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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백의 정예들

하마사 2008. 10. 1. 07:08
"적진에 가장 먼저 들어간다"… 일당백의 정예들
 
건군60주년 특별기획 强軍시대 ① 육·해·공·해병대 특수부대와 여군
707 특임대 대테러·X파일 특수임무 수행
UDT/SEAL 수심 40m 잠수 '인간 병기'
공군 CCT 적진서 병력·장비 투하 유도
해병 수색대 적 해안에 침투 교두보 확보

 

첨단무기의 비중이 높은 현대전에서도 '일당백(一當百)' 특수부대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對)테러전 등의 영향이다. 본지(本紙)는 3개월여에 걸쳐 육군 특전사, 해군 UDT/SEAL, 공군 공정통제사(CCT), 해병대 수색대 등 육해공군 및 해병대 각군에서 최고임을 자부하는 대표적인 특수부대를 취재했다.

육군 특전사

지난달 17일 경기도 광주 특수전교육단 헬기 이착륙장. 육군 특수전사령부 예하 5공수여단 소속 흑룡(黑龍)부대원 200여명이 고공강하 훈련을 위해 군장을 꾸리고 있었다. 최소한의 물품만 쌌을 경우에도 군장 무게는 20~25㎏에 달하고 통신장비와 배터리까지 포함하면 40㎏에 육박한다. 부대원들은 여기에 25㎏ 무게의 낙하산을 멘 뒤 CH-47헬기에 탑승, 600m 고도에서 뛰어내렸다.

'검은 베레'로 널리 알려진 육군 특전사는 유사시 적 후방 깊숙이 침투해 정찰과 감시, 주요 군사시설 파괴, 후방 교란, 요인납치 등의 임무를 맡는다. 주로 C-130, CN-235 등 수송기와 MH-47 등 특수작전용 헬기를 타고 적 후방에 침투한다.

특전사는 유엔평화유지 활동 등 해외파병에 있어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1999년 동티모르에 파견된 상록수부대를 비롯, 이라크 파병 자이툰부대, 레바논 파병 동명부대는 모두 특전사 요원들이 주축이다.

특전사 부대 중 707특수임무대는 최정예 요원들로 구성돼 특전사중의 특전사로 불린다. 대테러 작전과 요인 경호, 응징보복 외에도 X파일이라 불리는 특수임무를 수행한다.

▲ ①지난 9월 18일 특전사 여군고공강하팀이 미사리 상공에서 CH-47헬기로부터 낙하하는 고공 강하 훈련을 하고 있다. 특전사 허윤태 상사 제공 ②공군 최정예 특수부대인 공정통제사(CCT) 대원들이 지난 8월 4일 경남 남 해군 앞바다에서 수중침투 훈련을 하고 있다. ③경북 포항시 해변에서 해병대 수색대 지원병들이 지난 7월 18일‘극기주’훈련 주간을 맞아 고무보트를 머리에 인 채 행군을 하고 있다. ④지난 7월 24일 강원 동해시 해군 1함대 사령부 앞바다에서 해군 특수전 전단 소속 UDT/SEAL 대원이 가상적군을 겨냥하고 있다.

해군 UDT/SEAL

지난 7월 24일 강원도 동해시 해안. 해군 특수전전단 소속 UDT/SEAL 교육생들이 바다로 뛰어들어 물속으로 사라졌다. 최대 수심 40m까지 내려가는 잠수훈련을 위해서였다. 특수 잠수장비를 갖춘 교육생들은 수심 40m에서 5분 동안 견뎌야 한다. 물속 40m에선 지상보다 네 배 이상의 압력을 받고 5분 이상 버틸 경우 체내 질소에 의한 마취 현상이 일어나 통제력을 상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해군 UDT/SEAL은 1955년 미군 수중폭파대(UDT)가 그 모체(母體)다. 임무 성격상 초인적인 능력을 요구하다 보니 UDT/SEAL의 훈련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12주간의 기초체력 훈련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지원자의 40% 미만이다. 교육생 서일영 대원은 "처음에 44명이 지원했는데 2주 만에 27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육생들은 맨몸 수영 3.6㎞ 이상, 오리발 수영 7.2㎞ 이상, 턱걸이 40개 이상, 구보 40㎞ 이상을 거뜬히 해내야 한다. 훈련기간 중 '지옥주'로 불리는 기간도 있다. 이때 교육생들은 138시간 동안 잠을 한숨도 못 잔 채 고무보트 조정훈련·갯벌훈련·구보 등을 쉴 새 없이 해야 한다. 식사도 무게 85㎏의 고무보트를 머리에 이고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교육생들은 '인간병기'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공군 공정통제사

