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마다 섬진강 구비마다 ‘축복 만개’
시절이 좋았다.
경남 하동 청암제일교회의 봄날은 하늘하늘대는 축복이 만개해 있었다. 어느 풀 한 송이엔들 생명의 면류관을 얻지 않은 것이 없었다. 4월 초 하동군 청암면 상이리 봄은 격정을 인내한 사랑이 불붙은 듯한 꽃 잔치였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가 전남 구례읍을 지나면서 마주한 봄 풍경은 섬진강변을 따라 쉼 없이 펼쳐졌다. 섬진강을 사이에 둔 구례 사람이나 하동 사람 모두 강변에서 화무십일홍을 즐겼다. 더구나 외지에서 온 관광객은 ‘품바’ 복장의 엿장수 가위가락에도 어깨춤을 들썩였다. 버스가 노랫말로 유명한 ‘화개장터’와 소설 ‘토지’의 무대 평사리를 지나 하동읍에 닿을 때까지 섬진강과 지리산은 봄의 교향곡을 쏟아냈다. 그것이 남도의 봄을 즐기는 격정의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상이리 청암제일교회의 봄은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벧 1:24)는 말씀을 그대로 보여줬다. 남도 봄의 속살은 신앙 안에 있을 때 군더더기 없는 풍경을 보여줬다.
청암제일교회는 섬진강 옆 지리산 자락 하나를 넘어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리산 천왕봉 아랫녘 청학동을 윗마을로 두고 있었다. 소위 도인촌으로 불리는 청학동은 유도(儒道)가 유달리 강한 지역으로 근자 들어 예절학당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방학 때마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초·중·고생이 예절학당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교육자본과 상업자본이 합해져 시전처럼 번잡해졌다. 여기에 무속과 타종교 등이 힘을 얻으면서 거대 한옥식 콘크리트 건물이 이 깊은 지리산 계곡 사이사이에서 남생이 목 드러내 듯했다.
이러한 가운데 청암제일교회가 복음의 일선에서 힘겨운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었다. 따라서 예배당의 규모, 교인의 수, 역사성 등을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했다.
예배당은 블록을 쌓고 시멘트로 마무리한 전형적인 시골교회였다. 바람이 숭숭 드나들 것 같은 예배당 옆 사택 역시 다르지 않았다. 험준한 지리산 자락이다 보니 이마저도 산등성을 깎아 내어 건축한지라 지반이 불안정했다. 요즘 같으면 콘크리트 타설로 반석을 이뤘겠으나 시골교회 형편상 쉽지 않았다.
이 교회가 봉헌된 것은 1985년. 그 무렵 교회 아래 하동댐 공사가 진행되면서 모교회도 수몰 지역에 포함됐다. 6개 자연부락 200여 가구가 수몰됐다. 교인 대부분은 댐 아래 청암면사무소 소재지의 청암교회로 이전했다. 이 바람에 시목마을을 포함한 댐 윗마을 교인의 교회 출석이 쉽지 않았다.
이때 수몰지역 몇몇 교인 등이 지금의 청암제일교회 교육관으로 쓰이는 어느 교인 집에서 가정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청암제일교회의 시작이었다. 유·불·선 색채가 유난한 이곳에서 유복남(86) 권사 등이 새벽 제단을 쌓으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신앙생활을 했다. 무슨 한국 사회에서 그리 절박한 심정으로 신앙생활을 할까 싶지만 제사를 기반으로 한 씨족사회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사막에 버려진 과부나 고아의 신세를 자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지역 복음화율 3%가 그 어려움을 말해준다.
지금이야 도로가 포장되고 산을 넘는 도로가 뚫려 적잖은 관광객이 몰리지만 그 무렵만 해도 산에 막혀 되돌아 나가야 되는 전형적인 산촌이었다. 하동읍까지 24㎞, 걸어서 6시간의 심심산골이었다.
이러한 산촌, 교인 서너명에 불과한 곳에 목회자를 청빙하기도 쉽지 않았다. 전도사는 부임 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뀌기 일쑤였다. 전도는 고사하고 신앙 지키기도 힘든 상황이 지속됐다.
