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장형 예배개발
명 성 훈 박 사 (교회성장연구소 소장)
목회자에게 있어서 좋은 일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고 그 결과 성장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미국에서 지금 가장 성장하고 있는 교회가 시카고 방면에 있는 윌로우크릭 교회입니다. 또 캘리포니아 쪽에서는 새들백교회를 들 수 있습니다. 요새 「새들백교회 이야기」라는 책으로 우리 한국 교회 목회자에게 더 잘 알려졌습니다만 이 두 목회자들이 오늘날 세계적인 큰 교회를 이루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 분들이 개척 초기 때부터, 혹은 훨씬 전부터 교회 성장 세미나, 목회자 세미나에 열심히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2월에도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교회에서 목회자를 위한 교회성장 리더십 세미나에 참석했었는데, 미국 교회 3천여 명의 목회자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그것을 벌써 24, 25년 동안 개최를 하는데 바로 미국에서 제일 큰, 그리고 제일 건강한 교회라고 하는 윌로우크릭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와 새들백교회의 릭 위렌 목사가 한 해도 쉬지 않고 20년 가까이 20차례 그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세미나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거기에서 배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자기 나름대로 소화해서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통찰력을 가지고 적용한 결과, 오히려 로버트 슐러 목사님 교회보다 더 위대한 교회를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멋있는 점은 서로 인정하고, 감사하고, 그리고 세워 줍니다. 그래서 70이 다 된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그 40대 초반의 새파란, 자기 아들과 같은 목회자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이제는 참석자가 아닌 강사로 모셔서 수많은 목회자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는 것을 보고 굉장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세미나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처음에 엄청나게 눈에 보이는 역사는 안 일어날지라도 조금씩 조금씩 자기 성장을 통해서 목회자와 교회가 건강한 교회, 성장하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제가 오늘 맡게 된 강의의 내용은 “교회성장형 예배개발”입니다. 저는 교회 성장형이라는 형용사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에 교회 성장형을 붙입니다. 예배도 교회 성장형 예배입니다. 이왕 예배드리는 것, 그렇고 그런 예배가 아니라 그 예배를 통해서 교회가 성장해야 되겠다는 의미입니다. 교회 성장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 성장’하면 사람마다 개념이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교회 성장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교회 성장이라는 것은 초대교회 모습,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그대로 하는 교회로서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목회자들도 자화상을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교회 성장형 목회자다. 우리 교회 성도는 교회 성장형 교인이다. 우리 교회의 프로그램은 교회 성장형 프로그램이다.” 심지어 기도회도 교회 성장형 기도회, 회의 하다가 점점 회의가 든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회의도 “교회 성장형 회의를 합시다”하면서 분위기를 바꾸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형용사 ‘교회 성장형(church growth)’을 앞에 붙여서 모든 것을 연결시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자화상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궁극적인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할 수 있으면 성공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궁극적인 질문 중의 하나가 자기 정체성입니다. 저는 네 가지 질문에 대해서 대답할 수 있으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믿습니다.
첫째는, ‘내가 누구냐?’하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결국 내가 누구냐에 따라서 우리의 행동이 달라집니다. 다시 말해서 being 때문에 doing이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 자신이 정말 교회 성장형 목회자가 된다면 교회 성장형 행동이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자기를 진실로 발견하는, 참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잃어버린 우리의 자아를 다시 예수 안에서 회복하는 사건이 구원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공자의 특징을 보면 늘 자기를 성공자라고 생각합니다. 한신교회가 분당에 세계적인 교회를 짓고 있습니다. 이중표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세계적인 교회라고 그럽니다. 팔각형으로 되어 있어 가지고 건축학적인 의미가 신학적으로 연결되는 멋있는 교회를 짓는 것에 대해서 대단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한 긍지나 나타나는 창조의 역사가 연결이 된다 그렇게 봅니다. 그러니까 성공하신 분의 특징을 보면 자기를 성공자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실패자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실패자의 특징은 늘 자기를 실패자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래서 피터 와그너 박사는 “교회의 사이즈가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속의 교회에 대한 생각이 더 문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기를 찾는 작업이 제일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 여러 많은 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진실로 나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가 자기의 참 자화상을 회복할 때 우리는 강력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기를 발견할 때 굉장한 능력이 생긴다는 교훈을 저는 최근에 영화를 보면서 발견했습니다. 저는 영화를 가끔 봅니다. 성경만 열심히 읽을 것이 아니라 세상도 알아야 되는데 우리 목회자가 제일 돈도 안 들고, 가장 짧은 시간에 편안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영화감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비디오 가게에 갑니다. 흔히 책방, 심방, 골방 이렇게 세 방을 가라고 하는데 저는 자아방, 비디오방에 가는 것을 주장합니다. 비디오 가게에 가서 물어봅니다. 요즘 제일 잘 나가는 비디오가 뭡니까? 해서 제일 잘 나가는 것을 가끔 봅니다. 약 한 달 전에도 가서 “요즘 제일 잘 나가는 비디오가 뭡니까?”했더니 뭐라고 그래요, 그래서 그것을 빌려서 봤는데 얼마나 재미있는지 제가 그 텔레비전 모니터에 얼굴을 본드로 붙인 것처럼 붙어 버렸습니다. 