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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法 국민의식·사회 관행에 變革 가져오길

하마사 2016. 9. 28. 16:20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법)'이 28일 발효된다. 법 하나가 이만큼 관심을 끌었던 예가 드물 것이다. 법 적용 대상은 공무원을 비롯해 공공기관·교육기관·언론계 종사자와 배우자까지 400만명이나 된다. 김영란법은 쇼크 요법을 써서라도 국가 윤리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합의 아래 만든 것이다. 국민 의식을 바꿔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법으로 국민의 행동을 바꾸고 그것이 누적돼 인식·관행이 변화하도록 밀고 나가야 할 경우도 있다.

부패·부정이 없고 편법·특혜·특권이 통하지 않는다는 신뢰는 선진 사회의 필수 자산이다. 우리는 경제 몸집에 비해 사회적 신뢰나 공정(公正)의 수준이 뒤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뇌물·특혜 사건이 일상화돼 있다시피 하고 촌지와 떡값, 급행료가 붙어야 도장이 찍히는 구습(舊習)이 구석구석 스며 있다. 이러다 보니 권한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인맥을 쌓기 위한 접대 문화가 만연해 있다. 한국경제연구소 추산 연간 법인 접대비가 43조원을 넘는다. 실력과 근면보다는 연줄과 정실(情實)이 앞서는 연고주의 관행을 털어내지 않고서는 청렴한 사회를 이룰 수 없고 사회의 비효율도 개선할 수 없다. 그 결과 사회 전체가 벽에 부딪히게 되면 구성원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미국은 이미 1962년부터 '뇌물, 부당 이득 및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해 공직자들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을 1회 20달러(약 2만2000원), 연간 50달러(약 5만5000원)까지로 제한해왔다. 일본 역시 공직자들은 1인당 5000엔(약 5만5000원)으로 접대비 상한을 정해놓고 있다. 이로 인해 축적된 신뢰·공정이 사회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그 혜택을 그 나라 국민 모두가 보고 있다.

금품·향응 접대와 부정 청탁이 오가는 근원은 공직자들이 과도한 규제와 권한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무겁게 규제를 가하고 다른 사람은 사정을 봐줄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갑(甲)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접대하고 뒷거래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과 더불어 사회 모든 분야에서 과도한 규제를 없애고 공정하고 투명한 업무 처리가 이뤄지도록 제도와 관행, 의식도 바꿔나가야 한다.

김영란법 집행 과정에서 초기엔 여러 혼선과 시행착오도 빚어질 것이다. 누가 '직무 관련자'에 해당돼 '3·5·10 규정(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한계)'의 적용을 받는 것인지, 어떤 경우가 '대가성'이 있는 경우여서 일절 접대·선물이 금지되는지 불확실한 부분들이 적지 않다. 수없이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관행을 이 법의 24개 조항을 갖고 규율할 때 부작용과 무리가 없을 수 없다. 미풍양속과 충돌하는 부분들도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 때문에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자체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법을 보완해서 완성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앞으로 사법부가 판례를 쌓아가면서 하나하나 기준을 명확히 하고, 법을 만들 때 예측의 미비(未備)로 부작용이 너무 큰 부분은 국회와 담당 행정기관이 시간을 두고 법과 시행령을 손질하면 된다. 이 법이 국민 의식과 사회 관행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디딤돌이었다고 역사에 기록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선일보 사설, 2016/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