그리고 94년 이래 손용우(52) 목사가 양들을 떠나지 않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지역교회로 자리 잡았다.
“워낙 노인 비율이 높고 완고한 지역이라 주변에서 걱정 많이 해주십니다만 목회자로서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적할 만한 힘을 주님께서 주셨다고 봐요. 30여명의 교인도 저와 같은 생각입니다.”
당시 손 전도사는 “지리산 자락 주민 영혼 구원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겠다”고 기도했다. 문화적 혜택을 따져 옮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잡았다.
“제가 부임하기 전 경남 양산 평산교회 전도사로 있으면서 이 마을 학교(상이분교)에 수련회를 왔어요. 그 후 신학교(대구신대) 동기가 단독 목회를 해보지 않겠냐며 권해 방문하게 됐는데 바로 이 마을의 청암제일교회였던 겁니다. 오기까지 인간적 고뇌가 많았지요. 평생 그 지역에서 헌신할 수 있는가를 놓고 작정 기도한 끝에 오게 된 겁니다.”
동일한 상황. 조유순(52·사회복지사·청암면 푸른빛지역아동센터장) 사모는 어땠을까.
“우리나라 전도사가 당신 혼자냐. 그 외진 곳에 왜 당신이 가야 하냐. 나는 공부도 해야겠고, 돈도 벌어야 한다고 했어요. 목사님은 예나 지금이나 내가 싫다고 하면 안하는 분이세요. 그런데 그때 딱 한번 단호하시더라고요. 더 억울한 건 내가 일주일 만에 산촌생활에 적응하더라는 거예요.”
사모의 유쾌함에 남편이 빙긋이 웃었다. 신학교 시절 부부는 매우 가난했다. 아내가 부산 자유시장서 김밥장사를 해서 남편 공부를 시켜야 할 정도로. 그런 부부가 이곳에 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위한 들일을 하다가 쯔쯔가무시병에 걸려가며 전도를 했다.
“10여년이 지나니 비로소 이 마을 사람으로 인정해 주더군요. 그만큼 복음 전하기기 쉽지 않다는 얘기도 됩니다. 더구나 농어촌 현실이 그렇지만 70%가 조손가정 등 기도제목을 안고 있어요.”
손 목사는 2009년 12월 이곳 상이리 이장에 추대됐다. 유불선 동네에 목사 이장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또 하나, 그는 푸른빛지역아동센터 대표다. 아동센터 어린이 대부분은 주일학교 학생이다. 윗마을 아랫마을 어린이 17명이 주일학교에 다니는 것은 100% 전도나 다름없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때 이곳에 들어와 20대 후반 신학대학원 준비생이 됐습니다. 아들이나 주일학교 아이들처럼 다음 세대가 기도릴레이를 하는데 부족한 것이 뭐 있겠습니까.”
손 목사 부부는 요즘 아동센터를 놓고 기도 중이다. 손 목사가 신학교 시절 수련회를 왔던 상이분교를 임대해 아동센터 운영이 쉽지 않다. 자비량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청학동 유불선식 예절학당 교육이 안타까워 ‘청학동 산촌유학센터’를 운영 중이다. 산촌 목사에게 버거울 만도 한데 표정은 늘 온화하다. 아동센터 주방아줌마에서 교사까지 1인 다역을 하는 사모도 마찬가지.
교회와 아동센터는 지금 산수유, 매화, 벚꽃, 명자꽃, 진달래, 제비꽃 등이 만화방창이다. 태초에 말씀이, 말씀 속 교회가, 그 교회의 목사가, 그 목사의 교인이, 그 교인의 가정이, 그 가정의 후손이 이 봄처럼 예쁘다. 섬진강과 지리산을 낀 봄 교회였다. 하나님이 입히시는 들풀과 들꽃이었다.
■ 하동 청암제일교회 가는 길
서울 기준으로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하동행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아침 7시30분 첫차를 시작으로 오후 5시30분 막차까지 하루 일곱 차례. 4시간 소요. 하동터미널에 내려선 청학동 가는 버스가 3시간마다 한번씩 있다. 상이리에 하차. 30분 소요. 기차는 서울 용산역에서 출발 광주 환승, 하동역 하차. 하루 세 차례. 5시간50분 소요. 자가용 이용의 경우 대진고속도로 단성IC에서 빠진다. 경남 하동군 청암면 상이리 59-3 청암제일교회(055-882-7230).
