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노출/삶자락이야기

자원봉사를 다녀와서

하마사 2008. 1. 14. 22:18

새벽기도를 마치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와 자는 아이들을 깨워 짐을 챙겼다.

태안 앞바다 기름제거를 위한 자원봉사를 떠나기 위해서다.

큰 아이는 저녁에 못마땅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일부러 일어나지 않으려고 투정을 부린다.

집사람은 사발면과 과일과 간식을 챙겨주었다.

가다가 휴게소에 들러 아침을 먹으라고 말이다.

부루퉁한 아이들을 차에 태워 출발했다.

잠을 자는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아빠의 마음을 언제쯤이면 이해할까?

나도 똑같이 아버님의 속을 많이도 태웠으니 말이다.

철이 들면 알게되는데 왜 그때는 그렇게도 몰랐던지...

억지로 따라나오며 짜증을 부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보람된 일에 대한 기쁨을 맛보게하려는 내 의도와는 달리 역작용을 내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되었다.

가다가 휴게소에 들러 사발면과 간식을 먹으면서 아이들의 기분이 돌아왔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출발하여 태안군청을 들렀는데

군청마당에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장례식을 하고 있어 의아했다.

바다가 기름으로 오염되자 살길이 막막하다며 자살을 하신 어떤 분의 영결식이라 한다.

태안군민들이 많이 모여 고인의 가는 길을 애도하고 있었다.

군청지하에 마련된 사고대책상황실에 들러 담당자를 만나 현황설명을 듣고

교회에서 도울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귀중한 헌금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질문을 했더니

바다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모든 분들이 피해자라고 하신다.

설명을 듣고 자원봉사를 위해 천리포해수욕장으로 갔다.

장화와 고무장갑, 수건이 든 마대자루 그리고 기름이 묻지 않도록 전신을 보호할 수 있는 옷을 입고

산길을 따라 작업장에 갔다.

돌에 묻은 기름을 제거하는 일이었는데

그냥 눈으로 보기에는 많이 깨끗해진듯 했지만 돌을 들어 바닥을 보면 아직도 기름이 많이 묻어있었다.

돌을 들치고 기름을 닦으면서 내 마음의 찌든 때도 함께 닦여지길 기도했다.

외모를 보면 깨끗한듯 해도 속을 뒤집으면 바닥에 묻은 기름처럼 더럽기가 한이 없는 내 모습이다.

교회에서 단체로 많이 오신듯 했다.

그리고 선생님들과 학생들도 단체로 왔다.

떠들고 장난하며 일을 하는 학생들이었지만 좋아 보였다.

여기에 오지 않은 학생들보다는 얼마나 귀한 학생들인가?

억지로 왔든지 아니면 자원하여 왔든지 현장을 목격하고 작은 일이라도 한다는 것은

그들의 일생에 좋은 추억을 심어주는 것이라 믿는다.

어떤 학생들은 묵묵히 혼자서 열심히 돌을 닦다가 허리를 펴고 하늘을 쳐다보고는 다시 돌을 잡고 열심히 닦곤 했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며 묵묵히 봉사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12시가 되니 식사를 하러 가셨다.

우리는 식사하고 다시 와서 봉사를 할 시간이 없어 남아서 일을 더 하다가 늦게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밝게 변해있었다.

힘들었지만 보람있었던 시간으로 남았음을 알 수 있었다.

시간과 돈이 들었지만 그만큼 아이들의 일생에 소중한 추억을 심어준듯 하여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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