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행복과 희망

내 아이는 행복할까

하마사 2014. 11. 7. 08:54
네덜란드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를 둔 민오네와 4년 전 런던을 여행했다. 민오네는 과학자 아빠를 따라 유럽 여러 나라를 돌며 살고 있었다. 스웨덴 연수 시절 친해진 민오네와 시내버스 갈아타며 런던 곳곳을 구경하다 셋째 날 문제가 생겼다. 기차 타고 옥스퍼드대에 가자고 했더니 민오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긴 왜요?" 세계적 명문이니 아이들에게 캠퍼스 보여주면 '웅대한' 꿈을 키우지 않겠느냐고 옹색하게 답했다. 난처해하던 민오 엄마는 "우린 그냥 런던에 남겠다"고 했다.

▶옥스퍼드는 열 살 아이에게 최악의 여행지였다. 볼거리 하나 없는 소도시인 데다 대학가는 수도원처럼 고요했다. 굳게 잠긴 교문에 매달려 "세계 석학들을 배출하는 학교"라며 호들갑 떠는 엄마를 아이는 짜증 섞인 눈으로 쳐다봤다. 저녁에 민박집에서 만난 민오는 런던타워에서 본 왕들의 칼과 왕관이 얼마나 크고 멋졌는지 자랑했다. 기가 푹 죽은 아들은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만물상] 내 아이는 행복할까
보건복지부가 작년 조사에서 18세 미만 한국 청소년 삶의 질이 OECD 국가 중 꼴찌였다고 발표했다. 4년 전 민오 엄마가 황당해하던 표정이 떠올랐다. 민오네 나라 네덜란드의 아이들 만족도는 94.2점으로 1위다. 대한민국 10대가 행복하지 않다는 게 별반 새로운 뉴스는 아니다. 한국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두말할 것 없이 지나친 입시 경쟁 탓이다.

▶책 '대한민국 부모'는 10대 자녀를 둔 가정의 병든 실태를 고발한다. 성적 스트레스로 얼굴을 찡그리거나 입을 씰룩이는 장애, 환청과 환시, 책만 보면 눈가가 쓰리고 아픈 '책 알레르기'를 호소하며 상담소 찾는 아이들 고백이 적혀 있다. 부러움을 사며 아이비리그에 간 우등생 중에 상당수가 방학이면 한국에 들어와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지은 시 '여덟 살의 꿈'이 지난해 인터넷을 달궜다. '나는 영훈초등학교를 나와서/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 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 아이들은 어쩌다 꿈을 이루려면 '스펙'부터 쌓아야 한다고 믿게 된 걸까. 좋은 대학 못 가면 인생이 막장으로 치닫는다 겁주는 부모들. '댁 자녀가 수업 태도 불량으로 벌점 1점을 받았으니 주의시키라'며 기계적으로 문자를 날리는 교사들. 아이들을 불행으로 몰아가는 입시 제도는 수술할 생각 않고 '9시 등교' '자유학기제' 같은 당의정 정책만 남발하는 교육 당국자들. 누구 죄가 더 클까.

 

 

-조선일보 만물상, 201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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