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 초록은 짙어 가는데 교회 108년 기억은 희미해져…
동요를 부르다 눈물바다가 됐다. 70세 넘은 권사들도 연방 눈물을 찍어냈다. 동요 ‘산속의 토끼야’ ‘얼룩송아지’ 때문이었다. ‘어버이날’인 지난 8일 경기도 군포시 둔대케노시스교회 주일 예배 풍경이다.
이날 강인태 목사는 ‘축복받는 첩경’이란 설교를 시작하면서 동요 두 곡을 부르자고 했다. ‘…토끼야’의 ‘…겨울이 되어도 걱정이 없단다/ 엄마 아빠가 모아논/ 맛있는 먹이가 얼마든지 있단다’와 ‘얼룩송아지’의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라는 가사 대목에 이르렀을 때 묘한 슬픔이 목울대로 밀려 나왔다.
그리고 강 목사가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부모가 먹이고 입혔으며, 부모를 통해 인도를 받았다”며 “창조의 원리와 이치가 가정을 통해 이뤄졌다”고 전했다. 잠언 1장과 6장 등에 나타난 가정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말씀은 뼈가 되고 살이 됐다.
설교가 끝날 즈음, 100여명의 참석자는 ‘어머니의 마음’ ‘어머님 은혜’ ‘어머니의 넓은 사랑’을 연이어 불렀다. 그리고 축도가 이어졌음에도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수리산 자락에 낀 교회 뒤뜰에는 붉은 명자꽃이 5월의 빛을 자랑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동행한 아내도 노래를 부르며 울었고, 우는 할머니들을 보고 또 울었다.
둔대케노시스교회 설립일은 1903년 3월 1일. ‘케노시스’는 ‘하나님의 자기 비우심’을 뜻하는 말인데 2007년 ‘둔대교회’에서 바뀐 명칭이다. 경기도 의왕시에 있던 ‘케노시스교회’와 합병을 했기 때문이다.
신도시 산본이 속한 군포시는 수도권 위성도시의 특성을 그대로 안고 있다. 콘크리트와 간판, 박제처럼 정돈된 산수. 하지만 둔대교회(약칭)는 어느 먼 시골교회와 진배없다. 수리산과 반월호수를 앞뒤로 한 배산임수. 교회 앞 마을은 번잡한 식당촌이 되어 가나 교회만은 옛 예배당과 종탑 등을 어렵사리 보존해 왔다.
둔대교회는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07년 합병 이후 교인 수가 상승 곡선을 그으며 지금은 100여명에 이르나 이전까지는 20∼3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산 너머 반월면이 급격히 팽창해 안산시가 되고, 군포읍이 시가 되었어도 산자락 마을공동체 시골교회였다.
한데 이 교회는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무대인 안산시 본오3동 샘골교회의 자매교회쯤 된다. 1930년대 초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1909∼1935)은 샘골교회에 학교를 세우게 된다. 이때 최용신은 둔대교회 설립자 박경춘의 아들 용덕씨를 설득, 3477㎡(1052평)의 땅을 기증받았다. 박용덕은 당시 반월지역 부호였다. 두 교회와의 거리는 직선 4㎞ 정도. 최용신과 샘골교회는 그 땅에 13칸짜리 건물을 지어 강습소 겸 예배당으로 활용했다. 따라서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의 모델인 근대여성선각자 최용신 연구에는 둔대교회와 박용덕이 추가 되어야 한다.
현재 둔대교회 아래는 1800년대 건축한 ‘박용덕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정확히는 그의 부친 ‘박경춘 고택’이라고 해야겠으나 이미 굳어진 상태다. 1900년 무렵 수원 반월면(현 안산·군포 일원)의 부호 박경춘은 후대를 위해서라도 신문명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독선생(과외교사)을 들인다. 용덕씨가 7∼8세 될 무렵인데 이때 독선생으로 초빙된 이가 ‘황 선생’. 서울 근대식 교육기관 배재학당 출신이었다.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박경춘에게 서양 근대문명과 개신교를 받아들여야 함을 역설했을 것이고 이에 예수를 알게 된 박경춘이 1903년 봄 지금의 둔대교회를 토담집 형태로 건립, 예배를 드리게 된다. 안산시에 첫 교회가 세워진 것이 샘골교회(1907)라고 알려졌으나 수원 반월면을 기준으로 보자면 둔대교회가 앞선다. 따라서 안산시를 기준으로는 샘골교회, 군포시를 기준으로는 둔대교회인 셈이다.
이 교회 강인태 목사는 “당시 ‘황 선생’의 정확한 이름과 활동 상황 등을 알기 위해 배재학당 학적부 및 관련 자료를 뒤졌으나 아직 찾지 못했고 박씨 가문의 구술과 감리교 자료 등에 근거해 ‘황 선생’인 것만 알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지금의 둔대교회 예배당은 30년대 초반 헌당된 53㎡(16평) 초가였다. 이후 슬레이트와 기와 등으로 번갈아가며 지붕을 얹었고, 외벽도 흙벽에 시멘트 포장을 하는 등 변화가 있었으나 뼈대만은 소나무를 이용한 초가 건축 그대로다. 근대 교회 건축사적 가치가 있는 것. 부흥되지 않은 것이 되레 30년대 예배당을 보존하게 됐다.
