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工高 출신 도금공으로 자수성가… 정을연 개성공단 입주 기업 사장]
"개성공단 주재원에게 연락해 '이제는 다 끝났다
완제품과 설비·검사 장비 등 비싼 순으로 들고오라' 지시"
"앞치마 두르고 장화 신은 채 화공약품과 씨름했던 젊은 날
도금 단가 4원 50전, 70전… 작년 매출액은 450억원"
쫓겨난 개성공단 기업주들은 우리 사회에서도 '소수자'가 됐다. 이들의 주장은 국가 안보를 생각하지 않는 이기심이나 국론 분열 행위로 비판받고 있다. 공고(工高) 출신의 도금공으로 자수성가한 정을연(49·명진화학 사장)씨도 그중 한 명이다.
"매형이 하던 10평 남짓한 도금(鍍金) 공장에서 시작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장화를 신은 채 화공약품과 씨름했다. 너무 힘들어 몇 번이나 그만뒀지만 다시 불려갔다. '이럴 수밖에 없다면 미친놈처럼 일해 최고가 되자.' 새벽 6시까지 일하고 잠깐 눈 붙인 뒤 아침 8시 반에 일어나 계속 일했다. 제품 불량이 나면 화를 못 이겨 겨울날에도 차가운 물통에 들어갔다. 정말 죽기 살기로 했다."
"매형이 하던 10평 남짓한 도금(鍍金) 공장에서 시작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장화를 신은 채 화공약품과 씨름했다. 너무 힘들어 몇 번이나 그만뒀지만 다시 불려갔다. '이럴 수밖에 없다면 미친놈처럼 일해 최고가 되자.' 새벽 6시까지 일하고 잠깐 눈 붙인 뒤 아침 8시 반에 일어나 계속 일했다. 제품 불량이 나면 화를 못 이겨 겨울날에도 차가운 물통에 들어갔다. 정말 죽기 살기로 했다."
그는 레이노병, 당뇨, 소양증을 앓고 있다. 그러면서 국내 도금업계에서는 최고가 됐다. 그의 회사가 도금한 커넥터(접속기)는 삼성 휴대폰과 현대자동차에 들어간다. 부품별 도금 단가는 4원 50전, 70전, 25전 등이다. 티끌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 티끌로 회사의 작년 매출액은 450억원이 넘었다. 이런 그는 2007년 개성공단에도 공장을 세웠다. 북한 근로자 1350명을 고용해왔다.
"사업하는 입장에서는 북측이 아닌 우리 정부가 중단을 시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발표 당일 점심때 삼청동 총리 공관으로 개성공단 입주 기업 대표들을 불렀다. 그 자리에서 통보해준 뒤 곧바로 저녁에 '개성공단 중단' 발표를 했다."
―중단 발표를 듣고는 어떻게 했나?
"개성공단에 주재원이 두 명 있었다. 전화를 걸어 '이제는 다 끝났다. 완제품과 설비, 검사 장비를 비싼 순으로 최대한 많이 들고 오라'고 했다. 북측에 들어가기로 통지돼있었던 2t과 5t 트럭을 다음 날 들여보냈다. 우리는 10억원 상당 완제품을 싣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고가의 설비, 검사 장비는 전혀 못 갖고 나왔다."
―입주 기업들은 정부가 시간적 말미도 안 주고 군사작전 하듯이 중단시켰다고 반발하고 있는데?
"정부가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모든 게 끝난 상황인데."
―모든 게 끝난 상황이라니?
"북한은 이미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았나. 그 대응이 급할 게 없었다. 내일 당장 전쟁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우리에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여유를 줘야지. 우리도 세금을 내는 국민이다. 정부는 그런 국민의 재산권도 보호해줘야 하지 않는가."
―우리 정부가 중단 발표를 했지만, 다음 날 폐쇄 조치와 함께 4시간 만에 나가라고 추방한 것은 북한 정권 아닌가?
"북측에서 '남측에서 먼저 중단 발표를 했다'며 쫓아내는데 할 말이 없었다. 정부가 중단을 발표할 때 개성공단 안에는 주재원 200여 명이 있었다. 이들은 우리 국민이 아닌가. 미리 언질을 주고 철수시킨 뒤 발표해도 됐을 것이다."
