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39] 배흘림기둥과 흰개미

하마사 2015. 10. 27. 12:45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사진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혜곡(兮谷) 최순우 선생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낭만을 즐기셨다지만, 우리는 이제 거기 잘못 기대다간 자칫 사찰이 무너질 판이다. 우리나라 목조 문화재 기둥들이 흰개미 때문에 수수깡처럼 숭숭하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흰개미는 우리나라에 없는 대표적 곤충으로 시험문제에도 나왔다. 그러나 최근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그 수가 급격히 늘어 급기야 제주도와 울릉도까지 함락당했다.

그런가 하면 흰개미 트림과 방귀가 온난화를 부추기는 주범 중 하나로 지목받고 있다. 흰개미는 주로 죽은 나무를 먹고 사는데 많은 흰개미가 나무의 주성분인 셀룰로스를 분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일찌감치 그들은 장 속에 원생동물과 각종 미생물을 끌어들여 그들로 하여금 대신 셀룰로스를 분해하도록 공생 계약을 맺었다. 이 공생균이 셀룰로스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보다 강력한 온실 기체인 메탄이 생산된다. 열대를 중심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벌목 때문에 죽은 나무를 먹고 사는 흰개미가 덩달아 폭증하고 있다. 흰개미 한 마리가 게우고 뀌는 트림과 방귀는 무시할 정도지만 워낙 많다 보니 폐해가 만만치 않다.

흰개미는 그냥 색깔이 흰 개미가 아니다. 진화적으로 바퀴벌레의 사촌 격인 곤충이다. 외부에서 먹이를 수확해 들여야 하는 개미와 달리 흰개미는 밖에는 나가지도 않은 채 나무 속에서 내부 확장 공사를 하며 긁어낸 벽체를 먹고 사는 바람에 입주한 지 한참이 지나도록 모를 수 있다. 그리고 무단 입주 사실이 발각될 즈음이면 강제 퇴출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일개미들이 구중궁궐에 고이 모시고 있는 여왕개미를 죽여야 박멸할 수 있다. 배흘림기둥을 빠개 여왕을 색출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일개미들에게 독약을 먹여 그걸 여왕에게 전달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장금이' 일개미들이 수라상에 오르는 음식을 먼저 시식하고 대신 죽어주는 바람에 속수무책이다. 그들의 행동과 생태에 관한 기초 연구가 앞서야 한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우선 적을 알아야 한다.

 

-조선일보, 201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