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본질/봉사(섬김)

류근철씨의 578억 기부와 'KAIST 류근철 캠퍼스'

하마사 2008. 8. 15. 08:08
[사설] 류근철씨의 578억 기부와 'KAIST 류근철 캠퍼스'
 
한의학 박사 1호인 원로 한의학자 류근철씨가 14일 KAIST에 578억원어치의 부동산과 골동품을 기증하는 약정식을 가졌다. 국내 개인 기부 사상(史上) 최고액이다. 류씨는 살고 있는 서울 송파구 아파트 한 채만 뺀 사실상 전 재산을 내놓았다. "옷은 항상 남대문시장에서 5000원, 1만원짜리를 사 입었다"고 했다.

재산이 많든 적든 모든 부모가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물려주고 싶어하고 가족들도 그걸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게 요즘 세상이다. 류씨도 2남 3녀를 뒀다. 결단을 내린 가장(家長)과 그 결단을 받드는 가족의 모습은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류씨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려면 과학기술 발전이 필수적이고 그 역할을 이끌 곳이 KAIST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KAIST를 선택했다"면서 "그래도 모교인 경희대에 미안하다"고 했다.

류씨는 이번 기부가 선진국에 비해 너무 뒤떨어진 우리 기부문화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고 우리의 희망도 그와 다르지 않다. 그러려면 일생을 바쳐 자신의 땀으로 일군 재산을 더 큰 희망을 향해 선선히 내놓은 아름다운 기부의 정신이 널리 펴져나가야겠지만 받는 쪽 생각과 태도도 크게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거액을 기부한 사람과 기부받은 어느 대학은 약정한 용도대로 기부금을 쓰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최근 소송까지 붙었다.

KAIST는 2012년 충남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들어설 KAIST 세종캠퍼스의 이름을 '류근철 캠퍼스'로 붙이기로 했다. 류씨와 함께 'KAIST사랑 세계화추진위'를 세우고 류씨를 'KAIST 발전재단' 명예이사장으로 모시기로 했다. 류씨가 유일하게 요구한 '과학 유공자·후원자 묘역'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기부자의 뜻을 존중하는 자세가 돋보인다.

류씨처럼 거액을 기부했던 5명의 인사들은 한 달 전 교육부 장관을 만나 "우리 사회가 기부하는 사람에겐 여러 가지로 불편한 사회"라고 입을 모았다. "기부 절차와 세법(稅法)이 너무 까다롭다" "뭔가 이상하게 보는 주변 시선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가족 반대를 무릅쓰고 기부를 결심했는데 받는 쪽은 너무 쉽게 생각하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데도 인색하더라"는 얘기도 나왔다. 정부와 세상 사람들이 새겨 들을 지적이다.


조선일보 사설(2008/8/15) 

입력 : 2008.08.14 2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