너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액션물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영성을 위해서 제목은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비디오를 볼 때마다 항상 안수기도를 합니다. “주여, 이 비디오를 보고 은혜를 받게 하옵소서. 괜히 재미도 없는 것 봐가지고 시간 낭비해서 열받지 말게 하시고 뭔가 한 가지 깨닫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름부음 받도록 안수기도를 하고 봅니다. 그러면 진짜로 은혜 받았습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가 무엇인가 하니 거기에 어떤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데 이 여자 주인공이 기억 상실증에 걸렸습니다. 전혀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느 시골의 초등학교 교사로 있는데 성탄절이 되어 마을에서 성탄절 축제를 벌이는데 그 여자의 얼굴이 예쁘니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분장을 하고 마차를 타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CNN 텔레비전 방송에서 중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뉴스를 보고 일부 악당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들이 죽인 여자인데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까 이 여자는 미국의 CIA 특수 요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뉴스를 보고 놀란 사람들은 굉장한 비리를 가진 악당들이었습니다. 대통령까지 연결되어 있는 비리의 주인공들입니다. 그 비리를 이 여자가 알기 때문에 옛날에 죽였는데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이 여자를 죽일 때 절벽으로 떨어뜨렸는데 죽지 않고 휩쓸려 가가지고 어느 마을에 들어갔는데 대신 그 충격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모든 과거의 기억을 다 상실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를 당장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부하들이 가서 죽이는데 이 여자는 멀쩡하게 있다가 갑자기 어떤 여자가 와서 기관총으로 갈기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순간적으로 그 공격하는 사람을 피해서 오히려 그 공격하는 사람을 잡아다가 내리쳐가지고 목을 부러뜨려서 죽여버립니다. 그것을 보면서 자기도 깜짝 놀랍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자기는 전혀 기억을 못하지만 고도의 훈련을 받은 CIA요원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이 여자가 잡혔습니다.
잡혀가지고 완전히 속치마 바람으로 큰 물레방아에 묶였습니다. 묶어서 물속에 집어넣고 고문을 하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의 비리를 알고 있는지 불어라.” 이 여자는 죽을 맛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느냐? 나를 좀 놓아주어라.” 그런 식으로 물속에 몇 번 넣었다 뺐다 하니까 이 여자가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 허파가 폭발하려고 하고 머리가 깨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극한 고통 때문에 자기의 과거에 잃어버렸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알고 보니까 자기는 엄청나게 고도의 훈련을 받은 CIA특수요원입니다.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거기에서 생존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자 이 여자가 물속에서 그 먼저 빠진 사람의 허리춤에 있던 총을 빼가지고는 물레방아가 돌려나올 때 자기를 고문하는 사람을 그 자리에서 다 쏴 죽이고 그 다음부터 일망타진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 비디오 영화를 보면서 깨달은 것이 뭐냐하면 자기의 진정한 모습을 깨달을 때 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동역자들을 적어도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맡은 자로 부르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것만으로도 우리는 성공했는데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자로 나를 부르셨다고 했을 때 나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항상 ‘이 목회를 해야 될 것이냐 말아야 될 것이냐’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민하는 모습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 교회 성장하는 것을 보고 괜히 열받아가지고 밤에 잠을 못자는 고통의 모습입니까? 저는 여러 가지 교회 성장의 기술적인 면이나 테크닉을 배우기 전에 먼저 중요한 것은 진정한 나의 자화상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화상이 확실하고 건강한 사람, 그러한 지도자가 성도들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항상 정의를 내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예배가 뭐냐, 내가 누구냐, 그러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 자화상에 대해서 대답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왜?’라고 하는 질문입니다. 정체의식 다음에는 목적의식입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 내가 왜 사는가, 내가 왜 목회를 하는가, 성도들 입장에서는 내가 왜 교회에 다니는가 하는 ‘why’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대답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성공자입니다.
요새 「새들백교회 이야기」라는 책이 굉장히 잘 팔리는데 제가 봐도 지금까지 나온 교회 성장에 대한 책 중에서는 가장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책의 원래 제목은 “The purpose driven church”입니다. 즉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목적의 종이 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그 이유와 목적을 정확히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은 강한 사람이 됩니다.
세 번째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라는 사명의식입니다. ‘what’의 문제입니다. 흔히 영어로 말하면 ‘Job discription’이라고 합니다. ‘내가 해야 할 분명한 사역의 명세서’가 정확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갈등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도 자기가 이 교회에 와서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또 예배드린다고 하면 예배드리러 와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정확한 개념이 있으면 예배의 질이 달라집니다.
네 번째, how,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라는 전략의식입니다. 앞에 있는 것들이 확실하더라도, 예를 들어서 예배에 대해서 ‘예배가 과연 뭐냐? 예배를 왜 드리느냐? 예배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하는 것을 다 알았더라도 ‘예배를 어떻게 드릴 것이냐?’하는 ‘어떻게’에 대한 보다 분명한 방법론과 전략이 약하면 전체적으로 약해진다는 말입니다.
요새 전략적인 마인드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목회도 그냥 덮어놓고 하지 말고 전략적으로 해야 합니다.
