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한산성 꼭대기서 20년 번 돈, 배 고픈 애들에게"
- 80세 '남한산성 할머니' 박춘자씨, 3억기부
환갑이후엔 정신지체장애인 데려다 돌봐 - 80세 '남한산성 할머니' 박춘자씨, 3억기부
"저, 거기 아이들 도와주는 데 맞죠. 돈을 좀 넣어주고 싶은데, 계좌번호가 어떻게 되나요. 한 3억 정도되는데…."
이틀 뒤 어린이재단 계좌에 3억원이 입금됐다. 어린이재단 사람들은 입금 당일 할머니가 남긴 주소를 들고 경기도 성남시의 2층짜리 단독주택을 찾았다. 할머니는 "할 말 없으니 그만 돌아가라"며 현관 문을 닫았다.
지난 12일 어린이재단 사람들이 다시 찾아가자 박춘자(80) 할머니는 마지못해 집으로 들였다. 할머니는 허리가 구부정해 155㎝의 키가 더욱 작아 보였지만 목소리만은 카랑카랑했다. 99㎡(30평) 남짓한 거실엔 색색의 종이비행기와 종이학, 할머니 얼굴을 그린 크레파스 그림들이 보였다. 할머니가 자식처럼 돌보며 데리고 살고 있는 7명의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작품이었다.
- ▲ 평생 억척같이 번 3억원을 가난한 어린이를 위해 내놓은 박춘자 할머니(가운데) 가 지난 12일 자신이 20년째 돌보고 있는 정신지체장애인들의 입맞춤을 받고 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선풍기 앞에 앉은 할머니는 "난 한평생 장사꾼으로 살았어"라고 말했다. 20년 전까지 할머니는 남한산성 꼭대기(해발 521m)에서 등산객들에게 김밥과 도토리묵, 닭죽과 삼계탕, 소주를 팔았다. 마흔 살부터 20년간 하루 수십명씩 몰려드는 손님들을 혼자 받았다.
할머니는 "산성 꼭대기까지 짐꾼을 불러 쓰면 웃돈을 줘야 했기 때문에 직접 지게를 지거나 머리에 이고 짐을 날랐다"고 말했다. "한겨울, 한여름이 제일 힘들었지. 겨울엔 짐을 들고 올라가다 눈길에 넘어질 때도 많았고, 푹푹 찌는 여름날에 짐을 들고 가면 어지럽거든." 할머니는 그날 번 돈을 헝겊에 싸서 장작 더미 속에 보관했다.
1929년생인 할머니는 서울 왕십리에 살던 10살 때부터 서울역에서 김밥과 찐 밤을 팔면서 장사꾼 인생을 시작했다. 6·25전쟁 중이던 1951년 남편을 만났으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를 버리고 남편은 후처를 얻었고 끝내 떠나갔다. 홀로 후처의 아이를 길렀지만 그 아이마저 10살이 되자 친엄마에게 가버렸다.
할머니는 "그때부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고 했다. 경부고속 도로 공사현장에 함바식당을 차려, 걸핏하면 쌍욕을 하는 공사꾼들에게 밥을 팔았고, 그 돈을 모아 남한산성에 매점을 낸 것이다. 빈틈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할머니도 그때를 떠올리고는 눈물을 훔쳤다.
할머니는 환갑을 넘기면서 장사를 접고 산성에서 내려왔다. 그 즈음 갈 곳 없는 11명의 장애인 이야기를 듣고, 월 150만원에 세를 줬던 자택 2층을 비우고 이들을 데려왔다. 몸은 20·30대 어른이지만 지능은 5~6세 수준의 여성들이었다. 할머니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아이들'을 세수시키고, 밥 먹이고, 대소변을 치우며 '엄마'가 됐다. 그렇게 산 것이 20년.
2년 전 사재 4억원과 모 기업 후원으로 마련한 이곳으로 옮겨와 지금 장애인 7명과 살고 있다. 할머니는 "내가 죽거든 아이들을 잘 돌봐달라"며 집 명의를 천주교 작은형제회 공동체 앞으로 해놓았다.
할머니는 1년 전부터 머리가 아파 한 달에 한 번씩 종합병원에 다녔다. 집안 일을 돕는 이효순(여·38)씨는 "그때부터 '죽기 전에 이젠 마무리를 해야겠다'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얼마 전 남은 재산 3억원을 기부했다고 하시더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단골 은행 관계자는 "3억원을 '펀드에 투자해보라'고 여러 번 권했지만, 번번이 '이 돈은 따로 쓸 데가 있다'며 거절했다"고 전했다.
할머니는 "그 돈이 배 고픈 아이들, 돈 없어 제때 공부 못하는 아이들한테 쓰였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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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 억척같이 번 3억원을 가난한 어린이를 위해 내놓은 박춘자 할머니.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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