와같은 현실적인 윤리적 문제로 돌려 생각해야 겠다.”
5. 결 론
몇년 전 사람의 수정란을 복제하는 실험이 세상에 알려지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마침내 복제된 배자(胚子)를 폐기처분하기에 이르렀다. 배자복제는 수정란의 복제기술로서, 일란성 쌍둥이․세쌍둥이등의 출생과 생물학적으로 유사한 수준인데 비해 영국 윌머트 박사팀에 의한 복제 양 '돌리'의 탄생은 수정란이 아닌 성숙한 양의 몸세포로부터 한마리의 완전한 양을 발생분화시켰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로부터 이브를 만든 것과 가장 유사한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얼굴도 없고 개성도 없는 양의 복제와 인간의 복제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이 인간임은 그 모양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마음에 있다. 인간의 자유로운 마음은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성장환경과 경험에 의해서 크게 좌우된다. 복제인간 제조기술로 나와 동일한 '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왜 인간복제에 대해 흥미를 가질까. 장기이식에 의한 생명의 연장 내지는 자식보다는 유전학적으로 자기와 동일한 대리인을 만들어, 릴레이 형식으로나마 생을 영속시키려는 이기적 본능 때문이 아닐까. 복제인간 제조기술을 이용해 베토벤이나 아인슈타인을 양산하고 싶은 유혹도 있지만 동일한 기술로 독재자 네로나 히틀러를 대량생산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과연 인간이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인가. 외모는 비슷하지만 개성이나 생각이 전혀 다른 복제인간 '나'사이의 촌수는 어떻게 매겨야 할지? 나의 아내와의 관계는? 나의 아들이나 딸과의 관계는? 끝으로 만약 복제인간이 보편화되었을 때 현재 58세인 내가 20세인 복제된 '나'의 젊은 몸에 '목바꿔치기' 수술을 해 보고 싶은 충동을 과연 억제할 수 있을지 염려된다.김정한 교수(연세대 생명공학) 유전자 복제: 비도덕적이다.
반대이유:(1)하나님을 희롱하는행위이다. 인간은 생명의 창조자가 아니라 관리자이다.
생 명복제는 바벨탑처럼 인간의 오만과 교만의 극치(창11:1-2)이다.
(2)쌍둥이, 불가능한 인간들 등 예기치 못한 심리적 사회적 문제 야기시킨다.
(3)하나님이 정해 놓으신(母자궁내 수정) 증식수단을 무시한다.성의 존엄성에 대한 부정이다(창1:28, 히13:4)
(4)자기와 동일한 인간을 만들어 죽을수밖에 없는 운명을 회피하는 또다른 방법이다.
X IV. 환 경 윤 리
매년 스토트랜드만한 면적의 열대살림이 사라져간다. 인도는 원래 삼림의 85% 상실했다. 20C 개발도상국들은 전체 삼림의 50%이상 파괴된다. USA人77% 어린이90%목 속에는 안전 기준량 이상 납이 들어있다. 1만명 이상 농약중독으로 사망 USA人 5pound/day쓰레기 버린다. 4만명이 농약중독으로 질병 앓고 있다.
1.유물론적 환경관
-기술을 현명하게 이용함으로 환경을 통제할 수 있고 빈곤을 정복하고 질병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인간능력에 대한 무한한 낙관론
-무신론, 세속적 인본주의가 그 철학적 바탕이 되다.
-)자연이 풍부한 자원을 갖고 존재한다. 에너지는 창조되지 않는다. 물질세계는 영원
문제:세계 자연은 영원하지 않다. 자원은 고갈되고 자연은 파괴된다.
2.범신론적인 환경관 : 자연이 신이다. 신비주의 자연숭배
(1)자연은 하나님의 현현일 뿐 아니라 살아 움직인다. 자연속에는 영혼이나 생명이 있으며 들어가 있으므로 자연은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문제:자연은 기계도 아니고 신도 아니다. 범신론과는 창조와 현현을 혼동하고 있다. 자연은 하나님의 피조물로,하나님의 반영이지 하나님자체가 아니다.(조각 조각품)
(2)자연은 살아있다:자연은 살아있지 않다. 무생물도 있다.
