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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뜻연합선교회 김동호 목사

하마사 2014. 4. 12. 18:35

"교회 나오란 얘기 안해요, 밭 갈고 기다려야죠"

건물 안 짓고 교회 분립한 지 5년… 높은뜻연합선교회 김동호 목사
2009년 교회 건물 대신 공장 설립… 탈북자 일자리 제공, 매출 40억
교회 나눈 후 교인은 4000명 늘어 "돌이켜 보면 평생 가장 잘한 일"

 

"어떤 조직이든 성장 속에 패망의 인자(因子)가 자라고 있다. 성장의 동력이 됐던 요인이 패망의 원인으로 바뀌는 순간을 가려야 한다. 지금이 높은뜻숭의교회가 나뉘어서 더 잘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해 '엉뚱한 짓'을 했다."


2009년 2월 인터뷰에서 김동호 높은뜻연합선교회 대표 목사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지난 9일 만난 김동호(63) 목사는 "돌이켜 보면 교회 분립(分立)은 평생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당시 높은뜻숭의교회는 한국 개신교계에서는 드문 교회 분립이라는 실험을 시도했다. 2001년 10월 서울 남산 숭의여대 강당을 빌려 예배를 드리며 창립한 교회는 8년여 만에 교인이 5000명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숭의여대 강당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자 새 건물을 구하는 대신 2009년 교회를 네 개로 나눴던 것. 각각의 교회는 담임목사를 따로 두고 재정·인사도 독립했고 김 목사는 높은뜻연합선교회 대표 목사를 맡았다. 그리고 교회 건물 짓는 데 쓰일 돈으로 새터민(탈북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박스 공장과 커튼 공장 등을 세우고, 새터민과 국내외 취약 계층을 돕는 열매나눔재단을 세웠다.

김동호 높은뜻연합선교회 대표 목사는“건물을 짓는 대신 교회를 나눈 지 5년이 지나니 교회 수와 교인 수 가 모두 늘었다”며“평생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교회 분립”이라고 말했다.
김동호 높은뜻연합선교회 대표 목사는“건물을 짓는 대신 교회를 나눈 지 5년이 지나니 교회 수와 교인 수 가 모두 늘었다”며“평생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교회 분립”이라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솔직히 분립 당시엔 교인이 40% 정도는 줄어들 것이란 각오를 했습니다. 2007년 제가 안식년으로 교회를 1년간 비웠을 때에도 20% 정도 교인이 빠진 적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기우(杞憂)였다. 그 후 5년, 4곳으로 출발했던 교회는 국내 6곳, 일본 1곳 등 모두 7개로 늘었고, 교인 수는 9000명이 됐다.

김 목사는 분립을 전후한 과정을 "교회는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지 않고 해야 할 일이면 했다"며 "주어진 일을 하다가 하나님이 새 문을 열어주시면 그 안으로 들어가곤 했다"고 했다. 공장은 계속 적자였고 '접어야 하나'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한 아주머니 직원이 전날 야근 후 늦잠을 자는 바람에 출근버스를 놓치자 김포 집에서 공장이 있는 파주까지 4만원 들여 택시 타고 와서 '우리를 위해 공장을 세워주셨는데…'라며 일을 마쳤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아 이건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박스 공장은 작년 4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성공 궤도에 안착했다고 김 목사는 자랑했다. "우리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100명 남짓에 불과하지만 전체 2만5000여 새터민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김 목사는 새터민을 비롯해 도움을 받는 사람들에게 교회 나오라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김 목사는 "밭을 먼저 갈고 씨를 뿌리고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직 정년(65세)이 2년 남았지만 김 목사는 이달부터 내려놓기를 시작한다. 4월 중 열매나눔재단과 열매인터내셔널 이사장직을 내려놓는다고 말했다. "목회는 릴레이 같은 것입니다. 100m를 달렸으면 이젠 바통을 후배들에게 넘겨줘야죠. 좀 빨리 달린다고 400m를 다 뛰다간 망신당합니다. 이제 불이 붙었으니 점화플러그는 물러나야죠."

대신 그는 글과 설교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했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 8만명씩 읽는다"는 김 목사는 지난 2월부터는 "얘들아, 할아버지는…"이라며 어린이를 대상으로 성경 내용을 동화처럼 풀어서 설명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 그는 "어린이들의 '입질(반응)'이 오기 시작했다"며 "은퇴 후에는 아이들에게 '성경 가르치는 서당 훈장'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조선일보, 2014/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