저희연구소에서 교육받은 몇몇 목사님들이 와서 이런 하소연을 합니다. “주여. 믿습니다”하고 밀고 나갔더니 바로 낭떠러지더라는 말을 했습니다. 개척을 해가지고 고생한 분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어떤 노하우와 방법론을 모르고 전략 없이 뛰어 들어가서 열심히 했더니 고생했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국가에도 국가 전략이 필요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회창 씨가 나와서 TV 토론회를 100분간 했는데 거기에서도 많은 질문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전략입니다. 도대체 우리 나라가 앞으로 선진국이 되어야 하겠는데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이 무엇인가를 각 분야별로 나누어서 물어보는 것이거든요. 과연 얼마나 전략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대통령 후보로 나올 것이냐 그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 같은 경우도 보십시오. 북한이 사실은 놀고 먹었기 때문에 굶어죽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 국민보다 더 열심히 일했을 것입니다. 새벽부터 강제노동에 끌려가서 저녁에 잠도 못 자고 또 학습 사상 교육을 받고 그렇게 열나게 뛰었는데 먹을 것도 없이 굶어 죽어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왜 그러냐면 전략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보면 굉장히 열심히 뛰고 애쓰고 또 목사님 자신이 굉장히 깨끗하고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참 좋은 분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성장을 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설교하고, 열심히 예배 인도하고, 열심히 전도했는데 교회가 성장이 안 된다면 전략적인 면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늘 예배하고 관련된 얘기를 합니다만 크게 두 가지로 얘기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접촉하게 하고, 생명이 나타나게 하는 일에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경험하게 하는 성령의 역사라든가 기도와 말씀의 역사에 우리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교회는 생명체이면서 조직체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면서 인간의 조직입니다. 그런데 이 조직을 우리들이 잘 이끌어가는 면에서 실패를 하면 결국 균형이 깨져서 영적으로 잘 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두 가지 차원을 중요하게 봅니다. 교회의 생명의 차원과 조직의 차원, 그래서 생명의 차원을 위해서 우리는 보다 영적이어야 되고 조직의 차원을 위해서 우리는 보다 더 인적이어야 됩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양성인 것처럼 교회도 그러한 두 가지 차원이 항상 존재하는 것입니다.
미래 교회의 자화상인 「메타 교회」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칼 조지가 쓴 아주 좋은 책입니다. 저도 ‘메타 맨’이라든가 ‘메타 교회’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메타 교회’라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되고 개혁하는 교회인데 메타 교회의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크게 교회 구조가 두 가지 구조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첫째, 예배 구조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배가 살아있는 예배, 역동적인 예배, 하나님의 생명을 경험하는 예배가 되면 그 교회는 건강한 교회요, 끊임없이 개혁하는 교회이며, 성장하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예배는 많이 참여할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그런 면에서 예배에 참석자가 많은 교회가 되도록 꿈을 가지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예배 출석자가 많다고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두 번째로 구역 구조, 소그룹 구조로서의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거대한 축제로서의 예배와 함께 작은 사람들끼리의 부딪침과 만남이 있는 조직입니다. 그러니까 예배에서는 생명을, 소그룹에서는 조직을, 그 사람들을 붙잡는 조직을 이렇게 두 가지 차원에서 계속 집중적으로 목회자는 개발을 해야 된다는 내용에 강조점을 가지는 것이 ‘메타 교회’라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예배의 위치를, 예배의 중요성을 우리가 살펴보겠습니다.
예배는 다음의 다섯 가지 이유 때문에 중요합니다.
첫째, 예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교회의 최대 사명입니다. 교회의 4대 사명은 예배, 교육, 선교, 봉사인데 이 네 가지 사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셋째, 예배는 성도의 교제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장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넷째, 예배는 성도에게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다섯째, 예배는 교회 성장을 촉진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예배는 흔히 말하는 앞문입니다. 제가 엊그제 탈고한 책이 「앞 문을 열어라」는 책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 전에 「뒷문을 막아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뒷문을 막는 것은 새신자를 정착시키는 것인데 사람들이 앞문으로 처음에 들어오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런데 우선은 교회의 첫인상이 좋아야 합니다. 누구를 전도해가지고 교회에 왔는데 그 사람이 다음 주에 내가 또 와야 되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예배 끝나기 5분 전이라고 합니다. 처음 자기가 참석한 그 교회 예배가 끝나기 약 5분 전에 결정된다고 합니다. ‘아, 내가 다음 주에 또 와야 되겠다. 다음 주에 오지 말아야 되겠다.’ 그러니까 일단 오게 하는 것은 예배가 붙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단 나오고 나서 처음에는 ‘할렐루야, 아멘’ 하다가 한 몇 주 나오다가 서서히 뒷문으로 빠져나갑니다. 그것은 바로 조직이 붙잡아 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들을 붙잡는 시스템이 되어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앞문과 뒷문의 관계를 봐서도 교회 성장에 이 예배의 중요성이 크다는 말입니다.
저는 요새 컨설팅을 많이 합니다. 강의를 많이 하면서 제가 느낀 것은 설교를 10년 동안 했는데도 사람이 안 변하고 오히려 갈수록 바로처럼 강퍅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7년간 목회하면서 공부할 때 제 동역자가 골프를 치러 가면 골프 공에 사람 얼굴을 그리고 이름을 씁니다. 그리고 있는 대로 그것을 후려칩니다. ‘예수 이름으로’하면서 내려칩니다. 그것이 뭐냐고 하니까 속썩이는 장로와 속썩이는 집사랍니다. “아니, 그것을 때린다고 됩니까? 기도를 해야지”했더니 그냥 기도하면 안 되는데 이렇게 때리면서 기도하면 응답이 된다고 얘기를 합니다.
