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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오바마의 미국, 오바마와 세계

하마사 2008. 11. 6. 09:57
[사설] 오바마의 미국, 오바마와 세계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바마 당선자는 내년 1월 20일 1776년 미국 독립 이후 232년 만에 첫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오바마 당선자는 승리 연설에서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오늘 밤 미국에 변화가 왔다"며 노예 해방을 선언한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빌려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이제야 탄생했다"고 선언했다. 그는 "새로운 애국심과 책임감을 갖고 하나의 나라, 하나의 국민으로 함께하자"고 했다.

미국 대선 결과는 세계가 평가하듯 '미국을 바꾼 역사적 선거'다. 미국의 흑인들은 17~18세기 백인의 노예로 아프리카에서 미국 대륙으로 끌려와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령으로 자유인이 된 지 145년 만에 대통령을 배출했다. 미국 흑인은 1965년 '투표권 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투표 자체도 힘들었던 이류 국민이었다. 그 이류 국민이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의 정부' '국민에 의한 정부' '국민을 위한 정부'의 명실상부한 일원으로 올라섰다. 오바마의 개인사(個人史)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미국으로 유학 온 흑인 남학생과 미국 중부 내륙 캔자스 출신 백인 여학생 사이에서 태어난 흑인 소년이 하와이와 인도네시아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미국의 명문 하버드 대학을 거쳐 나이 마흔일곱에 세계 초대강국 미국과 세계를 이끄는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오바마의 개인사는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과 '용광로(melting pot) 미국'의 실체를 극적으로 활짝 펼쳐 보였다. 흑인 민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3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에서 "언젠가는 나의 네 명의 어린 아이들이 그들의 피부 색깔로써 판단되지 않고 그들의 인격으로 판단되는 그런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했던, 그 불가능해 보였던 꿈이 45년 만에 실현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탄생은 그 세월에 미국과 미국 국민이 안으로 얼마나 많은 변화를 거쳐왔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선거는 오바마 후보와 매케인 후보에 대한 상대 평가라기보다는 지난 8년간 미국을 이끌어온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 정권에 대한 미국인들의 절대 평가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연방 상원과 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의석을 크게 늘려 상·하원을 동시에 장악하게 됐다. 민주당의 백악관과 민주당의 의사당은 적어도 2010년 11월 중간선거 때까지는 세계 경제·외교·안보 현안들을 자신들의 철학과 세계관에 따라 요리해 나갈 것이다.

오바마 당선자가 스스로 "오늘 밤은 축하하고 있지만 내일부터 우리 생애 최대의 도전과 맞서야 한다"고 했듯이 오늘 미국의 앞날은 첩첩산중이다.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번진 금융위기 수습에 주도적 역할을 해내야 되고, 여전히 수렁 속을 헤매고 있는 이라크에서 철군과 평화를 동시에 일궈내야 하는 힘든 도전과 맞서야 한다. 그와 함께 공화당 정권의 일방주의 외교가 덧나게 했던 세계와의 불협화음(不協和音)을 조정하고,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 '예방전쟁(preventive war)'이라는 용어가 빚어낸 저돌적 미국 이미지를 둥글게 가다듬고 동맹의 역학(力學)과 소프트파워(soft power)를 함께 구사하는 유연 외교로의 전환을 매끄럽게 이뤄내야 할 숙제 또한 안고 있다.

오바마 당선자의 등장은 한국에도 새로운 도전이다. 상원의원 3년10개월이 국정(國政)을 다뤄 본 경험의 전부인 그는 한국과 한반도 문제도 다뤄 본 경험이 없다. 오바마 당선자는 지난 2월 상원 전체회의 속기록에 "21세기 한반도와 여타 지역이 직면한 각종 도전들에 대처하려면 동맹의 공동 비전을 가다듬는 작업을 한국과 함께 해야 한다"는 발언을 서면으로 제출했다.

오바마 당선자는 작년 7월 TV 토론에서 "임기 첫해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등과 조건 없이 직접 만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올해 들어서는 "북한에 대해 어떤 환상도 갖고 있지 않다"며 "북한이 미국과의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즉각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했지만, 북핵 해법에서 미·북 직접 대화를 주요한 수단으로 여기는 시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오바마 당선자는 "한·미 FTA는 심각한 결함이 있는 협정"이라고도 했다.

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에 대한 종합적 재검토 과정과, 미·북 대화와 6자회담의 재조정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 그리고 한·미 FTA의 완결 문제 등에 대한 한·미 논의의 대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미국 국민은 오바마를 선택함으로써 미국을 바꿨다. 이제 미국의 새로운 선택인 오바마가 미국과 세계를 어떻게 바꿔 나갈지 지켜볼 차례다.

조선일보, 2008/11/6일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