―원천적 책임은 핵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해온 북한 정권에 있다고 보지 않나?
"북한 정권이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전쟁 상황이었던 연평도 포격 때도 중단을 안 시켰다. 경제는 살아있는 생물(生物)인데, 중단시킬 거라면 우리가 준비할 수 있게 언질을 줘야 했다. 이런 식으로 기업을 철수시킨 것은 선례가 된다. 앞으로 정부를 믿을 수 있겠나."
―국제사회에 강력한 대북 제재를 요구하려면 우리가 솔선수범해 개성공단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미국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강도 높은 제재안을 마련 중이다.
"나는 여전히 꿈꾸는 것 같다. 서로 협의해서 개성공단을 만든 것인데, 양쪽 정부가 '골목대장'이 아니지 않은가. 물론 티격태격 알력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2013년에 일시 중단됐을 때는 북한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아직 시장경제를 몰라. 자본주의를 어떻게 알겠어. 저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나'하며 이해했던 것이다."
―2013년 개성공단 중단 때는 어떻게 대처했나?
"그때는 원자재와 설비 등을 대부분 싣고 나올 수 있었다. 피해액이 100억원쯤 됐을 것이다. 주문 물량에 맞추기 위해 남한에 설비 투자를 새로 해야 했다. 당시에 우리가 보상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들 있다. 나는 금리 2%짜리 대출 10억원을 받은 것뿐이다. 다들 거짓말이라고 한다. 사업하는 우리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다. 그때는 전적으로 북한 책임이라 정부에 보상을 요구하면서도 찜찜한 게 있었다."
―그런 손실을 보고 다른 보상은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버틸 수가 있었나?
"삼성전자 갤럭시 휴대폰이 잘 팔리던 시절이라 도금 주문 물량이 폭주했다. 그게 나를 구해줬다. 사업하면서 악재(惡材)가 많았다. 2011년에는 공장에서 두 달 간격으로 불이 나 180억원 손실을 보았다. 그때도 주문 물량에 맞추기 위해 21일 만에 공장 시설을 지어 생산에 들어갔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성공 못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살아왔다. 작년부터 삼성 휴대폰 판매가 많이 줄어들었다. 몇 원 몇 전 하는 단가에 인하 압력이 들어오고 있는 와중에 이번 사건이 터졌다."
―2013년 당시 남북 경협 보험금을 받지 않았나?
"보험금 70억원을 받았다. 여섯 달 만에 공단이 재개됐을 때 '다시 입주하려면 보험금을 반납하라'고 해서 반납했다."
―보험금을 받고서 개성공단에서 손 뗄 생각은 안 했고?
"그 보험금을 안 내놓으면 정부는 개성공단에 투자된 200여억원의 공장 자산을 압류한다. 당시 남북은 '정세(情勢)와 상관없는 공단 운영'을 합의했다. 더 이상 어느 쪽도 먼저 문 닫겠다는 말을 못할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지금 이해가 안 된다. 시장경제를 아는 우리 정부가 깰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번에도 경협 보험금 70억을 받게 되나?
"2013년 공단이 재개되면서 다시 경협 보험에 가입해야 했다. 하지만 자격이 안 됐다. 가동이 중단되면서 개성공단 법인은 자본 잠식 상태였다. 본사에서 30억원을 이체하면 가능했지만, 그럴 경우 연결재무제표상 본사의 적자로 잡힌다. 금리가 올라가고 은행의 부채 상환 압력이 들어온다. 그래서 경협 보험을 못 들었다. 이게 가장 치명적이다."
"사업하는 입장에서는 북측이 아닌 우리 정부가 중단을 시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발표 당일 점심때 삼청동 총리 공관으로 개성공단 입주 기업 대표들을 불렀다. 그 자리에서 통보해준 뒤 곧바로 저녁에 '개성공단 중단' 발표를 했다."
―중단 발표를 듣고는 어떻게 했나?