설교나 강의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해와 감동입니다. 뭔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깨닫고 마음에 감동을 줍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거기에 꼭 들어가야 할 것이 적용입니다. 설교나 강의를 하고 난 다음에는 적용이 있어야 내 것이 됩니다. 그 결과 내 것이 되는데 이 적용하는 시간이 없으면 아무리 설교해도 사람이 바뀌지 않습니다. 저는 그 적용이 바로 소그룹을 통한 제자훈련이라고 봅니다. 제자훈련이라는 소그룹 말씀 사역을 통해서 적용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의 감동과 훈련의 적용을 잘 운용할 때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단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자리는 예배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강의보다도 가장 효과적인 것은 우리 목회자들이 적용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합니다. 세미나 참석해서 듣는 것으로는 거의 10%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참석한 사람에게 영향이 미치는 비율도 10%밖에 안 됩니다. 그래서 요새 미국 교회에서 강조되는 것이 컨설팅입니다. 그러니까 듣는 것이 아니라 듣고 자기 자신을 한 번 진단해보는 자기 진단입니다. 자기 교회를 진단하고 자기를 진단하는 컨설팅이 필요합니다. 저는 어느 교회에 가서 컨설팅을 할 때 10, 20분 안에 간단히 진단하면서 네 가지 중요한 것을 물어봅니다. 이 네가지를 저는 흔히 말하는 가장 중요한 소수의 사역이라고 보는데 그 전체를 얘기하는 것을 저는 ‘WEST’라고 말합니다. west는 서부라는 뜻인데, 교회 개척학교에서 특히 이것을 강조했으며 미국에서 옛날에 ‘west west’라는 영화도 있었거든요. ‘서부로 서부로 향하여’ 계속 개척하고, 확장하고, 뻗어나가는 그런 것을 상징하는 두음을 모아서 ‘WEST’라고 했습니다. 네 가지가 목회의 가장 중요한 본질입니다. 이 네가지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이것 저것 다하려고 하지 말고 중요한 소수에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스티븐 카비가 쓴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는 책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로 각광을 받는 좋은 책인데 그 책에서는 우리 인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일을 하고 바쁘게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계만 들여다보지 말고 가끔은 나침반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침반이란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과연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잊어버리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가장 중요한 네 가지를 ‘WEST’로 표현했는데 첫째, ‘Worship(예배)’입니다. 그 교회에 가서 이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지, 성장하고 있는지 아니면 문제 있는지, 질병이 있는 교회인지 알려면 예배에 참여해보면 압니다. 예배의 분위기, 예배에서의 메시지의 선포, 그 예배에 대한 평신도들의 응답, 이런 것들을 우리는 진단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교회가 예배에서 은혜를 못 끼칩니다. 너무 생명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예배가 지루합니다. 또 오고 싶은 마음보다는 어서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런 예배는 치명적입니다.
두 번째, ‘Evangelism(전도)’입니다. 그 교회의 건강도를 측정하는 중요한 두 번째 영역은 전도입니다. 과연 교회가 전도를 하는가, 전도 특공대는 있는가, 전도의 동기 부여를 어떻게 하는가, 전도의 전략과, 프로그램과, 훈련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이런 것을 보면 금방 그 교회의 건강도를 알 수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전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도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고 무지합니다. 그런데 폐일언하고 목회의 본질에 충실하는 교회가 성장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본질은 전도입니다.
세 번째, ‘System(조직화)’입니다. 단 백 명만 모여도 그 백 명을 잘 조직해서 그 평신도들을 단순한 예배 참석자가 아니라 목회자와 함께 일하는 사역자로 만드는 그런 조직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구역 조직을 많이 진단을 하게 됩니다. 구역이 유명무실한 교회는 성장하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구역이 살아 있는 교회는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아주 건강한 교회입니다.
우리는 신학교에서 영성을 많이 배우는데 저는 ‘spirit’과 함께 ‘skill’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선 순위는 ‘spirit’입니다. 기도, 말씀, 성령의 은사,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이지만 인간의 조직체이기 때문에 인간의 조직체를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십 기술이 없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복사판 같은 목사님인데 항상 교회가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있습니다. 그 각종 희한한 사람들을 다룰 수 있는 리더십 능력이 부족하면 결국은 실패합니다. 건축하다가 교회가 파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목회를 한다는 것은 ‘ministry’와 ‘business’라고 생각합니다. 사역과 함께 경영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새 경영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합니다. 하다못해 가정 주부들에게도 가정 경영자라고 얘기합니다. 저는 목회도 일종의 경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에서 사업을 크게 하던 분들이 나중에 목회자로 부름받을 때 큰 목회를 할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단순한 세상 경영은 아니지만 목회도 일종의 경영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네 번째, ‘trainning(훈련)’입니다. 그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가, 그 교회가 성장하는 교회인가를 진단하기 위해서 어떠한 훈련을 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어떻게 키우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목회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다”라는 정의를 가지고 사람 키우는 것에 모든 것을 쏟는 목회자는 반드시 성장하는 교회의 목회자가 될 수 있습니다.
