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전 아내의 생일에 나들이를 했다.
후배 목사님이 개척하신 교회를 방문하여 축하하고 식사를 함께 했으며
온천을 들렀다 집으로 오는 길에 유명한 콩나물 국밥집에서 저녁을 했다.
소박한 생일 나들이였다.
물질적으로는 볼품없는 생일일지라도 마음만은 넉넉한 사랑으로 보답하는 생일파티였다.
15년동안 한결같이 곁에 있어주었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기도와 격려로 힘을 주었던 아내이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만났지만 도중에 신학을 하겠다고 했을 때 선뜻 동의해주었고
지금까지 말없이 기도하며 내조해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당시 두 아들의 엄마로서 생계의 문제도 걱정되었겠지만
한번도 앞에서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아내이다.
결혼하여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부터 시동생, 시누이와 함께 좁은 전세집에서 함께 살면서도
어려움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감당해준 아내에게 감사할 뿐이다.
시동생과 시누이를 결혼시키고 가지고 있던 전세금도 시동생 결혼할 때 선뜻 건네주던 아내이다.
또 부모님께는 얼마나 효성스런 효부인지 모른다.
세상에 이런 아내가 어디있을까?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임전도사로 갔을 때 깜깜한 지하방이었던 사택에서 3년을 함께 살면서도
불평없이 잘 감당해준 아내이다.
비가 새고 습기로 인해 벽지는 형편없이 변해가던 지하방의 그 추억은
지하방에 살고 있는 성도님들 가정을 심방할 때면 지금도 되살아나곤 한다.
사택의 형편을 아시는 어떤 집사님이 주신 제습기를 돌리면 물통에 물이 몇일만에 한가득 고이곤 했다.
다음으로 이사를 간 곳은 슬라브 2층집의 2층이었다.
오래된 집이라 여름에는 얼마나 덥든지 옥상에 물을 뿌려 열기를 식히고 잠을 청한 적이 여러번이었다.
겨울에는 보일러가 얼고 고장나서 고생한 일도 많았다.
이런 환경을 거치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살아온 아내이다.
교회가 어려움이 있어 선택의 기로에서 기도하며 갈등할 때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고 나의 결정에 따라주었던 것도 감사하다.
어렵고 힘든 길로 들어서는 결정인 줄 알면서도 바른 길이라면 함께 가겠다는 아내의 믿음 역시 대단하다.
두 아들과 한명의 딸, 3남매의 엄마 역할도 잘 하고 있다.
억센 두 아들을 기르느라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있지만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을 가진 엄마이다.
요즘에 늦게 낳은 딸로 인해 어린이집 보내고 챙겨주느라 더욱 바쁘게 살고 있다.
음식 솜씨도 누구에게나 자랑할 정도이다.
이런 아내를 만나게 하시고 함께 살게 해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드리고 있다.
지금까지 함께 해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내년 생일에는 더욱 멋진 스케줄로 아내를 기쁘게 해 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