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니 크로스비의 불행과 행복 이야기 요 9:1-3
오늘 아침 설교는 보석과 같은 설교입니다. 제 설교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
제가 설교하려는 내용이 보석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아침 은혜의 천사, 찬송의 천사, 사랑의 천사, 기쁨의 천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많은 찬송시를 쓴 패니 크로스비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부르는 찬송가들 중에서 제가 가장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는 찬송가들은
패니 크로스비 여사가 작사한 찬송가들입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부르시네, 부르시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 보다 귀하다”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여전히 찬송 못하나”
패니 크로스비가 작사한 찬송가가 우리 찬송가에 23개나 수록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고 찬송은 영혼의 춤입니다.
우리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려면 호흡도 필요하고, 춤도 필요합니다.
오늘 아침에서 “찬송가 작사자 패니 크로스비(Fanny Crosby)의 불행과 행복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 패니 크로스비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매우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불행한 인생을 살다
패니 크로스비는 1820년 3월 24일 미국 뉴욕 주의 작은 마을 푸트남에서
태어났는데 생후 6주부터 맹인이 되었습니다.
돌팔이 의사의 잘못된 약물 치료로 패니 크로스비는
생후 6주부터 95세까지 맹인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불행했습니다.
패니의 엄마 머시는 어린 딸이 맹인이 된 사실을 알고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패니가 돌팔이 의사의 실수로 맹인이 된 사실을 알고 교회와 동네 사람들은
그 돌팔이 의사를 찾아가 그를 처벌하여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마을을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므로
눈이 멀게 된 이후 제대로 의사의 치료를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패니가 한 살 되었을 때 그를 극진히 사랑하던 아버지 존 크로스비까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패니가 11살 되었을 때 패니를 누구보다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패니의 할머니 유니스 크로스비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패니는 가난과 슬픔에 버려진 불행한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패니 크로스비는 성장해서 유명한 시인이 되었고
유명한 찬송가 작사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던 맹인 교수 밴 앨스틴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가 38세 되던 해인 1858년 3월 8일이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깊은 헌신과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은
두 사람에게 그윽한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도시를 떠나 시골에 와서 자연을 즐기며 조용히 살았는데
시골의 공기는 그녀의 영혼을 더욱 아름답게 소생시켰고
그윽한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결혼 후 곧 아기를 잉태하게 되었고 귀여운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곧 아기를 잃고 말았습니다.
패니 크로스비의 일생에서 가장 슬픈 일이 1859년에 일어났습니다.
패니 크로시비는 몇 달 동안을 아기를 잃은 슬픔에 잠겨 힘들게 보냈습니다.
이웃들로부터 받는 위로가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아기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내려와서 우리의 아기를 데리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기를 하나님과 그 분의 왕좌에 맡겼습니다!”
▲아기 사망 후, 본격적으로 찬송시를 쓰다
패니와 밴 부부는 다시 뉴욕의 맨하튼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다시 모든 열정을 다 쏟아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패니에게 찬송시를 써 달라는 주문이 쇄도했습니다.
패니는 일주일에 6,7편의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음악가들이 자신들의 곡에 붙일 가사를 그녀에게 부탁했습니다.
패니와 밴은 부부이자 서로를 돕는 배필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패니와 밴은 많은 일을 했지만 허름한 집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가난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불평하거나 서로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주신 것에 항상 감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편도 아내를 떠나 먼저 하늘로 갔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한 평생 수많은 슬픔과 고통과 아픔을 거듭해서 경험한
참으로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2. 그러나 패니는 신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시각 장애를 수용하다
패니 크로스비는 부흥 집회에 참석해서 간증을 많이 하곤 했는데
어느 부흥 집회에서 어느 목사님이 패니 크로스비를 동정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렇게도 많은 선물들을 주셨는데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선물로 주시지 않은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패니는 즉시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제가 태어날 때 하나님께 기도를 할 수 있었다면
저는 맹인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목사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왜 그렇습니까?” 라고 패니에게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천국에 이르렀을 때, 내 눈이 제일 먼저 보고
좋아할 수 있는 얼굴이 나의 주님의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Because when I get to heaven, the first face that shall ever gladden
my sight will be that of my Savior!”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후일에 생명 그칠 때♬
미국 메사추세츠주 노스필드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디 엘 무디가 패니 크로스비 여사에게
개인적인 간증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좀 주저하다가 조용히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작사한 찬송가들 중에 아직 발표하지 않은 찬송가가 하나 있습니다.