'First in, Last out(적진에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늦게 나온다)'

공군 최정예 특수부대인 공군 5전술공수비행단 공정통제사들이 외치는 구호다. 붉은 베레모를 써 '붉은 베레'로 불리는 공정통제사는 전시에 공수부대원이나 물자를 공수하는 공정작전에 앞서 적진 깊숙이 들어가 항공기가 제대로 병력과 장비를 투하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또 유사시 공군 F-15K 전폭기 등이 전략목표물을 공격할 때 첨단 미사일이나 폭탄이 적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임무도 맡고 있다. 공정통제사들은 당연히 저·고공낙하 침투, 육상·수상·수중 침투 등 모든 종류의 침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1년간의 자체훈련과 육군 특전사 707대테러부대, 해군 수중폭파대(UDT), 해병대 산악 레펠 등 3년간의 특수훈련을 모두 거쳐야 한다. 특수부대중의 특수부대라 불리는 이유다.

해병대 수색대

해병대 수색대는 본대(本隊)가 상륙하기 며칠 전에 적 해안지역에 침투, 정보수집과 정찰, 지휘체계 파괴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상륙부대의 눈과 귀 역할을 하면서 적진 40㎞까지 잠입해 아군 헬기 착륙 및 함정 상륙을 유도하고 교두보를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

장교·부사관 등 직업군인으로 구성된 다른 특수부대와는 달리 해병대 수색대는 병사가 80% 가량을 차지한다. 해병대 수색병과를 지원한 사람은 해병대 교육훈련단에 입소, 6주간의 신병교육을 받은 뒤 수색교육대에서 기초교육(2주), 수색 전문교육(7주), 공수기본교육(3주) 등을 거쳐 수색대원이 된다.


특전사·해병대서 전투기 조종까지… 女軍 맹활약


현재 국군에서 여군은 4900여명으로, 군 간부 정원의 약 2.7%를 차지하고 있다. 육군에서 해병대까지 거의 모든 병과(兵科)에서 남성 군인들과 동등한 임무를 수행한다.

대한민국 여군은 6·25전쟁을 전후해 태동했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비행사 자격을 가지고 있던 이정희씨가 1949년 1월 육군 중위로 임관한 것이 군사(軍史)에 기록된 최초의 여군이다. 그는 같은해 2월 대위로 진급, 여자항공교육대장으로 임명되면서 "남녀동등권은 말로 부르짖는 것보다 능력을 발휘해 실력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여군이 창설된 것은 6·25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1950년 10월 부산에서 491명의 여군들이 여자의용군 교육대를 수료하면서다.

전쟁 기간 중 여군은 첩보수집과 심리전, 통역 등의 임무에 투입됐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는 대부분의 여군들이 행정분야에서 제한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국방부가 병과 가운데 '여성병과'를 두고 여군을 별도로 관리했기 때문이다. 위축됐던 여군의 활동은 1990년 이 여성병과가 폐지되면서 본격화했다. 1993년 여군사관 38기부터 전방부대 신병교육대 소대장직을 맡기 시작했으며, 1995년에는 여군이 보병부대 중대장에 나섰다.

2002년 첫 육군사관학교 출신 여군장교들이 전방 소총부대에 여군소대장으로 부임한 것은 여군의 전투부대 배치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003년 3월에는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 3명이 비행단에 배치됐고, 같은해 5월에는 해군 전투함에 여군이 올랐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여군의 지위는 높은 편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여군에게 전투병과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 2008/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