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사람

박인부 부부 인터뷰

하마사 2015. 12. 13. 14:06

['최고의 한 해' 보내고 다음 시즌 준비하는 박인비 부부 인터뷰]

최나연·신지애가 펄펄 날던 때엔 그들만큼 못할것 같아 좌절했죠
골프는 무협지와 비슷… 강호에서 어려움 이겨내는 과정
어릴 때로 돌아가도 골프 할 것… 나중에 아이가 원하면 시킬래요

"다시 초등학교 4학년으로 돌아가 아버지가 '우리 인비 골프 해볼래?'라고 물으시면 또 '예'라고 할 거예요."

"정말이냐"고 다시 묻게 됐다. 어려서부터 힘겨운 승부를 겪은 선수들은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리 여자 골프 선수들도 대개는 그랬다. 그런데 박인비(27)는 골프를 행복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평생 잊지 못할 시즌을 마치고 휴식을 하고 있던 박인비를 남편이자 스윙 코치인 남기협(34)씨와 함께 서울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박인비와 남편인 남기협씨가 올해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 트로피(선수에게 주는 원본 80% 크기 증정품)를 들고 함께했다.
"우린 팔불출 부부" - 이 부부는‘팔불출’이다. 입만 열면“남편 덕분에”“아내 덕분에”라고 했다. 박인비와 남편인 남기협씨가 올해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 트로피(선수에게 주는 원본 80% 크기 증정품)를 들고 함께했다. 박인비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고운호 객원기자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9년째인 올해 명예의 전당 입성 포인트를 모두 채운 그는 내년 10개 대회 이상을 치르면 '투어 생활 10년' 조건을 충족, 2007년 박세리 이후 세계 여자 골퍼 중 처음으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다. 올해 한국 스포츠가 거둔 빛나는 성과 중 하나다. 1998년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모습에 반해 골프를 시작한 뒤 세웠던 '인생의 목표'를 달성했다. 그는 "내년부터는 조마조마한 마음 없이 '완벽하게 즐기는 골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내년엔 리우올림픽과 메이저 대회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박인비 골프는 3단계로 나뉜다. 최고 유망주로 꼽히던 주니어 시절, US여자오픈 최연소 우승 이후 4년간의 슬럼프, 그리고 어설퍼 보이는 스윙 자세와는 전혀 다른 초정밀 샷으로 필드를 정복한 '일인자' 시기다. 17승을 기록 중인 박인비는 명예의 전당 포인트 27점 가운데 25점을 최근 3년여 동안 따냈다.

슬럼프에서 그를 구원한 남기협씨를 빼고 박인비 골프를 설명할 수 없다. 남기협씨는 "인비는 골프도 성격도 '심플'해요. 한번 믿은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믿어요. 그래서 심리 상담 선생님과 캐디 등 오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요"라고 했다. 쑥스러운 표정을 짓던 박인비는 "어려서부터 감(感)은 좋은 편이었지만, 샷에 대한 이해는 모자랐다"며 "남편에게 스윙을 기초부터 다시 배우면서 나중에 샷이 나빠지더라도 어떻게 하면 바로잡을 수 있는지 원리를 알게 됐다"고 했다. 박인비의 부모는 사위를 진담 99%, 농담 1%를 섞어 "구세주"라고 부른다.

박인비
박인비에게 라이벌을 꼽아보라고 했다. 그는 "내 골프에 자극을 준 선수는 최나연이나 신지애 등 우리 동기생 세리키즈였다"고 했다. "친구들이 펄펄 날 때 저는 매일 골프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흔들리는 내 샷으로는 도저히 친구들처럼 될 수 없을 거라는 좌절감을 느꼈죠."

지난해 10월 결혼한 남기협씨는 박인비가 고교 시절 LA 전지훈련을 할 때 처음 알게 돼 가장 어려운 시기에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남씨는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선수 출신이다. 박인비가 가장 중요한 우승이라고 꼽는 대회가 2012년 에비앙챔피언십이다. 4년 만에 다시 우승한 대회였다. 2011년 8월 약혼한 남기협씨와 투어 생활을 함께한 지 1년 만이었다. 박인비는 "내 스윙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쉴 틈 없이 연구하는 오빠를 보며 믿음이 생겼고, 결국 저에 대한 믿음도 되찾게 됐다"며 "그 과정이 힘들었을 뿐 그 후에는 점점 더 좋아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박인비는 책을 많이 읽는다. 예전엔 최경주 자서전을 보면서 겸손한 마음을 찾았다고도 했다. 그는 "가장 최근 e북으로 본 무협지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주인공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강호에서 자기 가치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골퍼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아내로서는 몇 점일까. 남씨는 "최근 아버님이 병원 때문에 서울에 올라오시니까 저도 모르게 시장에 가서 백합을 사 와서 탕을 끓여 내놓았어요. 해독 능력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얼마나 예쁘게 보셨겠어요"라고 했다.

'여자 골프 사관학교'로 통하는 한국 골프에 대한 생각도 털어놓았다. 박인비는 "이제부터라도 주니어 골퍼들이 최소한의 수업이라도 들을 수 있도록 하고, 골프장은 방과후 주니어 골퍼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라운드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외모 지상주의'가 없는 곳은 없다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 골퍼들이 미국에 가면 자연스럽게 화장을 옅게 하고 자연스러운 멋 을 되찾는 것 같아요. '연예인처럼 되는 것 같다'는 후배들 하소연을 들으면 오히려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아이를 갖게 되면 골퍼를 시킬지 물어봤다. 남씨는 딸이면 몰라도 아들은 너무 힘들어서 안 시키고 싶다고 했다. 박인비는 "아이들이 원하면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저와 남편이 경험이 많으니까 잘 안내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며 웃었다.

 

 -조선일보, 2015/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