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신경숙은 신문 사진 두 장을 오려 서랍 안에 붙여뒀다. 강수진과 박지성의 발 사진이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은 피멍과 상처 범벅이다. 발가락엔 혹이 튀어나왔다. 발레 신발이 하루 서너 켤레 해지도록 열다섯 시간씩 연습한 발이다. 울퉁불퉁 뒤틀린 박지성의 발엔 스파이크에 찍힌 흉터가 철조망처럼 기어간다. 게다가 평발이다. 발바닥에 움푹 들어간 '아치'가 없어 충격을 잘 빨아들이지 못한다. 무리해 걷고 뛰면 무릎·허리까지 다치기 쉽다.
▶의사들은 박지성의 평발을 '의학적 인간 승리'라고 부른다. 패드같이 두꺼운 발바닥 굳은살과 힘줄 불거진 근육들이 대신 충격을 흡수한다. 엄지발가락은 달리기에 알맞게 위로 들렸다. 중노동 하듯 뛰고, 공이 발 구석구석에 하루 3000번 닿도록 단련한 결과다. 강수진이 박지성의 발 사진을 보고 말했다. "그분도 그만큼 고생했고 아팠겠지요. 잘하고 계시니까 그만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발은 축구 선수 박지성이 지닌 단점들을 상징한다. 그는 축구 명문 출신 엘리트도, 천재도 아니었다. 화려한 개인기도 없었다. 수원공고 들어갈 때 키가 158㎝였다. 프로 2군 테스트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2002월드컵 앞두고 대표팀에 발탁됐는데도 인터뷰하자는 기자가 없었다. 그가 훗날 자서전에 썼다. '내가 얼마나 발전하고 성장했는지 정말 말하고 싶은데 아무도 안 와 속상했다.' 그는 얼마 안 가 기자들이 가장 만나기 힘든 선수가 됐다.
▶박지성이 에인트호번에서 뛸 때 홈관중은 야유와 함께 맥주컵을 던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자 영국 언론은 '아시아에 티셔츠 팔려고 데려온 꼬마'라고 했다. 에인트호번 홈팬은 결국 열광적 응원가 '위숭 빠르끄(지성 박)'를 불렀다. 맨유 스타디움에도 '나의 박지성을 이적시키지 마(Don't sell my Park)'라는 응원가가 울렸다. 그는 위기와 좌절을 번번이 딛고 일어섰다.
▶박지성이 서른셋에 은퇴했다. 거듭된 무릎 부상과 수술을 버티지 못해서다. 축구 인생 24년을 뛰어낸 평발이 무릎을 망가뜨렸을 것이다. 그는 성격이 지도자에 맞지 않고, 해설가는 후배들에게 궂은소리 해야 하니 싫다고 했다. 그는 베켄바워나 플라티니 같은 축구 행정가를 꿈꾼다. 그래서 FIFA 마스터 코스부터 밟을 것 같다고 한다. 은퇴 회견장에 부모를 모셔놓고 그가 말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 힘입니다. 제가 진 빚을 갚으면서 살아가겠습니다." 박지성은 마음 따뜻한 스타, 보통사람들의 영웅이었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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