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노출/삶자락이야기

행렬속의 생각

하마사 2009. 2. 21. 14:45

어제는 김수환추기경의 장례일이었다.

오늘이 나의 생일이라 하루 차이로 장례와 생일이 엇갈리는 뜻깊은 날이다.

명동성동 주변에는 몇 일동안 길게 늘어선 행렬들로 인해 보는 이들마저 감동의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끝도 없이 늘어선 긴 행렬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구별이 없었다.

지방색도 종교의 벽도 넘어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서 있었지만 새치기나 짜증내는 사람없이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몇 시간씩이나 그 행렬속에 조용히 머물러 있었다.

나도 그 행렬속에 섞여 두 시간이나 기다리며 추기경의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잠깐 뵈었다.

종교는 다른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으로 그분이 누워있는 관 넘어에서 기도를 드렸다.

한 사람이 이렇게도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고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힘과 권력으로 사람을 움직이거나 행렬을 세울수는 있어도 평안한 얼굴로 몇 시간을 서있게 하거나 기쁨으로 기다리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추운 날씨에 인도를 굽이굽이 돌아 서 있는 긴행렬,

가도 가도 끝이없을 것 같던 그 행렬의 끝에 섰을 때의 행복,

한발짝씩 행렬이 움직일 때의 작은 기쁨,

마침내 명동성당 안에 들어가 영정앞에 섰을 때의 짧은 감동,

약 10초간의 짧은 만남이지만 긴 기다림의 후회없는 거룩한 시간,

왜 그분은 이토록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심어주는 것일까?

행렬속에서 생각해보았다.

예수님의 심정으로 차별없이 감싸안아주는 사랑의 마음과

정의의 편에서 약하고 작은 자들의 아픔을 대변하던 정의로운 삶이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과 정의롭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때로는 그들이 외치는 정의가 사랑에 근거를 두지 않는 경우가 있다.

정의를 외치면서 폭력을 합리화하고

이웃을 위하는듯 하면서 결국 자기이익을 챙기고

입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 그들이 욕하는 대상과 다를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만 정의롭게 살면 된다고 하면서 이웃의 아픔은 아랑곳 하지않는 나홀로 정의파들도 있다.

그러나 그분은 사랑에 심지를 내린 정의를 실천했기에 수많은 벽을 넘어 크나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

개신교에도 이런 선하고 아름다운 영향력을 가지신 분들이 많이 계셨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또한 큰 영향력은 아니더라도 주변에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랑과 정의로운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행렬속에 끼어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앞으로 남은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할지를 생각하게 만든 김추기경님의 장례행렬은 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삶을 선하게 변화시키는 전환점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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