(3)모든 종(생물)은 하나님의 현현이다:종이 신격화 될 수 없다.
(4)인간과 자연은 하나이다. 따라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문제:조화와 동일시를 혼동하고 있다. 자연과 협력 자연과 하나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현상대로 창조됨 자연, 생물
(5)우리는 자연을 지배하는 왕이 아니라 자연의 종이다. 지배권이 無, 자연은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다. 지배대상이 아니라 겸손해야 한다. (돌고래 생존률>인간)
문제:지배와 봉사라는 이분법에 입각해 있다. 훌륭한 지배자는 자기백성을 섬긴다.(막10:15, 빌:5-8)예수
지배와 곧 파괴라는 관념은 가정에 불과하다. *창1:28지배권 뿐 아니라 땅을 가꾸고 경작 보호하라는 명령도 받았다. 地=한나님의 정원, 人=하나님의 정원사 땅주인=하나님(시24:1) 우리는 돌보는 자.관리인이다
3.기독교의 환경관
(1)세계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다.(창1:1).시99:1,딤전4:4 물질세계는 훌륭하며 창조자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다.
(2)하나님은 세계를 소유하고 있다. 시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욥14:11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것이니라 (시50:10,12)삼림의 짐승들과
(3)세계는 하나님의 반영이다. 물질은 선하다. 좁은 것이다.(창1:4,10,12,18,21,25)
“보시기에 좋았더라” 자연세계는 하나님의 영광의 반영이다. 시139:7-12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4)세계는 하나님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히1:3 예수는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거 계신다.
시104:10-14 예수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들의 각 짐승에게 마시우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매 하나님은 자연세계에 생태학적으로 간섭하고 있다.
하나님은 손은 폭풍우, 번개, 비 속에서 볼 수 있다(시77:17-18),바람 어둠 산 드신다(암4:13), 그 큰 힘을 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행17:28)
(5)세계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다. : 노아 대홍수 심판후 모든 생물과 언약(창9:16) 무지개:홍수로 멸망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과 생물 언약관계 맺다. 따라서 우리는 식물 동물을 보호:보존할 의무가 있다. 하나님은 참새까지 관심을 가지신다(마10:29) 잠12:10의인은그육축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6)인류는 환경의 관리자이다. : 하나님=창조자,소유자 인간은 관리자, 청지기이다.
1).번식시켜야할 의무가 있다(창1:28)“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인류에 대한 것이지 개인에 대한 것 아니다(마19:11-12, 고전7:8) 인구증가시키는 것이지 인구과잉을 말하는 것 아니다(과잉번식_멸망?)
2).지배의 의:인간은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을 부연 받았다.
정복(kabash)=짓밟거나 종속시키는 것자연에 대해서는 일정한 형태의 통제나 강제를 의미(자원을 잘 활용하여 유익되게하고 영광 돌리게한다) 지배(radah)=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것 (잘 관리한다)
人:자연을 지배하는 위치 자연의 일부인 동시에 자연과는 별도 존재
3).자연의 관리자가 되라는 명령! 자연을 보살피라 경작한다(abad)=섬긴다 보살핀다(shamar)=관리한다,관리하고 보존한다 지배자이자 종 섬기는 자=모순? No! JX는 섬기는 지배자이었다.(막10:45 빌2:5-8) 히13:7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라 벧전5:2 양무리를 치라 벧전5:3 양무리의 본이 되라
4 성경의 교훈들.