저 스스로 부르는 찬송이지요. 저는 그 찬송을 제 ‘영혼의 찬송시’라고 부릅니다.
이제 제 ‘영혼의 찬송시’를 여러분들에게 발표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찬송시를 한 구절, 한 구절 읽어 내려갔다고 합니다.
1.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여전히 찬송 못하나
성부의 집에 깰 때에 내 기쁨 한량없겠네.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2. 후일에 장막 같은 몸 무너질 때는 모르나
정녕히 내가 알기는 주 예비하신 집 있네.
3. 후일에 석양 가까워 서산에 해가 질 때에
주께서 쉬라 하실 때 영원한 안식 얻겠네.
4. 그 날을 늘 기다리고 내 등불 밝게 켰다나.
주께서 문을 여실 때 이 영혼 들어가겠네.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찬295장)
패니 크로스비가 자기 ‘영혼의 찬송시’를 한 구절 한 구절 읽어 내려갈 때마다
무디 목사님을 비롯한 수많은 청중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무디 목사를 비롯한 수많은 청중들이
천국을 바라보고 사모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한 사람은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 이후, ‘가장 행복한 사람’(패니)이었습니다.
무디 목사는 후에도 미국 교회들이 천국 신앙을 버리고 세상에 파묻히는
영적인 캄캄함에 빠져 있을 때, 혼자 오르간에 앉아서 몇 시간 동안
패니 크로스비의 찬송 ‘후일에 생명 그칠 때’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곤 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패니 크로스비는 한 평생을 살면서 수많은 슬픔과 고통과 아픔을 경험했지만
그는 거의 한 번도 원망, 불평, 증오의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자기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85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한 순간도 어느 사람에 대한 원한이나 분노를 품은 일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좋으신 하나님과 그분의 무한하신 자비를
항상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나를 성별 시켜서 그 분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나에게 베푸신 그 많은 축복을 기억할 때
내가 어떻게 감히 불평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불행한 환경 중에서도, 원망이나 불평이나 증오의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한 평생을 산 사람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패니는 어렸을 때 이미 자기가 맹인 된 것이
자기를 남은 평생 불행하게 만들지 않도록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패니가 9살 났을 때 이런 시를 썼습니다.
“오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내가 비록 세상을 볼 수는 없지만
나는 세상에서 만족하면서 살기로 다짐했다오.
다른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행복을
나는 얼마나 많이 누리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은 울기도 하고 한숨도 짓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이라오.
(나는 시각장애라서 못 보니까, 울 일도, 한숨지을 일도 오히려 없소!”
“Oh, what a happy soul I am, although I cannot see!
I am resolved that in this world, contented I will be.
How many blessings I enjoy, that other people don't have.
Weep and sigh I cannot and I won't, because I'm blind.”
패니 크로스비가 92회 생일을 맞았을 때
그의 생일을 축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내게 데려오세요.
그 사람과 악수하고 싶어요.”
가장 행복하게 느끼면서 세상을 산 사람,
그는 분명히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전도자 패니 크로스비
패니 크로스비는 주님과 천국을 이 세상의 그 어느 사람보다도
가장 순수하고 가장 뜨겁게 사랑하고 사모하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9천여 개의 찬송시를 썼는데, 그가 쓴 찬송시들은
지금 세계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찬송시들이 되었습니다.
어떤 작가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가 살던 시대에,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요한 시트라우스가 비엔나에서 왈츠의 왕으로 군림했고
존 필립 수사가 워싱턴에서 행진곡의 왕으로 군림했을 때
패니 크로스비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뉴욕에서 찬송가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패니 크로스비는 ‘찬송가의 여왕’으로만 군림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간증자와 전도자와 설교자로서도 군림했습니다.
그가 설교할 때 그녀의 메시지는 찬송가처럼 흘러 넘쳐
청중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주곤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청중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을 가슴으로 느꼈고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청중을 향해서 가슴으로 은혜와 사랑과 기쁨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설교를 듣기 위해
먼 곳으로부터 와서 길게 줄을 서 있기도 했다고 합니다.
