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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法 충격 요법' 써서라도 윤리 선진국 올라서야 한다

하마사 2016. 7. 29. 11:27

김영란법으로 불려온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28일 합헌(合憲) 결정을 내려 오는 9월 28일부터 법이 시행되게 됐다. 법의 핵심은 공직자·언론인 등이 1회에 100만원, 연간 합계 3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을 경우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처벌한다는 것이다. 시행령은 공직자 등이 받을 수 있는 금품 상한선으로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으로 규정해놨다. 법 적용 대상자는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 언론계 종사자, 사립 유치원·초·중·고·대학 임직원 등 전국 4만여 기관 240만여 명이고 배우자까지 포함하면 400만 명에 달한다.

법 시행을 놓고 김영란법처럼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례도 드물 것이다. 부정부패를 몰아내자는 취지에는 다들 동의하면서도 법의 집행이 몰고 올 파장과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법 시행에 들어가도 상당 기간 혼란이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친구들끼리 돌아가면서 밥을 사는 모임도 공직자나 언론인, 교원이 포함돼 있으면 법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게 됐다. 만일 누군가 그런 식사 자리가 의심스럽다고 신고하면 더치페이를 입증하지 못하는 한 수사 기관의 조사 대상이 된다. 우정·친목 등 정의(情誼)에 기반한 인간관계가 이런 식으로 처벌 대상이 되면 상호 감시가 일상화되면서 사회가 거칠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농·수·축산업계는 김영란법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됐다며 법 적용의 예외로 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이런 반론·반발에도 헌법재판소는 "금품 수수·부정 청탁 금지 조항이 추구하는 공익(公益)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이 법에 대한 국민 지지가 폭넓고 강력한 현실을 감안했을 것이다.

부정부패가 없는 맑은 사회를 이루는 건 국가적 과제다. 한국은 국제 투명성 기구 청렴도 평가에서 OECD 34개국 가운데 27위에 올라 있을 만큼 부패와 비리가 구석구석 스며 있다. 무슨 사고가 터져도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공직 사회가 업계와 유착돼 공무원들이 법 규정에 맞게 일 처리를 하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도사리고 있곤 했다. 그런데도 형법의 뇌물죄는 공무원이 금품·향응을 제공받았다 하더라도 직무(職務) 관련성이 있을 때만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진경준 검사장' '스폰서 검사'처럼 업자와 공무원이 장래의 배려·대가를 염두에 두고 꾸준하게 명절 떡값, 용돈, 골프 접대, 전별금, 휴가비 등을 주고받는 것이 관행처럼 돼버렸다. 과도한 경조사비는 아예 합법적 뇌물 수단으로 변질됐다. 김영란법에 대한 합헌 결정은 부패 없는 국가로 거듭나려면 무리가 따르더라도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반영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국민 모두가 그동안 익숙했던 접대나 회식, 경조사 관련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싱가포르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부패처벌법을 시행하면서 부정한 금품·청탁을 주고받는 생각 자체를 가질 수 없게 사회 전체의 윤리(倫理) 수준이 업그레이드됐기 때문이다. 법은 사회의 기존 의식과 관념을 반영하는 가치 체계이다. 하지만 때로는 법이 사회 전체의 사고방식에 일대 혁신을 몰고 오는 선도적(先導的) 역할을 맡을 때도 있다. 금품·향응을 받은 유권자에게 50배 과태료를 물리는 선거법도 2004년 처음 도입할 때는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고질적 선거 부정이 상당 부분 정화(淨化)되는 계기가 됐다.

김영란법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공직자 신분이 아닌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까지 법을 적용하는 것이 과잉(過剩) 입법 아니냐는 것이었다. 적지 않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결국 언론과 사립학교를 포함시켰다. 그렇다면 언론·사학(私學) 못지않게 공공성이 강하고 국민 생활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는 금융계·법조계·의료계와 대기업, 시민단체 역시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킬 이유가 없다. 대기업과 중소 협력 업체 간 부정부패는 기업과 관청 사이의 그것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사회 전체의 윤리 기준을 올리려면 김영란법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을 보완해야 한다.

금지되는 부정 청탁 행위에서 선출직 공직자의 민원 전달을 제외시킨 것은 납득할 수 없다. 특권 의식에 젖어 있는 국회의원 스스로가 자기들에게 면죄부를 발행해 법의 정당성이 흔들리게 됐다. 공직자가 4촌 이내 친족이 관련된 직무를 맡아선 안 되고 산하기관 등에 공직자의 가족이 채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이해 충돌 방지' 부분이 통째로 잘려나간 것도 말이 안 된다. 이 역시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익 보호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국민이 압력을 가해 법을 고치게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부패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경제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오른다 해도 반쪽짜리 선진국에 불과하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누군 빠지고 누군 예외로 할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부정부패와 결별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2016/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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