■ 근처 맛집
늦은 저녁을 맛있게 먹고 황토온돌방에 누워 창문을 여니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들과 투명하게 부서져 내리는 계곡 물소리, 코끝에 와 닿는 봄 내음에 온몸의 긴장이 녹아내린다.
경남 하동군 청암면 지리산 청학동 계곡 아래, 청암제일교회 김인숙 권사 부부가 운영하는 황토벽돌 펜션 ‘풀잎하우스’.
서울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조선일 집사는 부인이 몇 차례 큰 수술을 받으면서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말에 아무 미련 없이 사업을 접고 2008년 이곳에 정착했다. 집 마당 앞 계곡에 사계절 풍족히 흘러내리는 청정수 사이로 널려 있는 맥반석의 넓적한 바위에 누워 싱그러운 공기와 함께 150m 암반수를 뚫고 올라온 생수를 마시면서 김 권사는 수술 후유증도 말끔히 걷어냈다.
천안에서 대형 뷔페식당을 운영했던 김 권사가 추웠던 지난겨울을 이겨낸 취나물 두릅 원추리 고사리 냉이 등으로 버무려 낸 봄나물을 주 메뉴로 밥상을 한 상 가득 냈다. 새소리, 물소리, 흙내음, 풀내음 더불어 야외에서 구워 먹는 참숯 바비큐 역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하다. 외가에 온 듯 편안하게 대해주는 주인 부부의 넉넉함은 덤이다. 다슬기잡이, 친환경자연체험, 낚시, 삼림욕을 즐길 수 있고 찜질방, 수영장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2∼3명에서 단체까지 묵을 수 있게 객실엔 주방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청암제일교회에서 차로 5분 거리(055-882-3674).
하동=글 전정희 기자·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jhjeon@kmib.co.kr
시절이 좋았다.
경남 하동 청암제일교회의 봄날은 하늘하늘대는 축복이 만개해 있었다. 어느 풀 한 송이엔들 생명의 면류관을 얻지 않은 것이 없었다. 4월 초 하동군 청암면 상이리 봄은 격정을 인내한 사랑이 불붙은 듯한 꽃 잔치였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가 전남 구례읍을 지나면서 마주한 봄 풍경은 섬진강변을 따라 쉼 없이 펼쳐졌다. 섬진강을 사이에 둔 구례 사람이나 하동 사람 모두 강변에서 화무십일홍을 즐겼다. 더구나 외지에서 온 관광객은 ‘품바’ 복장의 엿장수 가위가락에도 어깨춤을 들썩였다. 버스가 노랫말로 유명한 ‘화개장터’와 소설 ‘토지’의 무대 평사리를 지나 하동읍에 닿을 때까지 섬진강과 지리산은 봄의 교향곡을 쏟아냈다. 그것이 남도의 봄을 즐기는 격정의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상이리 청암제일교회의 봄은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벧 1:24)는 말씀을 그대로 보여줬다. 남도 봄의 속살은 신앙 안에 있을 때 군더더기 없는 풍경을 보여줬다.
청암제일교회는 섬진강 옆 지리산 자락 하나를 넘어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리산 천왕봉 아랫녘 청학동을 윗마을로 두고 있었다. 소위 도인촌으로 불리는 청학동은 유도(儒道)가 유달리 강한 지역으로 근자 들어 예절학당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방학 때마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초·중·고생이 예절학당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교육자본과 상업자본이 합해져 시전처럼 번잡해졌다. 여기에 무속과 타종교 등이 힘을 얻으면서 거대 한옥식 콘크리트 건물이 이 깊은 지리산 계곡 사이사이에서 남생이 목 드러내 듯했다.
이러한 가운데 청암제일교회가 복음의 일선에서 힘겨운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었다. 따라서 예배당의 규모, 교인의 수, 역사성 등을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했다.
