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행복과 희망

癌투병 아내랑 배낭 메고 7개월간 세계여행… 33세 동갑내기 정도선·박진희 부부의 사랑

하마사 2015. 11. 7. 09:23

길 위에서 남편이 말했다 "여보,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거야"

결혼 2개월만에 새색시 찾아온 病魔
교사되려 흘린 4년반 땀 물거품, 매일 눈물
피폐해지는 아내 보기 무서워 남편 결단
퇴직금·저축 등 1200만원 들고 태국으로

마지막일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만둬
값싼 숙소 전전하다 아내 허리통증 악화
보다못한 남편 "그만 귀국하자" 설득에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않아" 눈물로 대답

행복은 내 주위에 있더라… 산청으로 귀촌
남편은 서점, 아내는 방과후교실서 일해
쉴 방 한칸 있다는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1
남자는 서울 갈현동의 동네 서점 직원이었다. 손님을 하나라도 붙잡으려고 절판 도서도 수소문해 구해주곤 했다. 2011년 11월 어느 날 남자는 한 손님을 위해 절판된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을 찾고 있었다. 출판사, 전국 서점, 헌책방까지 뒤졌지만 소득이 없자 페이스북에 "책을 찾고 있다"는 내용을 올렸다. 몇 시간 뒤 댓글 하나가 달렸다. "제게 그 책이 있어요." 한 모임에서 스치듯 만나 이름만 알던 여자였다. 다음 날 책을 주고받으려고 만난 자리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한눈에 반했다. 세상을 보는 눈, 미래에 대한 꿈, 좋아하는 책, 음악, 여행지까지 거울처럼 닮아 있었다. 남자는 그날 여자를 부둥켜안아 버렸다.

#2 지난달 27일 경남 진주의 한 서점. 여자는 많이 웃었고, 남자는 많이 울었다. 정도선(33)·박진희(33)씨 부부는 인터뷰 내내 웃음과 눈물을 번갈아 보였다. 여자의 웃음엔 미안함이, 남자의 눈물엔 안쓰러움이 녹아 있었다. 두 사람은 2년 열애 끝에 2013년 6월 결혼했다. 결혼 2개월 만에 병마(病魔)가 아내 박씨를 덮쳤다. 척추에 7㎝ 크기 종양이 생겨 있었다. 암(癌)이었다. 수술 후 부부는 요양 대신 배낭 메고 7개월간 세계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엔 서울을 떠나 연고도 없는 경남 산청으로 귀촌했다. 남자의 새로운 일터가 된 서점 한 귀퉁이, 진열된 책 위에 "서점 직원이 쓴 책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놓여 있었다. 부부의 여행기가 최근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왔다.

▲정도선·박진희씨 부부가 지난달 27일 경남 산청 자택 근처 산책로에서 손을 맞잡았다. 이 부부는 아내 박씨가 암수술을 받은 지 5개월 후인 지난해 1월 ‘골방 투병’이 아닌 길 위에서의 치유를 결심하고 7개월간 세계여행에 나섰다.
▲정도선·박진희씨 부부가 지난달 27일 경남 산청 자택 근처 산책로에서 손을 맞잡았다. 이 부부는 아내 박씨가 암수술을 받은 지 5개월 후인 지난해 1월 ‘골방 투병’이 아닌 길 위에서의 치유를 결심하고 7개월간 세계여행에 나섰다. / 산청=김종호 기자

 

"단 하루를 살더라도 '꿈'이 필요해 길을 나서"


―큰 수술을 받았는데 쉬지 않고 왜 굳이 여행을 떠났나.

(아내)"우리 둘 다 예전부터 세계 여행이 꿈이었다. 수술 직후 나는 세상이 다 끝난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교사가 되려고 스물여덟에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대학에 편입했다. 교육대학원 진학하고 교직 과정까지 마친 시점에 발병했다. 4년 반 준비한 것이 물거품이 됐다. 집에 틀어박혀 매일 울었다.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사느니 단 하루를 살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해 보고 싶었다."

―수술이 성공적이라 해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을 텐데.

(남편)"병원에선 전이·재발 가능성도 있고 뼛속에 남아 있는 종양이 악성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아내를 지켜보고 있자니 너무 무서웠다. 병이 병을 부르는 것 같더라. 결국 직장에 사표를 내고,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부부는 2014년 1월 서울을 떠나 태국 방콕으로 향했다. 원래는 태국에서 인도와 터키를 거쳐 유럽을 가려 했지만 계획은 여행 도중 계속 바뀌었다. 결국 태국에서 한 달 반, 멕시코에서 두 달, 과테말라에서 1주일, 쿠바에서 보름, 캐나다에서 한 달 반, 발리에서 열흘을 있었다.

도선씨의 퇴직금과 부부의 저축을 합친 돈 1200만원을 들고 떠난 여행이었다. 태국에서 멕시코로 갈 때엔 경비를 아끼려 여러 번 갈아타느라 비행기만 34시간을 탔다. 하룻밤에 2만원을 넘지 않는 싸구려 숙소에서만 자다 보니 대개 침대가 엉망이었다. 진희씨의 허리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멕시코에 머무를 때 한국에서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희생자 중에 부부가 아는 사람도 있었다. 몸도 힘든데 마음까지 괴로웠다.

