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기타자료

권력과 우정

하마사 2014. 8. 14. 09:38

1988년 11월 늦가을 해가 일찍 저물었다. 서울 연희동 사저에서 전두환이 청와대 주인 노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통령에게 직접 확인하고 싶네. 나를 백담사로 보내는 게 이녁의 뜻이 맞는가?" 노태우가 말했다. "신변을 지켜주지 못해 부끄럽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잠시 고생하면 원상으로 돌리겠네." 이튿날 전두환은 비리를 속죄하고 재산을 헌납한다는 성명서를 읽었다. 그리고 집 앞에서 백담사행 서울 2두 6759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인제군 용대리 52연대에서 군 복무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백담사 수색 정찰을 3년 다녔다. 비포장 버스길에서 다시 좁은 흙길을 구불구불 이십리쯤 들어가야 했다. 전깃불은 고사하고 변변한 화장실·목욕실도 없던 곳이다. 거기서 전두환은 와신상담, 섶에 눕고 쓸개를 씹듯 한마디를 남겼다. "우리 집안에 제사 지낼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갇혀버렸어." 노태우는 "가슴이 쓰라렸다"고 했다. 그러나 둘 사이는 결정적으로 틀어진 뒤였다.

만물상 일러스트

▶노태우는 금이 간 우정을 안타까워했지만 회고록엔 명확히 썼다. '그가 동생 전경환을 새마을운동 회장에 앉힌 것은 잘못됐다. 장인 이규동 옹에게 대한노인회 회장을 맡긴 것도 현명하지 못했다.' 전·노 둘은 육사 동기다. 함께 군문(軍門)에 발을 들였고, 노 대위 결혼식 땐 전 대위가 사회를 봤다. 미국 특수전 유학을 갔을 때도 둘은 샤워실·화장실을 같이 썼다. 그러나 올림픽이 끝나고 몰아친 '5공 청산' 바람이 한 사람을 백담사로 내몰았다.

▶둘은 이제 팔십을 훌쩍 넘긴 노인이 됐다. 엊그제 전 전 대통령이 투병 중인 노 전 대통령을 이틀이나 찾아가 문병했다.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한동네에 살았지만 친구가 친구 집을 들르기까지 또 다른 세월 한 토막이 필요했다. 병을 앓는 친구는 친구가 찾아와도 침대에서 몸을 세우지도 못했다. 친구가 말을 걸었다. "이 사람아, 날 알아보시겠는가." 병상의 친구는 부인이 말 심부름을 하자 겨우 눈꺼풀을 깜박였다.

'대리석과 권력은 차갑고, 딱딱하고, 매끄럽다.' 중국 속담이다. '5공 전두환'은 "왜 나를 백담사로 내쫓았나?" 묻고, '6공 노태우'는 "세상이 변해 대통령도 어쩔 수 없었다네" 했을까.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두 사람 버전으로 바꾸면 '권력에 취하고 우정에 울고'다. 권력이라는 대리석은 우정이라는 공을 차갑게 튕겨낸다. 병상에 누운 친구의 눈꺼풀이 말했을 것 같다. "이 사람아, 권력의 비정함을 이제 알겠는가."


-조선일보 만물상, 2014/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