예배당은 블록을 쌓고 시멘트로 마무리한 전형적인 시골교회였다. 바람이 숭숭 드나들 것 같은 예배당 옆 사택 역시 다르지 않았다. 험준한 지리산 자락이다 보니 이마저도 산등성을 깎아 내어 건축한지라 지반이 불안정했다. 요즘 같으면 콘크리트 타설로 반석을 이뤘겠으나 시골교회 형편상 쉽지 않았다.
이 교회가 봉헌된 것은 1985년. 그 무렵 교회 아래 하동댐 공사가 진행되면서 모교회도 수몰 지역에 포함됐다. 6개 자연부락 200여 가구가 수몰됐다. 교인 대부분은 댐 아래 청암면사무소 소재지의 청암교회로 이전했다. 이 바람에 시목마을을 포함한 댐 윗마을 교인의 교회 출석이 쉽지 않았다.
이때 수몰지역 몇몇 교인 등이 지금의 청암제일교회 교육관으로 쓰이는 어느 교인 집에서 가정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청암제일교회의 시작이었다. 유·불·선 색채가 유난한 이곳에서 유복남(86) 권사 등이 새벽 제단을 쌓으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신앙생활을 했다. 무슨 한국 사회에서 그리 절박한 심정으로 신앙생활을 할까 싶지만 제사를 기반으로 한 씨족사회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사막에 버려진 과부나 고아의 신세를 자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지역 복음화율 3%가 그 어려움을 말해준다.
지금이야 도로가 포장되고 산을 넘는 도로가 뚫려 적잖은 관광객이 몰리지만 그 무렵만 해도 산에 막혀 되돌아 나가야 되는 전형적인 산촌이었다. 하동읍까지 24㎞, 걸어서 6시간의 심심산골이었다.
이러한 산촌, 교인 서너명에 불과한 곳에 목회자를 청빙하기도 쉽지 않았다. 전도사는 부임 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뀌기 일쑤였다. 전도는 고사하고 신앙 지키기도 힘든 상황이 지속됐다.
그리고 94년 이래 손용우(52) 목사가 양들을 떠나지 않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지역교회로 자리 잡았다.
“워낙 노인 비율이 높고 완고한 지역이라 주변에서 걱정 많이 해주십니다만 목회자로서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적할 만한 힘을 주님께서 주셨다고 봐요. 30여명의 교인도 저와 같은 생각입니다.”
당시 손 전도사는 “지리산 자락 주민 영혼 구원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겠다”고 기도했다. 문화적 혜택을 따져 옮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잡았다.
“제가 부임하기 전 경남 양산 평산교회 전도사로 있으면서 이 마을 학교(상이분교)에 수련회를 왔어요. 그 후 신학교(대구신대) 동기가 단독 목회를 해보지 않겠냐며 권해 방문하게 됐는데 바로 이 마을의 청암제일교회였던 겁니다. 오기까지 인간적 고뇌가 많았지요. 평생 그 지역에서 헌신할 수 있는가를 놓고 작정 기도한 끝에 오게 된 겁니다.”
동일한 상황. 조유순(52·사회복지사·청암면 푸른빛지역아동센터장) 사모는 어땠을까.
“우리나라 전도사가 당신 혼자냐. 그 외진 곳에 왜 당신이 가야 하냐. 나는 공부도 해야겠고, 돈도 벌어야 한다고 했어요. 목사님은 예나 지금이나 내가 싫다고 하면 안하는 분이세요. 그런데 그때 딱 한번 단호하시더라고요. 더 억울한 건 내가 일주일 만에 산촌생활에 적응하더라는 거예요.”
사모의 유쾌함에 남편이 빙긋이 웃었다. 신학교 시절 부부는 매우 가난했다. 아내가 부산 자유시장서 김밥장사를 해서 남편 공부를 시켜야 할 정도로. 그런 부부가 이곳에 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위한 들일을 하다가 쯔쯔가무시병에 걸려가며 전도를 했다.
“10여년이 지나니 비로소 이 마을 사람으로 인정해 주더군요. 그만큼 복음 전하기기 쉽지 않다는 얘기도 됩니다. 더구나 농어촌 현실이 그렇지만 70%가 조손가정 등 기도제목을 안고 있어요.”