"개성공단에 주재원이 두 명 있었다. 전화를 걸어 '이제는 다 끝났다. 완제품과 설비, 검사 장비를 비싼 순으로 최대한 많이 들고 오라'고 했다. 북측에 들어가기로 통지돼있었던 2t과 5t 트럭을 다음 날 들여보냈다. 우리는 10억원 상당 완제품을 싣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고가의 설비, 검사 장비는 전혀 못 갖고 나왔다."
―입주 기업들은 정부가 시간적 말미도 안 주고 군사작전 하듯이 중단시켰다고 반발하고 있는데?
"정부가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모든 게 끝난 상황인데."
―모든 게 끝난 상황이라니?
"북한은 이미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았나. 그 대응이 급할 게 없었다. 내일 당장 전쟁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우리에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여유를 줘야지. 우리도 세금을 내는 국민이다. 정부는 그런 국민의 재산권도 보호해줘야 하지 않는가."
―우리 정부가 중단 발표를 했지만, 다음 날 폐쇄 조치와 함께 4시간 만에 나가라고 추방한 것은 북한 정권 아닌가?
"북측에서 '남측에서 먼저 중단 발표를 했다'며 쫓아내는데 할 말이 없었다. 정부가 중단을 발표할 때 개성공단 안에는 주재원 200여 명이 있었다. 이들은 우리 국민이 아닌가. 미리 언질을 주고 철수시킨 뒤 발표해도 됐을 것이다."
―원천적 책임은 핵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해온 북한 정권에 있다고 보지 않나?
"북한 정권이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전쟁 상황이었던 연평도 포격 때도 중단을 안 시켰다. 경제는 살아있는 생물(生物)인데, 중단시킬 거라면 우리가 준비할 수 있게 언질을 줘야 했다. 이런 식으로 기업을 철수시킨 것은 선례가 된다. 앞으로 정부를 믿을 수 있겠나."
―국제사회에 강력한 대북 제재를 요구하려면 우리가 솔선수범해 개성공단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미국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강도 높은 제재안을 마련 중이다.
"나는 여전히 꿈꾸는 것 같다. 서로 협의해서 개성공단을 만든 것인데, 양쪽 정부가 '골목대장'이 아니지 않은가. 물론 티격태격 알력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2013년에 일시 중단됐을 때는 북한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아직 시장경제를 몰라. 자본주의를 어떻게 알겠어. 저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나'하며 이해했던 것이다."
―2013년 개성공단 중단 때는 어떻게 대처했나?
"그때는 원자재와 설비 등을 대부분 싣고 나올 수 있었다. 피해액이 100억원쯤 됐을 것이다. 주문 물량에 맞추기 위해 남한에 설비 투자를 새로 해야 했다. 당시에 우리가 보상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들 있다. 나는 금리 2%짜리 대출 10억원을 받은 것뿐이다. 다들 거짓말이라고 한다. 사업하는 우리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다. 그때는 전적으로 북한 책임이라 정부에 보상을 요구하면서도 찜찜한 게 있었다."
―그런 손실을 보고 다른 보상은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버틸 수가 있었나?
"삼성전자 갤럭시 휴대폰이 잘 팔리던 시절이라 도금 주문 물량이 폭주했다. 그게 나를 구해줬다. 사업하면서 악재(惡材)가 많았다. 2011년에는 공장에서 두 달 간격으로 불이 나 180억원 손실을 보았다. 그때도 주문 물량에 맞추기 위해 21일 만에 공장 시설을 지어 생산에 들어갔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성공 못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살아왔다. 작년부터 삼성 휴대폰 판매가 많이 줄어들었다. 몇 원 몇 전 하는 단가에 인하 압력이 들어오고 있는 와중에 이번 사건이 터졌다."
―2013년 당시 남북 경협 보험금을 받지 않았나?
"보험금 70억원을 받았다. 여섯 달 만에 공단이 재개됐을 때 '다시 입주하려면 보험금을 반납하라'고 해서 반납했다."
―보험금을 받고서 개성공단에서 손 뗄 생각은 안 했고?
