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기 - 숲 뻐꾸기
그는 놀랍게도 초등학교 3학년까지 낙제생이었다. 게다가 골칫거리 개구쟁이였던
소년 황병기가 마음을 고쳐먹게 된 것은 그의 외당숙(김소열) 덕택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틈 만나면 장난치던 그는 급기야 방과후 남아 놀다 당시는 귀하던
유리창을 깨뜨리고 말았다.
집에 온 그는 친히 지내던 아저씨에게 털어 놓고 이야기했다. 아저씨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나와 어제 한 일을 다 말씀 드려라. 그러면 선생님 입이
귀밑까지 찢어져 칭찬 받고 영웅처럼 될 것”이라며 격려했다.
이후 그는 자신이 옳다 믿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보고 피하지 않았다.
낙제생은 한 학기 만에 우등생이 됐다. 그리고 서울대 법대생이 됐다.
서울대에서 같은과 친구의 권유로
함께 부산에 있는 국립국악원에 가야금을 배우러 가려하는데
친구는 어떤 사정으로 같이 가지 못하고 황병기만 홀로 부산에 간다.
그 이후 전국국악경연대회 등에 기악부 1등을 차지하던 이 학생을
서울대 음대 학장 현제명 교수가 눈 여겨 봤다. 마침 대학 졸업 당시
생긴 국악과 강사를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1주일에 1시간만이라도
맡아달라던 권유가 아직도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황병기 - 밤의 독주
<황병기의 음악세계>
그의 예술작품 생산은 누구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고
누구와 더불어 논의하지도 않은스스로 터득한
황병기 어법에 의해서 형성된 바다.
황병기 어법은 1962년의 <숲>으로부터 <가을> <석류집> <봄>
<침향무> <비단길> <영목> <전설> <밤의 소리> <남도환상곡>과
1991년의 <춘설>에 이르기까지 12곡에 일관되게 침재하여
그의 개성적 양식을 이룬다. 그가 사용한 가야금 기법은
동질적 요소와 유사적 요소의 배합에 있다.
동질적 요소란 전통적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서
정악과 산조의 수법과 흐름을 말하고
유사적 요소란 정악과 산조의 동일한 성격의 창의적인 것과
또 우리 감정이 쉽게 수용할 만한 아시아적 수법을 말한다.
이러한 그의 가야금 기법은 감상자에게
새로운 음악이 주는 생소함이나 거부감 없이
전통음악의 어느 한 양식의 음악을 듣는 듯한 친숙감을 제공한다.
또 가야금 기법을 구사함에 있어서도 억지가 전혀 게재하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덕지덕지 개칠하지 않은 경제적이며 효과적인 음들을 연결한다.
말하자면 음 하나 하나가 시김새를 갖거나
탄법을 달리하는 음들로서 소리에 생명을 부여한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가야금곡이 표출하는 미적 범주는
곱고 정갈하며 투명하다. <출처,지식 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