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두바이 공주, 헴슬리, 그리고 진시황

하마사 2016. 3. 15. 11:02
 

 

김기훈 디지털뉴스본부 콘텐츠팀장

 

두바이의 라티파 알 막툼 공주가 한국에서 큰돈을 써가며 애완견을 복제했다는 뉴스를 보고 동네 애견센터에 들러봤다. 20㎡도 안 되는 실내는 애견용 음식 판매대와 새장만 한 호텔, 진료실·수술실·조제실이 칸막이로 나뉘어 있다. 벽에 한우 내피, 치킨 꽈배기, 오메가3 참치 플러스 등 포장 음식이 진열돼 있다. 포장지 언어는 모두 영어다. '궁중식 애견 특식' 광고판도 있다. 40대 주인은 "구충제 투약과 심장 검사를 정기적으로 해줘야 '애들'이 건강하게 산다"고 했다. '도그 TV' '도그 유치원' '도그 카페'도 있다고 하니, 주인 잘 만난 반려동물은 살맛 날 것 같다.

미국의 호텔 갑부 레오나 헴슬리(1920 ~2007)는 반려견 사랑이 극진했다. 그는 8년생 몰티즈종(種) '트러블'에게 1200만달러(약 143억원)를 상속했다. 남동생은 이 개가 걱정 없이 여생을 살도록 돌보는 대가로 1000만달러를 상속받았다. 헴슬리는 트러블에게 바닷가재 케이크와 크림치즈, 훈제 야채, 철갑상어알을 자기 손으로 직접 먹였다. 트러블의 1년 생활비는 경호비 10만달러를 포함, 19만달러(약 2억3000만원)였다.

 

 이제는 둘 다 세상을 떠난 미국의 호텔 재벌 레오나 헴슬리와 애완견 트러블의 다정했던 생전 모습. /AP

 

미국인들은 "미쳤다" "정신 나갔다"고 반응했다. 그러나 헴슬리 개인 입장에서 보면 깊이 생각한 '합리적' 판단이었을 것이다. 아들을 일찍 떠나 보내고 남편과도 사별한 뒤 혼자 살았던 그의 외로움과 사업 스트레스를 트러블 외에 누가 삭여줬을까.


두바이 공주와 헴슬리의 사례는 인류의 오래된 꿈, 장생불사(長生不死)의 발전 단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다. 인류는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세포 복제를 통한 육체 보존과 기억정보 유지를 통한 정신 보존, 이 두 길을 걸어왔다. 육체 보존은 두바이 공주처럼 동물 복제에 성공해 윤리 문턱만 남겨두고 있다. 정신 보존은 '딥블루' '왓슨' '알파고' 등 AI(인공지능) 발전으로 진행 중이다. 알파고 설계자인 데미스 허사비스는 2009년에 인간의 기억을 스캔하는 실험에 성공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극히 초보 단계인 이 실험이 발전하면 과거의 기억도 스캔해 AI와 결합한 뒤 복제한 육체에 이식할 수 있다. 그러면 인간은 영원히 죽지 않고 새로운 직업도 찾을 것이다.

 

라티파 공주 인스타그램. 왼쪽이 라티파 공주, 가운데는 두바이 국왕, 오른쪽은 동생 마리암(Maryam) 공주. /조선일보 DB

 

다만 AI 수준은 아직 '헴슬리 결정'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지금 헴슬리 정신을 본뜬 '헴슬리 AI'를 만들면 뛰어난 계산 기능을 활용해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 정신의 3단계, 인식·의지·미(美) 중 첫 단계이다. 그러나 처벌보다 보상이 많은 다수결 판단을 따르도록 설계된 AI가 대중의 손가락질을 감수해가며 반려견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스티브 잡스처럼 시대를 앞선, 광기에 가까운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기원전 219년 진시황은 4년에 걸쳐 방사(方士) 서복과 노생을 파견해 불로약을 찾으려다 실패했다. 2234년이 지난 지금, 육체·정신을 아우르는 그의 장생불사 꿈은 복제와 AI를 통해 가까워졌지만 아직 먼 듯도 하다. 어쩌면 백팔번뇌 기억을 현세에 남겨두고 때가 되면 만고(萬古)의 먼지로 돌아가겠다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마음은 인공지능이 영원히 복제할 수 없지 않을까.


-조선일보, 2016/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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