(1)선한 청지기가 되라:고전4:2 맡은 자에게 구한 것은 충성이니라
(2)안식일에 휴식취하라 출23:12 짐승까지,(안식년-토지까지)-생산성 향상제고
(3)토지의 휴식:생태계의 보존 地力회복 토지남용방지(출23:10-11)
(4)희년의 율법:레25:23 토지는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이니라
토지의 소유 집중방지 토지 착취방지
(5)수확에 관한 법:레19:10 곡물 벨 때 밭모 줄이지 다 베지 말고
출23:10-11 안식년에 토지경작금지 사림의 탐욕에 의한 토지남용방지
(6)위생에 관한 율법:레13-14 음식물 손 일상용품 청결유지 명령 레13:52 오염된 의복 불살라야! 레14:43-45 오염된 집은 불살라야 신23:13 더러운 오물등은 땅에 묻어야! 레11:45-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7)전쟁에 관한 것:전쟁 중에도 환경파괴말라 신20:19-20 도끼로 그곳의 나무를 작벌하지 말라. 시24:1 욥41:11
(8)토지에 관한 욕심금지:시50:12 세계와 거기 충만함이 내 것이니라(시150:12)
사5:8,10 가옥에 가옥을 연하여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 진저
5. 기독교를 비판하는 이론들
(1). Lymn white Jr "우리의 생태학적 위기의 역사적 뿌리“
창1:28 ‘정복’ 지배권 장악의 연념 때문에 자연은 파괴되었다.
베이컨 Ndrum Organum 126 "하나님 때문에 받은 자연에 대한 권리를 되찾아 그것에 힘을 쏟게 하라“
대답:기독교가 현대과학의 母, 기술이 기독교 반영으로 출현한 것 사실
*베이컨도 “자연에 대한 권리행사는 건전한 이성과 참 종교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라 고 언급
*자연파괴는 유물론적 세계관이다-자연자원이 무한하고 에너지는 무한하다고 생각
기독교의 지배권은=관리권이다, 착취,파괴가 아니다.
기독교인도 어느 정도까지는 他人과 같이 각 시대에 사로잡혀 있고 어느 정도는 물질주의적이다. 성서의 계명의 본뜻을 모르고 불순종하고 있다. 기독교 자체는 환경파괴에 책임이 없으나 기독교인은 책임이 있다. 기독교 세계관의 문제가 아니라 성서적 세계관대로 보람차지 못한 기독교인이 어느정도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범죄-人은 죄인(하나님 사람 자연에게) 하나님이 만든 환경에도 범죄=하나님께 범죄
우리가 지구를 돌보지 않으면 지구가 우리를 돌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구, 자연의 보호자가 아니면 점점 나는 내 형제의 보호자도 아니다. 나의 지구는 내 형제, 내 자손의 지구이다 따라서 지구보호 아니하면 내 형제, 내 자손 보호하지 않는 것이다.
6.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한 근본원인.
(1) 더 많이 소유하고 향락하려는 현대사회의 가치관 (2) 세계 열강들의 경제 군사 정치 확장 욕망
(3) 자연과학기술 만능사상의 팽창 (4) 하나님이 없는 죄진 인간의 탐욕이 근본원인이다
*환경 10계명*
1. 하나님만을 섬기며 청빈하게 산다(마6:24). 물욕을 버리고 선한 청지기가 되자. 이웃과 자연을 위해 기도하자.
2. 경건한 신앙생활을 한다(딤전 4:7-8). 주일을 거룩히 지키자. 가정예배를 드리자.
3. 절제하는 생활을 한다(벧후 1:5-7).물자와 에너지를 아껴 쓰자. 시간에 쫓기는 생활을 하지말자.
4. 가난한 이웃과 나눈다(마 25:40; 잠 19:17).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자. 이 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자.
5. 남녀가 서로 돕고 존중한다(갈 3:28). 살림을 온 가족이 함께 한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자.
6. 자연과 친숙해진다(시 11:6-9).자연친화적인 생활을 하자. 자연과 농촌을 사랑하는 교회가 되자.
7. 작고 단순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마 18:3-4). 상업주의에 현혹되지 말자. 의식주를 검소하 게 하자.
8. 불편함을 즐기며 부지런한 생활을 하자(잠 10:4).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자. 일회용품을 사용하 지 말자.
