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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이후 처음 북녘에 세워진 ‘개성공단 교회’

하마사 2016. 2. 15. 10:52

 

“성경도 못 챙기고 나왔는데 십자가 불 꺼지지 않았으면”… ‘개성공단 교회’의 눈물

6·25 이후 처음 북녘에 세워진 ‘개성공단 교회’

 

“성경도 못 챙기고 나왔는데  십자가 불 꺼지지 않았으면”… ‘개성공단 교회’의 눈물 기사의 사진

개성공단에 있는 개성교회 전경. 1000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규모이지만 북측이 종교자유를 인정하지 않아 공교회 개념은 아니다. 국민일보DB

 

개성공단 철수가 전격 결정되자,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던 사람은 ‘개성교회’ 정병업(69) 목사였다. 선교열정을 불태우며 복음을 전해온 개성교회를 더 이상 섬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정 목사는 개성교회에서 3년째 사역해 왔다. 28년 동안 섬겼던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로 신일교회(이광일 목사)에서 정년보다 7년 먼저 은퇴하고 부임했던 터라 아쉬움이 더 컸다.

정 목사의 부인 오명숙 사모는 13일 국민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남편이 이번 일로 상심이 커 힘들어하는 것 같다”면서 “개성공단의 문이 다시 열려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오 사모는 “남편은 설 연휴 때 미국에 있는 아들을 잠깐 보러 갔었다”며 “개성공단 중단 뉴스를 듣고 급히 개성교회 관리인에게 교회를 보호하라고 지시한 뒤 귀국했지만 개성에 다시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개성공단 입주기업 성도들을 만나 기도해 주는 등 개성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 입술까지 불어터졌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수년 전 간이식 수술을 받은 남편이 병원에 갈 때만 서울 집에 오곤 했다. ‘내 인생 마지막 선교’라며 소명감을 갖고 복음을 전했는데…”라며 한국교회에 기도를 요청했다. 

개성교회를 설립한 A기업 관계자는 “갑작스레 철수하면서 교회 성물을 미처 들고 나오지 못했다”면서 “개성공단 남측 근로자들이 예배드릴 때 공동으로 사용하는 수십권의 성경과 찬송가도 모두 두고 나왔다”고 전했다.

개성교회는 A기업이 2005년 7월 개성공장 3층에 설립한 예배 및 기도처소다. 이후 1000명이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예배당을 완공했다. A기업 측은 북측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북한 땅인 개성에 교회가 설립될 수 있도록 밀어붙였다.  

당시 북측은 “당장 철거하지 않으면 사업을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하고 사죄문까지 쓰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교회에서 예배드리지 못한다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소용없으니 철수하겠다”고 응수하자 북측 관계자는 “없던 것으로 하자”며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개성교회 전면 벽에는 환하게 불이 들어오는 십자가가 걸려있다. 십자가는 남쪽에서 가져온 것이다. 당시 북한세관은 십자가를 압수했다. A기업 측은 “교회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신앙을 생명처럼 여긴다”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북한세관은 열흘 만에 십자가를 돌려줬다. 

박춘화 엄기호 엄신형 유재필 피종진 목사 등 교계 지도자들도 개성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교계는 무엇보다 개성공단이 북한선교의 전략적 거점이라는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세계복음화중앙협의회 엄기호(경기도 광주 성령교회 목사) 총재는 “수년 전 개성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북한 복음화와 평화통일을 위해 뜨겁게 기도한 기억이 생생하다”며 “북한에 민간교회가 세워진 것은 놀라운 변화인데 정말 안타깝다. 남북 긴장 완화를 위해 기도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김명혁(서울 강변교회 원로목사) 회장은 “남북화해 및 평화 분위기 조성에 교계의 역할이 필요한 때”라며 “개성공단의 재가동은 물론 대북 인도적 지원이 지속되길 기도하자”고 권면했다.

 

-국민일보 겨자씨, 2016/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