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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와 해독

하마사 2016. 2. 20. 19:49

영화 '골든 에이지'에서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가 '이제 죽었구나' 하며 혼절하는 장면이 나온다.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암살을 명하는 메리의 편지를 상대방이 낚아채 들이민 순간이다. 하지만 실제론 혼절했을 리 없다. 상대가 읽을 수 없는 암호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측은 런던에 암호 연구소를 세우고 천재들을 동원했다. 마침내 편지가 해독됐고 메리는 목이 잘렸다. 유럽사에서 가장 극적이었던 '세기의 여성 대결'은 천재의 암호 해독으로 막을 내렸다.

▶신(神)의 창조물 중 유난히 감출 게 많은 인류는 문자를 사용한 기원전부터 암호를 만들었다. 가장 유명한 고대 암호로 로마 시대 '카이사르 암호'가 꼽힌다. 알파벳 순서를 이동시켜 배열하는 방식으로 보통 사람도 몇 시간 애쓰면 풀 수 있다. 카이사르가 키케로에게 보냈다는 '브루투스를 믿지 마라'는 암호도 고작 세 자리만 글자 순서를 옮기면 해독하는 수준이었다. 로마사를 바꾼 카이사르의 죽음도 느슨한 '보안 의식' 탓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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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세계대전 때 영국과 독일의 경쟁이다. 대전 발발과 동시에 영국은 독일의 해저 케이블을 끊었다. 독일의 해외 통신을 영국을 거치는 국제 케이블로만 지나가게 했다. 독일은 암호로 대응했다. 그러나 1·2차 대전 때 독일의 '치머만 암호'와 '에그니마 암호'는 영국이 모두 해독했다. 그렇게 얻은 정보가 전쟁 판도를 바꿨다. 독일 암호기 '에니그마'를 풀려고 영국이 만든 해독기 '콜로서스'가 훗날 컴퓨터로 발전했으니 암호 전쟁이 세상에 미친 긍정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암호는 항상 해독의 도전을 받는다. 그래서 천재들은 해독 불가능한 암호에 끊임없이 도전해 왔다. 극단적이면서 간단한 방식도 영화와 소설 속에서 흔히 논의됐다. 소설 '다빈치 코드'에 등장하는 암호기가 그렇다. 알파벳 다이얼로 다섯 글자를 맞추는 이 암호기에는 특수 장치가 달렸다. 암호를 풀지 않고 힘으로 열려 하면 약물이 흘러나와 내부 문서를 녹여 버린다.

▶암호로 잠긴 테러범 휴대전화를 두고 미국 정부와 애플이 싸우고 있다. '국가 안보'를 내세우는 정부에 애플은 '사생활 보호'로 맞섰다. 정부는 열어보고 싶어 하지만 암호의 조합 수가 방대한 데다 '다빈치 코드' 암호기처럼 잘못 입력하면 자료가 없어지는 기능까지 달려 손도 못 대는 모양이다. 무고한 사람들의 더 큰 피해를 막을 가능성과 테러범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 중에 무엇이 중요할까. 아무래도 애플이 지나치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6/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