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미사일의 과학자' 현택환]
"연구는 남이 안 간 새로운 길을 찾는 것… 연관 없어 보이는 것들 연결시키는 게 創意"
"나노물질 몸에 남았을 때 어떤 영향 미치는지 대소변으로 배출되는지 毒性 평가 이뤄지지 않아"
현택환(52) 서울대 공대교수가 최근 '나노수류탄'을 개발했을 때, 대체 이게 어떤 무기(武器)인가 싶었다.
그는 나노 분야에서 세계 석학의 반열에 있다. 국내 IBS(기초과학연구원) 나노단장과 미국화학회저널 부편집장도 맡고 있다. 지난 주말 톰슨로이터(국제 학술정보 서비스기업)가 선정한 '세계 상위 1% 연구자'에서 그는 화학과 재료과학 2개 분야에 동시에 뽑혔다.
그를 만나러 가면서 '내가 발을 잘못 들어놓는구나' 후회가 있었다. 원자나 분자를 조작해 물질의 기존 성질을 변형하고 새로운 기능을 창출하는 것, '나노 기술'에 대한 내 지식은 여기까지다. 그래서 첫 질문도 어리석다.
약산성 띄는 암세포에 반응해 치료
정상세포 공격하는 항암제는 독약
―'나노수류탄'은 어떻게 생겼나?
그는 가방에서 검은색 잉크가 담긴 유리병을 꺼냈다.
"액체처럼 보이지만 산화철 나노입자들로 채워진 것이다. 이 입자들 크기는 10나노미터(1나노는 10억분의 1m)쯤 된다. 분자보다는 크다. 대략 머리칼 굵기의 1만분의 1이라 전자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다. 약(弱)산성에서 분해되는 고분자 물질에 이 입자를 가두어 둔 게 '나노수류탄'이다."
―수류탄의 실체는 분자 알갱이인가?
"그렇다. 손에 쥐고 던지는 게 아니라 주사로 몸속에 투입한다."
―수류탄은 터지는 것인데?
"고분자 물질은 암 조직에 가면 마치 수류탄이 터지듯이 분해된다. 순간 그 속의 산화철 나노입자가 빛을 낸다. 마치 어두운 방에 불을 켜면 갑자기 방이 환해지는 것과 같다. MRI 조영제(조직이나 혈관을 잘 보이게 해주는 약품) 역할이다. 나노수류탄으로 암 조기 진단과 부작용 없이 암세포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왜 암 조직에서 터지는가?
"열심히 운동하고 나면 젖산이 생기는 법이다. 암세포는 정상 세포보다 훨씬 빨리 자라기에 젖산이 많이 생긴다. 정상 세포는 중성인 데 비해 암세포는 약산성을 띤다. 나노수류탄은 산성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착상을 하게 됐나?
"아이디어는 기본 원리를 이해하는 데서 나온다. 암세포를 죽이는 항암제는 '독약(toxin)'인 셈이다. 항암제가 정상 세포(특히 장기의 내피 세포와 모근 세포)도 건드리기 때문에 못 먹고 계속 토하고 머리칼이 빠지는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 그래서 정상 세포는 안 건드리고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생각해본 것이다. 나노수류탄 속에 빛을 받으면 활성 산소를 발생시켜 레이저처럼 암세포를 파괴하는 광역학 치료제를 집어넣으면 가능한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얼마나 독창적인가?
"완전한 무(無)에서의 창조는 어렵다. 남에게서 빌려오면 재미있다. 산성에 민감한 고분자는 이미 연구가 되어 있었다. 나노물질과 조합해 새로운 응용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간암세포만 죽이는
나노미사일 연구
완성된 기술만 원하는
제약업계 '씁쓸'
―현 교수는 학생들에게 '연구(research)는 남이 간 적이 없는 새로운 길을 찾는 것(new search)'이라고 말해왔는데?
"남들의 연구 논문들을 읽으면서 내 연구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 창의성은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언뜻 보면 전혀 다른 것 같지만 기본 원리에서 공통점이 있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는 간암 치료를 위한 '나노미사일' 개발도 발표했는데?
"싱가포르 국립암센터와 공동 연구를 수행했다. 나노수류탄의 이치와 비슷하다. 그 속에 항암 효과가 탁월한 미역순나무의 추출물을 집어넣었다. 항암 효과가 좋다는 것은 그만큼 독성이 세 정상 세포에도 치명적이다. 미사일 유도장치처럼 간암 세포에만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화합물을 부착했다. 그래서 '나노미사일'로 이름 붙였다."
―미사일의 실험 모델은?
"생쥐다. 간암 환자의 암세포를 쥐에 심었다."
―많은 암(癌) 중에서 왜 간암인가?
"동아시아 남성들에게 암 사망률 중 간암이 둘째로 높다.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확률은 진단받은 환자의 30% 선이다. 유일하게 FDA 승인을 받은 항암제인 '넥사바'도 간암 말기 환자의 생명을 5개월 연장해줄 수 있을 뿐이다."
―국내외 제약업계에서 이번 연구 결과에 관심을 보이지 않나?
"실험실의 연구 결과는 초기 단계다. 대기업에서 그걸 갖고 가서 키우는 분위기는 아니다. 대기업은 완성된 기술을 들고 와서 스위치만 돌릴 수 있는 것(턴키베이스 방식)을 원한다. 한미약품은 정말 예외적인 경우다. 실제로 환자에게 적용할 때까지는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간다. 성공 확률도 매우 낮다. 그걸 견뎌낼 수 있는 기업은 국내에는 한두 개밖에 없다."
