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가을 한 일본인에게서 일상에 관한 이메일을 받았다. '올여름 토요일에 근무하는 대신 평일 하루 놀았다, 근무시간은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 선풍기만으로 더위를 이겼다'는 내용이었다. 칼럼으로 재구성을 부탁해 본지에 실었다. 제목은 '무더웠지만 흐뭇했던 도쿄의 지난여름.' 그는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각자 작은 목표를 달성해 큰 성과를 내는 것이야말로 사는 즐거움'이라고 했다.
▶그해 3월 일본 동북지방에 큰 지진이 났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방사선 공포가 휩쓸면서 원전이 몽땅 멈췄다. 그즈음 세 번 도쿄에 갔다. 관공서는 무더웠고 호텔 로비는 어두웠다. 기업 회의실엔 선풍기만 빙빙 돌아갔다. 가로등은 하나 건너 불을 밝혔다. 어린 시절 등화관제 훈련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일본 총리는 '절전 협력 요청'이란 이름으로 매년 국민에게 전기 절약을 호소했다. 절전 이외에 원전의 공백을 메울 길이 없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지난주 도쿄에 갔다. 일본 신문을 보니 6년 만에 '절전 없는 여름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올여름엔 총리가 절전을 호소하지 않았다, 그래도 전력 공급에 문제없이 여름을 났다고 했다. 절전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은 모양이다. 8월 소비 전력이 대지진 이전보다 14% 줄어든 덕분이라고 한다. 이제 원전을 가동하지 않아도 전력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하니 대재앙을 극복하는 국민적 끈기가 대단하다.
▶각자를 살피면 사실 작은 노력이었다. 가전업체는 제품의 절전 기능을 끌어올렸다. 사무실은 전기를 덜 먹는 조명으로 바꿨다. 전력업체는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지진 전보다 25배 늘렸다. 원전 7~8기에 맞먹는 수준이라고 한다. 제조업은 전력을 많이 쓰는 공장을 꾸준히 해외로 내보냈다. 경제 성장엔 마이너스지만 전체로 볼 땐 이익이라고 판단했다. 정부는 전력회사의 지역 독점 시스템을 무너뜨려 경쟁을 자극했다. '전기 예보' '전력수급 경보' 등 스마트폰 알림 서비스로 사람들이 지갑 속 돈처럼 늘 전력 소비에 신경 쓰도록 했다.
▶일본 사람들은 '구후'란 말을 잘 쓴다. 한자는'工夫'이지만 우리 '공부'와 뜻이 조금 다르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열심히 궁리하고 고안해 내는 것을 뜻한다. 원전 사고로 인한 전력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인은 5년 동안 많은 '구후'를 한 듯하다. 올여름 일본도 무더위가 대단했다. 하지만 절전형 에어컨 바람으로 실내는 시원했고, LED 조명으로 밤거리는 환했다. 이런 국민이라면 나라를 운영하기 참 편하겠다 싶었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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