9. 더러움과 친해진다(막 7:15-16). 지나친 청결을 지양한다. 가정내에 화학약품 사용을 줄이자. 10. 생명길 좁은문 운동의 전도자가 되자(행 1:8). 내가 먼저 실천하자.환경문제를 배우고 가르치자.
** . 재 활 용
1.세계각국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있다 1인하루쓰레기양 ;한국2.1 독일0.7 일본 0.8 미국1.0KG 매년8.4%증가
2.한국 1년 버리는 일회용제품; 종이컵 28억개 280억원 썩는데 20년 소요
알미늄캔 54억개 463억원 100년
컵라면 4.2억개 126억원 500
종이귀저기 6억개 1260억원 100
알미늄접시 4억개 60억원 50
플라스틱음료수병 7억개 525억원 100
3.1990년 1일 전국 종이쓰레기 11,870톤 포장용쓰레기가 58% 1991년 현대백화전 뇬 20억원 포장비소요.
4.쓰레기가 쓰레기를 만든다 쓰레기같은 마음들을 고쳐야한다 재활용을 더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포장않하기운동등으로 환경문제를 실천해 나아가야 한다
** Please Let me hear soon ! God
나는 너희에게 날마다 밝은 빛을 비추어 내마음을 알려주나 너는 깨닫지 못하는구나
미풍과 산들바람을 불게하여 내 다정한 음성을 듣기를 바라지만 너희는 모른척하는구나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려주어 천국의 음악을 들려주건만너희는 귀를 귀울이지 않는구나
때로는 큰빗방울과 천둥을 내려 너희관심을 끌려고하지만 너희는 무감각하구나
저녁때 고운 석양과 밤의 별들로 윙크하게 하였으나 너희는 관심이 없구나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이 너를 비추이듯 너를 보호해 주건만너희는 아무 감사도 모르는구나
너희가 피곤에 지쳐 밤에 잠을 자고나면 새날을주고 나를따르기를 바라나 너희는 너의 욕심대로만 살려고하는구나나는 너희에게 외아들까지 주어 너희생명을 구하고 나의 축복을 받으라고했으나사람들은 너무 내 사랑을 몰라주는구나 나는 너희의 목자가 되어서 너희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목자가 되려하나너희는 나를 목자로 받아들이지 않고 네생각대로 네길을 가는구나 사랑하는 내자녀들이여 부디 들려다오 네 순종의 음성을, 사랑의 음성을 나로 듣게하라제도등에 영향을 받는다
# 환경문제
1.자연에 대한 극단적인 견해들;
(1) 진보주의;(경제주의);과핛기술만 발달하면 환경문제 해결된다
(2) 어머니 지구론;토인비; 인간은 자연의 아들이다 자연에서 나와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3) 인간 부분설; 인간은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
(4) 대여론; 현재환경은 자손들에게서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빌려쓰는 것을 무시한다)
(5) 환경론적 환원주의; 성경의 모든 예언은 환경과 관련되어있다. 그렇게해석한다 계16:3-4
2. 성경의 가르침
(1) 자연의 소유권은 하나님에게 있다 (시8:6-8)
(2) 인간은 자연을 보호하고 관리할 책임이 주어져 있다 창 1:28
(3) 인간이 타락한후에 인간은 탐욕에 기인하여 자연을 파괘시켰다.
(4) 자연황굥파손의 회복노력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주님의 재림으로 새하늘과 새당이 도래할것이기 때문이다
* 골1:17, 엡1:10, 4:10 계21;2 모든피조물의 구원을 언급함. 이세상을 더나 내세영복. 요3:31 15:19, 6:44, 12:32 히11:6 12:22. 이둘의 이중성의 조화방법은 그 누구도 모른다. 다만 개인주의 구원관은 이웃과 다른 피조계에 대한 관심을 통해서 더욱 완전해져야한다
XV. 경 제 윤 리 :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시고 인간에게 복을 주셨다는 이 말씀 속에서 경제 기본 원리가 있다. 인간은 창조주가 창조한 그 창조물을 소유하면서 살도록 창조 받은 존재이다. 결국 인간의 모든 소유물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내에서 소유하되 하나님의 것을 소유하는 것 뿐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에서 인간이 쓰기에 편하도록 제작되어지는 것을 제품이라고 한다. 이것으로 인간은 그의 필요를 채우고 그의 물질 욕망을 충족시키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그의 물자환경에서 만들어 내는 이런 만물인 제품을 소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면서 살고 있다. 결국 물질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적절한 노력의 댓가로 물질을 소유하고 모든 사람을 위한 적절한 분배의 경제 활동이 이루어져야하는 것이다.
