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교회

하마사 2017. 12. 5. 11:49

본문: 1:11

제목: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교회

찬송: 210

목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교회가 되게 한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루터가 점화시킨 종교개혁 운동은 151710월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을 비판한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성 교회 정문에 게시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루터의 반박문은 독일에서 일반인들이 읽을 수 있는 독일어로 인쇄되어 전국에 뿌려지면서 막강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려는 루터와 같은 종교개혁자들의 표어 5개가 있습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개혁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다섯 가지의 신앙의 본질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심교회가 지향하는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교회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으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더냐그 때 제자들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한명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질문했을 때 베드로가 유명한 대답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8)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교회,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성도는 어떤 교회와 성도입니까?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교회는

1. 믿음있는 교회입니다.(11)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교회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를 쓰면서 자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또한 2절에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했습니다. 3절에서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주로 믿었고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인데 히브리어로는 메시야입니다. 메시야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을 세울 때 기름을 부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이며 우리의 죄를 사해주는 제사장이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믿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바울처럼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교회와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에게 있어 특별한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기간 중 세운 유럽 최초의 교회입니다. 처음 복음을 접한 이후 지속적으로 바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물질적으로 선교사역을 후원하는 등 바울에게 가장 큰 기쁨을 안겨준 교회였습니다. 빌립보서가 기록된 당시 바울은 로마감옥에 1차로 투옥된 상태였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이때에도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하여 투옥된 바울을 물질적으로 후원할 뿐 아니라 곁에서 시중들게 할 만큼 깊은 애정과 호의를 보여주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기록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에바브로디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빌립보교회가 파송하여 바울을 돕던 에바브로디도가 중병에 걸려 거의 죽음 직전에까지 이르게 되자 빌립보교인들은 바울과 에바브로디도를 함께 걱정했습니다. 얼마 후 에바브로디도가 병에서 회복되자 바울은 그를 빌립보교회로 돌려보내면서 따뜻하게 맞이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빌립보교회가 베풀어 준 호의를 생각하며 감사의 뜻을 전달하면서 신앙적인 권면과 교훈의 말을 기록한 편지가 빌립보서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먼저 축복했습니다. 감사하면서 그들을 위해 항상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기도한 궁극적인 목적이 오늘 본문인데,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성도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교회와 성도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하고, 그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믿음있는 사람의 샘플이 되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거장들인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사무엘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으면 상 주시는 분임을 믿고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물론 거짓으로 찬송할 수 있습니다. 찬송을 연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표정으로 연기를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찬송이 될 수 없습니다.

믿음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과 부합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찬송을 받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영광과 찬송을 받기 원하셔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토록 우리를 통해 영광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찬송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 믿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돌을 옮겨놓으라 하자 마르다가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11:40) 하시고 죽은 나사로의 이름을 불러서 살리셨습니다.

믿음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고 주인이며, 하나님이 좋으신 아버지이심을 믿는 믿음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교회는

2. 열매있는 교회입니다.(11)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올바름’, ‘공정함’, ‘바른 관계란 뜻이 있는데, 성경에서 사용될 때는 하나님의 뜻과 합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구원받고 의인으로 간주된다는 의미에서의 의가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의 생활 가운데서 나타나는 성화의 증거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란 율법을 지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고 역사하심으로 맺는 성화의 열매입니다.

5:22절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열매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된 인격의 증거들입니다.

이런 의의 열매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착한 행실로 나타납니다. 선행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선행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않습니다. 착한 행실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착한 행실로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화)

사도행전 10장에 로마 백부장 고넬료가 등장합니다. 성경은 그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10:2)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많이라는 단어를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특히 많은 구제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이나 관료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식민지 백성들을 착취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고넬료는 오히려 구제에 힘썼습니다. 식민지 백성인 유대인들이 점령군이었던 고넬료를 칭찬할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고넬료가 기도할 때 천사가 나타나서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했습니다. 천사의 말에 순종하여 베드로를 청하여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이 성령을 받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고넬료는 착한 행실을 통해 유대인들을 감동시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1)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맺을 수 있습니다.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의의 열매는 자신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매개로 해서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열매는 가지에 열립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을 때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나무에 떨어져 죽은 가지는 열매를 절대로 맺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애를 써도 혼자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밭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농부는 그 열매로 기쁨을 얻습니다. (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 열매가 내 자랑으로 끝난다면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없습니다.

열매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려면 평소에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포도나무 되시는 주님께 붙어있는 모습으로 살아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맺힌 열매임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나무들 중에는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가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매를 맺습니다. (92:14)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말씀처럼 의인은 늙어도 여전히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은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을 때까지 의의열매를 맺다가 그 열매를 가지고 천국에 가서 상급을 받습니다.

