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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苦痛은 방아쇠… 최악 상황으로 모는 건 마음"

하마사 2016. 5. 30. 19:30

 

"육체적 苦痛은 방아쇠… 최악 상황으로 모는 건 마음"

[한 정신과 의사의 우울증 告白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임세원 성균관대 의대 교수]

"'선생님은 이 병 잘 몰라요' 환자들이 호소하면
'내가 아는데 무슨 소리' 발끈… 겪어보니 그런 게 다 후회"

 

"환자에게 쉽게 말했다 '더 이상 해줄 게 없다'고…

그런 말이 환자에게 사형선고 같지 않았을까"

 

강북삼성병원 외래 병동의 정신건강의학과 구역. "나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임세원(45) 교수 진료실에 들어갔다. 그는 우울증과 불안 장애 분야 전문의(성균관대 의대 교수)다. 한국형 표준 자살 예방 교육 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한 주역이기도 했다.

세상은 겉으로 비치는 게 전부는 아니다. 그런 그가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자살 시도까지 했다는 고백록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를 출간했다.

"2012년은 의사로서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학회 학술상을 받았고 미국 연수를 앞두고 있었다. 우울증 환자 사례를 통해 책을 내기로 출판사와 계약도 했다. 그런데 남의 얘기를 쓸 필요가 없게 됐다."

의사도 사람이니 병에 걸리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의사가 환자 처지가 됐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 정신은 육신의 고통 앞에서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무엇보다 우울증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등을 관찰하는 것은 흥미롭다.

그의 스토리는 미국 연수 환송회를 밤늦게 마친 뒤 다음 날 새벽 골프를 치고 돌아왔을 때 극심한 통증을 느끼면서 시작된다. 병원에 가보니 디스크에 따른 신경성 요통(腰痛)이었다.

"내게는 4주간 '절대 안정'하라고 했다. 집에 누워서 식사와 용변을 포함한 모든 것을 해결했다. 그런데 통증이 갈수록 심해졌다. 단 10분을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임세원 의사는 “불안·우울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날리는 불행의 화살”이라고 말했다.
임세원 의사는 “불안·우울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날리는 불행의 화살”이라고 말했다. /고운호 객원기자
―허리 디스크는 흔한 질병이고, 그냥 낫는 경우도 많은데?

"나는 통증으로 잠을 못 이뤘고, 신경 차단 주사도 안 먹혔다. 과거에 환자들이 '선생님은 이 병을 잘 몰라요' 하면, 나는 속으로 '내가 잘 아는데 무슨 소리냐'며 발끈했다. 내가 겪으니 그런 게 다 후회됐다. 점점 불안과 우울감에 시달렸다. 거울 속에 비친 폐인(廢人) 같은 내 모습에 견딜 수 없었다."

두 달째 집에서 누워 있던 그는 마침내 자살을 결심했다. 사고사처럼 보여 남은 가족에게 상처를 덜 주고 싶었다. 차를 몰고 나가 도로 난간을 들이받고 죽기로 했다. 새벽에 집을 나서는데 자동차 열쇠가 안 보였다. 집 안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다가 잠든 가족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문을 나가지 않았다.

―자살까지 몰린 심적 상태는 어떤 것인가?

"현재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표현이 자살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삶을 원한다. 오히려 죽음을 선택할 때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혼자 죽는 게 무서워 생면부지의 사람과 동반 자살까지 하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자살을 시도했던 환자를 많이 만나지 않았나?

"그렇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게 내 전공이니까."

―국내 우울증 환자가 60만명쯤 된다는데?

"현실의 고통에 반응하는 심적 고통이 우울증이다. 우울증에 걸리면 이런 고통 상황을 더 비관적으로 왜곡한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일의 성취감을 느끼든 맛있는 음식을 먹든 스포츠 경기에 열광하든 뭔가 즐거움이 있어야 하는데, 우울증은 친구, 가족과 연결된 끈까지도 스스로 끊어버린다."

―저 사람은 자살할 것 같다고 예측되나?

"그걸 알면 신(神)의 경지다. 진료실에서 나와 편안하게 얘기했던 사람이 며칠 뒤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자살 신호를 주위에 보낸다. 이들은 대부분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수행자 화두(話頭)가 아니다. '삶에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런 이들을 전문가와 연결해주면 자살을 막을 수 있다."

―나도 '왜 사는가?' 하는 질문에 빠질 때가 많은데, 어느 쪽인가?

"일시적으로 우울한 것은 보편적 인간 감정이다.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은 지속적이고 다른 감각 기능을 압도할 때다."

―자살하겠다는 사람을 제도와 주위 사람이 과연 막을 수 있는가?

"어떤 자살에 대해 '어차피 죽을 놈, 자기가 죽겠다는 걸 어쩌겠나' 하는 식이 되면 우리 사회의 자살률이 높아진다. 자살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누군가와 연결돼있을 때 생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10만명당 28.5명꼴이다. 전체 인구의 20%가 한 번쯤 자살 생각을 한다는 통계도 있다. 자살 생각→계획→시도로 단계를 높여가는 게 우울증이다.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우울증 환자들을 어떤 식으로 치료해왔나?

"그 순간의 고비를 넘어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그가 겪는 불안을 통제해주고 합리적 이성이 회복되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항(抗)우울제 처방 등 의학적 치료 못지않게, 아니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고립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 보는 앞에 뛰어내려 자살하겠다는 것보다 아무도 안 보이는 곳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이 더 위험하다."

