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고암 선생은 한 방에 있는 사람을 수번(囚番)으로 부르는 법이 없고, 부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자네 이름이 뭐야?’…”
신영복 저 ‘담론’(돌베개) 73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감옥에선 이름 대신에 수감 번호를 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꼭 이름을 부르는 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름이 ‘응일(應一)’이라고 했더니(이름에 한 일 자 쓰는 사람이 대개 맏아들이기에) ‘뉘 집 큰아들이 징역 와 있구먼’ 그러더랍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그 날 밤 자기가 큰 아들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부모님과 누이동생을 생각하며 한숨도 잘 수 없었다고 합니다. 죄수로서가 아닌 자신의 참 존재성을 느낀 것입니다.
죄의 감옥, 욕망의 감옥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은 번호가 아닌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삭개오야 내려오라!”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주님이 이름을 불러줄 때 응답을 하면, 몸짓에 불과하던 우리는 하늘나라의 꽃으로 피어납니다. 상품화 되고 숫자화 되고 등급화 됐던 내가 아닌, 하나님이 이 땅에 나를 보내시며 기대했던 나, 회복되어야 할 나의 참 존재성이 살아납니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눅 19:5)
글=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삽화=이영은 기자
-국민일보 겨자씨, 2017/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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