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꿈같은 기쁨

하마사 2015. 8. 16. 14:40

본문: 시 126:1~6

제목: 꿈같은 기쁨

목표: 꿈같은 기쁨을 누리며 살게 한다.

 

 

어제는 광복 70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우리민족에게 광복은 꿈만 같은 일이었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좋은 일이 일어나면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현실로는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에 꿈같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요셉은 꿈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받고 애굽으로 팔려가 모진 고생을 했지만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꿈같은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살다가 해방되는 꿈같은 기쁨을 누렸습니다. 모세의 인도를 따라 40년간의 광야생활을 거친 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의 감격은 꿈만 같았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이스라엘 백성이 70년간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경험한 기쁨을 노래하는 동시에 아직도 포로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의 시입니다.

민족적으로 평화적인 통일이 된다면 꿈같은 기쁨일 것입니다. 10여년 갈등하던 교회문제가 아름답게 해결될 때 꿈같은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기도하던 기도제목이 이루어진다면 꿈같은 기쁨일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민족적으로, 교회적으로, 개인적으로 꿈을 꾸면서 성취되기를 바라는 일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누렸던 꿈같은 기쁨을 살펴보고 우리도 이런 꿈같은 기쁨을 함께 누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꿈같은 기쁨

1. 해방의 기쁨(1절)

1절,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큰아들이 군대에서 4박 5일 동안 첫 휴가를 나왔을 때 휴가 나오니 무엇이 가장 좋으냐고 물었더니 ‘자유로움’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개인의 자유가 통제당하는 군대생활을 하다가 휴가 기간 동안 누리는 자유는 꿈같았을 것입니다.

본문은 남유다가 멸망하고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생활 하던 백성이 고레스칙령을 통해 해방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올 때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B.C. 538년 바사왕 고레스가 포로귀환 칙령을 내렸고 그 이듬해에 스룹바벨의 영도로 제1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역사적으로 고레스왕이 포로를 귀환하게 했지만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셨다고 노래하면서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당시 최강국이었던 바벨론이 메대-바사연합국에게 멸망당하고 이방 왕이었던 고레스의 뜻하지 않은 귀국명령으로 이루어진 포로귀환 사건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바벨론 제국이 그토록 일찍 망할 것이라고 상상했던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또한 나라가 망하고 형체도 없이 뿔뿔이 흩어져버린 민족이 고레스에 의해 모아져서 무사히 귀환하리라고 누가 꿈을 꾸었겠습니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시인은 이것을 꿈꾸는 것 같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꿈과 같이 믿기 어려운 일임과 동시에 황홀한 일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갑자기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오늘로 말하면 어느 날 갑자기 북한의 김정은이 DMZ(비무장지대)를 철거하고 평화통일을 제안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얼마나 감격적인 일입니까?

광복 70주년을 기념해서 정부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여 고속도로 통행료까지 면제해주면서 국가적인 축제일로 지켰습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은 우리 민족에게 꿈같은 기쁨을 안겨준 날이었습니다.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다가 해방의 감격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애국지사들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고 의병장 57명이 그곳에서 순국했습니다. 백범 김구선생과 도산 안창호선생을 비롯한 유관순열사와 같은 많은 애국지사들이 고초를 겪었습니다. 광복이후 서대문형무소문이 열리면서 애국지사들은 국민들과 더불어 자유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광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어떤 일간지에 ‘광복70주년, 숨은 영웅 70인’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민족을 도왔던 외국인들의 이름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외국인들까지 우리민족의 해방을 위해 도와주었습니다. 그중에 피치목사님은 상하이에서 YMCA 간사로 활동하며 한국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했습니다. 윤봉길 의거 직후에도 피치목사님은 보름이 넘게 2층 전체를 백범 일행에게 내줬습니다. 피치목사님의 부인은 윤봉길 의거의 진상을 밝히고 일제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영문으로 작성했습니다. 또한 피치목사님 부부는 김구선생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상해를 탈출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해방을 위해 우리민족의 노력이 가장 컸지만 외부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로 찾아온 해방이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를 전쟁에서 패하게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제가 패전하면서 우리 민족에게 해방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꿈같은 기쁨을 주셨습니다. 이렇듯이 꿈같은 기쁨이 국가적으로 찾아오기도 하지만 개인과 공동체에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의 한 여인에게 꿈같은 기쁨이 임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유대를 떠나 갈릴리지역으로 갈 때 수가성을 지나가셨습니다. 피곤하여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서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에게 물을 달라 하셨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낮에 물을 길러 온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이 다섯 명이나 있어 사람들의 멸시와 손가락질을 당하며 우울하게 살아가는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과 대화를 하면서 여인의 영적이고 내면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던 여인에게 메시야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메시야를 만난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자기를 멸시하던 동네사람들에게로 달려가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여인은 수치심에서 해방되었고 관계성이 단절된 감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여인에게는 꿈같은 기쁨이었습니다. 담을 쌓고 살던 마을사람들에게 달려가 “와서 그리스도를 보라”고 소리쳤습니다.