"그 보험금을 안 내놓으면 정부는 개성공단에 투자된 200여억원의 공장 자산을 압류한다. 당시 남북은 '정세(情勢)와 상관없는 공단 운영'을 합의했다. 더 이상 어느 쪽도 먼저 문 닫겠다는 말을 못할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지금 이해가 안 된다. 시장경제를 아는 우리 정부가 깰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번에도 경협 보험금 70억을 받게 되나?
"2013년 공단이 재개되면서 다시 경협 보험에 가입해야 했다. 하지만 자격이 안 됐다. 가동이 중단되면서 개성공단 법인은 자본 잠식 상태였다. 본사에서 30억원을 이체하면 가능했지만, 그럴 경우 연결재무제표상 본사의 적자로 잡힌다. 금리가 올라가고 은행의 부채 상환 압력이 들어온다. 그래서 경협 보험을 못 들었다. 이게 가장 치명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과하다 싶을 만큼 보상을 해주라'고 지시했다. 경협 보험에 안 든 기업도 보상받을 것이라고 하는데?
"2013년에도 '피해액을 산출해 올리면 보상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정부는 '못 해준다'고 했다. 지금 정부가 그렇게 말해도 믿음이 안 간다. 우리 회사는 국내 도금업체에서 넘버원이다. 내 모든 것을 걸어 이렇게 키웠다. 올해 안에 보상을 못 받으면 도산 가능성도 있다. 개성공단 법인에 대여한 110억원이 본사의 적자로 잡혀 내년 상반기부터 은행에서 상환 압력이 들어올 것이다."
―돈을 벌 때는 모두 자기 몫이고, 손실을 보게 되면 책임을 정부에 돌린다. 보상금은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 국민 중에는 '우리가 당신에게 개성공단에 들어가라고 떠민 적 없다. 왜 우리가 낸 세금으로 보상해줘야 하느냐'고 따질 것이다.
"우리도 개성공단에서 돈을 벌어 국가에 세금을 내왔다. 북한 정권이 그랬거나 개별 기업 문제라면 안고 가야 한다. 이번에는 다르다. 우리 정부가 못 들어가게 막은 것이다. 이걸 떠올리면 잠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난다. 피가 거꾸로 솟구친다."
―저임금 혜택과 정치적 돌발 변수를 모두 알고서 개성공단에 들어간 것이다. 소위 '고위험 고수익' 투자다. 이는 기업가의 자기 책임 아닌가?
"정부가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을 모을 때 '재산과 안전을 보장한다'고 했다. 사석에서는 '잘못되면 정부가 다 책임져줄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에서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정부가 다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우리 정부가 문 닫을 리는 없다고 봤다."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왜 말을 아끼는가?
"미친놈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보다 위에 있지 않은가. 슬기롭게 해야 하지 않는가. 공단 폐쇄로 얻는 이득보다 잃는 게 훨씬 많을 것이다."
―남북 관계 경색 때마다 '개성공단 주재원들이 인질로 잡힌다'는 우려가 있었다. 기업의 이익 추구 때문에 국민과 정부에 부담을 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나는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개성공단의 역할에 대해 다툴 생각은 없다. 내 경험만 말하면 처음 북한 근로자들을 봤을 때 안 씻어서 머리와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같은 민족이 난민처럼 산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공장 내 샤워 시설을 많이 만들었다. 두 달쯤 지나니 땟국물이 빠졌다. 처음에는 내게 적대감을 표시하고 말투가 거셌다. 이들을 대하는 게 솔직히 겁이 났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인사도 잘 하고, '사장님 멋쟁이'라는 농담도 했다. 공장 안에서 보면 '통일이 이러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의 총인건비가 연 1억달러쯤 된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갔다는 게 정부 주장이다. 당신 회사에서는 북한 근로자들에게 얼마씩 임금을 줬나?
"기본임금에다 연장근무와 위험수당을 포함해 월평균 180달러를 줬다. 북한 근로자들 임금 인상 문제로 다툴 때 입주 업체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나는 깎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임금에 비해 정말 양질의 노동력이다. 여기서는 임금을 30%쯤 올려도 사실 몇 천원밖에 안 된다. 남쪽에서 보면 별거 아닌 돈이다. 개성공단의 우리은행을 통해 전체 근로자들 임금을 달러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으로 보내준다."