때로는 한 두 시간씩 빗속에서 또는 추위에 떨면서도
그녀의 설교를 듣곤 했다고 합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설교할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축복과
인생의 구원과 기쁨에 대해서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설교할 때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중한 마음에 축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있게 되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는데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과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찬송가 작사자일뿐만 아니라,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전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절망을 놀랍게 승화시킨 여인
하나님께서 그의 시력을 앗아 가셨을지는 모르지만
그녀에게 그 대신 끝없는 에너지와 열정을 부어주셨습니다.
60세가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려고 했지만
패니 크로스비는 더 많은 찬송시를 썼고
계속 새로운 일들을 찾아 나서기도 했습니다.
에너지와 열정이 그녀의 심장을 끊임없이 고동치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작가가 패니 크로스비의 삶의 특징 다섯 가지를 지적한 일이 있었습니다.
첫째, 그녀는 매우 부지런했습니다.
둘째, 그녀는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셋째, 그녀는 이타적인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넷째, 그녀는 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에게 태양빛과 같은 기쁨을 주었습니다.
다섯째, 그녀에게는 항상 놀라운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삶의 특징들을 살펴볼 때, 그녀만큼 행복한 사람도
이 세상에 별로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소천 전날까지 사역하다 소천하시다.
그는 노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찬송작사와 간증설교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1915년 2월 12일 금요일 아침에
금세기의 가장 뛰어난 찬송가 작사가인 패니 크로스비는
95세를 일기로 조용히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 저녁 오후 9시에
슬픔을 당한 한 여인에게 위로의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딸을 잃고 슬퍼하는 한 여인에게 다음과 같은 위로의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나의 친한 친구에게 내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딸을 잃은 것에 대해 내 가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나는 지금 너의 집에 흰 옷을 입은 천사와 너 혼자만이 쓸쓸하게 남았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그러나 네 귓가에 속삭이고 있는 모든 것에 영적인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그건 하나도 슬픈 것이 아니란다.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조금 있으면 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의 소중한 딸 롯이 예수의 품에서 평안하게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영광스런 장례식
패니 크로스비는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평화롭게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패니가 살았던 브리지포트의 작은 마을에서 열린 장례식은
브리지포트 역사 이래 가장 큰 규모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겹겹이 에워 쌓고
옛 친구와 동역자들이 마지막 사랑과 존경을 표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애도의 편지가 원근 각지에서 쇄도했습니다.
장례식 날 패니와 교류했던 많은 사람들은
제비꽃 침대에서 자는 것처럼 관속에 누워 있는 그녀 옆에 조용하게 다가섰습니다.
패니는 꽃을 좋아했는데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꽃들은
교회 안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장례식에서 주례자는 디모데후서 4:7-8을 인용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의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주실 것이니...”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지금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패니를 생각하면서
설교를 경청했습니다. 패니는 지금 하늘에서 처음으로 눈을 뜨고
그녀가 가장 사랑하고 사모하던 그녀의 구속자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그녀가 이 세상에서 늘 사랑하며 섬겼던 분이었고
그녀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피조물’로 만든 분이기도 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모두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행복하게 사세요.
그리고 불행한 사람들을 부지런히 도우면서 행복하게 사세요.”
패니 크로스비는 미국 동부 코네티컷 주의 브리지포트란 도시에 묻혔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패니 아주머니”란 간단한 이름과
다음과 같은 그의 찬송시가 적혀 있습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하늘의 영광 누리로다”
◑3. 패니 크로스비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었던
행복의 조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든 근본적인 조건은
생후 6주 후에 맹인이 된 불행한 사건이었고
그 불행을 섭리하신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그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든 도우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그의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남편이 있었습니다.
(중략)
그러나 그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 분은
그의 삶을 사랑의 손길로 섭리하신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로다
주 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204).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219).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300).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446).
“주 예수 넓은 품에 나 편히 안겨서
그 크신 사랑 안에 나 편히 쉬겠네.”(476).
▲불평하는 분들이여, 패니의 일생을 묵상하시라!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찬송시를 써서 가장 많은 성도들에게
가장 깊은 영감을 끼친 찬송의 천사 은혜의 천사 패니 크로스비에 대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날 자기가 불행하다며, 불평불만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들에게
패니 크로스비는 지금 하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요?
아마 감사하고 기뻐하며 행복하게 살라고 말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면서 부지런하게 살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패니 크로스비에게 주셨던 놀라운 은혜의 일부라도
우리 모두에게 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http://cafe.naver.com/holyspiritgod/16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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