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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 돈이 돈을 낳지 못하는 時代

하마사 2015. 2. 8. 11:27

美·日·EU 이어 중국까지 金利 내리고 돈 뿌리기 나서
장기 불황에 선제 대응해 일찍이 투자·소비 줄인 우리
低금리·돈 풀기 나선다 한들 이 난국 잘 헤쳐갈 수 있을까

 
정말 무서운 일이 닥칠 것만 같다. 돈 풀기에 중국이 가세했다. 일본과 EU의 뒤를 따라 금리를 내리고 은행 금고를 활짝 열었다. 미국은 여전히 제로 금리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돈이 흘러넘친다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돈이 햇빛처럼 흔해졌다.

스위스 국채는 70%가량이 마이너스 금리로 유통되고 있다. 스위스 국채를 사는 투자자는 만기 때까지 갖고 있으면 손해 본다. 그러는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둔다. 달리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 채권도 6년 이상짜리는 손해 보면서 사야 한다.

예금 몇 푼 은행에 맡겨둔 월급쟁이들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주택 대출금을 갖다 쓴 사람들은 아직도 높은 금리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이자율 제로가 무슨 말인지, 마이너스 금리가 무엇인지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미국·유럽·일본·중국 같은 큰손들은 오로지 자기 나라 경제를 살리려고 올인 베팅하고 있다. 이런 일은 역사상 처음이다. 화폐가 발명된 이후 처음이다. 자본주의가 탄생한 이래 최초의 현상을 지금 우리 세대가 겪고 있다고 보면 된다.

자본주의는 돈이 돈을 낳는 체제다. 투자를 하면 이익을 남기고 이익금을 재투자해 다시 더 큰 이익을 올리는 과정이다. 하지만 돈이 돈을 만드는 사이클이 고장 났다. 주요 국가들은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를 봐야 한다 거나 이자를 한 푼도 못 주겠다고 나오고 있다. 보관료를 내야 돈을 맡아줄 수 있다고 배짱을 튕기는 세상이 됐다. 자본주의 체제의 기둥이 무너지는 조짐이라고 볼 수 있다. 돈이 무한대로 증식(增殖)하는 시스템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세계를 열광시켰던 이념 중 하나가 공산주의였다. 함께 벌어 같이 나눠 먹자는 꿈에 많은 이가 열광했다. 그러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되면서 공산주의가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환상은 산산조각 났다. 북한만이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아 공산주의의 참혹한 실태를 보여주는 견학 코스 역할을 하고 있다.

소련 패망 후에는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가 최고라고 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모두 더 좋은 집에서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더 멋진 옷을 입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로부터 채 20년이 되지 않은 2008년 자본주의의 심장이라고 여겼던 월스트리트에서 무서운 핵폭탄이 터지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은 의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동인도회사 주주들은 1602년 지구 상에 첫 번째 주식회사를 세우면서 기업에 영구적인 생명(生命)을 불어넣었다. 주식회사는 이익을 내고 그 이익금은 또 다른 파생 기업을 만들어 내며 영생(永生)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일시적인 자금난으로 회사·은행이 도산하는 것을 겪었다. 그래서 나라마다 중앙은행을 창립해 화폐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시스템까지 구축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그런 자본의 확장·재확장이 중단되는 현상이다.

주식회사는 무한 확장을 사실상 멈추었다. 대기업들은 유보금을 쌓아둔 채 최소한의 투자에 그치고 있다. 전 세계 국가의 공통 고민이다. 은행이나 금융회사들은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중앙은행들이 돈을 거의 무한대로 살포하지만 그 돈은 대부분 중앙은행에 되돌아가고 있다. 돈이 돈을 버는 증식 활동이 막혔다는 증거다.

미국은 제로 금리, 화폐 무한(無限) 살포 정책으로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 일단 성공했다. 미국의 성공을 보며 유럽·일본·중국이 똑같은 도전을 하고 있다. 2008년 이래 '2차 통화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어느 곳이 두 번째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쩌면 앞으로 몇 년은 미국 홀로 승자(勝者)로 남을지 모른다.

우리 주변에선 경기가 피어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면서도 장기 불황을 걱정하며 선제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투자와 소비를 줄이고 원금이라도 지키려고 애를 쓴다. 집을 사두었다가 집값이 반 토막 나면 투자금 절반을 잃는다. 젊은이들이 집을 살 리 없다. 많은 한국인이 다른 나라 중앙은행이나 대기업들처럼 사실상 돈의 증식을 포기하고 있지 않은가. 돈이 번식력을 상실한 불임(不妊) 자본 시대가 닥친 걸 보면서 큰 바람이 오기 전에 먼저 드러눕는 풀잎처럼 재빠르게 행동하고 있다.

우리는 기업이 무한대로 늘어나고 화폐가 영원히 팽창하며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신앙은 서양에서 증기기관차를 발명했고 인터넷을 창조했다. 한국에선 삼성전자·현대자동차를 키웠고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힘이 됐다. 그러나 그런 자본의 무한 팽창론을 우리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안에서는 모두가 성장에 대한 기대를 접은 듯 움츠러들었다. 나라 밖에선 강대국들이 폭탄을 무차별 난사하고 있다. 우리가 금리를 더 내리고 돈을 무한정 공급한들 한번 깨어진 믿음, 오늘보다 내일이 더 잘될 것이라는 희망을 되살릴 수 있을까. 우리가 과연 돈이 돈을 낳지 못하는 시대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송희영

 

-조선일보, 201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