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3:1-14
찬송: 513장
제목: 광야의 외침
목표: 광야에서 외친 세례요한의 음성을 듣고 좋은 열매를 맺으며 살게한다.
얼마전 지하철을 타려고 잠실역에서 걸어가는데 어떤 사람이 혼자서 소리를 지르면서 이상한 행동을 했습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데 혼자 중얼거리듯 소리치는 것을 보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혼자서 소리를 치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임하자 그는 요단강 부근 각처에 다니며 사람들에게 소리치면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가 전한 광야의 외침이 무엇입니까?
1. 회개하라(7-9)
7-9절,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요한은 광야에서 세례를 받으러 오는 무리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 하면서 ‘회개하라’고 강력하게 소리칩니다. 요즘에 이런 소리를 들으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참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세례를 받으러 오는 무리는 그나마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마음에 여유를 잃어가는 각박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칭찬과 격려의 말을 들어도 시원치 않은데 교회에 찾아와서 회개하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새벽에 단잠을 깨워 교회에 나왔는데 평안과 축복의 말씀 대신에 회개하라는 말씀을 들으면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회개할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회개하라는 단어는 왠지 자신이 죄인취급 당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한 후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말로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한 이후에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좋은 열매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시적으로 변화할 수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회개는 아닙니다. 지속적인 변화를 통한 삶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열매없는 회개는 찍혀 버림받는 나무뿌리와 같습니다. 회개를 통해 내 삶의 뿌리가 변화되어야 좋은 열매가 맺힐 수 있습니다.
주님이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셔서 뿌리 채 말라버리는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듯이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의 영양분을 공급받는 나무가 되었으면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회개하고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주렁주렁 맺어 주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사랑하라(11)
11절,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광야의 외침을 듣고 마음이 찔리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할지 구체적으로 질문하자 요한은 두벌의 옷이 있는 사람은 옷이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라고 외칩니다. 사랑으로 나누라는 말씀이지요. 작은 것을 서로 나누며 사랑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좋은 열매는 곧 사랑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성경을 요약하면 사랑이란 단어로 요약할 수 있고 이것을 다시 둘로 나누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위로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사랑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양과 염소를 구별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오른편에 있는 의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하시고 또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시며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대로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며 영벌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일서 4:7-8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가 결국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요한의 외침은 회개하고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면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3. 진실하라(12-14)
12-14절,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회개하고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은 후에 세리들과 군병들이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질문하자 정한 세금만 받고 강제로 돈을 뺏거나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임금으로 받는 돈을 만족하게 여기라고 대답합니다. 직업에 대한 귀천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천대받던 세리들과 미움을 받던 로마의 군병들에게 그 직업을 떠나라고 말하지 않고 어떤 직업을 가졌더라도 자기가 맡은 일과 직분에 대하여 진실하게 일하고 만족하며 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직분이나 직책을 남용하거나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진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얻는 수익에 대하여 불평이나 원망하지 말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고백했던 바울사도처럼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성실히 감당하면서 자족하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례요한이 외쳤던 ‘회개하라, 사랑하라, 진실하라’는 광야의 외침을 듣고 실천하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