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야구선수, 루게릭

하마사 2014. 6. 5. 11:31

1941년 오늘은 미국 야구사에서 큰 별이 떨어진 날입니다.

지금은 ‘루게릭병’으로 더 알려진, 뉴욕 양키즈의 전설적 타자

루게릭이 세상을 떠났지요.

 

루게릭은 1923년 뉴욕 양키즈에 입단했지만 2년 동안 후보 신세였습니다.

그러다가 1925년 6월 2일 당시 1루수가 컨디션 난조를 호소해 대신 출전할 기회를 잡았습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고 했지요?

이 경기에서 두 개의 안타를 치면서 1루수 자리를 꿰찼습니다.

루게릭은 1926~1937년 12년 연속 3할 대 타율을 올린 것을 비롯해서 17년 동안 평균 타율 .030, 출루율 .447, 장타율 .632, 홈런 493개, 만루홈런 23개 등을 기록하며 베이브 루스 등과 함께 양키스의 ‘살인 타선’을 이끌었지요.

루게릭은 무려 2,130 경기에 연속 출전하는 대기록도 세웠습니다.

상대 투수의 공에 머리를 맞고 의식을 잃고서도 일어나 경기에 임했습니다.

허리를 다쳤을 때엔 겨우 타석에 들어서 안타를 치고 이를 악 물고 1루에 간 뒤 대주자와 교체해 병원에 가기도 했습니다.

은퇴 무렵 엑스레이를 찍었을 때 곳곳에 골절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철마(鐵馬)’란 별명이 붙은 것, 당연하지요?

게릭은 1938년 13년 만에 처음으로 2할 대 타율을 기록합니다.

그래도 .295였습니다만, 게릭은 뭔가 예전같이 않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치는 것도, 뛰는 것도 힘들어집니다.

그는 2,131번째 경기를 앞두고 감독에게 경기 불참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메이요클리닉에서 ‘근육위축가쪽경화증(근위축측삭경화증)’이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병 이름은 ‘근육이 쪼그라들면서 가쪽이 푸석푸석하게 변한다’는 뜻이지요.

뇌와 척수의 운동세포가 점점 파괴되면서 팔다리의 운동기능이 떨어져 고생하는 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려 3,000명의 환자가 있습니다.

루게릭은 1939년 7월4일 양키즈 구장에서 6만여 명의 팬이 참석한 가운데 눈물의 은퇴식을 갖고 17년 정든 구장을 떠납니다.

 

“저는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야구장에서 17년이나 뛰었고 팬 여러분들로부터 친절과 격려만 받아 왔습니다.

…(생략)…

딸과 사위가 옥신각신할 때 사위 편을 들 줄 아는 훌륭한 장모가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바쳐 저를 교육시키고 단단하게 만들어주신 부모는 커다란 축복이지요.

아내가 제가 꿈꿨던 것보다 훨씬 강하고 용기 있는 모습으로 옆에 있다는 것은 최고로 멋진 일이고요.”

 

마지막까지 감사할 줄 아는 그 모습, 참 강하지 않나요?

양키스는 메이저 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게릭의 등번호 4번을 영구결번으로 남겼습니다.

게릭은 그해 말 ‘명예의 전당’에 오릅니다.

36세의 최연소였고 은퇴 후 유예기간 없이 오른 것은 처음이었지요.

게릭이 숨지자 아내 엘리너 게릭은 재혼하지 않은 채 루게릭병 연구를 지원하는 데 평생을 바칩니다.

훌륭한 남편에, 훌륭한 아내이지요?

루게릭이 세상을 떠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이 병은 확실한 치료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병의 정체도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유전학과 세포치료학이 급속히 발전해 이 병을 비롯해서 지금 난치병으로 여기는 수많은 병들을 치료할 날도 머지않았을 겁니다.

언젠가 어떤 과학자가 치료법을 개발한다 해도 이에 앞서 게릭 부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헌신이 쌓여 그 결과가 나오게 된다는 과학적 이치, 잊어선 안 되겠죠?

 

(이성주의 건강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