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이란 것도 시대의 산물(産物)이다. 어느 권력도 시공(時空)을 초월한 절대적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어제의 가치였던 권력도 오늘은 파렴치일 수 있고, 오늘의 권력도 내일이면 부도덕일 수 있다. 결국 모든 사물이 그렇듯이 정치권력은 시대정신의 한 표현이다. 우리는 오는 19일 21세기를 사는 오늘의 가치와 지혜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의 시대정신을 가름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2007 대통령선거는 단지 인물을 뽑는 마당이 아니다. 이명박이냐 이회창이냐 아니면 정동영이냐를 판가름하는 선거가 아니다. 여권이냐 야당이냐를 선택하는 선거도 아니다. 정권교체는 결과일 뿐이지 당위가 아니다. 크게 보면 정책의 대결도 아니고 업적과 공약의 싸움도 아니다. 후보들이 내세우듯 ‘거짓’과 ‘진실’의 대결도 아니라고 본다.
이번 대선의 본질은 한마디로 좌파와 우파의 대결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철 지난 ‘이념’의 싸움이겠지만 북(北)의 김정일 세력을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에게는 아직은 풀어야 할 마지막 숙제인 셈이다. 새로운 ‘우파의 5년’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좌파의 15년’으로 갈 것이냐―. 그것이 이번 대선의 문제다. 인물과 정책과 구호와 온갖 네거티브들은 단지 대리(代理) 전쟁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무엇이 우파의 선택 기준인가? 먼저 대한민국의 탄생과 정체성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신뢰, 존재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이 땅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바로 우파 본류(本流)의 가치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존재로 치부하며 우리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좌파와는 가장 본질적인 갈림길이다.
둘째는 자유·경쟁체제에 대한 신념이다.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혁신이 없으면 그것은 죽은 우파다. 공동체로서의 선(善)에 대한 추구를 단지 ‘평등’으로 해결하려는 한, 이 사회의 발전은 없다.
셋째는 우리의 미래를 ‘민족’의 테두리 안에 가두지 말고 세계화의 선(線) 위에 설정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우리 오천 년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에 갇힌 역사였다. 우리는 독립 이후 비로소 미국을 매개로 동북아의 울타리를 벗어나 아시아·태평양, 그리고 더 넓은 세계로 나갈 수 있었고, 우리 역사상 가장 잘사는 50년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를 다시 동북아에 가두고 중국과 일본의 틈새로 끼워 넣는 복고(復古)주의는 너무도 퇴행적이다.
넷째 우파는 북한의 민주화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과 북한 주민의 인권개선에 대한 쉼 없는 열의를 지녀야 한다. 북한의 참상과 북한의 독재권력에 눈감는 편의주의나 남쪽 이기주의로는 우파의 정통성을 지켜 나갈 수 없다.
어느 칼럼에서 언급했지만 우리는 그 시대의 정신에 따라 대통령과 정권을 선택해 왔다. 독립한 나라의 첫 지도자로 독립투사인 이승만을 선택했고, 가난을 극복하고 선진(先進)에 진입하는 산업화 과정에서 박정희를 조타석에 앉혔다. 그 과정에서 파생한 독재와 ‘순도 99%의 효율주의’는 많은 피해자와 반대자를 만들었다. 민주화에의 열망은 김영삼을 완충으로 군부 통치 시대를 극복해 김대중으로 이행했다. 민주화에 대한 보상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민주화의 여진은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을 딛고 좌파의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키는 데까지 이어졌다.
이제 우리는 건국(建國)과 산업화, 민주화와 좌파 등 모두에게 빚을 갚은 셈이다. ‘빚 없는 흑자시대’를 여는 이번 대선은 우리에게 아무런 선택의 굴레를 씌우고 있지 않다. 우리는 전쟁위협 북풍(北風), 네거티브 BBK 공방 등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선택의 기운을 만끽하고 있다. 그 선택은 좌파정권의 연장으로 갈 것이냐 우파로 교체할 것이냐는 시대정신의 명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지금의 후보들이 그런 선택 기준에 합당한가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고민거리다. 우파 보수 성향의 유권자에게만 그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좌파 성향의 유권자에게도 고민은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좋아서, 그 후보가 적임자라서” 하며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사람을 떠나서, 온갖 현란한 공약들을 떠나서 누가 이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이념에 보다 근접해 있는가를 판단의 준거로 삼을 필요가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선거가 어차피 ‘덜 나쁜 사람’(lesser of the evils)을 선택하는 제도 아닌가?
입력 : 2007.12.02 19:06 / 수정 : 2007.12.03 07:26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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