물질의 사용은 하나님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행해져야 한다. 과소비나 낭비적인 요소를 없애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남을 돕는일에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용해야한다. 또한 죄 짓는일에 사용되지 않도록 하자. 가정의 행복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이 행복을 가져다 준다.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죄를 짓지 말고 많은 물질을 얻도록 기도하며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많은 것을 주셨을 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자. 시내산 카페:이명진목사칼럼 중 < 돈 돈 돈버는 기술, 돈쓰는 예술> 참조요
XVI. 자살 문제
지난해(2002년도) 자살자는 1만3055명으로 교통사고로 숨진 7090명보다 1.84배나 많았다. 교통사고 사망자는 하루에 19명인 반면 자살자는 하루 36명 꼴이다.자살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가운데 5위에 이를 만큼 자살이 많다.그러나 정부는 교통사고에 대해선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자살에 대해선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자살을 개인 문제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사회 병리현상으로 인식하고 올바른 접근과 이해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왜 자살하는가=사람들은 애정,건강,진로,경제문제,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주위 사람
의 지나친 기대 등 다양한 요인에 쫓겨자살이라는 벼랑끝으로 몰린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자살 요인은 다양하지만 자살자들의 60% 이상이 정신과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이 가운데 우울증 등 기분장애가 가장 많으며 정신분열증과 알코올 중독 등이 뒤를 잇고 있다.팜트리 신경정신과 김선재 원장은 자살은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에서 발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처럼 정신의학적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개인 문제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속에 적절한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40초마다 1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이 땅에 생명 경시 풍조가 팽배해 있다 자살에 관한 사회적 경각심을 촉구해야 한다.
생명 존중의 대안으로 사랑할 대상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살아갈 용기와 힘을 갖게 된다 하나님 이웃 가족 자신 교회를 향한 사랑이 있으면 인생은 충분히 살 만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총 결 론
A 기독교 윤리의 원리와 목표
1. 하나님 성품을 닮아 가는 것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 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벧전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 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하셨느니라"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B. 그리스도인에게 윤리가 왜 필요한가?
1. 인간은 본질 적으로 윤리적 존재로 창조 되었기에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 라 하시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졌기에 인간은 윤리적 존재가 되었다
2. 참 신앙은 반드시 도덕적 선행을 가져오기에
(마7:21-27)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3. 윤리적 삶은 우리에게 질서 평안 행복 편리함을 가져다 주기에 좋은 습관이 행복한 삶을 만든다
