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가정

"직장 다니랴 난임 시술 받으랴… 고충 안타까워"

하마사 2016. 5. 24. 21:00

[난임치료 권위자 윤태기 원장]

난임(難妊) 치료 권위자인 윤태기(65) 서울 강남차병원 원장의 환자는 그동안 주로 부부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미혼 여성과 마주 앉는 일이 늘고 있다. 차병원이 지난 2월 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에 '37 난자은행'을 연 뒤부터다.

'37 난자은행'은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이 자신의 난자를 채취해 보관하는 시설이다. 차병원은 이미 2002년 미국 LA 차병원에 난자은행을 만들었고 국내에는 2013년 강남차병원에 첫 문을 열었다. 난자은행 고객의 변화는 만혼(晩婚) 때문이다. 결혼이 늦어진 만큼 임신도 늦어지는데, 나이가 들수록 임신이 어렵다.

 

서울역 앞‘차병원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에서 만난 윤태기 원장은 “난임은 남성 여성이 각각 40%씩 영향을 주고 나머지 20%는 스트레스 같은 환경적 요인이 차지한다”며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한 시대에 난임의 짐을 여성에게만 맡기지 말고 기업과 사회가 함께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올해 서울역 앞에 난자은행 열어
晩婚 추세로 미혼女 상담 증가
'난임의 짐' 기업·사회 나눠져야

"난자는 매달 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난소에 보관돼 있던 난자가 호르몬에 의해 성숙돼 나오는 겁니다. 학계에서는 보관 기간이 길수록, 즉 늦게 임신할수록 난자의 질이 낮을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37 난자은행'이라고 이름 붙인 까닭은 뭘까. 서울역센터장을 겸하고 있는 윤 원장은 "학계에서는 임신이 무난하게 잘되는 나이의 마지노선을 만 37세(38~39세)로 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50~60%까지 유지되던 자연임신율은 만 37세가 지나면 절반 정도(20~30%)로 뚝 떨어진다"며 "만 37세 이전에 난자를 보관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윤 원장이 전문의가 된 1978년은 난임 치료의 세계적인 사건이 일어난 해다. 최초의 시험관 아기(루이스 브라운)가 탄생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산부인과 의사의 관심사는 '효과적인 피임 시술'이었어요. 정부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장려했습니다. 교과서에도 난임에 관한 내용은 한두 장밖에 없었죠."

차광렬 회장이 강남 차병원을 만들 때, 차 회장의 아버지인 차경섭 명예 이사장이 윤 원장에게 난임 연구를 맡겼다. 그때부터 윤 원장은 동료들과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렸다. 새벽에 출근해 함께 아침을 먹고 토론하다 다시 종일 진료를 보고, 저녁이면 인근 대학 실험실을 빌려 동물 실험을 했다.

정자를 나팔관에 넣어주는 시술에 국내 최초로 성공했고, 민간 병원으로는 처음으로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켰다. 난자은행 설립의 기반이 되는 기술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1999년 세계 최초로 난자를 빨리 얼리는 '유리화 동결법'을 개발했고, 이렇게 얼린 난자로 임신에 성공한 것이다. "난자는 크기가 크고 유전적으로 중요한 정보가 담긴 세포죠. 빨리 얼리고 녹여야 했는데 그 난제를 해결한 겁니다."

윤 원장은 수천 쌍이 넘는 난임 부부를 만나면서 눈물을 많이 쏟았다. "회사 다니면서 그 정도 직급이 된 여성이면 당당히 휴가 내고 와서 난임 시술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빨리 들어가 봐야 한다'면서 쩔쩔맵니다. 아이가 안 생기는 것도 힘든데 회사 눈치까지 보느라 울기도 하고요." 그는 "미국에서는 난임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회사에서 난임 시술 비용이나 난자를 채취해 보관하는 비용을 대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가능한 한 어린 나이에 난자를 보관하는 게 좋은 걸까. 윤 원장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난자은행은 이미 나이가 들어 결혼이 많이 늦어질 가능성이 큰 분들에게 추천해요. 이따금 서른 살 언저리 아가씨들이 찾아오지만 만 35세(36~37세) 미만은 돌려보냅니다. 난자 보관하기보다는 빨리 짝을 찾아서 결혼하는 게 모두에게 좋은 일일 테니까요."

 

-조선일보, 2016/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