 

2) 열매를 맺으려면 희생해야 합니다.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크리스천의 상징은 빛과 소금, 그리고 한 알의 밀알입니다. 공통점은 자기희생입니다. 초는 타 들어가면서 빛을 발합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것이 빛이라면 썩어가는 세상에 방부제는 소금입니다. 소금은 녹아서 자기 해체를 겪을 때 비로소 맛을 냅니다. 바닷물은 3%의 염분이 있어 변질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 초창기 크리스천 비율이 1.5%일 때 예수 믿는 사람 중에는 애국자, 선각자가 많았습니다. 경찰서 100개를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하나 세우는 것이 낫다고 한 백범 김구선생이나 도산 안창호,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선생은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한 알의 밀알은 떨어져 죽을 때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처럼 십자가를 지심으로 생명의 길을 여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교회와 성도가 되려면 희생해야 합니다. 희생할 때 열매가 있습니다. 희생할 때 생명의 역사가 이어집니다.

 

3)열매를 맺으려면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의의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하다가 낙심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 붙어있고 희생하며 살다가 한계가 올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동행하며 희생하며 살지만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 낙망합니다. 도무지 변화가 보이지 않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의 열매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 때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반드시 열매 맺게 하시고 높여주십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 앞에서는 공짜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의의 열매를 맺으려고 선을 행하면 신실하신 하나님이 반드시 열매로 보상해주십니다. 그 때까지 낙심하지 말고 선을 행하는 것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착한 행실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선행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귀한 분들입니다. 타종교를 가진 분들도 선행을 많이 합니다. 선행을 통해 기쁨을 얻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선행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지만 그들의 선행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거나 하나님을 찬송하지는 못합니다. 믿음에서 나온 열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주심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의의 열매를 가득 맺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붙어있어야 합니다. 한 알의 밀알처럼 여러분이 있는 자리에서 희생해야 합니다. 희생하다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열매 맺게 하시고 그 열매를 통해 영광과 찬송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교회는

3. 목적있는 교회입니다.(11)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교회와 성도가 되려면 목적있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바른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예화)

아프리카에는 산양의 일종인 스프링 벅이라는 사슴이 있습니다. 이 사슴은 치타도 쉽게 잡지 못하는 빠른 발을 갖고 있으며 사슴들 중에서 가장 영리하며 힘도 좋습니다그런데 가끔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 떼죽음을 당하곤 합니다. 뒤에 있는 사슴이 더 좋은 풀을 먹기 위해 앞의 사슴을 밀치면 앞에 있던 사슴은 더 앞으로 밀려나면서 뛰게 되고 다른 사슴은 영문도 모른 채 질주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아무런 목적도 없는 질주를 하다가 나중에는 눈앞의 낭떠러지를 보고서도 그 질주를 멈추지 못해 그대로 떨어져 죽습니다. 그야말로 죽음의 질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는 속도전쟁 시대라고 합니다. 속도가 빨라야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늦는 것은 못 참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인생의 목적지도 모른 채 과속인생을 내달립니다.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결코 철학자들만이 해야 하는 질문이 아니라 목적있는 삶을 위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질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2: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빨리 달리면 파멸로 빨리 달려가는 것입니다. 늦더라도 바른 방향으로 달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삶의 목적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삶의 목적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맺는 의의 열매도 모두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의의 열매를 맺는 목적도 결국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을 위해서입니다. 착한 행실을 하는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사명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직장이나 사업을 하여 경제적 이윤을 얻는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교회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눔과 섬김의 일, 구제하고 사랑을 베푸는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내가 받으면 영적인 도둑질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도중에 가로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영광 받는 일을 했다면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영광 받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릴 목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목적있는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입니다. 삶의 전 영역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생각과 말과 행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찬양을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왕으로 세우시고 높이셨음을 알았기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는 시로 하나님을 찬양했고 악기를 가지고, 춤을 추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성에 들어올 때는 자기의 옷이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온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는 자신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더 온전히 찬양하도록 하기 위해 레위인들을 중심으로 찬양대를 조직하고 악기, 찬양곡 등을 정비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목적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부자가 되고 사회의 지도층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목적이 더 중요합니다. 감리교 창설자인 존 웨슬리는 금전의 사용이란 설교에서 세 가지로 그리스도인의 경제원칙을 말했습니다. 1)할 수 있거든 많이 벌라. 2)할 수 있거든 많이 저축하라 3)할 수 있거든 많이 주라. 선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부자가 되고 사회의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영광만을 위하여 재물과 힘을 가지면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예화)

부모님이 사시는 집의 이웃집에 서씨 아저씨가 있습니다. 평생을 소처럼 일하고 사신 분입니다. 많은 땅을 사서 땅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모을 줄만 알지 쓸 줄을 모르십니다. 여행을 가거나 자기를 위해서나 이웃을 위해 사용하지 않습니다. 돈을 버는 바른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공적인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것이 성공적인 삶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교회와 성도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있는 교회와 성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한 열매있는 교회와 성도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목적있는 교회와 성도입니다.

사랑하는 주심가족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