손 목사는 2009년 12월 이곳 상이리 이장에 추대됐다. 유불선 동네에 목사 이장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또 하나, 그는 푸른빛지역아동센터 대표다. 아동센터 어린이 대부분은 주일학교 학생이다. 윗마을 아랫마을 어린이 17명이 주일학교에 다니는 것은 100% 전도나 다름없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때 이곳에 들어와 20대 후반 신학대학원 준비생이 됐습니다. 아들이나 주일학교 아이들처럼 다음 세대가 기도릴레이를 하는데 부족한 것이 뭐 있겠습니까.”
손 목사 부부는 요즘 아동센터를 놓고 기도 중이다. 손 목사가 신학교 시절 수련회를 왔던 상이분교를 임대해 아동센터 운영이 쉽지 않다. 자비량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청학동 유불선식 예절학당 교육이 안타까워 ‘청학동 산촌유학센터’를 운영 중이다. 산촌 목사에게 버거울 만도 한데 표정은 늘 온화하다. 아동센터 주방아줌마에서 교사까지 1인 다역을 하는 사모도 마찬가지.
교회와 아동센터는 지금 산수유, 매화, 벚꽃, 명자꽃, 진달래, 제비꽃 등이 만화방창이다. 태초에 말씀이, 말씀 속 교회가, 그 교회의 목사가, 그 목사의 교인이, 그 교인의 가정이, 그 가정의 후손이 이 봄처럼 예쁘다. 섬진강과 지리산을 낀 봄 교회였다. 하나님이 입히시는 들풀과 들꽃이었다.
■ 하동 청암제일교회 가는 길
서울 기준으로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하동행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아침 7시30분 첫차를 시작으로 오후 5시30분 막차까지 하루 일곱 차례. 4시간 소요. 하동터미널에 내려선 청학동 가는 버스가 3시간마다 한번씩 있다. 상이리에 하차. 30분 소요. 기차는 서울 용산역에서 출발 광주 환승, 하동역 하차. 하루 세 차례. 5시간50분 소요. 자가용 이용의 경우 대진고속도로 단성IC에서 빠진다. 경남 하동군 청암면 상이리 59-3 청암제일교회(055-882-7230).
■ 근처 맛집
늦은 저녁을 맛있게 먹고 황토온돌방에 누워 창문을 여니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들과 투명하게 부서져 내리는 계곡 물소리, 코끝에 와 닿는 봄 내음에 온몸의 긴장이 녹아내린다.
경남 하동군 청암면 지리산 청학동 계곡 아래, 청암제일교회 김인숙 권사 부부가 운영하는 황토벽돌 펜션 ‘풀잎하우스’.
서울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조선일 집사는 부인이 몇 차례 큰 수술을 받으면서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말에 아무 미련 없이 사업을 접고 2008년 이곳에 정착했다. 집 마당 앞 계곡에 사계절 풍족히 흘러내리는 청정수 사이로 널려 있는 맥반석의 넓적한 바위에 누워 싱그러운 공기와 함께 150m 암반수를 뚫고 올라온 생수를 마시면서 김 권사는 수술 후유증도 말끔히 걷어냈다.
천안에서 대형 뷔페식당을 운영했던 김 권사가 추웠던 지난겨울을 이겨낸 취나물 두릅 원추리 고사리 냉이 등으로 버무려 낸 봄나물을 주 메뉴로 밥상을 한 상 가득 냈다. 새소리, 물소리, 흙내음, 풀내음 더불어 야외에서 구워 먹는 참숯 바비큐 역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하다. 외가에 온 듯 편안하게 대해주는 주인 부부의 넉넉함은 덤이다. 다슬기잡이, 친환경자연체험, 낚시, 삼림욕을 즐길 수 있고 찜질방, 수영장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2∼3명에서 단체까지 묵을 수 있게 객실엔 주방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청암제일교회에서 차로 5분 거리(055-882-3674).
하동=글 전정희 기자·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jhjeon@kmib.co.kr
-국민일보, 201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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