네 가지를 얘기 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다 아는 얘기겠습니다만 늘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우리 목회자들의 주 관심사가 되면 훨씬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중에서 첫 번째가 바로 예배입니다.
역동적인 예배를 위한 일곱 가지 원리
이른바 교회 성장형 예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배 철학을 정립하라
영적인 감동이 있는 역동적인 예배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목회자의 예배 철학이 분명해야 합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분명한 예배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배의 의미와 본질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고 왜 예배를 드리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 주에서 크게 목회하고 있는 더그 머랜 목사도 자신의 예배 철학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주일 아침 대예배의 목적은 첫째, 하나님을 찬양하고 둘째, 그 도시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선포하고 셋째,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하심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도 다 분명히 압니다. 거기에다 도시에 대한 ‘Lordship’ 주님이 그 도시를 다스린다는 것을 선포하고,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러니까 예배 시간마다 그 교회에서는 주님을 영접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지난 주에 제가 수원 중앙침례교회 김장환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에 갔는데 거기서도 보니까 예배 때마다 반드시 마지막 순간에 주님을 영접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나오라고 해서 그대로 끌고 가고 다시 복음을 소개해서 주님을 영접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매주일 예배가 일종의 전도집회입니다. 이것이 어려우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주일 대예배 때 과감하게 전도를 목적으로 하는 예배로 바꾸어보는 전환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요예배의 목적은 첫째, 교인들을 양육하고 둘째, 교회생활에 대한 정보를 안내하고 셋째, 기독교적인 삶이 무엇인가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넷째, 모임을 통해 기도의 능력을 얻는 것이다. 3개월에 한 번씩 예배를 드리는 전도예배의 목적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다.”
이런 식으로 예배의 성격에 따라서 그 목적을 분명히 명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목적을 이루는 예배가 되도록 노력을 합니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예배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요즘 많이 강조되는 것이 교회론과 목회철학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성장형 목회자가 되려면 종이 10여 장에 쉬지 않고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쓸 수 있을 정도로 교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연장이다”라는 정의는 굉장히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연장이고 제2의 성육신이라고 하는 개념에는 건강한 교회, 성서적인 교회가 된다는 것은 철저하게 예수님이 하신 일을 그대로 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라고 해석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꾸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하지 말고 다른 교회 가서 그것을 흉내 내려고 하지 말고 정말로 교회가 무엇이냐를 알아야 합니다. 많고 많은 교회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자기가 대답만 할 수 있으면 제가 볼 때는 방법론이나 기술적인 테크닉은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통찰력을 통해서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철저하게 교회론, 목회철학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정말로 변함없는 신념과 같은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순간 예배 때마다 그러한 목적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2. 예배계획을 세우라
역동적인 예배는 전략적이어야 합니다. 전략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디 제이콥스라는 여성이 있는데 지금 미국에서 중보기도 운동을 벌이는 여성입니다. 원래는 가정주부였는데 목회자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도록 부름받아 수많은 여성들을 중보기도자로 훈련시켜 거대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자매의 책이 우리나라에서 두 권이 번역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책이 「대적의 문을 취하라」는 책입니다. 이것은 중보기도를 어떻게 하고, 특별히 교회를 위해서, 목회자를 위해서 중보기도 특공대를 어떻게 결성할 것인가에 대한 책입니다. 피터 와그너가 쓴 「방패 기도」라는 책과 함께 중보사역에 굉장히 중요한 지침이 되는 책입니다.
신디 제이콥스는 가정주부로 일할 때는 별로 힘이 안 들었는데 본격적으로 중보기도 사역자로 일을 하니까 너무 어려움이 많고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영적 싸움에서 마귀가 그렇게 강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은 새벽 2시에 일어나가지고 해가 뜰 때까지 꼼짝없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신디 제이콥스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마귀가 강합니까? 사탄이 강한 이유가 뭡니까?”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탄이 강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사탄은 전략적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탄이 우리를 공격할 때 무작정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공격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목회자도 목회에 대한 전략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배도 전략적으로 준비해야 됩니다. 그래서 예배위원회 같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 예배위원회에서 예배에 대한 여러 가지 준비를 철저히 합니다. 수시로 예배에 대한 평가를 해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그래서 사전에 그 예배를 리허설까지 합니다.
주일예배를 위해서 리허설을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교회가 로버트 슐러의 ‘크리스탈 처치’입니다. 그 교회는 예배가 몇 천 명 모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수천만 명에게 중계가 되기 때문에 그 예배의 진행을 위해 일반 방송국에서 쇼 프로그램 준비 하는 것 못지않게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반드시 리허설을 거칩니다. 예배 리허설이라고 해서 예배하는 사람들이 그 전날에 철저하게 준비를 합니다. ‘윌로우크릭 교회’도 예배 한 시간을 위해서 일주일 내내 2백 명의 스텝들이 철저하게 준비를 합니다. 15분 짜리 드라마 하나 하는데 2백 명의 전문가가 모여서 엄청난 노력을 거기에 투자한다는 말입니다. 저도 방송이나 드라마 제작에 참여해본 적이 있는데 10분짜리 하나 나가기 위해 얼마나 준비를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초대형 교회와 우리가 너무 상황이 다르니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겠냐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비록 40명이나 50명이 모이는 교회일지라도 그 예배를 철저하게 준비하는 마음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이라고 봅니다.
