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바이러스'에 걸린 그녀
●무주 설천면 송희진씨
택시 손님들에 '홍보'… 자원봉사자 줄이어
지난 2일 오후 전북 무주군청에서 차로 30여분 떨어진 설천면 소천리의 '솔로몬 지역 아동센터'. 학교를 마치고 오후 3시쯤 공부방으로 들어서는 아이들을 공부방 처녀선생님 송희진(34)씨가 맞았다. "배고파요"하는 아이들을 위해 송씨는 간식을 마련하느라 분주하게 손을 놀렸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진평마을 회관 앞에 와달라는 손님의 전화였다. 진평마을은 소천리에서도 버스 왕래가 적은 '깡촌'이라 읍내까지 이동하려면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송씨는 즉시 택시의 시동을 걸고 내달려 손님을 소천리 시장에 내려준 뒤 공부방으로 되돌아왔다.
송씨의 원래 직업은 택시기사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출근해 오전 근무를 마치고 10시쯤 공부방으로 두 번째 출근한다. 그러고는 아이들을 가르치다가도 택시를 찾는 승객들의 전화가 오면 운전대를 잡는다.
- ▲ 택시를 운전해 번 돈으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송희진씨가 지난 2일 오후 전북 무주군 소천리에 있는 공부방 건물 앞 택시 운전석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송씨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잡은 첫 직장은 여행사였다. 하지만 여행사 사무직은 성격에 맞지 않았다.
"서류를 정리하다 문득 고향의 아이들이 잘 배우고 있을까 싶었어요. 무의식 속에 제가 어린 시절 힘들고 어려웠다는 생각이 남아 있었나 봐요."
여행사 생활 6년 만인 2005년 초, 고향 설천면으로 돌아와 택시운전을 시작했다. 그의 꿈은 아이들이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공부방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결혼도 잊고 '엉뚱한 일'을 하겠다는 딸을 이해 못하는 아버지를 며칠 동안 설득한 끝에 그해 가을 아버지가 갖고 있던 건물에 공부방을 열었다.
택시운전을 해서 버는 월 70여만원은 공부방 전기세와 물값, 40명 아이들 간식 값에 전부 쏟아 붓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집에서 쌀을 가져다 간식을 만든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서 수업료를 받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부모님께 '더부살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쏟은 정성은 금방 표시가 났다. 아이들의 태도가 밝아지고 성적도 올라가자 부모들이 조금씩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쌀, 고구마, 감자, 김치 등 형편에 맞게 송씨를 도왔다.
택시를 탄 손님에게 "제 본업은 택시가 아니라 공부방이에요"라고 선전하고 다닌 덕분에 자원봉사 선생님도 조금씩 늘었다. 설천초등학교 선생님이 수학을 가르치겠다고 나섰고 동네 학원 영어선생님도 자원봉사에 합류했다. 중국어를 가르치겠다는 자원봉사자도 한 명 더 늘었다. 식사준비를 돕는 자원봉사자들도 있다. 송씨는 "모두 고마운 분들이지요. 이런 분들이 아니면 이 공부방 운영을 못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3일에는 솔로몬 지역 아동센터에 '축제'가 열렸다. KTF에서 공부방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컴퓨터 9대 등을 지원해 주기로 한 것이다. 온수기도 달고 외벽에 페인트칠도 해주었다. 지난달부터는 정부에서 보조금도 200여만원 나온다. 송씨는 "도움을 주는 어른들 덕분에 아이들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고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라고 했다.
조선일보, 2008/12/4
'교회본질 > 봉사(섬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만 갑부 궈타이밍, 5800억원 기부 (0) | 2008.12.23 |
---|---|
결혼한 아들과 사는 저소득 노인도 생계비 지원 (0) | 2008.12.04 |
80세 '남한산성 할머니' 박춘자씨, 3억기부 (0) | 2008.08.16 |
류근철씨의 578억 기부와 'KAIST 류근철 캠퍼스' (0) | 2008.08.15 |
'얼굴없는 자선' 30년 (0) | 2008.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