처음으로 남편이 아내에게 언성을 높였다. "아니, 왜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면서까지 여행을 계속하려는 거야? 나중에 또 오면 되잖아!"

아내는 울며 대답했다. "이번이 마지막 여행일지도 모르잖아….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 않아."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미어진 남편이 말했다. "여보,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 남편은 더 이상 돌아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7개월간의 세계여행에서 비우는 법과 채우는 법을 동시에 배웠다고 했다. 작년 결혼기념일은 캐나다 체리농장에서 맞았다. 

 두 사람은 7개월간의 세계여행에서 비우는 법과 채우는 법을 동시에 배웠다고 했다. 작년 결혼기념일은 캐나다 체리농장에서 맞았다. / 정도선씨 제공

 

'내려놓기'와 '채우기'를 가르쳐준 여행


고달픈 여정이었지만 얻는 것이 많았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 곧 스승이었다. 서로 다른 모습,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맞닥뜨리다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넓어졌다.

―여행하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뭔가.

(아내)"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세상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내면에만 집중하며 사는 사람도 많았다. 아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교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니 남들에게 그럴듯한 일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더라. 그런데 여행을 통해 내가 교사 타이틀이 없더라도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남편)"비우는 것 못지않게 채워 넣고 짊어지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여행 중 자신에겐 더 이상 필요 없는 여행용품을 버리지 않고 배낭에 넣어 다니는 여행자를 만났다. 그 물건이 누군가에겐 꼭 필요할 것 같아 그런 사람을 만나 전해줄 때까지 가지고 다녔다고 하더라. 누군가를 위해 짐을 짊어질 수 있다는 것만큼 숭고한 행위가 또 있을까."

일정을 절반 정도 마쳤을 때 돈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돈을 벌며 여행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부부에게 멕시코에서 묵었던 숙소 주인이 "캐나다에 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6월 중순부터 말까지 캐나다의 오소유스라는 지역에 가면 체리 따는 일을 할 수 있어요. 체리 한 상자에 5달러를 쳐 주는데 제가 많이 딸 때는 하루에 50상자쯤 땄어요."

예정에 없던 캐나다행이 그렇게 결정됐다. 농장에서 야영하면서 새벽 4시 반부터 체리를 따는 생활이 시작됐다. 돈을 벌어 로키산맥 등반도 하고 미국 그랜드캐니언도 가겠다는 욕심에 신나게 일했다. 그렇게 한 달 반이 지났을 때 진희씨의 통증이 심해졌다. 통증이 턱까지 올라와 말을 하기도 힘들어졌다. 힘겹게 입을 벌려 진희씨가 말했다. "돌아가자."

―미국 여행을 포기하고 돌아오게 됐는데 아쉽진 않았나.

(아내)"캐나다행 비행기 안에서 이미 나는 '내가 새가 됐구나, 원 없이 날고 싶은 대로 날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더 여행하고 싶은 욕심을 채운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여행이 끝이 아니라 내 인생을 바꿀 길고 긴 여행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과 돌아온 후의 가장 큰 변화는.

(부부)"피터팬의 '네버랜드'란 없다는 걸 깨닫게 됐다. 세상에 완벽하고 아름답기만 한 청춘의 도시는 없더라. 행복이란 항상 내 주위에 있었는데 내가 보지 못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여행을 나가보면 비록 방 한 칸이더라도 내가 편히 누워 쉴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된다. 전세로 살고 있던 방 두 개짜리 연립주택이 고맙게 느껴졌다. 작은 것에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났다."

"기적은 내 마음속에"

감사와 여유를 배우고 돌아왔지만 서울 삶은 여전히 신산했다. 이러다간 여행이 준 '선물'을 잃어버리게 될 것만 같았다. 부부는 한 달 가까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연과 더불어 느긋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을 물색했다.

지난해 10월 경남 산청으로 내려왔다. 지리산 자락이 사방을 두르고, 맑은 강이 그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곳이다. 마침 산청 인근의 진주문고가 직원을 구하고 있었다. 도선씨는 다시 서점에서 일하게 됐다. 언젠가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서점을 차리고 싶다는 부부의 꿈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왔다. 6개월에 한 번이었던 진희씨의 정기 검진도 1년에 한 번으로 늦춰졌다. 일주일에 세 번 방과 후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정도로 건강이 회복됐다.

병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부부는 말한다.

(남편)"두려움보다는 지금 살면서 느 끼는 행복이 더 크다."

(아내)"남편이 말하더라. 병이라는 게 나쁜 것이긴 하지만 꼭 최악의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우리가 병 때문에 세계 여행이라는 소원을 이루지 않았느냐고. 가끔씩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면 겁이 나기도 하지만 그런 날은 안 올 거라고 곧 마음을 고쳐먹는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모든 걸 긍정적으로 보게 됐다. 이런 게 바로 기적인 것 같다."

 

-조선일보, 2015/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