계획할 때는 특별히 예배의 흐름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준비를 그렇게 했다고 해서 꼭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 예배 때에 찬송을 몇 장 부르기로 했는데 흐름에 따라서는 금방 수시로 바꿀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큰 교회에서는 무전기 꽂고 얘기합니다. 예배의 총 감독이 있어서 봐서 분위기가 썰렁하면 즉시 바꾸게 하고 찬송도 무엇을 부르려고 예정했다가 시간이 지체되거나 지루하면 즉시 빼곤 합니다. 그런 장면들을 큰 교회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상황에서는 담임 목사가, 또는 예배 인도자가 강대상에서 그런 것들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준비를 위한 계획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소홀히 취급되는 것이 예배를 위한 중보기도의 준비입니다. 예배는 영적인 전투입니다. 사탄이 항상 우리의 예배를 방해하기 때문에 예배를 위한 중보기도는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 특공대가 교회에 없다면 중보기도 부대를 만들어서 목회자의 설교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예배를 위해서 기도하는 운동을 전개했으면 좋겠습니다.
한신교회에 세미나 때문에 가보니까 강대상 바로 옆에 중보기도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설교하고 예배드리는 그 시간에 옆에 있는 중보기도실에서는 계속해서 중보자들이 중보기도를 합니다. 이동원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도 가보니까 바로 강대상 옆에 방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에 특별히 강대상을 만들어 놓고 지구본을 놓고 지구본을 돌리면서 평상시에는 세계 선교를 위해서 기도하고 예배시에는 주일 내내 중보자들이 거기에서 예배의 은혜를 위해서, 목회자들의 기름 부음을 위해서 집중적으로 기도합니다. 이런 중보기도의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또 어떤 교회는 토요일날 설교 준비가 다 끝나면 목사님과 함께 또는 목사님 혼자서 주일 오후에 빈 예배당에서 무릎을 꿇고 서너 시간 동안 계속 기도합니다. 강대상에 안수기도를 하고 의자에 기도하고 그래서 대개 보면 성도들이 자기 앉는 자리가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 앉는 사람을 생각해면서 미리 기름부음을 위해 기도합니다. 어떤 자리에서는 간절히 30분 이상 움직이지 않고 기도합니다. 아마 그 자리는 속을 많이 썩이는 집사의 자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무릎을 꿇고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 그 교회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분위기가 충만해져서 그 다음날 올 때 냉랭한 분위기가 아니라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분위기가 되는 경우를 많이 경험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 번 해보면 예배시간에 굉장한 역사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목회자 자신이, 설교자 자신이 굉장히 은혜를 받습니다.
예배위원회가 하는 일 중에 중요한 것이 예배를 드린 후에 수시로 평가회를 갖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예배의 큰 희생자가 되어가지고 예배드리고 나면 지쳐서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은 것입니다. 자기가 한 설교를 다시 듣는 것도 원치 않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귀찮아도, 열받아도 다시 들어보고 비교해 보고 평가를 해봐야 합니다.
3. 거룩한 긴장이 있는 예배가 되게 하라
대개 예배가 은혜로운 교회에 가보면 굉장히 역동성이 있습니다. 거룩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우선 역동적인 예배는 개인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인 긴장이 있습니다. 수천 명, 수만 명이 모이지만 하나님이 나와 일대일로, 단독으로 드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면서 전체가 함께 하나님께 화답하고 찬양할 때는 그 공동체에 거대한 영적인 파워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역동성이 있습니다. 또 축제와 통회가 함께 어우러지는 역설적인 긴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분위기와 함께 하나님께 회개하고 통회 자복하는 시간도 있습니다. 물론 그 두 가지가 꼭 같이 있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예배의 어떤 목적이라든가 성격이나 특별한 상황에 따라서 어떤 예배는 더 통회쪽으로, 또 어떤 예배는 더 축제 쪽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또한 목회자의 목회철학이나 그 교회의 독특한 칼라 때문에도 예배의 분위기가 한 쪽으로 쏠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예배에 그러한 역설적인 긴장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외국의 큰 교회를 가보면 어떤 때는 저렇게 분위기가 금세 바뀔 수 있을 까 할 정도로 의아합니다. 찬양하다가 눈물 흘리고 하는 그런 것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역동적인 예배는 고요함과 긴장감을 가집니다. 시끄러우면서도 조용한 면이 공존하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굉장히 흑백논리가 강해서 그런지 시끄러운 교회는 그냥 시끄럽기만 하고 조용한 교회는 그냥 조용하기만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배 때 두 가지를 다 표현 못한다면 차라리 예배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 예배는 요란한 예배를 드리고 또 한 예배는 조용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그런 교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9시 예배는 조용한 예배를 드리고 11시 예배는 요란한 예배를 드리는, 이런 식으로 해서 같은 교회에서 예배를 차별화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주로 많이 하는 것이 주일 낮 예배는 거룩하고, 경건하게 드리고 저녁 예배는 캐주얼한 예배를 드림으로써 예배자의 성격과 취향에 따라서 필요를 충족시키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저녁 예배와 주일 낮 예배는 거의 한 사람이 두 군데를 다 참석하기 때문에 갈수록 저녁 예배 참석자가 줄어듭니다. 