C. 왜 바르게 살지 못하나?
1. 인간 내부의 죄성 부패
2. 믿음과 신앙이 분리되어 있기에 거짓 믿음 소유
3. 인간의 존엄성 상실로 윤리 부재 초래 가치의식이 전도 물질 위주
D. 어덯게 해야 윤리적 인간이 되나?
1. 마음이 소생되어야한다 신앙부흥운동의 결과의 자연적 필수적 결과는 도덕적 변화이다
도덕 운동 펼쳐 성공한 일이 없다 18세기 존 웨슬레이 신앙부흥운동으로 영국 사회가 변화되다 19세기 화이트필드 에드워드 대 각성운동으로 미국 사회가 변화되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품이 바뀌어져야 한다. 말씀을 행동 기준으로 삼고 실천할 것
2, 바른 가치관 확립 배타적 가치(돈 재물)보다는 포괄적 가치=지식 사랑 추구
** 윤리적 실천 운동 도덕 실천 사항
1. 예배 질서 2. 물질 생활 절제 검소 정직 3. 환경 보전 4. 근면 노동
5. 생명 순결 운동 6. 사회질서 사회 윤리(책임윤리, 개인윤리는 동기윤리이다) 운동 지금은 사회 윤리가 중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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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40 구체적으러-구체적으로 3-10-66 이를 -이는 3-31-13 규뷰칙자체가- 규칙자체가
3-44-31 일벌배계-일벌백계 3-46-5 절대족으로-절대적으로 4-2-47 곳은-것은
4-18-39 이라시토틀-아리스토틀 4-21-20 경험학수있는-경험할 수 있는
4-39-80 당위의학이다-당위의 학이다 5-10-45 개인의 사회에-개인이 사회에
5-12-29 마음가짐등니-마음가짐등의 5-14-82 생갓-생각 6-1-21 있는은-있는
6-44-81 우용성-유용성 6-45-26 거이다-것이다 7-2-50 않-않다
7-30-42 d에 대하여-이에 대하여 8-1-50 직면해서-직면해서도 8-35-7 단게로-단계로
8-43-18 이을수 있다-있을수 있다 9-10-81 못함는-못하는 9-15-68 성질-성질이다
9-18-60 가치과는-가치관은 9-20-7 원리러ㅗ-원리로
9-31-56 상반되는 가치관-상반되는 가치관으로 10-21-1 - ㅅ 그는 - -그는
11-3-40 경ㅈ 및-경제 및 10-5-40 다른 ㅓ 의무수행을-다른 의무 수행을
15-24-52 소홀이-소홀히 16-12-37 한다느 -한다는
** 19-15-16 부터.......19-16-30 생략 ; “주 5일근무제는 잘못된 것이다... 합당한 조치가 아닌즐 안다 ” 생략함 : 주5일근무제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으므로 생략바람
20-24-56 상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21-5-39 안되는- 않되는
21-38-49 의무-의무등이다 21-46-9 비인간적-비인간적이다 21-46-18 포로-포로를
21-46-48 징집-징집도 비인간적이다 22-13-72 한정도 있기에-한정되 있기에
22-26-63 도는 -또는 23-1-3 프러레타리아-프로레타리아 23-45-18이런경향-이런경향으로 흐른다
** 24쪽 모든 ㅁㅁ 는 다 “ 으로 고칠 것
25-16-59 사할의 행위와는 -사활의 행위와는 25-22-9 사형부할론-사형부활론
25-41-59 마들도록하여-만들도록하여 26-3-34 구렇다고-그렇다고 26-4-1 정덩허게-정당하게
26-32-20 대햐-대해 37-12-32 샹활하는-생활하는
37-15-34 자기도취성 과학대성음란증-자기도취성과 학대성음란증
37-15-66 연관-연관되고 있다 37-27-17 범죄자르르 감옥에-범죄자를 감옥에
37-35-17 사형애=사형에 37-35-50 바우은 -바울은 38-15-71 처오년드에게-청소년들에게
38-9-61 됮 않아 -되지 않아 38-15-52 성인전용극실시등으로-성인전용극장 실시등으로
39-18-5 주장 pletcher-Pletcher가 주장하고 있다
**40-35, 36줄은 생략할 것“본 연구에서는 낙태에 대해.........윤리적 판단을 시도하였다 ” 생략할 것
** 41-35-51 정죄할 수는 없다고 여겨진다 - 정죄여부를 속단할 수 없다
** 41-37-38 적용활수 있다-적용할수 있을까? 41-40-38 맡겨야 한다-맡겨야 하지 않을까?
** 41-40-70 강요할수 없다 - 강요하기 어렵다
45-29-25 269.270 에 의해-에 의해 45-29-31 처벌을 -처벌은
46-28-61 죄가 없느니를-죄가 없는 이를 48-29-46 통하지 안고-통하지 않고
51-22-62 수용공금이 문제-수요공급이 문제 51-38-31 있더-있다 57-31-24 자연의늬-자연의
57-44-38 이중성이-이중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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