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 목사가 150여 년 전 이런 설교를 했다. "노예 폐지론자들이 머지않아 여러분의 따님과 흑인의 결혼식 주례를 서게 될 것입니다. 복종보다 차라리 죽음을…." 그가 말한 복종은 막 대통령이 된 링컨의 노예제 폐지 정책에 대한 수용을 뜻했다. 부글부글거리던 사우스캐롤라이나주(州)는 링컨에 등을 돌리고 연방에서 탈퇴했다. 여기에 남부 10개 주가 동참하면서 남북전쟁의 서막이 열렸다.
▶이곳 항구 도시 찰스턴은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이 미국 땅에 처음 도착하는 고난의 출발점이었다. 조지아주와 함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대농장 무대이기도 했다. 당시 전쟁에 대한 정보가 밑바닥 사람들까지 도달했다면 흑인 대부분은 숨을 죽이며 링컨의 승리를 기도했을지 모른다. 그런 그들이 엊그제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 경선을 봤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먼저 후손들이 미국의 선거 판세를 결정하는 장면에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후손 대다수가 공화당이 아닌 민주당을 지지하고 게다가 민중을 대변한다는 사회주의 성향의 후보에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에 훨씬 더 놀랐을지 모른다. 민주당은 전쟁 당시 남부 농장주(主)를 대변하던 정당이었다. 반면 공화당은 민주당에 대항해 '노예제 폐지'를 내세우고 창당했다. 링컨은 이런 공화당이 처음 배출한 대통령이었다.
▶흑인에게 자유를 준 것은 공화당의 링컨이었지만 흑인의 '표심(票心)'을 잡은 것은 2차대전 당시 대통령이던 민주당의 루스벨트라는 분석이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제도적으로 인종 차별을 없애려 애쓴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 덕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엘리너는 지금도 미국인에게 가장 위대한 퍼스트레이디로 꼽힌다. 얼마나 흑인 인권을 위해 노력했는지 엘리너는 생전에 '흑인에게 얻은 임질을 대통령에게 옮겼다'는 인종주의자들의 험악한 악성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이후 민주당은 공화당보다 한발 앞서 흑인 인권운동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소수계층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수립한 케네디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도 민주당에서 나왔다. 엊그제 흑인들의 표심도 이런 흐름에서 결정된 듯하다. 민주당 정부를 오래 경험한 클린턴이 루스벨트·케네디·오바마로 이어지는 민주당의 '친(親) 흑인' 전통을 잇고 있다는 믿음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흑인들에게 샌더스의 사회주의 운동은 아직 '백인 자유주의자들의 사치'쯤으로 비치는지 모른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6/2/29
'자기계발 > 기타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파고가 할 수 없는 것들 (0) | 2016.03.11 |
---|---|
2살 인공지능, 5000년 인간 바둑을 넘다. (0) | 2016.03.11 |
작년 집회 96%가 펑크… 앞으론 과태료 최대 100만원 (0) | 2016.02.28 |
산별노조 20년 장벽 무너졌다. (0) | 2016.02.20 |
단돈 35달러 '나이키' 로고 (0) | 2016.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