그러니까 낮 예배를 그렇게 차별화시키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역동적인 예배는 수직적인 것과 수평적인 것 사이의 거룩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만남,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예배입니다.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설교 중심에서 조금 변화를 추구하는 예배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개 성도들은 예배드린다는 것을 목사님 설교 듣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까 갈수록 설교자의 부담이 커집니다. 모든 짐을 설교자가 다 지고 예배를 인도해야 하기 때문에 목회자 자신은 예배를 통해서 가장 은혜를 받기가 어렵습니다. 설교가 조금 은혜로우면 신나는데 설교에서 죽을 쑤면 죽을 맛입니다. 이런 위험성을 희석시키기 위해서도 설교 말고도 하나님의 성령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인 실례로 평신도들의 간증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하게 하는 것도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슐러 목사가 성공한 것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도 거의 1년째 되어 가는데 목사님 설교와 또 여러 가지를 보고하는 스크린과 평신도들이 결정적으로 은혜 받는 것, 엄청난 하나님의 기적적인 체험, 이런 것들을 3~5분 정도 강대상에 올라와서 기도하고 연습하게 해서 간증을 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간증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거기는 꼭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간증보다도 인간 승리를 한 감동적인 뭉클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전 세계적으로 수소문해서 끌어들입니다. 불러들여서 잠깐 인터뷰도 하게 하고 간증도 하게 합니다. 그래서 집회에 참석하면 슐러 목사님의 메시지에도 은혜를 받지만 그 앞에서 하는 간단한 인간 승리의 간증에 결정적인 은혜를 받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데 어떤 아주 아름다운 청년 장님인데 그렇게 얼굴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장님 청년의 취미가 여행을 다니는 것이고 가장 좋아하는 것이 스키 타는 것입니다. 눈이 먼 장님인데 스키를 시속 64마일로 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그것을 타게 될 때까지의 훈련 과정과 자기가 지금은 얼마나 행복하고 자기의 인생이 얼마나 살 만한 가치가 있고 아름다운가를 진실로 기쁨이 넘쳐서 간증하는데 거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기립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목사님이 설교에서 죽을 쑤어도 할렐루야입니다. 워낙 강하게 은혜를 받았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저녁 예배 같은 경우에는 똑같은 설교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작은 교회에서는 그런 것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토크 쇼 같은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별 것도 아닌데 아침 마당에 주부들이 나와서 하는 얘기, 밤의 데이트에서 연예인들이 하는 얘기를 보면서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저녁 예배 때 거룩한 토크 쇼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 가족을 강대상 앞에 놓고 목사님이 MC가 되어서 그 가족들을 집단적으로 카운셀링을 해주면서 보다 인간적인 터치를 하면서 전 성도들도 거기에서 즐거움을 누리고 그 가족에 대한 구체적인 기도제목을 함께 듣고 기도하는 것들로 예배를 바꾸어보는 시도가 교회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드라마나 연극은 비용이 많이 듭니다. 그리고 굉장히 프로페셔널 하지 않고는 힘듭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그야말로 큰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웬만한 소형 교회에서는 비용 때문에 할 수 없습니다. 돈 안드는 것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사랑방 좌담회 같은 것을 한 번 시도해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4. 예배의 초점을 분명히 하라
예배의 중심 주제가 무엇인가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 이것저것 다 건지려고 하지 말고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건지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교회는 그렇습니다. 새들백교회는 다섯 가지 주제를 가지고 두 달에 한 주제씩 파는 것입니다. 다섯 가지 교회의 비전을 두 달에 한 주제별로 집중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집중적으로 예배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달은 그것을 전체적으로 종합하는 식으로 설교를 기획합니다. 교회 성장의 비전을 가지고 매달 네 번씩 있는 주일 예배의 주제를 달로 묶습니다. 물론 절기 설교나 다른 예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제가 볼 때 예배 자체를 성도들을 키우고, 변화시키고, 훈련시키는 장으로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매달마다 주제를 다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교회는 일 년 내내 52주 동안 성령의 은사만 집중적으로 설교를 했을 때 교회가 살아나고 양적으로도 두 배로 성장한 케이스가 나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예배에 초점을 맞추어서 집중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목표에 초점을 맞추면 평범한 것에서도 놀라운 힘이 발생합니다. 겨울에 약한 햇빛도 초점을 모으면 불이 납니다. 레이저가 왜 강합니까? 평범한 빛을 집중적으로 밀도를 한 곳에 모았기 때문에 파워풀한 빛이 되는 것입니다.