질병에서 해방된 사람의 꿈같은 기쁨도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만나서 고쳐주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자 일어섰습니다. 병에서 해방된 그는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평생 앉아서만 다니던 사람이 걷게 되었으니 꿈만 같았을 것입니다.

공동체에 임한 꿈같은 기쁨도 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급성장하면서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하고 큰 박해가 일어나서 성도들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중에 빌립이 사마리아성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상종하지 않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빌립이 복음을 전하자 더러운 귀신들이 물러가고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고침을 받는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유대인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사마리아성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였습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자 사마리아공동체가 꿈같은 기쁨을 누렸던 것입니다.

이런 질병과 관계단절에서 누리는 해방도 꿈같은 기쁨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감격적인 기쁨은 죄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사탄의 자식으로 살다가 영원히 지옥에 던져질 운명에 있던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주신 것은 그야말로 꿈같은 기쁨의 선물입니다.

로마서 8:1~2절은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죄 가운데 출생하여 죄를 지으며 살다가 영원한 지옥에서 형벌을 받아야 할 우리를 불쌍하게 보시고 죄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에서 해방을 받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만 하면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죄인의 신분이 변하여 의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은혜입니다. 해방의 감격과 기쁨입니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여전히 죄악 가운데 살면서 마귀의 종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에서 해방되었지만 나쁜 습관과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꿈같은 기쁨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된 해방의 기쁨입니다. 해방의 기쁨을 맛본 사람은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죄의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각종 죄악과 잘못된 습관, 나쁜 중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신 대가로 얻은 죄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헛되게 하지 말고 은혜에 보답하는 의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꿈같은 기쁨은

2. 찬양의 기쁨(2~3절)

2~3절,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시인은 포로귀환 당시를 회상하며 그 때의 찬양을 떠올렸습니다. 2절에 ‘그 때에’라는 구절이 두 번 나오는데 첫 번째 그 때에는 포로귀환 당사자들의 모습이고 두 번째 나오는 ‘그 때에’는 포로귀환을 바라보는 이방인들의 모습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오는 당사자들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혀에는 찬양이 가득했습니다. 원문을 보면 이런 기쁨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며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계속해서 웃고 찬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포로를 귀환하게 하신 것에 감사하면서 그들이 느낀 감동과 기쁨이 오래 지속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찬양은 ‘외침, 함성’이란 뜻으로 그들이 부른 찬양이 견딜 수 없는 감격 속에서 부르는 ‘기쁜 외침’, ‘열광’이었음을 말씀합니다. 그 감격을 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이런 찬양이 꿈같은 찬양입니다. 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열광적인 찬양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하신 일을 목도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냥 입술과 혀로만 하는 찬양으로는 너무 부족했습니다. 소리를 외치면서 춤을 추며 온몸으로 하는 열정적인 찬양이었습니다. 이런 찬양이 꿈같은 기쁨의 찬양입니다.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찬양의 기쁨입니다.

이런 꿈같은 기쁨의 찬양을 미리암과 여인들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홍해를 건넜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 뒤에서 애굽 군대가 추격해왔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다 건너자 애굽 군대를 바다에 수장시켰습니다. 홍해에서 구원받은 미리암과 모든 여인들이 손에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 15:2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장면을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부른 찬양이 입으로만 할 수 있는 찬양이었겠습니까? 소리를 외치며 춤을 추면서 감격에 겨워 온 몸으로 찬양했을 것입니다. 추격하던 애굽 군대를 수장시킨 구원의 하나님을 열광적으로 찬양했습니다.

다윗은 찬양을 좋아하는 왕이었습니다. 시로 하나님을 찬양했고 악기를 가지고 그리고 춤을 추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성에 들어올 때는 왕이란 신분도 잊은 채 자기의 옷이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온 몸과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는 것이 그렇게 기뻤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찬양이 꿈같은 기쁨의 찬양입니다.

사 43: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시 147:1,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찬송을 받기위해 우리를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선하고 아름답고 마땅한 일입니다.

이런 찬양은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체험한 사람들의 찬양입니다. 죽음에서 구원받고 올려드리는 감격적인 찬양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한 사람들의 감격적인 찬양입니다.

