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럼 잊은 시민, 정신 나간 판사, 我軍에 砲 쏘는 정치인
'正常'과 '非正常' 기준 다시 세워야
-
- 강천석 논설고문
어이없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 작년 올해 걸쳐 그때마다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다. 마치 늪에라도 빠진 기분이다. '정상(正常)이 무엇이고 비정상(非正常)이란 또 무엇이냐'를 되물을 겨를조차 없었다.
며칠 전 인터넷 뉴스에 '이케아(IKEA) 연필 거지'라는 뉴스가 떴다.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는 고객이 가구 치수를 재거나 구매 품목을 적을 때 쓰라고 몽당연필과 줄자를 비치해 놓고 있다. 고객들이나 사용할 것이니 값도 무료로 했다. 매점 개장 두 달도 안 돼 2년치 몽당연필이 동났다는 게 뉴스가 아니었다. 그걸 퍼 담아와 한 자루에 3000원 가격을 매겨 인터넷 매매 사이트에 올려놓았다는 게 뉴스다. 이케아의 전 세계 253개 매장에 없던 일이라고 한다. 이케아코리아는 스웨덴 본사에 몽당연필 추가 공급을 긴급 요청해 다시 채워넣었다. 국민소득이 몇백 달러 수준이라면 낮이 뜨거워도 그러려니 하겠다. 국민소득이 3만달러다. 3만달러 몸뚱어리에 몇백 달러 공공(公共) 윤리를 얹고 살고 있는 것이다. 정상이 아니다. 경제는 월반(越班)이 있어도 윤리의 학교에는 월반이 없는 걸 실감한다.
새정치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의 경우는 다른 차원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곱씹게 만든다. 정 최고위원은 갓 취임한 자기네 당 문재인 대표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것을 비판하며 난데없이 히틀러와 일왕(日王)을 끌어왔다. "독일이 유태인 학살에 사과했다 해서 히틀러 묘소에 참배할 수 있겠느냐" "일왕이 우리에게 사과했다고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일왕에게 절을 할 수 있느냐"고 했다. 그는 이케아 매장의 공짜 몽당연필을 슬쩍한 이름 모를 어느 누구가 아니다. 2017년 대선에 승리해 정권을 탈환하겠다는 제1야당의 최고위원이다. 대선전에서 활약할 주포(主砲)의 하나다. 그가 발사한 포탄은 전당대회 효과에 힘입어 몇 년 만에 겨우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자기네 당의 이미지에 일격(一擊)을 가했다. 새정치연합 안에서도 그를 돌출성(突出性) 강경파라고 비판하는 모양이다. 진격하는 아군 보병(步兵) 머리에 포탄을 터뜨리는 포병(砲兵)을 '강경파 포병'이라 부르는 거나 한가지다. 그는 강경파 포병이 아니라 '정신 나간 포병'이다.
판사는 유무죄(有無罪)를 심판한다. 판결문 한 단어로 감옥행과 무죄 석방을 가른다. 심판하는 사람이 정상이 아닌 세상은 아득하다. 그런 재판관 앞에 서서 선고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은 아찔하다. 법률 지식이 조금 부족한 판사에게 재판을 받겠느냐, 아니면 조금 제정신이 아닌 판사에게 재판을 받겠느냐 선택하라 한다면 뭐라 대답해야 하는가.
어느 부장판사가 지난 6년간 새벽 4시까지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인터넷 위에 뿌려 놓은 1만개의 댓글과 그가 구사한 단어가 풍기는 고약한 냄새 앞에선 코를 막을 도리밖에 없다. 언론은 그의 댓글 가운데 상당 부분을 단어 대신 'XXX'이라는 기호에 담아 옮겨야 했다. 아무리 호불호(好不好)가 있다 해도 전직 대통령을 향해 '쳐죽일 놈' '머리통을 바위 위에 터트려…' 운운하는 수준으로 미루어 'XXX'이라는 기호에 가려진 그의 얼굴을 짐작할 만하다. 만일 인터넷 공간의 익명성(匿名性)이 이런 판사를 보호하는 방패가 된다면 국민은 그보다 몇배 절실하게 그런 판사에게 재판을 받는 불의(不意)의 재앙(災殃)으로부터 몸을 가릴 방패가 필요하다. 공정한 재판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해도 미친 재판은 막아줘야 한다.
어느 사회건 '정상'과 '비정상'을 함께 품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이 생각만큼 분명하지도 않다. 그 경계선이 갈수록 분명해지기는커녕 갈수록 흐릿해지고 있다. '다수(多數)가 정상'이라는 기준만 내세우면 소수(少數)는 보호받을 길을 잃게 된다. 이것이 정상과 비정상 문제의 딜레마다. 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갇혀 우리는 속절없이 위험 사회로 떠내려가고 있다. 그래도 이 흐름을 멈춰야 한다.
술 냄새를 품기며 수술 칼을 드는 의사가 의사로 버틸 수 있는 사회, 조종사 면허가 없는 사람이 여객기의 이착륙(離着陸)을 지시하는 사회는 위험 사회다. 조난당한 여객선에서 선장이 가장 먼저 탈출하는 사회가 안전할 수는 없다. 재판관이 횡설수설하는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아군(我軍) 머리 위로 대포를 쏘아대는 정치인을 선명(鮮明)하다 하고 세금은 줄이고 복지는 늘리겠다는 구호에 표를 주는 정치는 언젠간 막장에 이른다. 우리는 지금 그 문턱을 넘고 있다.
'비정상'이 '정상'을 밀어낸 지 너무 오래돼 비정상과 정상의 차이조차 잊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리는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것보다 절박한 일이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조선일보, 2015/2/13
'자기계발 > 기타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후 5大 키워드… '홀로·친구·일·여행·텃밭' (0) | 2015.02.26 |
---|---|
스타교수 수천만원짜리 강의가 공짜… 난 '스마트폰 大學' 다닌다. (0) | 2015.02.25 |
[송희영 칼럼] 돈이 돈을 낳지 못하는 時代 (0) | 2015.02.08 |
火病(화병) 부르는 '鬱血(울혈) 사회' 넘어서기 (0) | 2015.01.31 |
종교 분쟁은 神이 아닌 사람 탓이다 (0) | 2015.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