5. 새신자들을 위한 예배가 되게 하라
처음부터 준비없이 바꾸면 오히려 기존 신자들에게 저항과 불만이 있을 테니까 서서히 바꾸되 저는 가급적 주일 낮 예배를 전도할 수 있는 예배, 새신자와 불신자들이 오고 싶은 예배로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완전히 거듭나서 그 교회 정식 멤버가 된, 헌신한 사람들만을 위해 집중적으로 보다 깊이 있는 예배, 보다 더 강한 헌신을 요구하는 예배를 따로 드리는 것이 제일 무난합니다. 이것이 최근에 크게 성공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들입니다. 그래서 새신자들을 위한 예배에 대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있는데 주일 낮 예배를 열린 예배로 바꾸는 것이 좋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부터 어렵다면 새신자들만을 위한 저녁 예배를 드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부산 수영로교회, 부산 새중앙교회, 신평로교회 등이 요새 성장하고 있어서 제가 방문을 해봤는데 신평로교회만 해도 새신자들만 따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20주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니까 20주 동안 새신자들은 거기에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간단히 40분 동안 예배를 드리고 나머지 시간 30~40분 동안 분반공부를 합니다. 20개 반으로 나뉘어 그 20개 반에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새신자를 20단계로 말씀을 가르치고 20주가 끝났을 때 본 예배로 올리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굉장히 좋은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적어도 천여 명 모이는 교회에서 가능한 얘기고 소규모의 작은 교회에서는 따로 새신자만 모아서 예배드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존 예배를 불신자와 접촉하는 예배가 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6. 역동성을 해치는 요소를 과감히 제거하라
제일 큰 방해 요소는 목회자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예배의 꽃이 설교라고 할 때 목회자가 자기 메시지에 은혜를 받아야 성도들도 은혜를 받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은혜를 받고 있는지 안 받고 있는지 자기가 설교하면서 금방 알 수 있는데 우선 자기가 자기 설교에 은혜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성장형 설교를 특별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음악입니다. 최근에 강조되는 것이 음악입니다. 음악과 함께 표현합니다. 그래서 신세대들은 움직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교회는 완전히 댄스를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 그렇게 하자고 그럴 수는 없습니다. 미국 빈야드교회를 보고 와서 빈야드처럼 하자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이 형식이 바뀌는 것보다도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서 빈야드도 그렇게 현대적인 음악을 하고 움직임이 활동적인 것이 키포인트가 아니라 메시지에서 일종의 파워 미니스트리, 능력 목회에 대한 어떤 태도와 관점을 변화시키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원래 존 윔버 목사는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예배 하나만 봐가지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을 아주 강력하게 가르칩니다. 그런 것은 전혀 못 보고 예배 현장만 보고 와가지고 그것을 우리가 흉내낸다고 해서 과연 그런 예배 갱신이 이루어질 수 있느냐 하는 데 있어서는 회의적입니다.
그 다음에 회중의 참여도입니다. 성도들이 졸고 앉아 있느냐, 다른 생각 하면서 듣고 있느냐 설교에 정말 밀접하게 응답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루한 프로그램, 어쨌든 지루한 것은 역동적인 예배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요소입니다. 그래서 설교에서도 우선 내용이 있어야 되고, 흥미가 있어야 되고, 생활에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쉬운 설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어느 설교학자는 지루함은 첫 번째 설교학적인 죄악이라는 말까지 했고 성령은 유머의 영이다라는 말까지 했는데 어쨌든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코미디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정말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설교가 되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7. 예배를 생활화시키자
로버트 머레이는 “예배는 삶 전체다”라고 했습니다. 삶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는 예배당 안에서는 예배를 잘 드리는데 교회 밖으로 나가서는 예배를 못 드리는 신자가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한국 교회가 어려움이 있지 않나 우리 스스로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떤 공간의 개념으로서의 예배가 아니라, 어떤 장소에 가서 예배드린다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가 되는 쪽으로 예배 철학과 예배 신학이 개발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태도와 마음과 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의 행위 자체보다도 예배에 대한 태도, 또 예배를 어떻게 드리느냐 하는 방법론보다도 그 예배에 대한 우리들의 마음, 그리고 어떤 기술과 테크닉보다 영성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도들에게 그렇게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확실히 받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좋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좋아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확실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도가 사실보다 중요하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합니다. 그래서 교회 성장도 교회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 교회 성장의 열매가 주어질 것입니다. 예배도 예배에 대한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그 예배 자체가 달라질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강아지를 키우면서 굉장히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개를 굉장히 싫어했는데 우리 아이들이 개를 사달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요크셔테리오를 한 마리 사다가 일 년간 키워봤습니다. 그런데 이 개가 얼마나 주인을 좋아하는지 목숨을 걸고 좋아합니다. 설교하고 늦게 들어가면 가족들은 잠을 자지만 개는 절대로 안자고 주인을 기다렸다가 오면 펄쩍펄쩍 뛰면서 즐거워하고 반깁니다. 그러니까 개를 싫어하던 저도 개를 끌어안고 개를 위해서 돈도 쓰게 됩니다. 요즘 개한테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많습니까? 개 밥, 개 껌, 개 장난감, 개 샴푸, 개 팬티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개 미장원에 한 번 데리고 가려면 2,3만원이나 듭니다. 병원에 가면 우리는 의료보험 때문에 3,4천원 밖에 안 들지만 강아지는 2,3만원입니다. 그렇게 돈이 드는데도 돈을 씁니다. 개가 목숨을 걸고 나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강아지는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헌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먹고 싸고 좋아한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했기 때문에, 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을 좋아하기만 하면, 하나님을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예배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좋아서 미치겠는, 하나님이 없으면 못 견디겠는, 그런 하나님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가 우리 예배 분위기를 결정짓는다고 믿습니다. 교회 성장에 열정적인 태도를 가진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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