또한 그들이 꿈같은 기쁨의 찬양을 했던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두 번째 ‘그 때에’에 대한 이유로, 이방인들이 이방 땅에서 포로 귀환을 바라보며 보여준 반응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적적으로 구원하기 위하여 위대하게 행동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방인들의 입으로 큰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심지어 조롱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하신 일을 보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고백한다면 얼마나 감격적인 일입니까? 2절 후반절이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이방인들조차도 하나님이 행하신 큰일을 보고는 하나님을 고백하고 인정할 때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이 더욱 감격적이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변의 믿지 않는 가족이나 이웃 혹은 직장동료나 상사 때문에 힘드십니까? 하나님과 교회를 비방하고 욕하는 것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일을 행하셨듯이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큰일을 행하셔서 그들이 하나님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날이 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꿈같은 기쁨은 찬양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큰일로 인해 감격적이고 열정적으로 부르는 꿈같은 찬양의 기쁨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행하신 큰일로 인해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함께 찬양하는 꿈같은 찬양의 기쁨을 우리 모두가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꿈같은 기쁨은

3. 응답의 기쁨(4~6절)

4~6절,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시내들같이 돌려보내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1~3절에서 하나님께서 포로를 돌아오게 하신 사건을 회고하며 감격했던 시인은 4~6절까지 이스라엘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아직도 바벨론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도 빨리 남방 시내들같이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남방시내들’은 남방에 있는 시내들로서 건기에는 메말라 있다가 우기가 되면 순식간에 물이 가득 찼습니다. 지금은 포로들이 돌아오는 행렬이 보이지 않아 끊어진 것처럼 보이는 귀환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고향으로 돌아오는 포로들로 가득 채워달라는 기도입니다. 바벨론에서 포로로 잡혀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번에 돌아오지 못하고 3차에 걸쳐 돌아왔기 때문에 아직 돌아오지 못한 포로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을 씨 뿌리는 농부로 비유하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는 것은 비가 내릴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씨를 뿌리는 자의 탄식입니다. 비가 와서 윤택한 땅에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비를 기다려도 오지 않자 메마른 땅에 울면서 씨를 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1차 포로귀환을 하고 난 이후 약 80년 후에 2차 포로귀환, 그 이후 다시 14년 후에야 3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 계속해서 포로귀환이 이어지기를 바라지만 남방시내들에 물이 끊어지듯이 멈추고 말았습니다. 언제 다시 귀환이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였습니다. 반응 없는 메아리, 기약 없는 기도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 씨앗을 뿌려도 결실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집에 가만히 있지 않고 눈물을 흘리면서 밭에 씨앗을 뿌리러 나가는 농부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알고도 울면서 씨를 뿌린 농부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열매가 있습니다. 6절 하반절입니다.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눈물로 뿌렸는데 기쁨을 얻었습니다. 작은 씨를 뿌렸는데 곡식 단으로 돌아왔습니다. 놀라운 응답의 기쁨입니다. 말라붙은 남방시내에 물이 가득하듯 풍요로운 기도응답의 역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래가 없는 암담한 현실일지라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눈물로 씨를 뿌리면 하나님이 풍성한 기쁨으로 응답해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울면서 뿌린 작은 씨앗을 보시고 하나님은 반드시 풍성한 기쁨의 곡식 단으로 응답해주심을 믿고 오늘도 기도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어떤 기도제목이 있습니까? 재수하고 있는 둘째 아들에게 어떤 기도제목이 응답되었을 때 기쁘겠느냐고 물었더니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라고 답했습니다. 제 아들 뿐 아니라 저에게도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기도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까? 바짝 말라버린 시내를 보면서 다시는 물이 흐르지 않을 것 같습니까? 메마른 땅에 씨를 뿌리는 것이 바보짓 같습니까? 그래도 씨앗봉지에 희망의 씨앗을 담아 밭으로 나가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려야 합니다. 씨앗을 곡식 단으로, 절망의 눈물을 기쁨으로 바꿔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소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꿈같은 응답의 기쁨을 안겨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과 일터와 삶의 환경이 남방시내들까지 말라있다고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눈물을 흘리며 희망의 씨앗을 기도로 뿌리시기 바랍니다. 응답의 기쁨으로 꿈같은 기쁨을 얻게 하실 줄 믿습니다.

꿈같은 기쁨은 해방의 기쁨, 찬양의 기쁨, 응답의 기쁨입니다. 이런 꿈같은 기쁨을 지속적으로 누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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