그는 경북 시골 마을의 어려운 집안 출신이었다. 중·고교 시절에는 과외 아르바이트로 숙식을 해결했을 정도였다. 서울대 화학과를 마친 뒤 국비로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유학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초음파를 이용해 금속분말 제조)은 최고 논문상을 받았다.
나노분야 연구 위해 전공도 바꿔,
21세기의 연금술은 나노 기술
"전혀 새로운 분야의 연구를 하고 싶었다. 그 무렵 나노 분야의 연구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뛰어들었는데 여러 번 꽝이 계속 났다. 권위 있는 화학 관련 저널에 논문 게재를 퇴짜맞곤 했다. 교수 임용 3년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연구 실적을 전혀 못 냈다."
―나노 입자 합성에 대한 연구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노 입자는 자연 상태의 존재가 아니라 인공적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물질로 보면 맞나?
"그렇다. 물리와 화학적 방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 물질과 거기서 유래된 나노 입자의 성질은 완전히 다른가?
"(연보라색 물질이 담긴 유리관을 보여주며) 이게 무엇인지 맞춰보라. 금(金)이라면 믿겠나. 금은 반응성이 없는 가장 안정된 물질이다. 왕릉에 매장된 왕관은 1000년 뒤 발굴됐을 때 그대로 나오는 게 이 때문이다. 하지만 금 나노 입자는 반응성이 엄청히 높은 촉매제가 된다. 왜 그런지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원래 물성(物性)과는 다른 인공 물질을 만들어낸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 같다.
"중세에 금을 만들려는 연금술(鍊金術)이 있었지 않나. 나노 기술을 '21세기의 연금술'이라고 한다."
―현 교수가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은 것은 2001년 균일한 나노 입자를 만들어낸 연구라고 들었는데?
"나노 입자를 균일하게 만드는 것은 몹시 중요한 과제였다. 나노 세계에서는 입자의 크기가 성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성질을 얻으려면 나노 입자를 같은 크기로 만들어야 한다."
―그전까지는 어떻게 만들었나?
"끓는 용액에 넣은 화합물의 분자가 깨져 다양한 크기의 나노 입자가 만들어졌다. 그런 뒤 체질을 하듯이 골라내는 방법을 썼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이것저것 다 해보다가 기존의 방법과 반대로 실온에서 서서히 온도를 올려주며 가열했다. 전혀 엉뚱한 시도였다. 그런데 균일한 나노 입자가 만들어졌다. 예상 못한 그 결과에 정말 기절할 뻔했다."
―순전히 운(運)인가?
"좋은 과학자는 용기가 필요하다. 너무 모범생은 오히려 연구를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덤벙 발을 담그지 못하기 때문이다. 3년 뒤에는 균일한 나노 입자를 대량 합성할 수 있는 논문도 발표됐다(첫 논문은 1400번, 그다음 논문은 2000번쯤 인용됨)."
―균일한 나노 입자는 왜 실온에서 서서히 가열해야 만들 수 있는가?
"솔직히 그때까지 어떻게 해서 균일한 입자가 나오게 됐는지 몰랐다. 2007년에야 우리 연구실에 있는 제자 중 '천재' 한 명이 원리를 규명했다. 그걸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나노 입자 특허 보유국은 5개국,
나노 기술의 생체 영향은 실험중
―나노 입자 합성 기술의 특허는?
"그때 우리나라와 미국·유럽 등 5개국에 특허를 냈고, 한 대기업 연구소에 로열티를 받고 기술 이전을 해줬다. 기술 특허 기간은 20년이다."
―그 대기업은 나노 합성 기술로 어떤 사업을 하려고 했나?
"산화철 나노 입자를 대량 제조해 MRI 조영제 사업에 진출하려고 했다. 지금 조영제로 쓰이는 가돌리늄은 독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수십kg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작년에 구조조정으로 이 사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나노 기술은 얼마나 상용화되고 있나?
"상용화 초기 단계다. 작년에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나노 입자를 입힌 SUHD TV를 출시했다. 컬러가 훨씬 선명한 것이다."
―그 속에는 얼마나 많은 양의 나노 입자가 들어가나?
"눈에 안 보이는 엄청나게 적은 양이다. 이게 소재 공정에서 들어가 성능을 한 단계 올리는 핵심 역할을 한다. 나노 기술이란 소재의 성능을 극대화하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실생활에서 은(銀) 나노 제품이 유행되고 있는데?
"은 나노 입자를 넣으니 박테리아가 다 죽는 걸 발견했다. 항균성이 훨씬 강해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나노 기술이 인간과 자연 생태계에 끼칠 심각한 부작용을 우려하는데?
"나노 물질이 생체에 남아 있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뇌까지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대소변으로 다 배출되는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또 하수구를 통해 나가면 물고기가 먹고 다시 인간에게로 돌아온다. 그런 환경영향평가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10년 전부터 이런 독성(毒性) 분야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내 실험 연구에서도 그걸 하고 있다."
―우리의 나노 기술 수준은?
"미국이 선두고, 우리는 독일과 일본 바로 뒤에 바싹 따라가고 있다."
―전자현미경 들여다보는 일상은 어떤가?
"14년 전 첫 연구비를 받자마자 7억원짜리 전자현미경을 구입했다. 이걸로 논문이 200편 이상 나왔다."
―인생에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말을 안 듣나?
"술·담배 안 하고 골프채도 잡아본 적이 없다. 연구 말고는 테니스밖에 안 한다. 그래도 충분히 재미있고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게 인간 관계다. 아인슈타인 시대는 혼자 잘나서 해결했지만, 지금은 연구 분야가 복잡하고 연결돼 있어 혼자서는 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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