우리는 토요일에 만났다. 개성공단 폐쇄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오늘 아침에 집을 나올 때 아내가 '밥 먹고 가라'고 했지만 안 먹혔다. 나 하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본다. 협력업체나 직원들이 잘못된다는 게 괴롭다. 내가 오판한 건가. 이런 사태를 미리 알았더라면…."
호기와 배짱 있는 사내로 보였던 그가 눈가를 훔쳤다.
"2013년에도 '피해액을 산출해 올리면 보상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정부는 '못 해준다'고 했다. 지금 정부가 그렇게 말해도 믿음이 안 간다. 우리 회사는 국내 도금업체에서 넘버원이다. 내 모든 것을 걸어 이렇게 키웠다. 올해 안에 보상을 못 받으면 도산 가능성도 있다. 개성공단 법인에 대여한 110억원이 본사의 적자로 잡혀 내년 상반기부터 은행에서 상환 압력이 들어올 것이다."
―돈을 벌 때는 모두 자기 몫이고, 손실을 보게 되면 책임을 정부에 돌린다. 보상금은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 국민 중에는 '우리가 당신에게 개성공단에 들어가라고 떠민 적 없다. 왜 우리가 낸 세금으로 보상해줘야 하느냐'고 따질 것이다.
"우리도 개성공단에서 돈을 벌어 국가에 세금을 내왔다. 북한 정권이 그랬거나 개별 기업 문제라면 안고 가야 한다. 이번에는 다르다. 우리 정부가 못 들어가게 막은 것이다. 이걸 떠올리면 잠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난다. 피가 거꾸로 솟구친다."
―저임금 혜택과 정치적 돌발 변수를 모두 알고서 개성공단에 들어간 것이다. 소위 '고위험 고수익' 투자다. 이는 기업가의 자기 책임 아닌가?
"정부가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을 모을 때 '재산과 안전을 보장한다'고 했다. 사석에서는 '잘못되면 정부가 다 책임져줄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에서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정부가 다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우리 정부가 문 닫을 리는 없다고 봤다."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왜 말을 아끼는가?
"미친놈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보다 위에 있지 않은가. 슬기롭게 해야 하지 않는가. 공단 폐쇄로 얻는 이득보다 잃는 게 훨씬 많을 것이다."
―남북 관계 경색 때마다 '개성공단 주재원들이 인질로 잡힌다'는 우려가 있었다. 기업의 이익 추구 때문에 국민과 정부에 부담을 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나는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개성공단의 역할에 대해 다툴 생각은 없다. 내 경험만 말하면 처음 북한 근로자들을 봤을 때 안 씻어서 머리와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같은 민족이 난민처럼 산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공장 내 샤워 시설을 많이 만들었다. 두 달쯤 지나니 땟국물이 빠졌다. 처음에는 내게 적대감을 표시하고 말투가 거셌다. 이들을 대하는 게 솔직히 겁이 났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인사도 잘 하고, '사장님 멋쟁이'라는 농담도 했다. 공장 안에서 보면 '통일이 이러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의 총인건비가 연 1억달러쯤 된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갔다는 게 정부 주장이다. 당신 회사에서는 북한 근로자들에게 얼마씩 임금을 줬나?
"기본임금에다 연장근무와 위험수당을 포함해 월평균 180달러를 줬다. 북한 근로자들 임금 인상 문제로 다툴 때 입주 업체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나는 깎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임금에 비해 정말 양질의 노동력이다. 여기서는 임금을 30%쯤 올려도 사실 몇 천원밖에 안 된다. 남쪽에서 보면 별거 아닌 돈이다. 개성공단의 우리은행을 통해 전체 근로자들 임금을 달러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으로 보내준다."
우리는 토요일에 만났다. 개성공단 폐쇄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오늘 아침에 집을 나올 때 아내가 '밥 먹고 가라'고 했지만 안 먹혔다. 나 하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본다. 협력업체나 직원들이 잘못된다는 게 괴롭다. 내가 오판한 건가. 이런 사태를 미리 알았더라면…."
호기와 배짱 있는 사내로 보였던 그가 눈가를 훔쳤다.
-조선일보 최보식이 만난 사람, 2016/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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