임세원 성균관대 의대 교수와 최보식 선임 기자 사진

―본인은 어떠했나? 당시 자살 충동을 느꼈을 때 정신과 의사로서 자신에게 어떤 처방을 내렸나?

"어떤 처방도 내리지 못했다. 이발사가 자기 머리를 못 깎는 것과 비슷하다. 정작 내 문제가 되니까 두려움·불안·우울감이 압도했다.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된 것이다."

―자신도 컨트롤하지 못하는 의사라면?

"글쎄. 그때는 정상적 시기가 아니었으니까. 우울증을 깊이 앓고 있어서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렵지 않았나."

―그러면 다른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야 하지 않았나?

"내가 정신과 의사이지만, 그런 상담을 받는 것에 대해 전혀 생각을 못 했다. 우울증을 가장 잘 이해한다는 내가 '그게 우울증'이라는 생각조차 안 들었다. 그 최악 상황에서 벗어난 뒤에야 '이런 것이었구나' 깨달았다."

2012년 가을 그는 환자 상태로 예정된 미국 캘리포니아 연수를 떠났다. 미국 연수 동안 신병 치료에 매달렸다. 미국 내 한의원에서 침(鍼)을 맞고 한약을 복용했으며 카이로프랙틱 치료를 받았다. 명상센터에도 참가했다.

"그 전까지 나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데이터에 근거해 의학적 판단을 내리는 훈련을 받아왔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을 가르칠 때도 그런 면을 강조해왔다. 그런 내가 한약 먹고 침 맞을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암(癌) 환자들이 민간요법이나 대체의학에 매달리는 것에 대해 이제 다르게 보게 됐나?

"이해한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가 없는 방법에 매달리는 것은 현명치 않다고 본다."

―유물론자였는데 미국 연수 시절 한인 성당에서 영세를 받고 열심히 기도했다고?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몸담아 종교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그런 내가 '정말 신(神)이 내 병을 낫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지푸라기도 잡고 싶었으니, 이게 나의 나약함인지…."

이듬해 1월 그는 일시 귀국해 디스크 수술을 받았으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그는 또다시 자살을 생각했다.

"모든 의료 방법을 시도해봤으나 완치되지 않았다. 과거에 환자나 그 가족에게 '제가 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쉽게 했다. 이제 그런 말이 환자에게 사형선고와 같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의 일상은 예측할 수 없는 통증으로 파괴됐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두려웠다. 가족에게도 상처를 줬다."

―명색이 배운 의사인데, 육신의 고통 앞에서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나?

"처음 발병했을 때 해외 연수 전까지 나아야 하고 그때 가서는 무엇을 해야 하고… 이런 식으로 근거 없는 기대를 갖고 기한을 정했다. 그런데 온갖 의학적 방법을 시도해도 안 되니 좌절하고, 이게 반복됐다. 몸의 통증에서 시작했으나, 못 견디는 상황으로 몰아간 것은 마음이었다."

―디스크 통증이라는 육체적 병으로 정신이 무너진 게 아닌가? 정신은 그래 봐야 육신에 종속됐다고 봐야 할까?

"물론 방아쇠는 육체적 고통이다. 하지만 이를 감당할 수준에서 머무르게 하느냐 더 힘들게 하느냐는 정신적인 부분이다. 몸과 마음이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정신과에 오는 환자들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데 MRI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다른 과(科)에서 해결해주지 못한 통증이다. 그런 환자들이 정신과 치료를 통해 통증이 완화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 진료와 강의를 병행하고 있는데, 회복된 건가?

"진통제는 계속 먹고 있다. 가끔 통증이 아주 심할 때면 우울증에 빠진다. 다만 과거보다 횟수가 뜸해졌다."

―어떻게 이 상태까지 완화됐나?

"발병 후 2년쯤 지난 어느 날 새벽에 극심한 통증으로 깼다. 고통의 괴물에 쫓겨 다니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 같았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내가 무엇을 잘못 했다고 이러는 걸까.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못살겠다면 내가 어쩌자는 것인가.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고통이 더 커지는 것이 아닌가. 고통이 내 삶의 '부분(部分)'이 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통이 삶의 '부분'이 되게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벗어나지 못할 고통이라면 이를 받아들이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우리 삶에 주는 고통의 영향을 줄일 수 있다. 절망하고 우울해할수록 고통은 커질 뿐이다. 오디오의 앰프가 음(音)을 증폭하는 것처럼 고통만이 내 삶의 전부가 되고, 내 인생의 다른 모든 것은 사라져버린다는 뜻이다."

―그 뒤 우울증 극복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나?

"일상의 반복성을 회복하려고 했다. 고통이 심하든 덜하든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자고 식사하고 운동하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내 생활을 통제 가능한 범위에 둘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한 게임, 독서, 야구 구경 등을 하려고 했다. 무엇보다 가족을 많이 생각했다. 그게 내가 살아야 할 확실한 이유였다."

―애초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돌아보게 되는가?

"갑자기 닥친 불행은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첫 번째 화살이다. '왜 하필 내게?'라는 질문을 아무리 해봐야 답이 안 나온다. 하지만 두려움, 불안, 우울은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날리는 두 번째 화살이다. 두 번째 화살까지 맞아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 2016/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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