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기타자료

무인차의 판단력

하마사 2016. 7. 5. 10:11

올해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전시장을 찾았다. 차 앞쪽의 보닛을 열었더니 엔진 대신 트렁크가 있었다. 전기모터를 쓰니 무겁고 복잡한 엔진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내부 모니터는 미래에서 온 것처럼 크고 화려했다. 최고급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전시장을 드나들며 감탄하고 사진을 찍어댔다. 새로운 장난감을 만난 어린아이의 표정이었다. 테슬라는 전기차에 자율 주행 시스템도 달았다. 운전자의 조작 없이도 차선을 유지하고 속도를 조절하며 충돌을 피한다. 자율 주행차(무인차)는 곧 다가올 장밋빛 미래로 여겨졌다.

▶조슈아 브라운. 역사상 최초의 무인차 교통사고 사망자 이름이다. 브라운은 5월 초 미국 플로리다에서 테슬라의 자율 주행 시스템에 운전을 맡긴 채 영화 '해리 포터'를 보다가 트레일러와 부딪쳐 숨졌다. 그는 마법사 영화를 보며, 마법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차의 성능을 만끽했을 것이다. 영화와 현실은 달랐다. 테슬라의 첨단 시스템은 트레일러의 하얀 옆면과 하늘을 구분하지 못하고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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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고는 브라운의 책임이다.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고 비상상황에 대응하도록 한 의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슬라도 시스템이 아직 보조장치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곧 실현될 완벽한 무인차의 사고는 다를 것이다. '목적지만 입력하면 된다'며 팔린 무인차는 돌발 상황에 알아서 대처해야 한다. 문제는 상황과 대처법을 입력하는 것이 여전히 사람이라는 점이다.

▶피치 못할 사고로 사람들이 갑자기 길로 뛰어나오면 무인차는 운전자와 보행자 중 누구를 지켜야 할까. 프랑스 툴루즈대학 연구자들이 물었다. 사람들은 '희생자가 적은 쪽'이라고 답했다. '무인차 운전자가 본인이라면?' 하고 바꿔 물었다. 무조건 운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답변이 압도적이었다. 무인차가 누구를 지키도록 프로그램한다는 것은 상대편에 있는 누군가는 해치도록 프로그램한다는 뜻일 수 있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샌델의 질문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가 규정을 지키며 선로를 고치고 있는 인부 한 사람과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는 인부 다섯 명 중 누구를 피해야 하는가 묻는 식이었다. 어느 쪽이 더 도덕적인 결정인지 따져볼 수는 있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정답을 찾기는 힘들다. 사람이 하지 못하는 선택을 무인차에 가르칠 수 있을까. 죄책감이나 동정심 없이 입력된 대로 운전대를 돌리는 무인차가 과연 인간과 공존할 수 있을까. 이번 사고는 그런 숙제를 던졌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6/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