교회 설립과 관련한 박상애(서울 영락교회)씨의 증언. “증조할아버지(박경춘)가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토담교회를 건축했다는 얘기를 어머니(김금준·작고·당시 둔대교회 집사)로부터 들었다”
또 2009년 주일동(작고·당시 93세) 명예권사의 구술. “내가 열일곱 살 때 토담으로 되어 있던 기존 예배당을 헐고 새로 지었어. 등에 돌을 지고 날랐지.”
한편 김금년(작고·당시 89세) 명예권사는 60년대 추억을 회상했었다. “제가 서른 살 때부터 한 10여년 교회 종을 쳤어요. 한데 어느 날 교회 종이 닳아서 높은 데서 떨어졌어요. 팔을 조금 다쳤지요. 김 권사는 ‘종당번’이 별명이었다.
이제 초대교회 기억을 간직한 노 권사는 최금순(84) 할머니뿐이다. ‘고개너머’(반월면 중심마을을 지칭)에서 이곳까지 시집왔다는 최 할머니는 “우리 오빠가 최용신으로부터 교육을 받았다”며 “당시 샘골교회를 다니며 믿는 사람과 혼인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버티다 스무 살이 되도록 결혼을 못했어. 그러다가 둔대마을로 시집와 둔대교회를 다녔지”라고 말했다.
김경화(76) 권사가 “그래, 믿는 사람이셨어요” 묻자 “무슨, 허렁허렁 사는 한량이더라고” 해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주일동 김금년 성도는 올 초봄 하늘나라로 가셨다. 최금순 권사는 구부러진 허리로 교회길로 오르면서도 그 헛헛함에 기운이 빠진다. 이렇듯 한국 초대교회 성도들은 삶의 끝자락에 있다. 이 때문에 강인태 목사는 마음이 바쁘다. 교회 역사를 파악하고 정리하는 일, 기독교문화유적을 보존·복원하는 일 등이 산적해서다. 시(市)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도와주고는 있지만 교계가 주인 의식을 가지고 나서지 않는 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우리 한국 교회는 어쩌면 ‘어머니의 마지막 눈물’을 외면한 채 뒤도 안돌아보고 성장만을 계속하다 봉변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둔대교회. 자식교육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눈물 같은 근대 계몽기 교회였다.
■ 군포 둔대케노시스교회 가는 길
서울 기준. 지하철 4호선 안산행을 타고 대야미역에서 내린다. 이곳에서 마을버스 6-1번을 타고 반월호수에서 하차해 산쪽 방향으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교회다. 자가용 이용 시 군포IC 또는 산본IC를 통해 빠진다. 경기도 군포시 둔대동 434 둔대케노시스교회(031-437-0592).
군포=글 전정희 기자·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 근처 맛집
한정식 전문점 ‘감로수’
군포 3경의 하나인 반월저수지의 황금빛 일몰이 찰랑거리는 호숫가에 별장 같은 한정식 전문점 ‘감로수’(031-437-5003)가 자리 잡고 있다.
늘 전원생활을 동경했던 식당주인 손태진씨가 남편의 고향인 이곳에 논밭을 메워 그림 같은 집을 지었다. 뜨락의 돌 하나, 풀 한포기에 정성을 쏟으면서도 틈틈이 서울을 오가며 궁중음식을 배워 10여 년 전 전문식당을 열었다.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경치구경에 흠뻑 빠진 이들이 출출해지면 찾는다.
다양한 계절죽으로 시작하는 코스요리는 일단 눈을 즐겁게 한다. 에피타이저부터 후식까지 맛과 영양으로 가득하다. 요리재료는 그날그날 남편과 데이트 겸 인근 농수산물센터에서 구입하고 채소류는 집마당 한 편의 채마밭에서 무농약으로 키워 사용한다. 한정식은 일반 음식에 비해 시간과 정성이 배로 들어간다. 특히 감로수한정식은 채소로 만든 천연색소를 사용해 적당히 화려하면서도 깊은 맛이 배어 있다.
이 집의 고추장, 된장 등 장류는 손맛이 야물기로 소문난 시어머니가 직접 담갔다. 모든 음식에는 손씨가 개발한 다양한 천연조미료를 사용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감칠맛이 살아 있다. 아홉 가지 천연 소스를 얹어낸 그린 샐러드, 너비아니구이, 대하찜, 모듬전, 잡채 등은 내용물이 실하다. 먹고 나면 기운이 솟는 들깨버섯탕도 인기.
감로수 정식은 1만7000∼3만5000원이고 그 외 다양한 일품요리가 준비되어 있다. 군포IC를 빠져나와 대야미역 방향으로 2.5㎞ 지점의 반월호수 초입에 위치. 둔대교회에서는 걸어서 10분 거리.
글·사진=곽경근 선임기자
-국민일보, 201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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