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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사명(使命)

하마사 2007. 12. 20. 20:40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48.6%의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됐다. 시장에서 청소를 하면서 공부했던 젊은이가 35세 대기업 사장이라는 샐러리맨의 신화를 만들었고, 이제 경제규모 세계 13위 국가의 대통령이 됐다. 두 번 연속 대선에서 패하면서 끝없이 추락했던 한나라당은 마침내 10년 야당의 멍에에서 벗어나게 됐다. 당선자와 한나라당엔 감격스러운 순간일 것이다.

이제 당선자는 그 감격을 모든 국민의 것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대통령 당선자가 선거가 끝나고서도 지지자와 반대자를 갈랐던 선거 때의 울타리에 갇히게 되면 나라는 끝없이 反目반목과 不和불화를 거듭하게 된다. 국가를 미래로 밀고 나갈 국민적 에너지를 고갈시켜 버린다. 이 국민의 지난 5년 세월이 그랬다. 당선자의 첫 발걸음은 추위에 얼어터진 손등 같은 국민의 그 마음을 어루만지고 보듬어 안는 것이어야 한다.

당선자의 발걸음을 가장 먼저 붙잡는 것은 역시 특검의 조사다. BBK 사건은 이번 대선에서 가장 큰 이슈였다. 그러나 당선자는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실시된 다섯 번의 선거에서 가장 높은 국민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BBK 사건으로 이 후보를 공격했던 2·3위 후보와의 표차는 두 배, 네 배에 달했다. 대선 사상 최대의 표차다. 그렇다면 당선자에 대한 특검을 의결했던 국회의 뜻은 당선자를 과반에 육박하는 표로 당선시킨 국민의 뜻과 배치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김경준도 엊그제 검찰에 나와 검사가 당선자에게 유리하게 진술하라고 회유·협박했다는 자신의 메모가 사실이 아니라고 실토했다고 한다. 특검의 근거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상황에서 끝내 특검법을 공포하는 것이 나라에 무슨 도움이 될지 생각해야 한다. 국민의 뜻에 어긋나게 특검을 강행해 새 정부의 출발을 어지럽히는 것이 이제 야당이 된 대통합민주신당에 과연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당선자는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이라는 시험대도 통과해야 한다. 이 선거에서 실패하면 임기 5년 내내 국정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은 여당이 국회에서 안정적 기반을 갖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10년 야당의 묵은 때라고 할 수 있는 人的인적 정체와 후보 경선의 후유증인 분열적 요소를 그대로 안고 있다. 당선자가 어떤 리더십으로 당을 하나로 묶어 총선에 임할 수 있느냐에 임기 5년의 성패가 달려 있다.

국민이 당선자를 대통령으로 부른 것은 당선자 스스로 시대 정신이라고 불렀던 경제 회생에 대한 갈구 때문이다. 국민의 그런 목마름이 당선자의 허물을 덮어 주고 감싸 준 것이 이번 선거 결과였다. 당선자는 우리 경제에 “이제 한번 해 보자”는 심리적 파도를 만들어 내야 한다. 지난 5년간 우리가 앓아 온 성장 장애 증후군을 치유하는 길도 거기서부터 열리게 된다.

지난 5년 동안 상위 20% 국민과 하위 20% 국민의 소득 차이는 오히려 더 커졌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권일수록 서민을 어렵게 만든다는 원리를 再재확인한 것이다. 아랫목의 온기가 윗목의 서민들에게도 전해지려면 결국 경제가 성장하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지난 5년간 110만 명이나 늘어나 이제 570만 명이 된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결국 경제 성장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방법뿐이다. 20대 비정규직은 ‘88만원 세대’로 불린다. 그들의 한 달 평균 수입이 88만원이라고 한다. 이 암담한 현실을 벗어나는 길도 성장밖에 없다. 국민은 이번 대선에서 단호하게 ‘성장’을 선택했다. 무엇이 답인지를 절절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成長성장만이 좋은 경제냐는 爲政者위정자들의 착각으로 지난 5년간 세계에서 우리의 성적표는 10등에서 13등으로 떨어졌다. 대한민국 제 발로 거인 중국과 기술 대국 일본 사이에 끼여 부서지는 길로 걸어 들어갔다. 우리가 다시 앞으로 5년마저 이렇게 허우적거린다면 그때는 온몸이 으깨 부서지는 고통이 대한민국을 덮칠 것이다. 이 운명을 바꿔야 한다.

북핵 문제도 당선자를 기다리고 있다. 북한은 연말까지 핵 신고를 해야 한다. 그 신고를 완전하게 하지 않으면 6자 회담은 수포로 돌아가고 한반도는 다시 核핵 구름에 덮이게 된다. 북한은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이자 언젠가 통일로 끌어안아야 할 우리의 반쪽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은 북한을 끌어안아야 할 반쪽으로만 보고 오로지 ‘햇볕’ 한 길로만 달려왔다. 당선자는 햇볕정책의 수정을 공약했다. 그렇다고 이번엔 또 정반대 방향의 일방 질주로 갈 수도 없다. 남북관계의 이중성을 고려하면서 북한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조화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올 한 해 사교육비가 3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나라를 뜨는 초·중·고 조기유학생이 5년 동안 1만 명에서 3만 명으로 늘었다. 당선자는 대학 입시 자율화와 자립형 고교 100개 설립을 공약했다. 결국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새 정부는 신념을 갖고 이 길을 뚫어 고통의 원인이었던 교육을 희망의 基地기지로 바꿔 나가야 한다.

당선자는 노 정권이 국정의 여기저기에 박아 놓은 대못도 빼내야 한다. 한미관계는 정상 궤도를 한참 벗어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한미연합사도 5년 내에 해체되게 돼 있다. 이 대못을 어떻게 빼낼지, 빼낼 수 없다면 새로운 안보 체제를 또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지는 우리 모두의 큰 숙제다.

5년간 10만 명이나 늘어난 공무원, 온 국토를 투기장으로 만든 억지 균형정책, ‘맛 좀 보라’는 식의 징벌적 세금 등 바꾸고 고쳐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미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을 바로잡는 데는 많은 저항과 고통이 따른다. 그렇다고 피해 간다면 그것은 국민이 당선자를 뽑은 뜻을 어기는 것이다. 당선자는 대운하 등 논란이 많았던 공약도 전문적인 검토를 거쳐 국민의 뜻을 다시 모아야 한다.

당선자는 서울시장으로서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 혁명을 이뤄냈다. 그런 실적이 큰 힘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절망과 경제 회생에 대한 갈구가 없었다면 당선자가 지난 1년간 그렇게 쏟아진 집중 포화 속에서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선자 스스로 말했듯이 국민이 당선자를 지켜 준 것이다. 당선자가 얻은 과반에 육박하는 국민 지지가 스스로 만든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지지는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당선자는 혼자 힘으로 일어선 사람이다. 그런 자신감은 종종 오만과 독선으로 변질될 수 있다. 국민은 역대 대통령들에게서도 그런 사례들을 보았다. 당선자가 그 길로 들어서지 않으려면 “국민이 나를 지켜 주셨다”는 오늘의 初心초심을 잃지 않고, “매우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한 당선 소감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모든 일의 성패는 결국 여기에 달려 있을 것이다.
 
입력 : 2007.12.20 00:09 / 수정 : 2007.12.20 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