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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인들 중 한평생 살아온 이야기를 400년 후의 후손들에게 가장 자세하고 인상 깊게 남길 사람은 누굴까. 이번 대통령 선거의 후보나 원더걸스 같은 인기 연예인보다도, 23년째 가족신문 ‘비둘기 집’을 만들고 있는 조의현(63·경기도 용인)씨 가족일지 모른다.
조씨의 형제자매와 자녀들까지 이 집안 식구 90여 명이 살아오면서 겪은 슬프고 기쁜 모든 일을 적어 만든 가족신문은 1994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가족 기록’으로 선정돼 서울 정도(定都) 600년 기념 타임캡슐의 내용물 중 하나로 들어갔다. 이 타임캡슐은 정도 1000년이 되는 2394년에 개봉된다.
조의현씨 가족은 올해로 23년째 가족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지난 10일 용인시의 아파트. 조의현씨는 1985년 8월 25일에 낸 가족신문 ‘창간호’를 쓰다듬었다. 빛바랜 A3 크기의 원고지엔 아이들이 직접 손으로 쓴 기사와 가족 사진이 붙어 있다. 의현씨는 “둘째 아들 영한(34·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연구원)이의 초등학교 4학년 때 숙제가 가족 신문 만들기였어요. 우연하게 시작됐는데, 가족 전통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1994년까지는 매달 발행하다 이후 격월로 발행하고 있다. 벌써 지령이 202호에 이른다.
조씨의 형제자매와 자녀들까지 이 집안 식구 90여 명이 살아오면서 겪은 슬프고 기쁜 모든 일을 적어 만든 가족신문은 1994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가족 기록’으로 선정돼 서울 정도(定都) 600년 기념 타임캡슐의 내용물 중 하나로 들어갔다. 이 타임캡슐은 정도 1000년이 되는 2394년에 개봉된다.
조의현씨 가족은 올해로 23년째 가족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지난 10일 용인시의 아파트. 조의현씨는 1985년 8월 25일에 낸 가족신문 ‘창간호’를 쓰다듬었다. 빛바랜 A3 크기의 원고지엔 아이들이 직접 손으로 쓴 기사와 가족 사진이 붙어 있다. 의현씨는 “둘째 아들 영한(34·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연구원)이의 초등학교 4학년 때 숙제가 가족 신문 만들기였어요. 우연하게 시작됐는데, 가족 전통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1994년까지는 매달 발행하다 이후 격월로 발행하고 있다. 벌써 지령이 202호에 이른다.
- ▲ 23년간 가족 신문을 만들어온 조의현씨(맨 왼쪽) 가족이 가족 신문‘비둘기집’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손녀 수하, 첫째 아들 영헌씨, 부인 홍재숙씨, 손자 수근, 며느리 황현선씨(왼쪽부터)가 한자리에 모였다. /조의준 기자
조씨네 가족 신문의 원칙은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중요한 일은 빠짐없이 기록한다는 것. 1998년 12월 25일자엔 ‘영한 대학원 낙방’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편집자 영한군이 이번 대학원 시험에 낙방하였다.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음 기회에 대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주기 바란다.’ 물론 한 학기 뒤에 발행한 152호엔 ‘대학원 합격’이란 기사가 다시 나왔다.
147호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곁으로’란 제목으로 장례식 기사가 1면 톱으로 실렸다. 또 특별 섹션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가족 여론조사도 실시했다. ‘할아버지 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이란 질문에 ‘매일 아침 신문 보시던 모습’ ‘세뱃돈’ ‘여행할 때면 꼭 가지고 다니시던 검은 가방’ 등의 답이 나왔다.
이 집안 온 가족은 수첩을 들고 늘 취재하고 기록한다. 아버지의 메모지엔 ‘외가댁에서 햅쌀이 왔다’ ‘장모님께서 경주·제주 여행을 가셨다’ 등 집안 대소사들이 빠짐없이 적힌다. 영헌씨는 “얼마 전에 초등학교 1학년인 제 딸 수하(7)도 기자가 됐어요. 수하가 처음 쓴 동시를 1면에 올렸거든요”라고 말했다.
어떤 기사를 쓸 것인가 정하기 위해 ‘편집회의’도 한다. 의현씨는 “1995년인가, 우리 집 10대 뉴스를 뽑는데, 그해 제가 회사에서 이사로 승진했어요. 전 당연히 이게 가장 큰 뉴스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그게 무슨 10대 뉴스냐고 하더라고요. 아버지의 권위로 그냥 밀어 넣었죠. 하하”라고 말했다. 2003~2004년엔 영헌씨가 중국 베이징에, 동생 영한씨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머물면서 ‘특파원’ 역할도 했다.
의현씨는 “한때는 입 소문을 들은 친구나 이웃사람들까지 ‘구독 신청’을 해 발행부수가 월 200부에 이르기도 했다”며 “요즘엔 좀 줄었지만 80부는 된다”고 했다. 우편으로 신문을 발송하는 일은 어머니 홍재숙(63)씨의 몫이다. 영헌씨는 “우리 가족 신문은 21세기 초 가장 평범한 한국인 가정의 삶의 기록”이라며 “아마 몇 십 년 뒤엔 유명 집안의 족보 못지않게 중요한 역사 자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입력 : 2007.11.13 23:59 / 수정 : 2007.11.1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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